0. 이 글은 단상이다.
그저 즉흥적으로 쓰는 글이다.
잠도 안오고, 우울하기도 하고... 암튼.

1. 내가 자주 찾는 capcold 블로그에서 블레이드런너:파이널컷 짤막 감상.라는 글을 읽었다. 이 글을 쓰는 '즉흥적인 이유'다.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그 글에도 '테커드는 리플리컨트'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다. 댓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2.  테커드는 리플리컨트인가? 
capcold님께서 본문과 댓글에 쓰고 계신 것처럼 데커드(해리슨 포드)가 리플리컨트인가에 대한 논란은 리들리 스콧이 공식 인터뷰에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것 같다. 이 점이 나로선 더 흥미롭다. 아무튼 이 논란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는 모습은 [블레이드런너]라는 텍스트의 위대함과 열정적인 관심을 방증한다. 걸작은 항상 '현재 속에서 살려지는 법'이다(부버, "본질적인 것은 현실 속에서 살려지고, 대상적인 것은 과거 속에서 살려진다".[나와 너] 중에서).

최근에 새롭게 개편한 네이버영화 사이트의 홍성진 해설에도 이에 대한 짧은 설명이 있다.
 

more..


리플리컨트 논란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건 정성일이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에서 했던 언급이다. 나는 FM 영화음악의 소위 '열혈'청취자였는데, 특히 정성일이 일주일에 한번씩 방송에 나와 들려줬던 영화 이야기를 몹시 좋아했다. 그 때는 정성일 방송분은 거의 모두 녹음해서 여러번 반복해 들었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청취자들이 그랬을거다. 암튼 정성일에 의한다면,

ㄱ. 리들리 스콧은 데커드를 리플리컨트라는 암시(꿈 속 유니콘 장면과 유니콘 종이접기)를 영화 속에 넣고 싶어했다.
ㄴ. 그런데 데커드가 리플리컨트라면, 아마도 관객들은, 실망할 수도 있을테니, 이를 염려한 제작자가 그 장면을 삭제했다.
ㄷ. 결국 초기 상영버전에는 그 꿈 속 유니콘 장면은 있지만, 데커드의 책상(?) 위에 종이 유니콘을 올려넣는 장면은 없다.
ㄹ. 그리고 92년 재개봉된 '감독판(디렉터스컷)'에는 그 장면이 다시 삽입되었다.


리플리컨트 논란에서 흥미로운 점은 위 홍성진의 영화 해설에서 잠깐 언급된 바와 같이 영화라는 텍스트의 가장 권위적인 독자의 한명인 '작가 그 자신'이 '데커드는 리플리컨트다'라고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데커드를 연기했던 연기자 해리슨 포드는 이를 거절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전 '팟캐스트(무비 토크 9회 - 영화해석방법에 대한 논쟁)
'를 통해서 이 점에 대해 링크님과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3. 텍스트의 주인은 누구인가?
(미국의 경우) 신비평 이후 해체주의(데리다의 영향을 받은 예일학파), 그리고 독자반응비평(스탠리 피쉬)이 등장하면서 텍스트를 잉태한 산모로서 당연히 인정되었던 저자의 권위는 점점더 도전 받고 있다. 텍스트는 때로는 저자의 의도를 배반하는 것이면서, 또 텍스트 그 자체는 스스로의 체계에 의해 해체되는 것이기도 하며('의미는 그 의미를 추구하는 방식에 의해 해체된다'), 거기에 더해 텍스트를  완성하는 것은 저자나 텍스트 그 자체가 아닌 독자의 해석이다.

나는 신비평류의 고전적인 텍스트 해석방법에 대해서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그건 너무 재미없는 방식이다. 그 방식은 저자(감독)를 절대시하여 저자의 유일무이한 권위로서의 '정답'을 구하는, 그리하여 텍스트(내재한 저자의 의도)에 손쉽게 순응하는 방식이 되기 쉽다. 물론  텍스트를 산출한 '산모로서의 저자(감독)'은 그 텍스트에 대해 가장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그 텍스트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 노력한 창조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 저자는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는 권위자'들 중의 하나임은 분명할테지만,  이미 텍스트가 (저자의 아이디어 바깥에) 실존하는 이상 또 다른 '해석자'이자 '독자'의 하나에 불과하기도 하다.

4. 텍스트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갖고 성장한다.
달리 말하자면, 텍스트는 텍스트를 둘러싼 여러가지 입장과 관점들 간의 '대화'를 통해서 자란다. 이 세상에 해석 아닌 것 없고(가다머), 이 세상에 기호 아닌 것 없다(에코). 해석과 대화를 통해 텍스트는 자란다. 그리고 그 해석과 대화는 권위적 강단 비평과 저자들만의 몫이 아닌, 그 텍스트를 체험한 모두의 것이다. (집단으로서의) 독자가 그저 순응적인 '학생'이 아닌, 스스로 텍스트에 뛰어 들어 자신의 실존을 적극적으로 투사할 수 있을 때, 자신의 목소리로 텍스트를 고정시키려는 권위에 진지하게 뛰어들고, 그 이야기들이 끝없는 '대화'로 이어질 때, 민주적인 의미생산과 소통의 체계가  끊임없는 진행형으로서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

저자와 독자들은 텍스트를 닫으려는(close) 경향을 갖지만,
좋은 예술작품은 언제나 열려 있으려는(open) 경향을 갖는다.

- 프랭크 커모드, '내러티브, 해체주의, 그리고 해석학의 제문제', 김성곤과의 대담 중에서. [미로 속의 언어], p. 140. 민음
사.


* 발아점
블레이드런너:파이널컷 짤막 감상. (capcold)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minoci.net/trackback/330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
  1. Nights 2007/12/16 19:32

    이래서 블로그는 재미있죠

    perm. |  mod/del. |  reply.
  2. 엔디 2007/12/17 08:49

    "텍스트는 닫혀 있으면서 열려지려 하고, 열려 있으면서 닫혀지려 한다"고 김현 선생이 일기에 썼었죠. 확실히 텍스트는 두 가지 경향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12/17 15:50

      행복한 책읽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데요. : )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런 말씀 하신 것 같습니다.
      김현 선생을 좋아하시나봅니다, 무척 반갑네요.

    • 엔디 2007/12/17 21:15

      좋아하기는 하지만, 역시 독서가 짧아 부끄러운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가운 건 매한가지네요. 이런 데서 도전받고 다시 책 좀 읽어보렵니다. 바쁘다고 핑계만 대지 말고 말이죠. ^^

    • 민노씨 2007/12/19 23:57

      저도 요즘엔 통 책을 못읽고 있는데요.
      종종 책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교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 )

  3. 민노씨 2009/09/16 08:48

    * 사소한 추고.
    문단 사소한 재배치.

    perm. |  mod/del. |  reply.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댓글 입력 폼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