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었던 문예출판사판 표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Jerome David Salinger)
: 1919년 1월 1일 뉴욕 ~ 2010년 1월 27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Jerome David Salinger)
: 1919년 1월 1일 뉴욕 ~ 2010년 1월 27일
0. 이 글의 문장들 중 어떤 것들은 '나는 영화다'(이것도 물론 내 글인데)의 어떤 문장들과 겹친다. 자기 인용인 셈인데, 비슷한 시기에 썼던 글이고, 그 문장들 말고 딱히 다른 문장들이 생각나지 않았을 뿐이다. 물론 게으름이기도 하고.. 이 글을 웹상에 처음 올린 건 한겨레블로그였다. 거기에 있던 글은, 내 원칙상으론 지워야겠으나, 거기에 있던 논평들에 그 본문이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지우지 않는다. 물론 이 글은 그저 감상적인 서평에 불과하지만...
이 글은 '책에 대한 단상 - 1. 책 분류법 혹은 독서법'에 잠깐 등장한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한 언급 때문에, 생각난 김에 '민노씨.네'로 옮겨오는 글이다. 추고는 최소한으로 한다. 끝으로 이 글 마지막 문단의 어투는 의도적으로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의 어투를 흉내내고 있다. 유치하더라도 그것은 의도적이다. 아, 그리고 하나 더. 고유명사인 외래어의 표기상의 기준은 모르겠지만, 내가 읽었던 출판사판에서는 '홀든 코울필드'라고 적고 있지만, 이제는 '홀든 콜필드'라고 부르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기존에 '코울필드'로 표기했던 것은 '콜필드'로 바꾼다.
1. 관계.
나는 어떻게 책과 만나는가. 나는 책의 이미지들을 통해 그 책의 본질들과 만난다. 이미지만이 본질에 닿아 있다. 그 본질이 드러나는 방식은 관계를 통해서인데, 모든 존재들이 그 스스로를 드러내는 그 관계, 그와 마찬가지로 나와 책 속에 있는 홀든과 우리인 소설의 풍경들은, 그러므로 가상적 현실들, 그 실재들은 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그 신비로운 베일을 벗는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그것은 이미지의 잔상들이다. 그 잔상들의 이어짐을 통해서 우리는 책, 어떤 이야기, 소설과 만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만질 수 없는 물질성을 소설의 ‘육체적인’ 속성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은 이것과 다른가. 그 본질은 같다. 우리는 소설을 만나는 그 방식으로 세계와 만난다. 우리가 세상을 구성한다고 믿는 그 알갱이들, 그 본질들은 그러나 우리의 신념과는 상관없이 하나의 이미지이며, 그 이미지들의 끊임없는 질주와 정지과 교차인 것이다
2. 접촉.
아주 진지하게 묻자. 당신은 어떻게 나를 아는가. 내가 당신의 이성과 감수성의 씨줄과 날줄로 무수하게 엉켜진 그 복잡하기 그지없는 회로들과 만나는 방식. 그것은 이 글이다. 나와 당신 사이의 공통분모, 그 문법이라는 배경과 그 배경을 만들어 가는 개개의 단어들을 통해 당신은 나라고 생각되는 이미지들, 어떤 어투, 어떤 느낌들과 만난다. 그것은 대개 착각에 기반한다. 당신은 나를 이루고 있는 어떤 편린, 그 편린들의 극히 일부를 통해서 나라는 어떤 이미지의 지극히 협소한 부분과, 지금, 조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만질 수 없는 촉감이며, 잡을 수 없는 몽환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나와 만나고 있다.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할 텐가. 그렇다. 그것은 기적이다. 기적. 우리에게는 기적적으로, 공감의 회로들이 서로에게 각자 존재한다. 그 기적의 매개는 언어이며, 우리가 서로를 느끼는 방식은,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느끼는 방식은 그 언어의 풍경들인 것이다. 기억들의 고정과 고정의 변주를 통해 이어지는 낯선 기억들과의 재회. 그것이 삶이다. 우리는 그 풍경들을 어떤 소설들을 통해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만나려 하는 풍경. 꺽다리 홀든. 홀든 콜필드다. 나는 홀든을 부르면, 벌써부터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3. 그 아이, 홀든.
홀든. 그 아이가 어른이 되게 하는 일, 당신이 나와 만나는 일.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 홀든이 어른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은 선택해야 한다. 무엇을? 당신과 당신을 둘러싼 세상, 그리고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 그 모두를 말이다. 참여하도록 선동하고, 그 선동이 삶의 방향을 틀도록 누구나 고함을 질러야 한다.
그 고함은 그러나 비유적인 고함이며, 외침이다. 모든 속삭임, 아무 것도 없는 침묵은 그러나 고함인 것이다. 아주 가느다란 목소리로 당신에게 말하는 나의 속삭임. 홀든의 목소리는 아주 냉소적으로 세상에 퍼진다. 그리고 나의 내면에 침잠한다. 그 가느다란 떨림, 작은 고백. 하지만 그 목소리가 메아리로 돌아와야 하는 것은 커다란 파도와도 같은 함성. 외침.
4. 나, 홀든 콜필드
나는 홀든이다. 당신, 나, 홀든의 글을 읽는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나의 친구인가. 나의 친구. 친구 말이다. 당신이 나의 친구가 되길 바란다. 바란다는 건, 무엇인가를 소망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바람은 그저 공상이거나 꿈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이 현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 때문에 바랄까. 내가 바라는 것. 당신이 바라는 것.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저 소망하고, 그저 바란다면 그건 정말 바라는 게 아니지.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 바라기 위해선, 그래서 바라보아야 한다. 바라본다는 거 말이다.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의 주변을 바라보고, 그 모두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바라봄으로 항상 소망은 시작되고 있다.
본다는 것은 그 피상의 현상적 이미지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물론 말이다. 그 바라봄은 어떤 뽀얀 시선의 가상적 관계들을 그 최초에 만들어낸다. 그 관계, 안개처럼 희미한 관계 말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지하철 입구의 거지아저씨는 나와 희미한 안개 속으로 함께 걸어들어 가서, “아저씨, 당신은 왜 지금 여기에 있어요?”. 나는 질문하고, 아저씨는 알 수 없는 말을 내게 건다. 그러나 그 대화, 그걸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그 희미한 관계로부터 나는 거지 아저씨의 앙상한 손, 그 손에 묻은 때의 얼룩에 대해서 나만의 기억을 갖게 되고, 그 기억으로부터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
5. 다시, 공감.
이상하다. 왜 나는 여기에 있지. 라고 나는 떠올려 보는 거다. 왜 아저씨는 저기 웅크리고 앉아 있지. 나, 홀든은 호밀밭의 파수꾼.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은 낭떨어지를 향해 달려가는 순수의 동작들. 그리고 저기 웅크리고 있는 아저씨. 정말은 내가 아주 어른이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나는 속수무책이란 말이다.
* '호밀밭의 파수꾼'을 둘러싼 이야기들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채프먼(Mark Chapman)이 탐독한 소설로 유명하다. 암살 순간 그의 손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들려있었으며, 그의 암살 동기는 거짓과 가식에 대한 콜필드의 절규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의 작품세계는 수많은 미국 뮤지션(그린데이, 오프스프링, 빌리 조엘 등)과 영화인, 심지어 테러리스트와 암살범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리아 카잔(Elia Kazan)감독이 영화화하고자 했으나 샐린저는 '홀든이 싫어할까 봐 두렵다'라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생애는 2000년에 <파인딩 포레스터>를 통해 '간접적으로' 영화화되었다. [이상 인터파크 제공 저자 소개문 발췌 인용] : 파이어폭스에서는 깨져서 링크는 생략. ㅡ.ㅡ;
* 작가연보
1940년 『휘트 버넷 단편지(紙)』에 단편소설 「젊은이들」
1948년 『뉴요커』지에 단편소설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1951년 유일한 장편소설『호밀밭의 파수꾼』
이후 단편소설집 『아홉 개의 이야기』, 중편소설집 『프래니와 주이』 『목수들아, 대들보를 높이 올려라』를 출간(그 뒤에 긴 침묵)
( 이상 인터파크 제공 저자 소개문 발췌 인용)
* <앵무새 죽이기>
한겨레블로그에 썼을 때 많은 분들께서 하워드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함께 추천했다. 아직 <앵무새 죽이기>를 읽지는 않았는데... 기회가 닿으면 함께 다시 읽어보고 싶다.
* 인터넷 구입가격 비교
민음사, 공경희 번역본 기준.
인터파크가 가장 싸다. 7,000원 → 최저가 4,550원 / 적립금 228원(5%).
예전엔 그랬는데, 그 때는 주로 IE를 써서 불편함을 몰랐으나, 지금은 주로 FF를 써서, 들어가봤더니 사이트가 깨진다. ㅡ..ㅡ;
알라딘에서 살펴보니 민음사판과 문예출판사판, 그리고 소담출판사판이 있는데...
내가 읽은 건 문예출판사판(민음사판이 나오기 전의)이지만, 가격은 민음사판이 좀 더 싸다.
민음사, 공경희 번역본 (4900원)
참고로 문예출판사판은 5600원이다. ㅡ.ㅡ;
* 관련글
'책에 대한 단상 - 1. 책 분류법 혹은 독서법'
* 이 글과 관련있는 블로그(그냥 추정 : )
decadence in the rye
ㄴ관련 추천글 : 보수적 변화는 왜 우월한 진보전략인가 (in the rye) : 엄청난 글!!!
* 이 글과 관련없는 추천글
045. 블로그산업협회, 솔직해져라! (08.03.31) (새드개그맨) : 역시나 멋진 팟캐스트.
* 공익을 위한 홍보 (총선관련)
홍정욱 압승? 이상한 헤럴드경제 여론조사 (미디어오늘) : 양아치짓 하는 해럴드경제. 정말 이러고도 신문사라고 우기면... 그냥 웃어야 하는건진.. ㅡ.ㅡ; 관련포스팅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홍보용으로다가. : )
진보도 진보해야 합니다!! (진보신당 총선 정책공약 발표)
[한나라당 VS 진보신당] 1탄. 우리에겐 "We Can"이 있다!
[한나라당 VS 진보신당] 2탄. 사회연대전략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
[한나라 VS 진보신당] 3탄, 교육개혁은 진보신당이 한다!
[한나라 VS 진보신당] 4탄, 총칼을 녹여 보습으로! 평화군축으로 복지를!
[한나라 VS 진보신당] 5탄, 물 사유화 반대, 녹색지구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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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뭐가 괜찮다는거야/호밀밭의 파수꾼(J.D.SALINGER)
Tracked from Derick's Messy Bookshelf 2012/02/20 23:24 del.찌질한 고백을 한다.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이 무거운 마음의 이름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비좁은 장롱에 꾸역꾸역 이불을 밀어넣듯이 꾸역꾸역 숨겨놓은 불안감이 삐져나온 것이다. 공익근무라는 인생의 한 단계가 끝나는 것도, 24살이라는 어정쩡한 나이의 무게와 함께 그 고민이 삐져나오는데 한 몫 했으리라 본다. 20대 중반, 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데, 이제 군대라는 핑계도 없다. 그렇다고 다른 대학생들처럼 맹목적으로 뭔가를...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전 현암사 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욱동이 제자와 함께 번역한 책인데, 지금 기억에 따르면 나름 비속어도 쓰려고 노력했던... 어떤 책은 술어가 높임말로 되어 있던데... 왠지 맛이 안 살아요...
근데 비속어를 넣어서 번역하면, 그 번역이 오래 갈 수는 없는데 비속어나 은어는 변하니까요. 문제는, 영어에서도 비속어는 변할텐데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 영어권 독자들은 그걸 어떻게 느낄까 궁금하네요.
김욱동이라면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줄기차게 번역서 냈던 그 분 맞나 모르겠네요. 김욱동의 포스트모더니즘 번역서들은, 워낙에 마구잡이로 펴내는 것 같은 느낌이라서 일부러 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각설하고 제가 읽은 건, 본문에도 있지만, 문예사판 이덕형 번역인데, 꽤 술술 잘 읽었던 기억입니다. 지금은 그 책이 어디에 있을지, 후배나 동기녀석에게 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문득 다시 읽고 싶어지는군요.
비속어와 은어에 대한 지적이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 당대의 비속어와 은어를 '확인'할 수 있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 )
번역본을 읽게되면 이런부분이 너무 안타깝죠. 문학이란게 스토리만을 읽었다고 해서 다 안다고 할 수 없으니깐요. 전 원서로 읽고 있는중인데,워낙 요즘에 새로운 슬랭들이 많이 생기지만,이 부분 너무 구식인데? 하는 느낌은 받은적이 없네요. 물론 저도 영어권이 아니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요^^
호밀밭의 파수꾼.. 책은 꽤 읽는 편인데.. 이 책은 몇 번을 시도했다가 읽기를 포기한 책 가운데 하나였다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민노씨네 글을 읽다보니, 다시한번 시도를 해볼 마음이 동한다는. 만일 내가 이 책을 온전히 읽는 날이 온다면, 건 전적으로 민노씨네 덕분이라 해야 할 듯. ^^
허두에 있는 이미지.. 이야기. 살짝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책이 영상에 비해 갖는 강점 가운데 하나가 저 이미지 아니겠느냐는. 책을 매개로 만들어가는 이미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겠기에.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그런 책, 읽으려다 포기하거나, 어떻게 어떻게 인연이 닿지 않아서 읽지못한 책들은 수두룩합니다. 저로 인해 이 책을 읽으신다면, 그야말로 글을 쓴 가장 큰 보람이네요.
이미지에 개입하는 독자(관객)의 적극성, 민주성(까지 운운하는 건 좀 오버일수도 있겠으나)이라는 차원에서는 여전히 문자텍스트가 갖는 위대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in the rye가 이 intherye맞습니다.
어릴 때 아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책이거든요. :)
역시 그러셨군요. : )
확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
고 2 때 캐나다로 이민와서 영어 시간에 읽어야하는 책 중 하나였습니다. (나머지는 파리대왕, 등등 ㅡㅡ;;)
교과서(즉 수업 때문에 읽어야하는 책)치고 밤 새면서 그렇게 열광하면서 읽은 책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는 영어도 정말 못했는데 말이죠. 올리신 커버를 갖고 있는 번역판도 갖고 있습니다만, 원서를 읽고 나서는 전혀 읽지 못하겠더군요.
앵무새죽이기는 그 전에 한국에서 읽었는데 그것도 참 열광하면서 읽었어요. ㅎㅎ 제가 솔직히 소설은 별로 열광하면서 읽지 않는 스타일인데 열광했다면 정말 괜찮은 책일겁니다. (쓰다보니 자화자찬이 ㅡㅡaaa)
그런 추억이 계시군요. : )
원래 영어 쓰여진 책들이니..
저도 영어공부 하는 셈치고 영어본으로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 본문 수정
2010년 1월 27일 샐린저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