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희생 -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2007/06/05 01:51

기도가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기도 속에 있으며,
희생의 제사가 공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희생의 제사 안에 있듯이...

- 마르틴 부버, [나와 너] 중에서  


'민노씨.네'에 백 번 째로 등록하는 글입니다. 그래서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에 대해 쓰고 싶어졌습니다. 저야 뭐 아는게 있나요, 그저 제가 느낀 바를, 그저 기억에 의존해서,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제 안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순간의 목소리에 의지해서 적어봅니다.

책읽기의 황홀한 기억들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을 줄로 압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매혹적인 기억들은, 산문에 한정하자면, [나와 너]를 읽을 때, 그리고 [노동해방문학]을 읽을 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를 읽을 때였습니다. 그 체험들은 너무 황홀한 것이어서 마치 책 속의 풍경 속에 제가 빠져버린 것 같은, 말 그대로 그 속에서 또 다른 한 풍경으로 그렇게 있고 싶은.. 그런 마음을 생기게 한 것 같아요. 눈을 감으면 그 느낌들이 아주 어렴풋이나마 다시 피어납니다.

[나와 너]는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그저 그런 책이 아니예요. 여기에는 관계와 대화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매혹적인 언어들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언어들은 너무도 명징한 이성의 손길로 거듭 거듭 닦여져 아주 견고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사춘기 소녀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그렇게 부드럽고, 또 감미롭습니다.

해석은 누구에게나 자유이고, 그렇게 해석을 통해서 '책읽기'는 완성되고, 다시 풀어지고(해체되고), 다시 또 구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서두에 인용한 문장은 제가 [나와 너]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인데요. 저는 소박하게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부버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성찰합니다. 그것은 대화이고, 또 관계이고, 그 관계(사이)에서 생겨나는 어떤 의미들입니다. 그것은 쌍(관계)으로 존재하죠. 모든 존재들은 물질의 최소 조건인 공간과 시간에 의해 제약 받습니다. 그 조건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조차 없죠. 과학과 문명은 그렇게 존재의 조건을 규정합니다.

다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렇게 물질의 최소 조건으로 규정된 시간과 공간이 아닙니다. 적어도 부버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물질적인 조건들을 적극적으로 역전시킵니다. 시간은 기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공간은 희생의 제사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부버는 말합니다. 그건 그저 공허한 말장난이 아닙니다. 정말 그러니까요. 저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어요.

푸코는 르네상스 이후의 '발명품'에 불과한 인간이 마치 파도에 의해 지워지는 해변가의 낙서처럼 사라져가고 있다고 우울하게 진술합니다(말과 사물). 인간은 스스로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이성과 자아는 인간에 대한 배반을 스스로에게 학습시키는 또 다른 '억압'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자기는 이미 자기가 아니죠. 그 자기는 또 다른 '타자'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죽음'이 선언되는 시대를 우리는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에 부버의 [나와 너]는 그 시대를 견디는 든든한 방패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래요.
이상입니다.


추 1.  
커피와 캬라멜이 책읽기 친구가 된다면 좋겠네요.
제가 커피와 캬라멜을 굉장히 좋아해요. ^ ^


추 2.
오랜 소중한 친구의 '폭우 걱정' 이메일 때문에 오랜만에 다시 읽는 글.


[참조]
"나와 너" (at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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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마르틴 부버 - 나와 너] 마음의 흐름과 관계

    Tracked from Read & Lead 2007/11/15 19:37 del.

    나와 너마르틴 부버 지음, 표재명 옮김/문예출판사Martin Buber는 3가지 관계에 주목했다. 나와 나 나와 너 나와 그것 마음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무엇 사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물, 정보가 흘러갈 때 가치가 있는 것 처럼마음도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를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그 흐름은 무엇과 무엇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게 된다.

  2. Subject : 나는 I Like Chopin을 좋아한다.

    Tracked from Read & Lead 2008/01/16 01:05 del.

    I Like Chopin은 내가 중학교 때 나온 노래다. 그 당시 난 이 노랠 수년간 엄청 즐겨 들었다. 문득 이 노래가 생각 나서 유튜브에서 이 노랠 듣는다. 노랠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시절을 회상하고 그 회상된 시간이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찾아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격물치지님의 식객, 타짜보다, 괴물보다 낫다. 포스트를 읽으며 느낀 공감) 시계로 측정되는 시간 속에선 지나간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 때가 많다. 하지만 과거..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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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즈랑 2007/06/05 02:29

    솔직히 제게는 좀 어려운 독서경험이었어요. 책을 읽다 보면 행간을 잇는 제 삶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듭니다. "고운 모래알갱이들을 잡으려해도 성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랄까요. 아직 제 관심은 '관계'보다는 '세계'를 향해 있어서인듯도 하고. 하지만, 민노씨 덕분에 글자 너머에 있는 무엇인가에 지금처럼 몸이 달아있던 적도 없었네요.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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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6/05 02:56

      별말씀을요. : )
      의미는 항상 '상호간의 작용'이라고 생각해서요.
      텍스트의 '진실'이 고립적으로,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즈랑님께서 체험하신 바에 대해서 저로선 알수는 없지만..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들을 스스로 그 작용과 관계를 통해 얻으셨을 것으로 생각해요. ^ ^

  2. 온유하라 2007/06/05 21:59

    이번 주일에 목사님께서 부버의 [기도가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기도 속에 있으며]를 언급하셨어요. 민노씨의 해석대로 '시간은 기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라고 말씀하셔서 고개 끄덕이며 (졸음모드 아닙니다^^) 들었는데, 이 글을 여기서 다시 만나네요.

    요즘은 '좋음'과 '위대함'에 대해 생각합니다.
    기도 없는 시간 속에서, 마음이 시키는대로 '좋음'만을 추구하며 살았다면,
    이젠 기도 속에 있는 시간을, '좋음'을 깨고 '위대함'으로 나아가는데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민노씨는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참, 저도 커피와 캬라멜 좋아해요.
    얘들은 같이 먹어도 맛있고, 따로 먹어도 맛있지요.

    부버의 이 책은 원어로 함 읽어보고 싶네요.
    책 소개, 고마워요~

    평안을 놓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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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6/07 01:41

      안그래도 온유님을 비롯한 필벗분들께 요즘 좀 본의 아니게 소홀(?)한 것 같기도 하고..(반대로 좀 서운함ㅎㅎ도 생기고.. 그랬는데요) 이렇게 홀연히 댓글을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야 뭐 항상 그럭저럭 우울하게 잘 있습니다. ㅡㅡ;
      우리 온유님도 잘 계시죠?

      독일의 6월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서울의 6월은 날이 참 좋아요.
      정말 사랑스러운 느낌이 마구 마구 피어나는 날들입니다. 물론 제 생활이 그렇지는 못하지만요.

      나머지 이야기는 이메일로.. ^ ^;

      p.s.
      독일어본으로 읽으시면 어떤 느낌인지.. 한글번역본과 비교해서 ㅎㅎ 나중에 블로깅 다시 하시면 포스팅 한방 부탁드립니다. : )

  3. 로망로랑 2007/06/05 23:08

    푸코의 눈은 굉장하군요, 시험공부할 때 조금 그 이론을 접한 것 빼고는 깊은 독서는 해보지 못했습니다.
    굉장한 통찰력으로 인간의 죽음을 선언하지만, 신은 죽었고,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신이며, 나는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간다고 말하는 게 현대의 인간이라고 봅니다. 스스로 주인이지 못한 인간, 사람들은 신을 의지하거나 신을 믿는 사람들이 스스로 주인이지 못해 비인간적이라고 보는 경향이 다분한데요, 오히려 신을 통해 우리는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실존적인 회의와 물음과 깨달음을 통과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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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6/07 01:45

      저 역시 푸코의 저서나 관련 평론서들은 몇 권 읽었지만.. 좀 어렵더라구요. [말과 사물]도 꽤 오래전에 사다가 중간 중간 인상적인 구절만 대충 읽은 것에 불과합니다. 실은 잡지에 실린 짧은 논문들에 언급된 푸코를 좀더 인상적으로 기억할 정도입니다. ㅡㅡ;;

      현대인의 나르시즘적 성향과 자기애가 '조종당하는' 그 기묘한 이율배반에 대해서는 많은 철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같은데.. 저야 뭐, 내가 느끼는 범위, 체험한 범위에 대해서만 그저 제 부족한 의견을 끄적거릴 수 있을 뿐이죠, 뭐.

      논평 감사합니다. : )

  4. 로망롤랑 2007/06/08 08:15

    좋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주셨으니...
    제가 감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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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Read&Lead 2007/11/15 19:47

    마음을 움직이는 포스트네요.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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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11/15 20:39

      과분한 격려시네요. : )
      고맙습니다.

  6. Read&Lead 2008/01/16 08:29

    트랙백이 안 걸려서 수동으로 겁니다. ^^

    http://www.read-lead.com/blog/entry/나는-I-Like-Chopin을-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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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2/19 09:13

      앗, 이제야 발견하네요.
      왜 안걸릴까요.. ^ ^;;

  7. 민노씨 2011/07/28 11:00

    * 추2 보충(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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