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디워 얘기는 그만하고 싶었는데요. 주말이고, 뭐 블로깅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지도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끄적거려봅니다.
이 글은 특히 제 글에 명랑님께서 보내주신 글
약간 짜증이 나는 허튼소리
http://philsnote.egloos.com/3330133
에 보내는 트랙백입니다.
우선 황우석 사태의 광기와 디워라는 영화로 촉발된 사회현상은 동질성보다는 변별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명랑님께서는 양자를 등가로 평가하시나요? 그 폭력적인 배타성이라는 '현상적인 태양'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함의나, 그런 현상이 발생한 원인과 전개과정은 저로선 매우 상이하다고 평가합니다.
언론권력이 '디워'를 응원하기 위해 담합했나요?
정치권력이 '디워'에서 나오는 떡고물 먹으려고 심형래씨에게 아부하고 있나요?
시민단체들이, 아니 평론가들이 '디워펜들' 무서워서 찍소리도 못하고 있나요? (설마.. )
'디워'를 하나의 상업영화로서, 문화상품으로서 소비하시는 많은 소비자들이 계시고, 영화펜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소박한 관객들이 좀더 많을 것으로 그저 추정합니다. 그런데 이 분들은 디워논쟁, 디워현상에서 완벽하게 배제된 분들이죠.
가시적으로 과장되게 표출되고, 언론은 이를 통해 장사 제대로 하게 만들어준(MBC 100분 토론을 '탄생'시킨) 디워를 '응원'하는 분들. 이 분들이 디워현상을 '만드신 분'들입니다. 언론은 그저 이 분들을 '뉴스상품'의 하나로 소비하고 계시구요.
그렇게 디워를 열렬히 응원하는 일종의 '컬트펜들', 그 분들은 소위 '먹물'들이 무시하고, 천덕꾸러기 취급하고 있는 "개떼"들, 혹은 '개티즌들'입니다. 무서우신가요? (ㅡ..ㅡ;) 언론도, 지식인사회도 이분들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왜 저러나, 이러는거죠. 그러면서 좀 짜증도 나고요(진중권씨처럼).
물론 일부 극렬 디워펜들의 행태, 저 역시 전혀 공감하지 않고, 또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자신의 무식과 과열된 애정을 비판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거에요. 제가 소위 '디워빠'라고 불리는 중딩, 고딩, 넓게 잡아서 대딩이라고 치죠. '데우스 엑스 마키나' 운운하면서, 이런 후진 영화를 보면 안되는거잖아~!!! 이러면, 속으로 뭐라고 할까요? 놀고 있네, 이럽니다.
우리에게는 좀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고, 좀더 수준높은 시민의식의 고양이 필요합니다. 인정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의 각 분야에 좀더 많은 '비평'이 '대화'가 필요하겠죠. 그런데 비평만 하면서 대화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뭔가요? 비평은 그 자체로 대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비평을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나열적으로 풀어놓고, 그거 모르면 대화할 가치도 없다고 무시하는 거라면, 그게 무슨 비평입니까, 뻘짓이죠.
하버마스가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의 한축에서 주장했듯 (서구에서도) 계몽주의는 '미완의 프로젝트'이고(혹은 인 측면이 많고, 또는 일수도 있고), 더군다나 우리나라와 같은 척박한 현실에서(언론집단도, 교육집단도 끼리끼리 떼거리로 붙어먹을 궁리만 하는) 계몽주의는 더더군다나 미완의 프로젝트겠죠.
그리고 송두율이 명징하게 지적했듯, 그리고 그 자신이 그 역사적 조건의 피해자가 되었듯, 우리나라는 아직 남/북으로 갈려 있는 분단국이고, 그 분단국가라는 조건에서 온갖 이념적인 편견과 의식의 왜곡이 아직도 그렇게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처럼 국가권력, 언론권력, 자본권력이 변신합체해서 온국가 전체를 광기로 몰아넣은 황우석 파동도 불과 2년이 채 흐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몽주의이라는 그 자체의 방법론과 계몽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현실적인 방법론은 서로 구별되어야 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대중들은 지식 그 자체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과시적으로, 배타적으로 전달하는 그 방식을 거절한 것이고, 그 방식, 그 방법론에서 또 다른 폭력성과 배타성을,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평론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지적 권위의식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얼마나 그 지적 권위가 타당한 것인지도 물론 회의적이긴 하지만요.
"허튼소리" "열등감"... 제목도 그렇고, 본문에 쓰신 표현도 그렇고.. 계몽이 좀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무식한 대중들의 "집단광기"와 "개떼이즘"이 불만이시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하시고, 그런 풍토를 개선하고자 하신다면, 명랑님께서 글에 표현하고 분출하신 "다각도 짜증"들은 그다지 계몽주의의 이상, 그 실현을 위한 방법론과는 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짜증은 짜증을 키우고, 어떤 분야에서 자신이 좀더 많이 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니가 그러는 건 열등감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건 비평도 뭣도 아니고, 그저 폭력이고, 잘난척입니다. 그건 유아적인거죠. '캔디'에서 이라이자가 했던 그런 겁니다. 계몽주의의 이상과 전혀 상관없어요. 저는 그렇게 평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중권씨는, 최소한 100분 토론에서는, 일부 극렬 '디워빠'와 마찬가지였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상한 비평용어를 동원하자면 '쌤쌤'이죠.
이상입니다.
이 글은 특히 제 글에 명랑님께서 보내주신 글
약간 짜증이 나는 허튼소리
http://philsnote.egloos.com/3330133
에 보내는 트랙백입니다.
비평의 마음과 비평의 몸 - 계몽주의 블루스
: 대중은 지식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지식을 무기로 군림하려는 태도를 거절할 뿐입니다.
: 대중은 지식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지식을 무기로 군림하려는 태도를 거절할 뿐입니다.
우선 황우석 사태의 광기와 디워라는 영화로 촉발된 사회현상은 동질성보다는 변별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명랑님께서는 양자를 등가로 평가하시나요? 그 폭력적인 배타성이라는 '현상적인 태양'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함의나, 그런 현상이 발생한 원인과 전개과정은 저로선 매우 상이하다고 평가합니다.
언론권력이 '디워'를 응원하기 위해 담합했나요?
정치권력이 '디워'에서 나오는 떡고물 먹으려고 심형래씨에게 아부하고 있나요?
시민단체들이, 아니 평론가들이 '디워펜들' 무서워서 찍소리도 못하고 있나요? (설마.. )
'디워'를 하나의 상업영화로서, 문화상품으로서 소비하시는 많은 소비자들이 계시고, 영화펜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소박한 관객들이 좀더 많을 것으로 그저 추정합니다. 그런데 이 분들은 디워논쟁, 디워현상에서 완벽하게 배제된 분들이죠.
가시적으로 과장되게 표출되고, 언론은 이를 통해 장사 제대로 하게 만들어준(MBC 100분 토론을 '탄생'시킨) 디워를 '응원'하는 분들. 이 분들이 디워현상을 '만드신 분'들입니다. 언론은 그저 이 분들을 '뉴스상품'의 하나로 소비하고 계시구요.
그렇게 디워를 열렬히 응원하는 일종의 '컬트펜들', 그 분들은 소위 '먹물'들이 무시하고, 천덕꾸러기 취급하고 있는 "개떼"들, 혹은 '개티즌들'입니다. 무서우신가요? (ㅡ..ㅡ;) 언론도, 지식인사회도 이분들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왜 저러나, 이러는거죠. 그러면서 좀 짜증도 나고요(진중권씨처럼).
물론 일부 극렬 디워펜들의 행태, 저 역시 전혀 공감하지 않고, 또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자신의 무식과 과열된 애정을 비판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거에요. 제가 소위 '디워빠'라고 불리는 중딩, 고딩, 넓게 잡아서 대딩이라고 치죠. '데우스 엑스 마키나' 운운하면서, 이런 후진 영화를 보면 안되는거잖아~!!! 이러면, 속으로 뭐라고 할까요? 놀고 있네, 이럽니다.
사족 : 진중권씨는 비평과 응원을 혼동하고, 영화와 축구게임을 혼동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좀 오버같습니다. 영화가 축구게임이라서 그 '국적만'으로 응원한다는 거 아닙니다. 막연한 운명공동체로서, 역사공동체로서, 문화공동체로서 이런 대중들의 심리반응은 너무도 자연스럽습니다. 이게 이상하시다고 한다면, 도대체 스크린쿼터는 왜 필요한가요? 좋은 상품이 그대로 시장에서 승리하면 그만입니다. 왜 보호하고, 우리 영화라서 지켜야 한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나요. 노무현 대통령의 그 과감무식한 발언처럼 "그렇게 자신이 없나?"라고 폼나게 한마디 하고, 시장논리에, 소비자들의 선택에 쿨하게 맡기면 그만이죠. 사족이 너무 길었네요. 각설하고...
우리에게는 좀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고, 좀더 수준높은 시민의식의 고양이 필요합니다. 인정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의 각 분야에 좀더 많은 '비평'이 '대화'가 필요하겠죠. 그런데 비평만 하면서 대화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뭔가요? 비평은 그 자체로 대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비평을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나열적으로 풀어놓고, 그거 모르면 대화할 가치도 없다고 무시하는 거라면, 그게 무슨 비평입니까, 뻘짓이죠.
하버마스가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의 한축에서 주장했듯 (서구에서도) 계몽주의는 '미완의 프로젝트'이고(혹은 인 측면이 많고, 또는 일수도 있고), 더군다나 우리나라와 같은 척박한 현실에서(언론집단도, 교육집단도 끼리끼리 떼거리로 붙어먹을 궁리만 하는) 계몽주의는 더더군다나 미완의 프로젝트겠죠.
그리고 송두율이 명징하게 지적했듯, 그리고 그 자신이 그 역사적 조건의 피해자가 되었듯, 우리나라는 아직 남/북으로 갈려 있는 분단국이고, 그 분단국가라는 조건에서 온갖 이념적인 편견과 의식의 왜곡이 아직도 그렇게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처럼 국가권력, 언론권력, 자본권력이 변신합체해서 온국가 전체를 광기로 몰아넣은 황우석 파동도 불과 2년이 채 흐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몽주의이라는 그 자체의 방법론과 계몽주의를 꽃피우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현실적인 방법론은 서로 구별되어야 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대중들은 지식 그 자체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과시적으로, 배타적으로 전달하는 그 방식을 거절한 것이고, 그 방식, 그 방법론에서 또 다른 폭력성과 배타성을,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평론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지적 권위의식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얼마나 그 지적 권위가 타당한 것인지도 물론 회의적이긴 하지만요.
"허튼소리" "열등감"... 제목도 그렇고, 본문에 쓰신 표현도 그렇고.. 계몽이 좀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무식한 대중들의 "집단광기"와 "개떼이즘"이 불만이시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하시고, 그런 풍토를 개선하고자 하신다면, 명랑님께서 글에 표현하고 분출하신 "다각도 짜증"들은 그다지 계몽주의의 이상, 그 실현을 위한 방법론과는 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짜증은 짜증을 키우고, 어떤 분야에서 자신이 좀더 많이 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니가 그러는 건 열등감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건 비평도 뭣도 아니고, 그저 폭력이고, 잘난척입니다. 그건 유아적인거죠. '캔디'에서 이라이자가 했던 그런 겁니다. 계몽주의의 이상과 전혀 상관없어요. 저는 그렇게 평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중권씨는, 최소한 100분 토론에서는, 일부 극렬 '디워빠'와 마찬가지였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상한 비평용어를 동원하자면 '쌤쌤'이죠.
이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