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선 처음으로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있었다. 결과는 주지하다시피 소환투표 자체의 유효요건(투표율 1/3이상)을 충족하지 못해, 투표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주민소환법에 따르면 이 경우엔 아예 '개표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투표율이 투표 유효요건에 훨씬 못미치는 11%라서 실망과 아쉬움이 컸다. 직접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제돈데, 찬성이든 반대든 투표 참여율이 이렇게 저조하다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다.

각설하고, 중앙일간지 사설들 몇을 읽어봤다(조선, 동아, 한겨레, 경향, 한국). 모두 제주지사 소환투표 부결에 관해 각자의 입장을 담은 사설을 냈는데, 그 입장이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각 언론사들의 당파성, 정치적 입장과 그 색깔을 아주 명확하게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간단히 정리하고, 단평한다.

한줄 요약.
부정적 <- 소환투표에 대한 입장 -> 긍정적
동아(해군기지 몰빵) <- 조선(해군+입법) <- 한국(중립적)-> 한겨레(총론적) -> 경향(투표방해 몰빵)


몇 가지 판단표준
1. 보완입법 필요성 : (입장은 정반대) 조선(다소 강하게). 한겨레(뜬금없이). 동아(얼핏).  한국(간접적으로).
2. 투표방해 언급 : 경향(몰빵). 한겨레(약하게).
3. 해군기지 언급(소환투표 으뜸 쟁점) : 동아(몰빵). 조선(강하게 긍정). 한국(약하게 중립적)  
4. 영리법인 병원 언급(소환투표 버금 쟁점) : 한겨레(약하게)

내 입장은?
굳이 하나를 뽑자면 한국일보 입장에 가장 가깝고, 좀더 정확히는 한국일보와 한겨레의 중간 쯤이다.

재미삼아 사설 순위
: 사안 자체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을 가급적 제한하고 보면(내 정치적 당파를 개입시키면 순위는 많이 달라진다) 다음과 같다.

1. 조선일보 : 그 입장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주장의 논거가 정연하고, 설득력 있다. 동아처럼 촌스럽고, 노골적이지 않은 세련된 포장술(논조의 수위조절)도 적절하다.
2. 한국일보 : 다소 밍숭밍숭하지만 상식적인 관점에서 무난하고, 균형감있게 읽힌다.
3. 한겨레 : 전체적으론 가장 맘에 드는 사설이지만, 말미 투표 활성화에 대한 보완입법 주장은 논거가 부실하다.
4. 경향 : 당파적 편향이 과도하게 표출되고 있다. 김태환 측의 투표방해의혹에 몰빵한 사설.
5. 동아일보 : 경향의 정반대편에서 국책사업이라는 해군기지 건설에 몰빵한 사설이다. 품위없이 경박하고, 노골적이다.

사설 단평
이하 모두 2009년 8월 27일자 사설들이다.

[동아] 명분 없는 김태환 知事소환, 제주도민이 외면했다
http://news.donga.com/fbin/output?rss=1&n=200908270089
해군기지에 몰빵. "전화위복" "무리수" "(해군기지) 절대적으로 필요" "(해군기지) 반드시 필요" 따위의 표현이 인상적이다. 앞서 간단히 지적한 것처럼 무식하고, 노골적이며, 촌스럽게 호들갑 떨고 있다. 투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뿐이다. 해군기지 건설에 대한 합리적인 의견조율 과정은 여전히 필요한 것인데, 이를 "불필요한 갈등과 마찰"이라고 단정하는 태도는 동아일보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 같다. 정말 명분 없고, 노골적인 동아일보를 외면하고 싶다.

[경향] 제주 주민투표 관권 개입 철저히 조사하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262326315&code=990101
'김지사 측의 투표방해 의혹'에 몰빵. 정치 선동이나 시민단체의 성명서에 가깝지 이걸 언론 사설이라고 보기는 좀 힘들것 같다. 읽으면서 속은 시원한데, 다 읽은 끝맛은 별로 개운치 않다. 실현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 같고, 그래서 다소 무책임한 사설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문제제기는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이것만 주장하는 건 위험하고, 현명하지도 않은 선택같다.

[한겨레] 제주지사 소환 투표, 소통 활성화 계기 돼야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373335.html
전반적인 소환투표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사설. 마지막 문단만 빼면 가장 맘에 드는 사설인데, 뭐랄까 마지막에 뜬금없이, 어떤 논거도 없이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 투표에 과반수 찬성"이라는 현행 주민소환법 투표유효요건 및 효력요건이 "사실상 주민소환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그래서 "투표율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건 정말 좀 심각하게 삑사리다.  

[한국] 제주지사 주민소환은 부결됐지만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0908/h2009082702313576070.htm
일견 양비양시론, 밍숭맹숭 색깔이 없는 것 같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그나마 가장 균형감 있게 이번 소환투표의 의미를 되짚고 있는 사설이란 생각이 든다. 다소 이번 소환투표를 부정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조선] 이런 주민소환투표 더 이상 없게 법(法) 개정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6/2009082602557.html
조선일보의 조건반사적 뻘짓인 '시민단체' '진보정당'에 대한 종교적인 혐오증("이름만 봐도 성향을 알 수 있는 단체")을 빼고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거가 대단히 설득력 있고, 읽기 쉽게 잘 정돈되어 있는 사설이다. 법개정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나는 물론 여기에 반대하는 입장이나, 한겨레와는 다르게 그 논거를 외국의 사례를 통해 간략히나마 뒷받침하고 있는 점은 한겨레의 사설이 참조했으면 싶다. 다만 합헌판결 받은 바 있는 '소환투표 청구사유의 불특정'에 관한 이슈를 여기에 끼워넣는 교활함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추.
1. 각 언론사 링크는 의도적으로 밖으로 뺐다. 주소는 한겨레가 가장 깔끔한데, 기사입력일 정보가 포함되면 더 좋긴 하겠다.
2. 중앙일보(조인스)는 RSS목록에 하도 짜증스럽게 미끼질이 많아서 내 주브라우저인 FF 라이브북마크(간단한 RSS)에서 제외된 관계로 살펴보지 않았음.
3. 글제목에선 '부결'이라고 했는데, 정확히는 '불성립'이 맞는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잠시...;;;


* 직접 관련
주민소환제 개요 : 제주지사 소환투표 [보충. 투표율 미달] (09.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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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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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27 11:18

    헌재 결정이 자신들의 바람대로 나오지 않아도, 결코 굴하지 않고 주장에 한치 흔들림 없는 그들......조선일보의 못된 신념에 저도 눈살이 찌푸려집니다...글 잘 읽었습니다^^(요즘 민노씨 글은 rss보다 트위터로 읽게 되네요. @jisim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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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8/27 12:12

      오, 땀님 정말 반갑습니다. : )
      산업재해 등의 노무관련 정보 많이 좀 블로그에 올려주시길!

  2. 세어필 2009/08/27 12:32

    이번 투표는 사실상 "투표 == 반대표"가 됐습니다.
    다들 눈뜬 채로 반장 교체 원하는 사람 손들라는 식이죠..
    분명 이번 투표는 제도적으로 수정&보완 돼야한다고 봅니다.
    아마 한겨레도 제도 보완이라는 측면에서 '조건 완화'라는 사설을 쓴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만... (아닐지도ㅋ)
    - 물론 조선일보가 말하는 대로 개정하는 데 찬성하진 않습니다.. -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8/27 12:56

      1. 일단 투표율이 너무 낮습니다.

      2. 조선사설이 적시하는 것처럼 소환투표 발의요건(투표 효력이 아니라요)이 현재 우리나라는 10%(광역단체장)인데 미국, 일본의 경우에 1/3, 1/4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겨레의 주장은 어떤 설득력있는 근거도 없이 그 요건을 낮추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이는 위 1.의 낮은 투표율이 그 근거가 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좀더 논리적이고, 설득력있는 근거가 제시되어야 할텐데... 투표방해 의혹... 이게 그 근거가 될 수 있을는지는 솔직히 좀 의문이에요.

      3. 저 역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 있는 선거운동에 관한 각종의 제한적인 장치나 투표일정에 결정(선관위가 갖고 있는)에 관한 조항들은 좀 개선이 되었으면 합니다만, 한겨레가 주장하는 바, 투표가 갖는 대표성을 훼손할 수도 있는 투표 성립 및 효력 요건의 완화는 받아들이기 곤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3 이상 참여, 과반수"라면 소환투표의 성격상 적정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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