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유행어

2009/06/09 11:11
이 글은 일종의 대답이다. 질문자는 조아신이고, 그 구체적인 질문은 [소통하는 진보-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라는 연재글다. 그 첫번째 글은 다음과 같고, 이 글은 첫번째 대답이다. 이 작은 대화가 또 다른 목소리들과 섞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그렇게 대화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이 글이 그 거대한 울림의 아주 작은 한 조각이길 바란다.

조아신, <소통하는 진보 -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명박 체제의 키워드
삽질, 부동산, 재벌, 조중동, 촛불, 장자연, 그리고...노무현.

이제 역설적이게도, 이명박 체제를 상징하는 건 노무현이다. 노무현은, 그의 죽음은 이명박 체제가 그저 '친재벌적 신자유주의 체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독재적인 정치체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의 유서에는 이명박 체제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언명도 없었지만, 그는 자신의 목숨을 메시지로 남겼다. 자신을 부엉이 바위의 허공 속으로 던짐으로써 노무현은 '이명박 체제는 용납되어선 안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어떤 분명한 목소리, 어떤 구체적인 글로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저들은 우리가 쌓아올린 민주주의를 갉아먹고 있다'고 노무현은 언명했다. 노무현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순응화되던 감성과 이성은 이제 막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처럼, 그렇게 깨어난 듯  하다. 이제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대상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공화국의 정신을 짓밟는 반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지난 대선에서 눈꼽만큼도 이슈가 아니었다. 민주주의는 성취된 과거였다. 지난 대선의 가장 큰 이슈는 '경제를 살려달라'가 아니라, 실은 '내 집값 좀 올려달라'는 욕망이었다. 그 욕망은 탐욕스럽지만 절박했다. 부동산 거품론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었다. 다수의 국민들은 불안하고 초조해했다. 가진 것이라곤 그 알량한 집 한채 밖에 없는 다수 국민들에게 부동산 거품론은 자신의 자본주의적 존재근거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며 공격이었다. 그렇게 불안은 영혼을 잠식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전과 14범의 대통령을 만들었다. 이명박 시스템은 그렇게 우리가 공범으로 참여한 시스템이다. 우리는 지극히 민주적으로, 지극히 합법적으로 이명박을 선출했다. 이명박은 갑자기 출현한 외계 똘아이가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피흘리며 쌓아올린 민주주의라는 시스템, 선거라는 합법의 제도를 통해 선출한 대통령이다. 우리들의 사랑스런 이기주의는 부동산에 대한 열망, 그 강박증을 민주주의라는 '이미 포획한 박제'보다 절박하고, 탐욕스럽게 내면화했을 뿐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었음이 이제는 자명해졌다. 김선주(한겨레 칼럼니스트)의 고백처럼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절대권력의 시대를, 그 강을 건넜다"는 말은 "취소"되어야 한다.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그 욕망은 아직 진행형이다. 그 욕망은 진행형일 뿐더러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민주주의는 다시 '유행어'가 되었지만, 이건 유행어다. 나는 이게 유행어가 아니기를 바라지만은, 이건 유행어다. 이게 유행어인 이유는  노무현이라는 극적인 '드라마'가 만들어낸, 일깨운 일시적으로 살아난 감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휴먼다큐멘터리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을수도 있다. 냄비근성이 아니라 뚝배기근성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대선까지는 3년이 훨씬 더 남았고, 서울시장 선거 역시 1년이 남았다. 노무현의 죽음 이전과 그 이후, 냄비근성으로 유명한 국민들의 감정 말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명박은 여전히 명박스럽고, 삼성과 해당일보사는 여전히 법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신성한 땅'에 존재한다. 그곳은 마치 대한민국이 아닌 것만 같다. 지난해 촛불은 그렇게 타올랐지만 그  촛불은 어떤 구체적인 성취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에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정치권은 여전히 무력하고 무능하며, 노무현이라는 타오르는 상징을 온전하게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민주주의를 금방이라도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 아니라, 저 변함없이 우리가 발딛고 설 수 있는 굳건한 대지로 만들 것인가. 노무현이 중도 보수였든, 아니면 신자유주의자였든, 여전히 삼성과 해당언론사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든 어쨌든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 그 시스템이 길들이는 욕망 속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이라는 사실 말이다. 노무현의 죽음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하든, 그 출발은 민주주의라는 '모래성'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거룩한 훈계는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극단적인 모욕이다. 노무현을 되살리는 길, 그 죽음이 생명으로 영속하는 길은 노무현을 철저하게 발가벗기고, 그 상징을 그 뼈속까지 해부해서, 노무현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다시 형상화시키는 일이다. 노무현을 정치라는 용광로 속에서 화장하는 일이다. 그게 노무현에게 빚진 자들의 몫이다. 그제서야 노무현은 눈을 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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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우리의 가장 위대했던 상징이 쓰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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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콜드, 진중권 사이버망명, 변DB 열폭, 돌아온 미디어악법 정국 : 중에서 미디어악법 정국
: 노무현 효과를 통해서 성취해야 하는(반대로 저지해야 하는) 당면 과제는 미디어악법을 전면적으로 재고하는 일이고, 또 언소주운동에 대한 관심(지난 해 촛불의 거의 유일한 가시적인 성취로 개인적으론 평가)을 환기하는 일이다, 좀더 나아가서는 올 하반기의 재보궐선거(10/28)며, 좀더 욕심을 내자면 내년 서울시장 선거(2010.6.X)다. 물론 그 이후에 대해선... 야당들 어떻게 나오는지 한번 지켜보자.

* 발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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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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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ef 2009/06/09 11:26

    당연히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신기루일 뿐이었다.. 가슴아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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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09 19:47

      그러게요..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죠, 뭐..;;;;

  2. 비밀방문자 2009/06/09 13:12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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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6/09 19:48

      앗, 지송..;;;
      제 블로그가 판올림이 잘못되었는지 어쨌는지 종종 트랙백을 튕겨낸다능..;;

  3. 민노씨 2009/06/14 08:16

    * 제목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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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민노씨 2009/06/24 03:02

    * 제목 재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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