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언론사상 초유의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언론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홍길동뎐의 한 장면을 빌어 홍길동 언론이라고 부르자. 그 홍길동 언론이 2009년 4월에 펼쳐지고 있는 잔인한 언론 코미디의 주인공들이다. MBC 논설위원 최용익은 이런 코미디를 공산당 선언의 서두를 빌어 이렇게 묘사한다.
‘해당 언론사’라는 이름의 유령이 2009년 한국 언론가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체불명의 표현은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를 통해 ‘장자연 리스트’에 올라있는 유력 신문사 대표의 성씨를 공개한 뒤 등장했습니다. 그러자, 조선일보사는 국회 기자실에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으므로 신중한 보도를 당부드린다’는 내용의 은근히 겁을 주는 보도자료를 뿌렸고, 오마이뉴스 등 일부 인터넷언론을 제외한 대다수 언론들이 조선일보 대신‘해당 언론사’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 최용익, '장자연 리스트'와 '해당 언론사' (강추)
최용익이 이어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국회의원이 공개적으로 거론한 신문사와 대표의 이름, 또 그와 관련된 보도자료를 배포한 신문사가 어디냐는 것은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일 뿐."이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대다수 언론사들이 그 '호부호형'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어떤 블로거는 이종걸의 언급을 제대로 인용하지 못하는 언론 뿐만 아니라, 블로거들 역시 비겁하다는 식의 논지를 펴기도 하던데, 글쎄, 언론사들도 겁나서 못하고 있는 걸 어떤 조직의 지원도 없는 블로거들에게 강요하는 건, 그 정의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좀 그렇다.
관련해서 언젠가 김미화의 일화가 생각난다. 이라크 관련한 마감뉴스 인터뷰이로 초대된 김미화에게 SBS 앵커가 생뚱맞게 '이라크에 가실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 김미화가 무슨 그런 질문을 다 하냐는 듯이 한심하게, 한편으론 정색하면서 대답한다. "아뇨, 무서워서 안갑니다." 김미화가 비겁하게 느껴진다기 보다는 해당 앵커가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경찰이 제대로 발표하기 전까지는 '직접적으로' 그 언론사를 인용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이종걸의 대정부 질문에서의 발언을 지지하지만, 이종걸은 국회의원이고, 나는 이명박 가카 시대의 블로거다. 나같은 블로거에게 면책특권이 있을리 만무하고, 더군다나 지원해줄 언론사 조직 따위도 없다. 정의감에 불타는 블로거들이 내 표현의 자유를 위해 자신들의 기회비용을 기꺼이 희생해가며 싸워주리란 기대도 솔직히 별로 없다(이런 기대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물론 탓하자는 건 전혀 아니다. 나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뭐. ).
2.
대한민국 언론은 그동안 '풍문 장사'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홍길동 장사'하고 있다. 궁금해서 구글링 해봤더니, 역시나 진중권이 한마디 했다. "전국민을 홍길동 만들 작정이냐"라고. 데일리서프에서 인용하고 있는데, '멀웨어경고("이 사이트는 컴퓨터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뜨는..;;;)' 떠서 읽는 건 포기.
지금까지 나는 언론의 장자연 리스트 '풍문 장사'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그건 시쳇말로 언론이 행해서는 안되는 '저열한 미끼질'이라고 생각했는데, '해당 언론사'라는 희대의 신조어가 언론 스스로에 의해 회자되는 이 새로운 암흑의 시대에 그런 풍문 장사들이야 말로, 미끼질이야 말로, 홍길동 언론이야 말로 우리 언론의 자화상이고,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물론 비난의 의미이기도 하면서, 또 냉정살벌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면서, 또 스스로에 대한 자조의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장자연 리스트 공개 문제는 대단히 신중해야 하는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 간의 갈등 구조를 내포하고 있다. 무죄추정 원칙이라는 우리 법제도의 대원칙은 지켜져야 하고, 표현의 자유 역시 이런 차원에서는 진지한 숙고와 고민을 거쳐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경찰은 계속 놀고 있고, 언론은 국회의원의 공식적인 발언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언론사' 타령이다. 이런 풍경을 바라보면, 역시나 씁쓸하고, 뻘쭘한 이 느낌. 뭔가 잔뜩 주눅든 채로 억눌린 이 느낌. 우리를 대신해서 '아가리를 벌려 줄 것으로 기대했던' 그 아가리들 역시나 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 아가리는 아닌 것 같다는 이 은밀한 배반의 느낌...은 참으로 살 맛 나지 않는 이 세상을 더더욱 똥 맛으로 만든다.
추.
최용익의 칼럼에도 직접적으로 '해당 언론사'를 지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까 간접적으로 지시하고 있는데, 이 점도 약간은 재밌다. : )
* 참조 기사.
'장자연 리스트' 실명 공개 후…"조선일보"는 없었다 (프레시안) : 조선, 중앙, 경향, 한겨레 등의 반응을 보도.
어떤 한겨레 기사에 대한 어떤 댓글.
2009/04/08 04:36:31 신고하기
한겨레 이딴식으로 나오면 진짜 각오하는게 좋을꺼다.
* 관련 추천.
MBC 최용익, '장자연 리스트'와 '해당 언론사' (강추)
이종걸 성명서(이종걸의원 게시판)
이종걸 대정부 질의 장면(VOP) : 언론사로서 민중의 소리(VOP)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당 언론사"를 깐 몇 안되는 언론사들 가운데 하나다. 레디앙도 깐 것 같다.
* 백 투 더 링크 ( 캡콜드의 '백 투 더 소스' 차용이랄까... : )
"이번 사건처럼 사회적 파장이 클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을 축소 해석할 수 있다는 법원의 유권해석도 받았다." (중앙일보가 강호순 사건에서 얼굴 공개 결정의 근거로 내세운 논리) : 강호순 사건의 파장과 장자연 사건의 파장 가운데 어떤게 더 큰 건지는 개인마다 그 판단에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내 보기엔 장자연 사건이 강호순에는 절대 밀리지 않는다고 본다.
강호순의 얼굴 (SadGagman)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목소리도 좀 들어보자.
* 보충 링크
의혹은 어디까지 보도할 수 있나 (이정환) : 원칙적으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글인데,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 피의자 혹은 취재대상의 인권과 무죄추정의 원칙, 언론보도의 사회적인 책임이라는 여러가지 긴장의 역학 속에서 언론으로서의 표현의 자유, 알권리 쪽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강호순의 얼굴 공개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설레발에 대해서 대단히 짜증이 났던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순 사건과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비교하자면, 그 사회적인 함의도 함의려니와 이 사안을 좀더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려는 국회의원의 발언이 있었다는 점에서 장자연 리스트를 공개하는 건 언론으로선 해볼만한 시도였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번 사안이 그저 '국민들의 세속적인 호기심'이 전부라면 이정환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이번 사안이 국민들의 잠재된 억압과 억눌림을 풀어줄 수 있는 기회였다면, 그래서 언론이 한 번쯤은 국민들의 편에서 소박한 의미에서의 '알권리'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을 어필할 수 있었다면... 여러가지 위험부담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을 제외한 언론들에서는 한번쯤 시도해볼만 하지 않았나... 그런 아쉬움은 여전히 깊다. 그런데 쓰다보니... 이게 내 정치적 당파가 과도하게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언론에 대해서 그토록 비판하길 좋아하는 나 같은 블로거들, 시민들이 만에 하나 이 사건이 명예훼손으로 흘러가면 해당언론사들을 위해 싸워줄까.. 싶은 생각도 들고... 역시나 쉬운 문제는 아니고만...
"남의 익명성은 잠재적 범죄일 뿐이고 자기 익명성은 개인의 존엄성의 표현" (노네, 정신분열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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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연예인들의 숨은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표시하기
Tracked from 지독하게 사적인 공간 - Photoshop Gallery 2009/04/08 09:30 del.*이 글은 어떠한 특정인물이나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누구를 해하거나 이미지의 훼손 의도 또는 비슷한 의도의 미필적 고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보고 드는 어떠한 부정적 의견과 생각은 읽으신 분의 오해라고 미리 말씀드립니다. 원래 선행은 남모르게 하는 거랬다고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게 숨은 선행을 한 분들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나 냉정하고 야생과 같은 연예계에서 신인연예인이, 그것도 여자라면?? 아마 말안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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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장자연 문건에 따르면 "당시 조선일보 방사장을 술자리에 모셨고 "
Tracked from 디지털 오르가슴 연구소 GizmoBlog 2009/04/08 10:34 del.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중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자연 문건에 따르면 "당시 조선일보 방사장을 술자리에 모셨고 그후로 며칠 뒤 스포츠조선 방사장이 방문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보고 받으셨어요?" 조선일보사는 이 일이 있은 직후에 국회 기자실에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으므로 신중한 보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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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의견] '해당 언론사' 당신들, 더이상 장자연 리스트 파문 보도할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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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이종걸 의원, 국회 대정부 질의서 '장자연 리스트' 실명 공개
Tracked from Nerd Story 2009/04/08 20:54 del.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등장하는 특정 언론사 대표를 실명 거론한 이후, 이종걸 의원이 뜨고 있다는군요. 해당언론사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악용해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며 이 의원에게 사과와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서를 보냈지만, 이 의원 측은 해당 동영상을 홈페이지에도 걸어놓은 상태이라고 하구요.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부정하고 싶지만... 그것이 그들의 힘인것 같군요.
rss로 구독하고 있어서 댓글은 잘 안달지만...잘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을 글 ^^
앞으로도 종종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주시면 반갑겠습니다. : )
오늘은 어째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남기기가 참 어렵군요..
똥맛나는 세상이지만, 꿀맛나게 살아야죵!
라고 하면서 왠지 씁쓸뻘쭘해진다능..;;;;
트랙백 겁니다. 어차피 언론사들도 최소한의 동업자 의식은 있어서 그럴수도 있죠.
글 잘 읽었습니다. : )
이름이 '방사장'일지도...;;;;
언론은 홍길동 놀음이고.... 오늘 아침 노전대통령에 대해 기다렸다는듯이 비아냥거리는 라디오 진행자의 아침프로를 들으면서도 참 거시기 하다고 해야 할까욤?
글쎄, 정말 살맛나지 않는 세상임에는 틀림이 없네요.
저 해당언론사의 사건을 떠들석하게 다른 것으로 덮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쩌면 이런 세상이 그냥 돌아가도록 방관하고 있는 저한테 가장 큰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성에 또 반성....!!! (투표 딱 한번 안했다가 이런...낭패를.....)
민노행님, 즐거운 하루 잘 시작하셨습니까?
저는 감기에 걸려서 헤롱거리는 중입니다.
아웅...감기 조심하시옵소서~!
이룬이룬...
명이행님께서 고뿔에 걸리셨고만요...;;;
저도 코가 맹맹대는게 눈도 욱씬거리고 좀 그렇고만요...
명이행님 말씀처럼 이번 사안만은 좀 명료하게 상식적으로 해결이 되었음 합니다...
조선일보를 조선일보라 부르지 못하고 방씨를 방씨라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많이 모여있다는 얘길 어디선가 들었는데, 그게 어딘가요? @.@
거기에 어딘감용? @_@;;;
들리는 이야기가 너무 답답해서 뉴스 보기가 점점 싫어지네요. 한겨레 21보도처럼 '스포츠'나 보면서 '별일없이' 살아야 하는건지 -.-
덧. 그나저나 최용익 논설위원의 논설은 참 재밌네요. 혹시 '자유민주세력'들께서 공산당 선언의 첫 구절을 차용했다고 딴지나 걸지 않을지. ^^;(그걸 설마 알까 싶긴 합니다)
재미없는 법리적인 쟁점을 떠나서... 그저 손쉽게 말하는 일반의 감정을 그대로 이야기하자면... 정말 억눌린 그런 것들이 이제는 무슨 '한'으로 쌓여있는 수준(ㅡ.ㅡ;;;)이 아닐까 싶어서... 그걸 한번쯤은 뻥!하고 터뜨리고 싶은 그런....;;;; (저는 강호순 얼굴 공개에 대해선 반대했지만, 장자연 리스트 공개에 대해선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물론 좀더 엄격하게는 어떤 식으로든 경찰이 입장을 밝혔더라면 좋았겠지만요.. )
아무튼 그럼에도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합니다...
추.
저도 최논설의원 글은 참 재밌더라구요. ㅎㅎ
* 보충 링크
이정환의 글과 이에 대한 단평 보충.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 꽤나 마음 고생 심하고, 고민이 깊으셨나봅니다... 댓글을 삭제하셨길래 갸우뚱했는데, 다시 추고해서 올려주셨네요. 일전에 공개로 남겨주셨을 때는 본문에 인용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비밀글로 주셔서 그것도 이제는 불가능하겠네요..;;; 아무튼 진솔한 말씀에 대해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