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내 일생의 테마들 가운데 하나가 연애감정이다. 그건 가장 난감한 속물근성이다. 그건 가장 아름답고, 매혹적인 속물근성들 가운데 하나다.

1. 연애감정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단어는 '불가피'다. 그 다음으로 '무자비'가 오고, 그 다음에야 '따뜻함'이 온다. 불가피한 무자비 속에서도 사람들은 따뜻함을 기다린다. 적어도 나는 그런 편이다.

2. 나는 연애감정에 휩싸이거나 연애감정에 파묻히는게 싫다. 하지만 이야기했잖아, 그건 불가피하고, 아주 무자비하게 온다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애감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아주 조금은 그걸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바라볼 수 있는 뭔가가 생겨난 것 같기도 하다. 연애감정이 사랑은 아니라는 거. 다행스럽게도 사랑은 아주 멀리서, 아주 늦게,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온다. 연애감정이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지만, 사랑이 없는 연애감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연애감정은 차라리 우정에 가깝다. 아니, 가까우면 좋겠다.

3. 그런 의미에서 연애감정은 아무도 헤치지 않고, 아무에게도 상처주지 않는다. 다만 그 연애감정이란 것에 너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거나, 혹은 거기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자의식이 서로에게 상처를 줄 뿐이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적인 경쟁과 비교와 위계적 질서에 대한 관성화된 억압이 녹아 있다. 가장 강력한 관성은 소유욕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개 그걸 인정하지 않고, 문화적으로 위장하려고 든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나는 그게 싫다. 그게 얼마나 파괴적인 욕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그렇다.

4. 커피캬라멜. 이걸 커피카라멜이나, 커피캐러멜로 부르면 반칙이다. 그게 반칙인 세계에서 나는 커피캬라멜과 연애하고 있다. 그 커피캬라멜은 연애감정이 사랑에 닿는 순간 나에게 느껴지는 맛인데, 그건 마치 초저녁 거리가 달콤하게 어둠으로 물들어가는, 밀크커피처럼 그 시간과 공간을 휘젓는 신비로운 느낌들과도 비슷하다. 그걸 빨강머리 앤의 첫 마차에 쏟아지는 저 푸른 이파리들 사이에서 춤추는, 갓 태어난 천사들 같은 햇빛들과 바꿔도 물론 상관은 없다. 사랑은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여러 개의 풍경들, 그 풍경들이 나에게, 당신에게, 우리에게 '함께 놀자'고 장난치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 풍경들을 만들어가는게 사랑이다.

5.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들 가운데 이런 문장이 있다.
그러나 사랑은 하나다. 감정은 '소유'되지만 사랑은 생겨난다. 감정은 사람 안에 깃들지만 사람은 사랑 안에서 살아간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즉 사랑은 '나'에 집착하여 '너'를 단지 '내용'이라든가 대상으로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나'와 '너' 그 '사이'에 있다.
- 마르틴 부버, 표재명 역, '나와 너', 문예출판사, p.26, 1995.

* 요즘 좀 싱숭생숭 새벽에 잠도 안오고 해서 끄적여보는 글입니다. 그럴 분은 없겠지만... 너무 심각하게 읽지는 말아주시길. :D 사적인 질문하는 댓글은 사절입니다. 물론 댓글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만에 하나 댓글이 있다면, 그런데 그 댓글이 맘에 안들면 이 글에 한해서  좀더 쉽게 삭제하거나, 이 글 자체를 지울수도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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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09/05/20] 숨쉬기가 힘들다

    Tracked from Fly High 2009/05/20 22:59 del.

    얼마만에 저지른 병신짓인가.기억도 안난다. 주변에 워낙 병신이 많아서 걔네들 까다 보니 난 아닌척나이는 점점 먹어가고 연애세포는 퇴화되어 사라진거 같고회사 생활하다 어느순간 갑자기 찾아온 가슴의 두근거림에 평소에 그 잘난 인내심은 어디로 가고조급함에 쫒겨 서두르고 또 서둘러서, 저지르고 강요하며 밀어붙이고후회와 기대와 불안등등 말도 못할 여러 감정에 휩싸여 밤잠을 제대로 못잔지, 식욕을 잃은지 2주가량언제나 처럼 담배 한대를 피워물고 별생각없이 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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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퍼렁어 2009/05/20 14:14

    민노씨의 연애법안을 공적변경화 하는 법안을 추진해야 겠군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5/21 23:42

      어서 추진해주십시옹! : )

  2. 2009/05/20 16:21

    옛날 노래가 생각나네요.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전 애가 둘이나 된 아줌마에다 첫사랑과 연애해 결혼까지 한 사람이다보니 다른 사람에 대해 연애감정 같은 걸 가진 적이 있었나... 싶네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5/21 23:43

      첫사랑과 연애해 결혼... ;;
      저는 결혼제도에 대해 부정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참 부럽다능..;;;

      추.
      그 노래는 예전에 대학다닐 때 꽤 자주 불렀던 노랜데 말이죠. ㅎㅎ

  3. 섹시고니 2009/05/21 00:39

    연애감정이 '속물근성'이라?

    음.. 속물? 속물?

    그건 장사꾼?

    민노씨님이 연애감정을 속물근성이 아닌 것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사랑'이 되지 않을가요?

    덧) 덧글 달지 않으려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해서. 웅.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5/21 23:45

      이룬. 안쓰런 마음이 들었나요? ^ ^;
      저는 속물근성을 증오하거나 혐오하지 않아요.
      저도 속물인걸요, 뭐. : )

  4. 미도리 2009/05/21 20:17

    이 블로그 타이틀 아래 위치한 '커피캬라멜'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군요.
    역시 새벽에 글을 쓰는 건 좀 위험하다는 생각이...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5/21 23:46

      궁금증이 풀리셨군요. : )
      글 쓴 보람(?)이네요..ㅎㅎ
      역시나 새벽에 글쓰는 건 초큼 위험..하다기 보다는 민망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뭐 글을 쓸 때는 대개는 다 그런 것 같아요. 부끄럽다는 느낌이랄까... 그런거요.. 이제 좀 많이 뻔뻔해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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