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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랑과 과거


부버는 이런 취지로 이야기했다.

대상적인 것은 과거 속에서 살려지고, 본질적인 것은 현재 속에서 살려진다.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사랑은 그게 현재가 아닌 과거가 되는 순간 대상화된다.
그건 죽었다.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그건 그냥 추억일 뿐이다.
추억은 사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나는 생각하는, 아니 그렇게 느끼는 편이다.
종종 낭만적인 집착이거나, 결핍에 대한 몸부림이거나, 그냥 엿같은 악몽이거나... 그렇다.

시간이 어떤 악몽들도 따뜻하게 채색한다는 건 참 신기하다.
고독과 슬픔은 차갑고, 메마른 것일텐데, 시간은 그걸 따뜻하고, 촉촉하게 만든다.
그건 참 놀랍다.
종종 어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 시간이 약이라고.
그건 참 맞으면서도 틀린 말...
시간은 아무튼 슬픔을 따뜻하게 한다.
그래서 더 엿같다.


2-2. 장롱 환상


그러니까 이런거다.
이런 기억이 모두에게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어릴적에 장롱 속에 들어가서 잠이 들곤 했다.
그곳은 어린 나에게는 아주 깊고 깊은 절벽 같은 곳이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푹신한 곳이었다.

그건 마치 사랑스러운 여체와 같다.

장롱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포근하지만, 문이 닫히면 온통 암흑 뿐이다.
아무도 나를 꺼내줄 수 없는 혼자 만의 깊은 절벽이 된다.
거기에 빠지면 아무도 나를 구할 수 없다...

내가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어떤 여자를 떠올리면 그 장롱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곤 한다.

나는 불행하다.
문은 이미 닫혔다.
누구도 나를 꺼낼 수 없다....


2-3.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연애를 했다고 나는 기억한다.
내 입장에서는 다섯 번인데, '당신' 입장에선 한 번도 아닐 수 있고, 열 번일 수도 있을테다.

문득 이소라 노래가 떠오른다.
'바람이 분다'라는 노래다.

거기 이런 가사가 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는 그 말이 정말 소름끼칠만큼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거다.

하지만 사랑에는 그런게 없다.
정말 사랑이라면 추억이 다르게 적히거나 말거나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 건 들어올 틈이 없을테니까.

추억은 사랑이 아니다.
추억은 사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나는 추억 때문에 불행하다.
누구도 나를 꺼낼 수 없다....




* 관련글
사랑에 관한 문답 1. 사랑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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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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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6 2008/12/30 03:39

    시간이 어떤 악몽들도 따뜻하게 채색한다... 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우리의 기억이라는, 남아있고 변형된 정보들은 이기적이죠.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거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고 또한, 그에 합당하게 변형시킵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영화 대사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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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2/30 16:29

      이기적이라서 종종 더 스스로에게 잔인하게 남는 것 같기도 합니다..

  2. Raylene 2008/12/30 12:54

    으 사랑에 대한 민노님의 이야기가 너무 찬란해서 저는 왠지 어둠의 자식같네요 뭐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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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2/30 16:31

      농담이 과하십니당..;;;
      레일린님 글 재밌게 잘 읽었는데 말이죵.
      ( http://happyray.com/1315 )

      추.
      트랙백 쏨미당!

  3. 민노씨 2008/12/30 16:47

    * 제목 수정 ("에 관한" 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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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미도리 2008/12/31 09:25

    제가 음악 바통에서 best로 언급했던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와 좋아하는 영화 여자 정혜 둘다 나와주니 아주 좋은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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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02 07:41

      안그래도 미도리님 그 글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 )

  5. Raylene 2008/12/31 10:02

    제 글이 재밌었다구요!! 뜨와!!
    하지만 음침한 건 사실이잖아요우와앙
    .ㄱ->

    저도 트랙백 걸게요!!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2008년에 민노님 블로그를 알게 되어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뇌의 부피가 늘어난 것같은 기분도 들구요 아 여기서 더 커지면 안되는데 ㄱ-;

    2009년에도 잘 부탁드릴게요!!!
    행복한 새해 되세요^^

    추가:트랙백 못한다구..ㅠㅠ 그래서 포기해써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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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02 07:44

      레일린님 글이야 항상 재밌죠. : )
      레이님께서도 복 겁나게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추.
      판올림이 잘못된 건가 싶어서 계속 파일 위에 덮어 씌우기를 거듭하는데도...
      그 트랙백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네요...;;;;

  6. 도아 2008/12/31 15:55

    요즘은 문답놀이를 열심히 하시는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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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02 07:44

      요즘 좀 그렇죠? ^ ^;;
      도아님께서도 새해 복 듬뿍 받으시구요.. : )

  7. mepay 2008/12/31 17:21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만 있는게 아니죠.

    아무튼 요즘 사랑이 차디차게 식고 있습니다. 으 차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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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02 07:46

      다시 활활 타오르실 불을 지피시길 바랍니당. ㅎㅎ

  8. 명이 2009/01/01 21:20

    전에, 그 노래를 어느 블로그에서 들으면서, 노래가 처연하다는 이야기를 한번 한적이 있더랬죠.
    역시,, 다시 들어도 그러네요.
    사랑. 쉽지만 어려운 단어입니다. 으흐흐;

    덧, 새해 복 잔뜩 받으셨죠!?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1/02 07:52

      그런 기억이 계셨군요...

      추.
      명이님께서는 그야말로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어주는 블로그계의 봄바람 같습니당..ㅎㅎ
      말씀 고맙습니다.

  9. silent man 2009/01/02 04:19

    오오, 이런 것이 민노씨가 진정 쓰고 싶어하는 글이겠지요. (웃음)

    "바람이 분다"라는 노래가 무척이나 잘 어울립니다.

    덧_장롱 속엔 부기맨이 사니 조심하시길. 응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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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02 07:53

      그런 글에 흡사한 글이죠.. ㅎㅎ
      잘 들어가셨죵?

      추.
      지금 자취하는 방에는 장롱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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