쨔스, 댓글로 하루를 살다.

2008/09/30 14:22
쨔스.
그녀가 쓰는 필명이다.
'자스민'에서 민을 빼고, 쨔스라고 부르기로 했단다.
그건 나에겐 내밀한 수줍음 같은 느낌인데, 나는 그게 뭔지 알 것 같다.
때론 내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어색하거나,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사람은 균형을 취하려고 노력하는 존재라서, 유년의 왕국 속에 있는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때론 얼음처럼 차갑거나, 봄날 꽃내음처럼 활달한 청년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물론 그 유년의 찰나들 속에 있는 아이는 문득 문득 떠오르긴 할테지만...

나는 그녀를 잘 모른다.
그녀가 삼성전기에 근무한다는 것.
공포영화, 그것도 하드고어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것. ^ ^;
인사동에 가끔씩 들르는 맛좋은 찻집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아주 의미있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

그녀가 다니는 직장은 앞서 말했듯 삼성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최고 직장, 삼성.
'또 하나의 가족' 삼성에서 그녀는 심한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상사의 성희롱을 알렸기 때문에, "청바지 입은 여직원은 성희롱 해도 되는"(프레시안) 직장상사가 있는, 혹은 그런 조직문화가 상존하는 그 '가족스러운 직장'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아니 우리가 날마다 학습하고, 권장하는 편견과 무관심은 우리들의 '생존 특허'니까...

그런 이유들 때문에...
그녀는,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왕따로 지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겨레블로그에 둥지를 마련한 그녀를 필벗들과 만났다.
한참 전인데, 나는 이제야 그녀에 대해서, 그녀의 싸움에 대해 쓴다.
게으름 때문에, 내 고민도 천지삐까리라서,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이제야 쓰는거다.
이 글이 무슨 대단한 글이라고...      

그 필벗 모임에서 그녀가 남긴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블로거 친구들이 남겨주는 댓글 하나 하나가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어요."

나는 그게 어떤 건지 조금은 안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
아주 조금은 그 외로움이 뭔지 안다.

외로운 어떤 날.
댓글 하나의 온기로 하루를 버티는...
그 마음까지를 내가 모두 안다고 하면...
나는 알 것도 같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왜냐하면, 그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아니 지랄같이 외로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니까...


물론 지금, 그녀는 아주 씩씩해졌다. : )


쨔스!
이렇게 마음 속으로 이름을 부르니, 마치 기러기 이름같다.


함께,
멀리 함께,
날아오르자, 쨔스!




추.
이 글이 그녀에게 또 다른 편견을 만들어내는 글이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생긴다.
이 글은 그저 그녀에 대한 내 소박한 체험이고, 그 체험이 그려준 감상과 공감의 표현일 뿐이다.
이 글을 읽고 그녀에 대해 편견이나 선입견이 생긴다면, 그건 오로지 표현이 부족해서다.
나는 그저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때론 슬퍼할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고,
그리고 당신이, 아니 우리가 우리들이 만들어놓은 편견과 무관심과 게으름의 사슬에서 가끔씩 벗어나서, 그녀와, 아니 그녀'들'과, 그러므로 우리와 친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 관련 추천기사
"청바지 입은 여직원은 성희롱 해도 되나요" (프레시안, 2008. 8. 19) : 인터뷰.
인권위 "삼성전기, 직장내 성희롱 철저히 대처해야", 이은의씨의 '작은 결실' (프레시안, 2008. 9. 10) : 인권위 권고
자신과 같은 문제를 겪을 지 모를 다른 많은 여성 직장인들을 위해 스스로 겪은 일을 적극적으로 알려왔던 그의 노력이 최근 작은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1심(민사)을 진행중이다.


* 쨔스의 블로그
사회문화게릴라, '할 말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http://blog.hani.co.kr/pjasmine/  
 

* 끝으로, 블로거들께서는 이 주제에 대해 아주 조금만 관심을 갖고 글 하나 쓰시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 ) 블로그로 할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이야기는 무슨 대단히 대단히 어렵거나, 전문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내 옆에 있는 이웃들과 그 이웃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보태면서, 함께 힘내자고, 응원하는 그 마음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저 친구로서 말이죠.


* 관련 추천글
나 또한 죄가 많다 (mindfree)
쨔스, 성희롱, 그리고 인권
(xa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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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나 또한 죄가 많다

    Tracked from Free Mind Free Web by Mindfree 2008/09/30 21:09 del.

    왕따 직장인의 7년 법정싸움이라는 포스트를 쓴 적이 있다. 회사의 내부고발자가 겪게 된 엄청난 불합리와 학대가 너무나 놀라웠기에 남겼던 글인데, 다시 비슷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짜스, 댓글로 하루를 살다 -민노씨.네"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광고하는 그룹 계열사인 기업에서 직장 내 성희롱을 인사팀에 알렸다가 엄청난 일을 겪게 된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회사는 그를 '근무에 태만한 직원'으로 몰아붙였다. 심지어 회사 측은 "청바...

  2. Subject : 쨔스, 성희롱, 그리고 인권

    Tracked from Red Rock 2008/10/03 03:03 del.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1장 4조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처분의 금지)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를 고용하고 있는 자는 누구든지 성폭력범죄와 관련하여 피해자를 해고하거나 기타 불이익을 주어서는 아니된다.[각주:1] 이은의씨란 분이 계시다. 블로그에서의 닉네임은 쨔스. 나는 이 분을 알지 못했으나 민노씨님의 블로그를 통해 이 분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삼성전기에서 일하시던 이은의 씨, 쨔스님은 삼성전기에서 일하던 중 상사에게 성희롱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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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밍 2008/09/30 16:37

    프레시안 기사를 다 읽어보게 되었네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과제 분위기가 강력한 삼성같은 곳이라 더욱 나몰라라 혼자 외로웠을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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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9/30 18:36

      그래도 지금은 열심히 즐겁게(?) 싸고 계시니 참 다행입니다. : )

  2. 김기자 2008/09/30 16:49

    마지막 부분을 전 진지하게 민노씨의 프러포즈로 읽었다눈 --;;;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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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9/30 18:36

      전혀 아닌데 말이죠.. ^ ^;;

  3. 주성치 2008/09/30 21:38

    마지막 부분에 말씀하신걸 어떻게 만들어 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올블로그에서?)
    일년에 하루 전세계 블로거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쓰는 블로그액션데이(http://blogactionday.org/ )의 축소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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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0/01 09:08

      그런 시도들은 개개의 블로그에서 일상적으로 좀더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는 어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그런 활동의 에너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메타에서 그런 활동을 좀더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그것도 참 좋겠네요. : )

  4. 쿨짹 2008/10/01 06:38

    상상할 수도 없네요. 얼마나 힘이드셨을까.. 댓글에서 힘을 얻으신다는데 ㅠㅜ
    계좌를 하나 만들어야하나 생각 중이에요. 마지막 오퍼 받아들여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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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0/01 09:10

      시민단체에서 소송비용 지원한다는 걸 사양하신 것으로 압니다. ^ ^;
      물론 그 관심이나 고마움까지 사양하신 것은 아니구요.
      쿨짹님 말씀만으로도 제가 다 고맙네요. : )

  5. xarm 2008/10/03 03:07

    헉.. 글 저장하다가 뭐가 엉켰는지 같은 글인데 트랙백이 3개나 걸렸네요. 죄송해요ㅜㅠ
    제 블로그에선 제일 아래것 빼곤 다 지웠는데 여긴 다 남네요;;;
    제대로 된 글도 아닌데 저렇게 남게 되니.. 아... 민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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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0/03 04:39

      죄송하긴요.
      xarm님께서 엮어주신 고마운 글 잘 읽었습니다. : )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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