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녀사냥의 요소
마녀사냥은 중세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배타성에 기원한다고 나는 알고 있었는데, 정말 그런가 문득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한국어 위키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고, 영어 위키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이건 워낙에 영어 울렁증이 있어서 읽다가 말았다).
특히 시기적으론 '중세의 마녀사냥'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학계의 연구에 의해 수정되었다는 지적이 인상적이다.
- 한국어 위키 - '마녀사냥' 중에서
내가 이해하는 마녀사냥은 이렇다.
마녀사냥은 흔히 포퓰리즘이라고 말하는 대중의 감정과잉과 냄비근성(마녀사냥은 대부분 어떤 거대한 이슈와 만난다), 상대방(의 견해)에 대한 불관용(엥똘레랑스), 그리고 자신의 정당성을 지지하기 위한 배타성의 전략(희생양 만들기)에 기반한다.
마녀사냥은 대개의 경우 '다수'가 '소수'를 대상을 한다. 물론 여기에는 예외(?)도 있는데, 황우석 파동의 와중에 '소수'(PD수첩, 한겨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가 황우석을 지지하는 선량한 다수인 "보통 사람들"을 마녀사냥했다는 조선일보 김대중의 놀라운 발상이 이런 경우다(이 명문은 두고 두고 조선일보와 김대중에 대한 '증거'(!)로서 거듭해서 읽혀야 마땅하다. 조선일보 링크는 자제하고 싶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다. 굳이 설명하기도 민망하지만 '촛불'에 대해 조선일보는 유사한 현상을 거의 정반대로 평가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이안과 전원책' 사례에서 이안을 비판하는 글을 썼고, 다만 이안에 대한 마녀사냥에 가까운 행태에 대해선 그것을 다시 비판하는 글을 쓴 바 있다. 그 글에서 내가 피력한 논리, 사고의 틀은 이번 정선희 사례와도 거의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좀 다르다. 왜 다를까... 나는 왜 정선희 발언에 대한 집단적인 비판과 (그 와중에 좀 과한) 증오가 그다지 안타깝지 않은걸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게 스스로에게 궁금해서다.
2. 정선희 발언의 맥락
정선희 발언의 비난가능성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어떤 블로거께서는 '옳은 소리 했고만, 왜 욕먹어야 되는지 모르겠네...' 이런 말씀하시는데...정선희 발언은, 쉽게 말하자, 정말 개념 없어도 너무 없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정선희 발언을 '촛불'이라는 맥락 속에서 살펴보면 이건 조선일보 김대중이 황우석 파동의 와중에 했던 바로 그 맥락이다. '선량한 시민'이라는 이미지를 가상의 아군으로 설정하고, 황우석을 정당하게 비판했던 PD수첩을 악당으로 이미지화해서 비난하는 바로 그 방식이다.
물론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다수(선량한 시민이라는 어떤 '이미지')를 조선일보 김대중이 자신의 임의로 참칭하고 있다면, 이번 정선희 발언은 그냥 그런 정치적인 의도 없이(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정치적인 의도를 저도 모르게 담고) 막연한 일반론과 도덕론(이라고 하기도 좀 뭣한 초딩 도덕교과서)를 흉내내고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 그러니까 이건 정치적으로 매우 악의적인 맥락 속에 위치하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 당연히 공적인 비난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오늘자 조선일보에 드디어 '촛불들'의 장엄한 모습이 일면에 그 자체로 처음 실렸다. 원래 조선일보가 좋아하는 '사진'은 이런 '솔직한 사진', 전체를 가장 잘 대변하는 사진이 아니라, '집회 끝난 뒤에 쓰레기 좀 보라지요?'라는 초딩(초딩들께는 정말 미안)스런 이색 취미가 발현된 사진들이다. 적어도 조선닷컴에서 촛불문화제와 촛불집회, 촛불시위(문화제와 집회와 시위는 정말 분명히 다른데...)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흔히 볼 수 있었던 '촛불관련 화보들'은 쓰레기 타령하는 것들이나 폭력시위하는 시민들 모습, 혹은 폭력에 당하고 있는 전의경들의 '안타까운' 사진들이다.
정선희 발언은 시민혁명 수준의 저항권이 발동하고 있는 와중에 '쓰레기 타령'하는 조선닷컴의 '촛불'관련 화보와 그 정치적 함의에 있어 쌤쌤인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공인으로서 좀더 큰 발언권(그 권위가 있던 없던 그 '부피'로만 본다면)을 갖는 바에야 그 발언은 비판되어야 마땅하고, 시민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그 공적인 언어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3. 정선희와 마녀사냥이라는 틀짓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염려되는 점은 정선희 개인에 대한 불필요한 감정 과잉이다. 이 감정 과잉은 정치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중대한 촛불의 의미를 '마녀사냥' 아류의 어떤 것으로 전락시키려는 조선일보식 틀짓기에 말려들 공산이 크다. 물론 정선희나 조선일보가 유포하는 '참 잘했어요'류의 공중질서 강조하는 초딩 도덕교과서의 틀로 이기심과 사회적 상상력이 만나는 (소)시민혁명의 전망에 대해 고민하고, 대화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과한 기대이긴 하다.
오늘자(2008. 6. 11.) 조선일보는 '정선희 이슈'를 어떤 맥락에서 재가공하고 있는지 보자.
- 조선일보 김진명, '촛불시위 40일' '순정'으로 시작한 시위 점차 격렬해져(큰 제목) 서울도심 밤샘 도로점거...쇠파이프도 등장 (작은 제목)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며 네티즌 참여 이끌어 (작은 제목) 중에서
다시금 강조건대 그 정치적 함의로 판단하면, 정선희 발언은 적어도 전체로서 '정당한 다수'를 박정희스런 도덕교과서의 '참 잘했어요' 마인드로 비난하고 있는, 그러니 황우석 파동 때 조선일보 김대중이 행한 아리까리한 선동에 다름 아니다. 비판받아 마땅하고, 그 비판의 정당성 자체가 무슨 자동반사식의 '마녀사냥'이라는 얼렁뚱땅으로 다시 '비난'되어야 할 까닭은 없다.
그리고 이 비판들은 촛불의 의미에 대한 좀더 진지한 논의를 방해하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하는게 뭔고 하니, 정선희 발언은 그대로 조선일보라는 가공할만한 기만매체가 촛불을 공격하는, 혹은 촛불의 의미를 왜곡하는 논리 틀의 연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선희 발언은 조선일보류의 '종이 유사의 어떤 것'에서 의도하는 악질적인 정치적인 틀짓기의 혐의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냥 폼 한번 잡으려다, 혹은 똥인지 된장인지 분위기 파악 안되서 실언했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관용 정신은 중요하다. 그리고 볼테르주의자가 견지해야 하는 언로의 자유에 대한 신념은 정말 정말 너무 너무 중요하다. 다만 관용이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한 정당한 비판까지를 막아서는 언로의 장애가 된다면, 그건 정말 우스운 일이다.
사이비 볼테르주의자들, 가령 정선희를 초딩 교과서 마인드로 옹호하고, 정선희에 대한 비판을 그저 감정과잉의 마녀사냥으로 아무런 고민없이 틀짓기하는, 이들은 마녀사냥 원정대 만큼이나 위험하다. 합리적인 이성의 고민과 비판정신, 그리고 치열한 토론을 거치지 못한 좋은게 좋다는 식의 피상적 휴머니즘, 피상적 관용은 허울좋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런 사이비 관용은 그저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군부시절의 언론탄압"을 운운하며 헛소리 하는 '종이 유사의 어떤 것들'의 논리와 한치도 다르지 않다. 그건 관용도 뭣도 아니다.
* 마녀사냥 관련글
마녀사냥 원정대 - 포퓰리즘과 참여적 가치 [이안-전원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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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여담이지만 마녀사냥이 지속되어온 이유는 그녀들이 정말 마녀라든가 또는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고문기계 제작자들이 돈을 많이 벌려고 로비를 했기 때문이라는군요. 흑사병이 시작되면서 고문기술자들이 모두 죽어버리는 바람에 마녀사냥이 끝나게 되었다는 다소 아이러니한 역사입니다...
흥미로운 가설이네요. : )
그런데 위 제 본문의 설명에도 나오지만, 흔히 '중세의 마녀사냥'이라는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마녀사냥의 역사적인 시기가 (물론 이 역시 최근의 학문적 가설이기는 하지만요) 실은 중세가 아닌 15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있다면, 페스트가 창궐한 14세기 중반과는 시기적으로 접점이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 ^;
* 본문 사소한 추고.
관련글 및 촛불 관련 추천글 링크 보충.
아...동감인 글,,,^^
이 글을 올블에선 오랜만에 꽤 많이 추천이 된 글인데도 댓글이 거의 없어서 아쉽던 차에 롤랑님께서 덕담을 주시는고만요.. ^ ^
너무나 잘쓰기에 덧 붙일말이 없어서 그럴겁니다 ㅋㅋ
과한 격려십니다. ㅋㅋ
칭찬이라면 농담도 진담으로 알아먹는 현대인의 필수감각 넌센스..ㅡ.ㅡ;;
댓글 쓰다 길어져서 트랙백하려고 글을 써봤는데, 다 써놓고 걸어놓는 걸 깜빡 있어서 지금 걸어놨습니다.
분명 촛불집회는 너무 많은 사람이 참여한 나머지 일부 실수도 벌어질 수 있고, 쓰레기 정도는 발생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촛불집회의 부당성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추.
자봉단에서 쓰레기를 줍는 모습 종종 봤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런 정도 규모의 집회에서 이런 정도의 쓰레기라면...이런 정도의 질서의식이라면 그건 거의 기적이라고 평가해야 할 겁니다. 조중동류의 유치한 비난에 대해선 쓰레기 생산하는 집단에서 쓰레기로 비난의 구실을 삼으니.. 대꾸해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지만.. 좀 심하게 코미디스러워서 말이죠. ㅡ.ㅡ;
역시 민노씨, 반갑게 기쁘게 글 잘 읽었습니다.
한 열달 만에 와서 읽고 갑니다. 너무 멀리 있지만 맘으로 응원하고 함께 합니다.
온유님이신가요? ^ ^;;
맞다면... 독일은 요즘 어떤지 궁금하네요.
종종 안부라도 전해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저도 새벽시간 전경들의 1차 진압작전이 끝나고 대치상태에서 전경들에 둘러쌓인 채로 쓰레기를 줍는 자원봉사단의 모습을 TV 지켜봤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습니다. 이분들 처럼 모두가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애초에 많은 분들이 거리로 나설 일도 없었을텐데요...
그러게요.
가끔씩 정말 천사가 제 눈앞을 지나가고 있다는 다소 감상적인 느낌마저 들곤 합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아, 이제 기억 납니다. ^ ^;
남겨주신 필명에서 눈치를 차렸어야 하는건데 말이죠.;;
연말이나 연초에 오시면 초졸하게 필벗들과 맥주파티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돌아오시면 꼭 연락주셔서 정말 초졸한 맥주파티를 열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아직 멀리 있는 이야기지만요..
들뢰즈는 간접적인 언급으로는 꽤 친숙한데, 솔직히 이차평론서에서 언급되는 이름만으로 친숙할 뿐이지 그가 쓴 책으로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철학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푸코와는 달리 영화를 무척 사랑했던 철학자라는 점이 개인적으론 가장 맘에 드는데 말이죠.
추.
혹 블로그를 옮기실 생각이라면...
그래도 자유도와 독립성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티스토리를 추천하고 싶네요. 자신만의 독립 도메인을 설정할 수도 있구요. 관심이 있으시면 제가 부족하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물론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방식은 독립적인 설치형 블로그를 마련하시는 것이지만요.. ^ ^;;
일개 MC는 방송중에 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의미로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내려왔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은 되는대로 막말을 하는대도 그 말에 책임을 전혀 지지 않으려 하네요.
정말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마녀사냥 아닌가요?
이명박은 다수의 희생양인 마녀가 아니라, 그냥 악당입니다. ㅡ.ㅡ;
그런데... 그 악당, 그 괴물을 뽑은게 우리 국민이네요....
그러니까 우리가 책임지는 의미로 처단을 해야죠.
그렇고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