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아름다운 시가 흐르는 축제의 나날들이 지나가면 우리는 다시 지루한 산문을 써야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그건 혁명을 시에, 일상을 산문에 비유하는 문장이었다. 물론 그런 말을 누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문득 이 비유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누구인지 문득 궁금하긴 하지만... 이 비유는 빨강머리 앤이  좋아할 정도로 '낭만적'이다.

우리는 지금 '촛불의 축제'를 만끽하고 있다.
그 축제는 우리를 들뜨게 하고, 우리를 슬픈 가운데 춤추게 하며, 우리가 희망을 실천으로 현실 그 자체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제다. 그 축제가 때론 비통함으로, 때론 분노로, 때론 허무감을 동반하는 알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축제 한 가운데를 벅찬 감격과 함께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그 축제가 암울한 현실에서 피어난 축제라는 그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암울하고, 기만적인 현실을 만든 그 주체가 우리임을 스스로 반성적으로 회고하고, 고백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 축제가 끝난 뒤에 우리는 또 다시 일상 속으로 되돌아가 메마르고, 지루한 산문을 써야 한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리하여 그 지루한 일상과 건조한 산문들이 지배하는 나날들 속에서 우리를 춤출 수 있게 하는, 우리가 하루하루를 너무도 벅차게 감격할 수 있게한 축제의 의미를 스스로 그 일상 속에 심어놓지 않으면, 이 축제가 끝난 뒤에 우리는 더 깊은 허무의 늪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 축제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스스로 기록하고, 그리하여 스스로 이 축제를 더욱 아름답게 했던 기만적인 시스템의 추악한 거짓들이, 결국은 스스로의 방조와 나태와 불성실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임을 아프게 각성하는 것, 이거 없으면, 이런 아픈 자기 확인의 과정이 없으면 이 축제도, 지난 87년의 축제처럼, 지난 2002년의 축제처럼 그렇게 지워져버릴 수 있을거다.

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시민들이 그 축제의 기억들을, 거리를 밝힌 그 환한 촛불의 의미들을 스스로 산문으로 붙잡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기억을 블로그를 통해 공유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 분명한 우리의 따분한 일상을 축제처럼 아름답고, 달콤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고 믿으니까....



추.
다소간 감상적으로 썼지만, 이 축제가 지속가능한 것이 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론의 하나로서 '조중동 불매운동'은 매우 적절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일상 속에서 숨쉬는 방법론의 하나로서 여전히 블로그라는 단순하고, 심심한 미디어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다.



* 축하드립니다!
자축! Forget the Radio 1주년! (08.06.03) : 소중한 우리시대의 팟캐스터


2008/06/05 16:28 2008/06/0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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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08/06/05 18:58
68의 구호 중에서 가장 저를 매혹시켰던 말은 "행동은 이제 충분하다, (이젠) 말이다Assez d'actes, des mots."였습니다. 물론 저는 시詩란 무조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라고 보는 시각에도, 또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가 다 좋은 시라는 시각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좋은 시'는 반드시... 하다못해 일말의 정치적 올바름이라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혁명에 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겠지요.
덧말) 이 시와 올바름에 대해 가장 깊이 사숙하는 사람은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민노씨 
wrote at 2008/06/06 16:55
정말 멋지고, 인상적인 논평이시네요. : )
고맙습니다...
wrote at 2008/06/06 13:28
오옷! 글 말미에 축하멘트를...^^ 감사드립니다. 민노씨는 저한테 너무 후하신 듯~ ^^;;;;
민노씨 
wrote at 2008/06/06 16:55
새드개그맨님께서 스스로에게 너무 겸손이 과하신 것은 아니구요? ^ ^
wrote at 2008/06/06 14:04
아픈 자기 확인의 과정과 반성적 회고,
이것들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만은 최근 몇 편의 민노씨 글을 읽으면 허무를 예견하는 회색인의 고뇌처럼 느껴져 가슴이 아픕니다. 진짜로 가슴 아픈 현실은 이 촛불의 열기를 담을 정당이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촛불의 열기가 식은 후 맞이하게 될 상황이 지루한 산문의 시기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미네르바의 부엉이 일 수도 있습니다. 은유가 지나치간 합니다만..., 그래서 아파할 것이 아니라 더 기뻐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87년이후 달라진 것이 뭐 있었더냐고 허무의 기억을 떠 올릴 수도 있지만, 작으나마 승리의 기억이 08년 5·6월로 타 올랐다고 한다면, 잘 못 본 것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추가 문단에서 말하신 블로그의 가능성, 잠재력과 앞으로의 역할에 대해 깊히 동감하지만, 축제의 끝을 허무감이 섞인 자조로 바라 보기 보다는 이름 없는 블로거들의 잠재력, 혼란의 시기에서의 건강성, 이런 것들에 주목하고 희망을 살려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 까 하는 맘에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민노씨 
wrote at 2008/06/06 17:02
저는 스스로를 회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 ^;
말씀주신 취지에 대해선 깊이 공감하고, 또 그 염려가 마음에 그대로 느껴져셔 정말 고마운 마음입니다.

말씀하신 정당이라면 저는 아직 단 한명의 국회의원도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진보신당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물론 너무 미약하기 그지 없지만요.

08년 봄이 87의 연장이냐 아니냐는 아직 성급하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겠지요, 다만 말씀처럼 87년의 기억이 전혀 무의미하다거나, 전적으로 배반을 맞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깊은 허무를 동반한 지속적인 반동을 경험한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 가장 실체적인 증거는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이겠죠.

본문에서는 "지루한 산문"이라고 썼지만, 그것이 산문이 지루해야 한다는 의미로 쓴 것은 아닙니다. 너무 도취적으로, 무반성적으로 축제에만 탐닉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쓴 것이고, 오히려 그 산문이 시처럼 흐를 수 있는 기대감은 저 역시 깊이 소망합니다.

어제는 촛불집회에 다녀왔는데, 정말 아름다운 풍경들이더라구요.
말미에 말씀주신 희망을 살려가는 노력에 대해서 작으나마 즐거운 고민을 더하고 싶군요.
진심어린 조언과 논평에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wrote at 2008/06/07 02:23
매번 눈으로만 읽다가 처음으로 글을 남기네요^^ 잘보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민노씨의 식견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네요...
"아름다운 시가 흐르는 축제의 나날들이 지나가면 우리는 지루한 산문을 써야한다." 저도 평소에 좋아하는 말입니다. 근데 누가 한말이었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언젠간 축제에 대한 기대감보다 삶에 대한 희망으로 살아가는 날이 올거라고 믿습니다.
민노씨 
wrote at 2008/06/09 12:03
정확히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니구요.. 물론 아시겠지만, 제가 기억하는 바를 떠올려서 다시 쓴 표현이라서 다소 그 '역사적인 언급'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말씀은... 정말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더불어 바라봅니다. "축제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살 그 자체에 대한 희망으로..."

추.
평소에도 그렇지만 요즘은 특히나 촛불집회 나가느라 블로그 관리가 엉망이네요. ^ ^;;; 답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wrote at 2008/06/10 10:07
어제는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들어가자마자 급한대로 짧은 팟캐스트 하나 올렸습니다. 트랙백 걸어봅니다.
민노씨 
wrote at 2008/06/10 20:10
정말 부지런하십니다. : )
글 몇개 올리고 나가려고 했는데...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그냥 나가봐야겠네요...
가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일단 연락드릴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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