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어조로, IPTV가 가져올 '근미래'의 풍경에 대해 새드개그맨님께서 이야기한다.



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떠오른 글이 있다.
개인적으론 블로깅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포스트 중 하나였는데, 그 글에는 미디어비평가 닐 포스트만이 자신의 책에 썼던 서문을 인용하고 있는 문장이 있다.

"오웰은 외적으로 우리를 압제하는 세력에 의해 우리가 지배당할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반면 헉슬리의 혜안은 사람들에게서 개인의 자주성, 성숙함, 그리고 역사성을 뺏는데는 Big Brother같은 사람이 필요없다고 내다 보았다. 바로 사람들은 자신들을 억누르는 것을 사랑하게 되고, 그들에게서 생각할 능력을 빼앗아간 테크놀로지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지 오웰이 두려워 했던 것은 우리에게서 책을 못읽게 막을 압제자였다. 헉슬리가 두려워했던 것은 Brave New World에서는 책을 금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왜냐면 누구도 책을 읽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웰이 두려워했던 것은 우리에게서 정보를 빼앗아 갈 사람이었지만, 헉슬리가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우리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줌으로써 우리가 수동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으로 되어 갈 것이라는 점이었다. 오웰은 진실이 감춰질 것을 두려워했다. 헉슬리가 두려워 했던 것은 우리가 아주 하찮은 문화로 전락해 갈 것이라는 것이었다."

- 아거, 닐 포스트만의 타계에 부쳐, 포스트만의 'Amusing Ourselves to death 책 서문' 중에서

테크놀로지는 일견 몰가치적이며, 몰역사적인 것 같아 보인다. 진보는 오직 선이며, 좀더 근사하고, 달콤한 신세계를 향한 거절할 수 없는 유혹들이다. 하지만 가치가 내재되어 있지 않은 몰가치적인 테크놀로지는 없으며, 항상 거기에는 역사적인 함의가 깃들기 마련이다. 문명의 물적, 정신적 조건 속에서 버둥버둥 살아가는 인간들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게 되고, 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거다.

그 풍경은 유동적이고, 결정되지 않은 것이지만, 테크놀로지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렇게 산업의 구조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구현하기 위해, 아니 자본의 욕망을 대리하기 위해 운동한다. 우리시대 자본의 최첨단 육체인 테크놀로지, 특히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혁신으로 이끄는 테크놀로지들은 그렇게 쉼없이 이동한다. 그리고 우리를 알 수 없는 세상으로 데려가는거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전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마치 인간의 유희와 인간을 분리해서, 인간의 철학과 인간을 분리해서, 인간을 인간이라고 믿게 했던 그 모든 것들을 인간과 분리해서 인간을 그저 %와 경제도표 속의 숫자들로 만들어버린다. 포털이 지배하는 웹에서는 인간은 '트래픽의 양'으로 계량화되고, IPTV가 지배하는 근미래에 인간의 정신적인 활동들은 '클릭율'로 계량화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숫자로만, 이윤이 발생하는 어떤 확률적인 통계치의 일부로만 의미가 규정된다.

근미래.
온갖 환락과 쾌락이 넘치는 이미지들의 천국.
그 온갖 이미지들이 눈구멍 속으로 몰려든다.
디스토피아.
인간.
죽음.

더 이상 죽을 수도 없는 인간의 시대.

어.떻.게.
시스템을 교란할 것인가.
어.떻.게.

질문하라.
대답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우리는, 아직, 대화의 풍경 속에 있다.

대화가 우리를 구원하리라.



덧.
조지 오웰가 근심한 미래와  올더스 헉슬리가 염려한 미래는 피에르 부르디외가 상징권력에 의해 권력이 '문화적으로 승계'되는 사회에 대한 근심어린 고민과 닿아 있다.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그 모든 성원들, 시민들,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든,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든, '속물적인 욕망'들은, 그 욕망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욕망들은 그 욕망을 채색하고 위장하는 각각의 이미지들을 갖고 있고, 그렇게 외투를 입는다. 조정하는 권력은 여전히 베일 속에 있고, 대신 그 권력을 둘러싼 다채롭고, 반짝이는 외투들를 입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그 권력이 써놓은 각본을 충실히 외우고 있다.


p.s.
엔디님께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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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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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엔디 2008/01/05 13:09

    죽을 수 없는 인간의 시대...
    습작한다고 깐죽거렸던 어린 시절에 '죽을 수 없음'의 슬픔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맨날 우울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참 철없던... ^^;
    그런데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멋진 신세계'에서도 금서는 있었던 것 같은데요. 더구나 인큐베이터에 있었던 시절부터 이루어진 그 끔찍한 교육들도 그렇고요. 그리고 헉슬리는 (셰익스피어의) 시가 인간을 바르게(?) 만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덧말) 구글 광고에 '노무법인 OOO'이라고 있는 걸 보고 일순간 노무현으로 오독했다는! "대통령도 구글 광고하나?" 잠깐 이런 엉뚱한 상상을 했습죠. (근데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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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1/06 16:23

      작가가 참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
      블로그가 엔디님께 유용한 연습이 된다면 좋겠네요.

      p.s
      [멋진 신세계]에 대해선, 안정효씨 번역본으로 사고싶어서,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데(ㅡㅡ;;라기 보단 그저 핑계이겠지만요), 닐 포스트만은 좀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칫솔 2008/01/05 14:42

    이 시대의 통제를 깨부술 'Neo'를 찾아야 하는건가요?
    민노씨는 '모피어스'쪽에 가까울 듯 합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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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1/06 16:28

      함께 팟캐스트를 하는 링크님은 (물론 장난이라고 믿습니다만.. ㅡㅡ;)
      저에게 '사이퍼'가 아니냐고 하시더만요. ㅎㅎ

      누구나 네오이고, 또 누구나 모피어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 혁명에서의 '더 원'는 개인이 아닌 '집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좀더 적확히 표현하자면, 자율적인 블로거들 각자가 모여서 만들어내는 유기적 네트워킹, 그 전체로서의 에너지이자 중심없는 분산과 순발력있는 결집이 가능한 유동적 체계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칫솔님과 함께 그 '더 원'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ㅋㅋ

    • 칫솔 2008/01/07 10:22

      외모로 판단했다면 저도 사이퍼에 한표 던집니다만.. ^^;

      하지만 누구나 네오, 모피어스가 될 수 있을지 몰라고 될 수 있는 조건은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로부터 통제의 문까지 안내받고 스스로 선택에 의해 그 문을 여는 순간은 그냥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그 선택의 문까지 안내하는 다른 해석을 낳는 글을 보이는 민노씨가 모피어스에 가깝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

    • 민노씨 2008/01/07 12:46

      저는 그냥 농담으로 말한건데...
      이렇게 답하시면 곤란하십니다. ㅠ.ㅜ;;
      배신자 사이퍼와 닮았다니..(ㅎㅎ 살 좀 빼야겟네요, 열씨미~! ㅡㅡ^)

  3. 선인장 2008/01/05 20:32

    아.. 이건 저도 요즘 공감하는 주제 중 하나예요. 지식채널e의 소개글에도 어떤 지식도 몰가치적일 수 없다는 말이 적혀있어서, 그 때도 크게 공감했었는데- 요즘엔 참 무섭습니다. 기술의 발전속도가, 사람과 그 사회가 따라 발전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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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1/06 16:30

      자주 봐야지 하면서 EBS에서 방영되는 좋은 프로그램들을 자주 접하지는 못하는데요. 그런 지식채널e 소개글이 있었군요.

  4. 엔디 2008/01/05 23:15

    "때로는 수많은 악기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와 목소리들이 내 귓전을 맴돌도다……."¹
    이때 갑자기 존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선생님도 그걸 읽으셨습니까? 난 영국에서는 그것을 읽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줄 알고 있었는데요."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없는 셈이지. 난 그것을 읽은 사람들 중의 하나야. 하지만 그 책은 금서禁書지. 난 이곳의 법을 내 마음대로 만드는 사람이라서 그것을 내 마음대로 금지시킬 수도 있는 거야. 게다가 난 그 법을 어겨도 되고 말이야. […]"
    […]
    "하지만 왜 그 책이 금서가 되었죠?"
    […]
    "왜냐하면 그 책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지. […]"
    *¹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3막 2장 중에 나오는 구절임.
    Aldous L. Huxley(1996), 『멋진 신세계』, 허창수 옮김, 고려원세계문학총서, 서울:고려원미디어, 257-258쪽. (장章으로는 16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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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1/06 16:31

      이렇게 친절하실 때가.. : )
      보충 논평 고맙습니다.
      제 대답(매우 불명료하고, 추정에 불과한)은 위 첫 논평의 p.s.로 대신합니다. ^ ^

    • 엔디 2008/01/07 02:18

      네, 아마 좀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그랬다는 말씀이 맞을 것 같습니다. 실은 저도 읽은 지 좀 되어서. ^^;
      전 실은 영어를 아주 못합니다만, 혹시 영어가 괜찮으시다면 아래 사이트에 전문이 있습니다. 비평판은 아닌 것 같고, 아마 펭귄판을 타이핑해 놓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http://www.huxley.net/bnw/index.html

    • 민노씨 2008/01/07 07:42

      영어는 전혀 괜찮지 않지만..
      공부하는 셈치고 읽어봐야겠네요.

      p.s.
      이건 너무 친절하신 거 아닙니까? ^ ^
      정말 고맙습니다. : )

  5. 민노씨 2008/01/07 07:49

    덧. p.s.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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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김동우 2008/01/09 11:21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현재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암울한 미래라고 보일리 몰라도.
    결국 가치관, 문화, 인간의 욕망의 형태도 점점 바뀔것 같네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아마 과거의 기준에서 보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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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1/09 12:31

      흥미롭게 읽었다니 반갑네요. : )
      논평 고맙습니다.

  7. 더조은인상 2008/01/12 15:38

    재미있는 내용이네요...

    IPTV의 원천기술도 몇가지 있고 기술적으로 막힘은 없지만 여러가지 이권과 이해관계 그리고 경제적 현실성 때문에 지금까지 늦어진 것으로 알고있습니다.(특히 공중파와 관련된 사항들)

    아마 라디오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의 TV라던가 등등 상대적으로 보면 비슷한 전망들이 오갔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백남준은 TV를 독재자라고 했었지요.. PC는 무용지물이라는 이야기도 했었고.. 물론 90년대 초반에 했었던 이야기지만...

    석기시대 원시인을 연구했던 사람은 이들은 하루 4시간 노동만 해도 여유롭게 살았기에 벽화같은 정교한 예술활동을 했다고 했었지요... 피카소는 스페인의 동굴벽화들을 직접 보고나와서는 현대예술이라는 자만과 엄청난 발전과 진보라고 믿는 사람들이 이뤄놓은 성과라는 것은 없다는 식의 말을 했었습니다. 이말은 비단 예술의 영역뿐만 아니고 예술이란 말자체에 기술이라는 영역까지 들어있음을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말은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자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고, 개인적으로 조금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면 시대적 필요에 의한 생존의 차원에서 창조되는 것들이라는 긍정론에 기초한 것이 더 효용성을 지니는 사회속에서 항상 살고싶지만...(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대중이라는 실체를 규정하기 어려운 대다수는 단기적으로는 조삼모사식이 의 수법에 잘 속거나 속아주기도 하고 이기적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상당히 현명한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기적이라는 말은 어느 유전학자의 이야기처럼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할수 있었던 원인가운데 하나라는 말을 음미해보면서...)

    권력이라.. 아주 어렵네요.. 실체적인 즉 시각적인 대상이 아닌 .. 때로 피부로 느끼기도 하고 집중적으로 실체적인 시각화가 될때도 있지만 대부분이 아주 끔찍해지는....없어져도 안되는(권력의 사라짐을 해결방법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가끔씩 보았습니다.산을 다깍아서 평평하게 만들어 해수면 아래로 집어넣자는 이야기로 들릴때도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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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1/13 22:11

      말씀 고맙습니다.

      권력에 대한 시민사회의 견제, 민주적인 통제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각종의 상품, 특히나 문화상품에 대한 소비 권력이라는 차원에서는 대중의 발언권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만, 여전히 권력에 대한 통제와 조율이라는 차원에서는 '대상'에 머물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윤추구를 위한 마케팅 대상으로만 전락해가는 '시민'들이 스스로를 각성하고, 자신을 둘러싼 권력의 구체적인 촉수에 대해서도 좀더 민감해져야 하지 않나 싶은데... 그런 차원에서는 가능성과 회의가 동시에 옵니다.

      솔직히 좀 비관적인 생각이 강한 편이죠..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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