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내 이야기다. 여기서 '내 이야기'라고 말하는 건 비유가 아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니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 나는 정말 그런 생각을 한다. 이건 무슨 자기연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부른 동정도 아니다. 그냥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사회적 평균인으로서의 또 다른 자아는 나 자신에게 건조하게 속삭인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저렇게 비참하게 사회로부터, 시스템으로부터 처.단.당.하.는.구.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국립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영화사로부터도 어느 정도는 능력을 인정받았던, 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었다. 여기서 '굶주림'도 비유가 아니다. 그냥 현실 그 자체다. 이건 무슨 낭만적인 절망의 수사가 아니다. 그냥 현실이다. 그게 2011년 대한민국이다. 그 시대를 냉정하게 고발하는 죽음, 그 시대의 야만을 더없이 극명하게 상징하는 죽음. 용산의 죽음처럼, 노무현의 죽음처럼, 좀더 멀리는 박종철의 죽음처럼. 그런 시대의 죽음이다. 불타 죽고, 떨어져 죽고, 고문당해 죽는다. 그리고 이제 서글프게도, 굶어 죽는거다.
내가 죽음을 만날 때면 불어오는 문장이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경건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김현) 죽음이 그저 슬프거나, 따뜻한 기억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산 자들의 부채가 되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다. 우리 시대의 죽음은 산 자들의 부채가 되면서, 또, 무섭게도, 산자들의 공포가 된다. 그렇게 산 자들은 마음으로는 슬퍼하고, 때론 눈물 한방울 떨어뜨린다. 하지만 소름끼치도록 무섭게, 아, 정말 너무 너무 비정하게, 미친 주술사가 되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나는 저렇게 죽지 않을거야, 저건 내 이야기가 아니야... 그렇게 그 죽음으로부터 멀어지고, 도망간다.
트위터에서 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떤 이는 이 죽음에 대해 "어떤 가난했던 한 영혼의 죽음에 복지 얘기하다가 결국 가카 욕하는 쌈마이들 다 언팔"이라고 선언한다. 나는 도무지 그 문장이 이해되지 않는다. 왜 가카를 욕하면 쌈마이가 되는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언팔이 무슨 벼슬인양 선언하는 그 당당한 모습에 오히려 마음 한편에선 괜한 주눅이 든다. 왜 복지 이야기를 하다가 가카를 욕하면 안되는건데, 이 개새끼야, 주눅든 마음이 거친 입술을 불어온다. 왜 안되는건데... 왜...
'죽음에 대해 경건해야 한다'는 자명한 잠언은 죽음은 어떠한 경우에도 수단이 되어선 안된다고 말한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는 이 비정한 문장은 어떤 시대를 상징하는 죽음들, 그 죽음이 산자들의 정치적인 제의로, 굿으로, 춤판으로, 아수라장으로, 그 무대, 그 배우들의 소품이 되었던 역사를 늘 그렇게 확인해준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경건해야 하지만, 그 죽음을 우리의 굿판으로, 그 굿판의 제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역사의 비극이고, 상징으로서의 죽음이 갖는 비극이다. 그 죽음은 도구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가난한 예술가의 죽음, 가난해서 굶어 죽은, 가난해서 치료받지 못한 채, 밀린 월세에 미안한 마음을 붙들고,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창피하지만 남는 밥이랑 김치 있으면 주세요"라고 문틈에 붙였던 그 쪽지, 그 쪽지를 써내려간 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그 절망의 시간과 공간이 우리 시대의 정체다. 그게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를 키우겠다고 설레발 치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정체다. 기본급 100만원으로는 이 조국에서 살기 어려워, 야근에 야근을 거듭해 하루 12시간 15시간 일하면서 우울증을 앓다가 투신하는 어느 노동자, 그런 초일류기업 삼성의 '가족'을 키우고, 또 죽이는 대한민국의 정체다.
이 죽음이 그저 소설이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그저 현실 속에서 살아 숨쉬는, 삶 속에서 잉태하고 있는 죽음이라면, 그래서 그 죽음 뒤에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느낀 안도감처럼, 저런 상징적인 비극은 현실에선 있어선 안돼, 이렇게 안도하는게 아니라, 아, 현실이 영화였구나, 현실이 소설보다 더 끔찍하게 비극이었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다면,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어떤 가난했던 한 영혼의 죽음에 복지 얘기"해야 한다. 그러다가 "결국 가카 욕하는 쌈마이들"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가카 이 개새끼야, 여기 사람이 죽었다, 이 개새끼들아, 여기 사람이 죽었다, 목이 찢어지게 욕지거리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그 죽음을 도구화함으로써 그 죽음을 경건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이 죽음을, 이 시대의 상징적인 죽음을, 예술가들이 맘껏 생명을 이야기하는 창작의 자궁으로 도구화시키고, 복지가 총선과 대선의 화두가 될 수 있도록 도구화시켜야 한다. 철저하게 이 두려움을 깨치고, 혼자서 굶어죽을 수 있다는 그 끔찍한 소외의 공포를 사회적인 상상력으로, 정치적인 상상력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그 죽음을 불러온 우리들의 야만, 그 끔찍한 실수들, 그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과 실천을 공동체의 가장 우선하는 의제로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이 생명을, 이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는 그 온갖 기만적인 위정자들을 철저하게 심판해야 한다. 그건 이 빛나는 시궁창, 그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우리들이, 그 초라한 죽음을 경건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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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서울비의 알림
Tracked from seoulrain's me2day 2011/02/08 16:24 del.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 “대한민국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국립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영화사로부터도 어느 정도는 능력을 인정받았던, 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었다.” (via 민노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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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작가의 죽음 앞에서
Tracked from OnEitherSide 2011/02/08 23:46 del.트위터로, 한RSS로 최고은 작가의 죽음을 접했다. 그의 나이 서른 두 살.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는 말에 내 마음도 쓰리다. 빈곤이라는 점에서 그와 나는 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 때 찍은 단편영화로 주목받던 한 작가는 차가운 방 안에서 혼자 죽어갔다. 설도 되기 전에. 그렇게. 나는 그의 죽음이 슬픈 한편, 화가 난다.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도 좋고, 재원의 죽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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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토마스 머튼, 성 프란시스 호칭 기도
Tracked from via media 2011/02/09 09:25 del.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자신의 수도 성소를 식별하는 과정에서 프란시스 성인의 삶과 영성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 쓸쓸히 세상에 작별을 고한 그 최고은 작가와 세상의 모든 병들고 배고픈 이들을 위한 위탁 기도로, 이 주간 내내 드려야겠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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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인용된 글쓴이가 이 글을 접하신다면, 이 점은 너른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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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이 갈 수록 모든 것이 좋은쪽으로 점점 나아진다는 생각을 (스스로 주문을 걸어)고집해 왔으며 20세기를 거치고 21세기를 10여년이나 그런대로 별 일 없이 살아 왔지만 그 세기를 뛰어 넘은(그런 구분이 별 의미는 없지만 형식적으로라도) 행운아?로서 멈추어 곰곰히 다시 생각해 봅니다만 작게는 나에게 크게는 지구별정도에게 앞으로 더 좋아 질거야!! '쨍 하고 해뜰날이 돌아 온단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겠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 집니다. 물론 그 '쥐'구멍에 볕든 날은 야속하게도 아직까지 계속 되고 있습니다만...
트위터다 페이스북이다 온라인에서는 친절하고 대인배스럽게 즐겁거나 혹은 예민하고 날카롭게 날을 세우지만 그럴수록 그냥 숨쉬는 현실에서는 (원래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고 앞으로도 그렇게 믿고 싶지만) 사람들 서로에게 무엇으로부터인진 이상하게 무관심을 강요 받는 것 같습니다. 각각의 상반된 뜻으로 '세상 참 좋아졌다'고 저도 흔히 말해 버리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각각의 기준으로 삼고 생각하는 그때를 비추어 사람을 향한 기본적인 그 '시스템'이 정말 지금이 더 좋아졌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인지는...그저 한 숨만 나오네요.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있을 것이라고 해서 순진하게 지금 물 위를 걸으러 나가는 이 기분...도대체...
그냥 별 일 없이 사는 것은 현실이 아니고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대부분의 일상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슬프고 미안하고 무섭습니다. '한국영화1000만'이니? '깐느 영화제를 정복했'느니? '굿다운로더'니? 또 그 잘난 돈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러게요.
저도 "'한국영화1000만'이니? '깐느 영화제를 정복했'느니? '굿다운로더'니?" 그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영화계의 '관행'이라는거 그거 먼저 상식적으로 '정복'해야 할 것 같아요..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마지막을 떠올리면
욕이 안 나올 수 없지요. ㅠㅠ
그러게나 말입니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인데, 이런 일이 있네요..
잘 읽었어요^^
저도 별밤님 1월 말에 찍은 동영상 잘 봤어요.
언제 소주나 함께 해요.
제 얘기이기도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우리 이야기네요, 그럼...
아, 원철씨 궁금한 게 있는 원철씨께선 작곡도 하시나요?
아주 오랜만에 들렀습니다...한참을 읽다가..또 멈추고...이런저런 생각이 드네요..
잊지 않고 찾아주시니 반갑고, 고맙네요.
저도 참 많은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 쪽지를 써내려간 어떤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그 절망의 시간과 공간이 우리 시대의 정체다. 그게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를 키우겠다고 설레발 치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정체다."
이 말에 백번 천번 공감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끝내, 보편 복지.
그러게요.
'복지'가 그저 표어가 아니라 보편적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도 가끔 저런 극한의 상황을 상상하긴 해봤지만 실제로 현실로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해봤습니다. 가끔 친구들이랑 술 자리에서 요즘 세상에 밥 굶고 사는 사람들이 어딨냐라고 하는 말도 이젠 못 할 것 같아요.
저도 이렇게까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아직도 보이지 않는 곳, 발견되지 않은 곳에선 이런 일들, 죽음의 일상들이 여전히 살아서 죽음을 만들어내고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참 암담합니다...
* 주낙현 신부님의 기도
http://viamedia.or.kr/2011/02/08/1129
이 기사를 보고, 나도 민노씨가 생각났습니다. 정말로.
월세는 못내주겠지만, 배고플땐 전화주시오.
당신이 좋아하는 고기는 언제라도 사줄께.
민노씨 후원회 결성하시오. : )
얘들 본 지도 오랜데, 보자 보자 하고, 정작 보기 참 힘들구먼.
2월 가기 전에 한 번 보면 좋겠네.
항상 글 잘 보고 갑니다. 다른 분들도 이글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네요.
부족한 글입니다만, 읽힐만한 구절이 있다면 많이 소개해주세요..
21세기 대한민국의 자화상...
젊은 시절 한 때 영화인의 꿈이 있었기에 더욱 가슴 아파옵니다
린스님 영화인을 꿈꾸셨었군요.
2011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웬만한 슬픈 영화보다 훨씬 더 잔인하게 슬프네요...
안녕하세요 ~ 즐거운 정월대보름이네요
예전에는 이 맘때 모두 어울려서 같이 먹었다고 하던데.. 안타깝습니다
이런 비극이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계속 외면하고 있었어요.. 사실 가까운 주위의 나이 드신 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시는 지 안보려고 해도.. 듣지 않으려고 해도 다 들린다는 게 너무 괴로웠거든요
아~ 결국 이 나라가 건강해져서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할 일자리가 주어지는 세상이 와야 할 꺼 같은데.. 아무리 봐도 농사 짓는 거 훨씬 사회적으로는 건강한 거 같아요. 육체적인 일을 60세 이하(?!) 남녀들이 맡게 된다면, 할 일은 절대 적지 않거든요.. (덜 육체적인 일을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 맡기면 안될까요? 나이 먹으면 멍청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부디 역사의 시간이 바른 방향으로 흘러서 누구나 일 할 수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으로 되돌아가길 바랍니다
말씀에 아주 공감합니다...
건강한 나라는 MB처럼 '성공'이나 '경쟁력'을 강조하는 나라라기 보다는 사회적인 소수자들을 자신의 가족처럼 보호하고, 또 평등하게 서로 어울릴 수 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측면에선 전혀 건강하지 못한 나라죠...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그런 사연이 계셨군요.
청원경찰을 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사회라면 참 좋겠는데, 이건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나가리, 이런 사회 시스템이라서...
언제라도 연락주세요. : )
다음 주말(26일)에 소규모로 가족적인(?) 워크샵(주제: 인터넷과 표현의 자유)이 있는데, 참석하셔도 좋을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