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긴 글.

2010.2.2.일자 위클리경향 커버스토리(오, 가문의 영광 :p)의 인터뷰 후기 겸 이 특집기사들에 대한 비판적 검토다. 인터뷰는 대략 3시간 동안 경향신문 사옥 앞 다방(무슨 유서 깊은 다방이라는데)에서 진행됐다. 이 글은 특히 "주제와 관련된 좀 더 자세한 뒷이야기를 블로깅으로 들려주면 좋겠"다고 요청한, 내가 무척 존경하는 한 블로거벗을 위해 쓰는 글이다.  

0. 포르노를 좋아하는 블로거
“저는 저 스스로 속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든 사회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속물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요. 저는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포르노를 즐겨 봅니다. 그래서 포르노 합법화를 지지합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상업적 이득을 취하거나 반인격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는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흑백을 가리면서 먼저 어떤 사람의 의견을 재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전적으로 한쪽의 입장만 옳은 이슈나 쟁점을 본 적이 없습니다. 회색의 지점에서 고민하고 성찰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진보의 이상 아닐까요.”(나)

- 정용인 등, 위클리경향 [커버스토리] 왜 우리는 새로운 진보를 꿈꾸는가' 중에서

종이 매체 속성상 온라인처럼 넉넉한 공간을 갖고 있지 않아서 함축이 꽤 심한 편이긴 하다. 그럼에도 이정도라면 꽤 훌륭하게 정리한 것 같다. 다만 위 인터뷰 기사 말미 문단에서 "포르노를 즐겨 본다"와 "포르노 합법화를 지지한다"는 인과관계("그래서")가 아니다. 그러니까 포르노를 즐겨 봐서 합법화를 지지하는 건 전혀 아니고, 양자는 따로 따로다. 포르노를 즐겨보지 않았더라도, 포르노 합법화는 지지했을거다. 사소한(?) 의미 확정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별을 해서 포로노를 즐겨보게 된 좌파 아자씨?"(너바나나)라거나  "포르노 부분이 자칫 새로운 진보라는 컨셉에 잘못된 선입견을 줄 지도 모른다는"(아거) 애정어린 우려에 공감한다. 하지만 나는 포르노를 좋아하는 블로거가 맞는 걸 뭐. 내가 진보인지 아닌지는 대단히 불확실하지만, 내가 포르노를 좋아한다는 건 아주 확실하다. 나는 포르노 합법화를 지지한다. 내가 좋아하는 포르노 배우들의 얼굴을 나는 열명 이상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고, 선호하는 메이커를 이야기할 수도 있으며(가령 marc dorcel이나 digital playground),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들도 있다.

물론 그 작품들을 [토토의 천국]이나 [열혈남아] 혹은 [브레이킹 더 웨이브]와 나란히 놓을 수는 없을테다. 그게 내 지적 속물근성이다. 하지만 제목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포르노물들과 내가 감동해마지 않았던 그 위대한 걸작 영화들을 놓고 내기를 하면, 가령, 너 무인도에서 죽을때까지 영화 하나 밖에 못봐, 뭐볼래? 이런다면, 이 질문은 언젠가 영화잡지 '키노'에서 김창기 혹은 김창남 교수에게 한 질문이었는데, 김교수는 '당연히 포르노'라고 답했다, 물론 내 대답도 같다, 당연히 포르노다. 내가 혼자서 죽을 때까지 붙들 수 있는 건 [열혈남아]나 [토토의 천국]이 아닐 것 같다. 아무리 기적같은 연기를 보여준다고 해도 에밀리 왓슨을 죽을 때까지 반복해야 봐야한다는 건 축복이 아니라 고문이다. 나는 아마도 'Story of Sophia'를 선택할거다. 이 작품은 포르노그래피의 걸작 'Story of O'를 나름 모티브로 한 marc dorcel의 작품이다.

포르노는 아주 강력한 정치경제적 함의를 갖는 기호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이율배반을 상징한다. 대한민국은 포르노를 가장 사랑하면서, 또 대외적으론 엄청나게 증오한다. 포르노는 아예 제도 바깥에 있고, 법 바깥에 있다. 포르노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 순결하고, 고결한 사회는 그 포르노가 불법인 사회다. 정신분열증이다. 다른 설명은 불가능하다. 그 정신분열증인 대한민국에서 온갖 고위층, 권력층이 또 좋아하는게 룸살롱이고, 붕가붕가다. 이른바 텐프로라는 말은 대한민국의 정신분열증을 희극적으로 상징한다. 이건 성에 대한 계급적 결계다. 성공의 지표다. 포르노는 그렇게 계급화된 섹스 피라미드 맨 밑바닥에 있다. 이건 '접촉'이라는 본능의 문제, (대부분의 남자동물들에겐) '심리적 접근성'의 문제다. 포르노가 상징을 심리적으로 모방하는 행위라면, 룸살롱은 그 상징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양자는 정말 엄청나게 다르다. 그리고 물론 나는 룸살롱이(적어도 남자동물들에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매혹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심지어 좌파? 교수님들도 좋아한다는 이 환상특급의 공간)에 별다른 이의를 달고 싶지 않지만, 룸살롱을 가느니 차라리 포르노를 보겠다. 그게 내 나름의 (섹스) 철학이다.

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섹스는 공짜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섹스 유사의 '상징'(바로 포르노!) 을 문화적으로 소비할 수는 있지만, 섹스를 돈 주고 사는 일에 대해 나는 여전히 거부감을 갖는다. 물론 주변 남자동물들의 관습적 코드들을 무슨 질색하면서 유난을 떨거나 그러진 않는다.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섹스는 공짜가 아니다. 점점더 공짜가 아닌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내가 '미수다'를 싫어하는 이유는 '섹스는 공짜다'라는 내 신념에 반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연예프로그램들이 '섹스는 공짜다'라는 고전적인 명제를 적극적으로 비웃는 대단히 위험한 문화적 코드들을 형성해가고 있기는 하다. 이건 정말 위험한 코드다. 이 코드는 나같은 도시빈민이 아니라, 기득권측에게 오히려 위험한 문화 코드다. 왜냐하면 기득권층의 욕망을 흉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더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은 적당히 자신들의 것을 지키면서, 사회가 아주 극단적으로 폭발하는 건 또 막아야 하는데, 그 격차가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섹스에 대한 낭만적 관극틀이 야수화되고, 성에 대한 실질적 접근성이 체계적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한겨레 21에서 적절하게 다룬 '88만원 세대의 사랑과 섹스'라는 주제는 이런 위기의 상징이다. 이유는 다른게 아니다. 돈이다. 혹은 돈과 등가로 놓여 질 수 있는 유사의 대리물들이다. 학력, 직업,  육체, 부동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다른 이유를 알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나도 궁금하다, 알려달라). 섹스가 돈으로 곧바로 교환되는 문화적 코드는 대단히 위험한 코드다. 결핍이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욕구불만이 그 임계점을 넘어서 폭발하면, 체제는 위험에 빠진다(이건 무슨 사이비 섹스 음모론 같다). 그런 점에서 대딸방과 키스방은 체제수호기제다. 포르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룸살롱과의 간극과 심연은 점점 더 깊어진다.

그렇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 그러니 나 같은 사람들이 이 빌어먹을 시스템에 순응하는 가장 큰 이유가 나는 안정적인 섹스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겠으나, 안전한 섹스를 확보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대한 문제다. 그 섹스를 통해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을 내 씨앗에게 배타적으로 물려줘야 한다는 엥겔스스러운 관점을 떠나서, 남자든 여자든 안정적인 섹스가 가능할 수 있는 주류적 문화 코드를 거의 본능적으로 내면화시키기 때문이다. 섹스는 결혼이라는 낭만적인 각본으로 포장된다. 그게 정치경제적인 시스템의 회로이든 아니든 간에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섹스 혹은 그 공식적 제도로서의 결혼을 성립시키는 코드는 안정된 직장이고, 부동산이다. 부동산을 위해 한 몸 받쳐진 그 직장에서 정치적, 문화적 상상력을 끊임없이 거세당하면서, 이중적인 성적 접근성을 확대하려는 본능적 욕구를 이율배반적으로 강화시키며, 자식과 마눌님, 서방님을 위해 하루 하루 살아가는거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보수주의자다. 체제를 걱정하고 있잖아. 섹스는 욕구의 가장 순수한 발현이고, 어떤 점에선 궁극적 발현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들은 어쨌든 섹스와 밀접한 관련을 맺곤 한다. 그런데 섹스에는 위험한 코드들이 숨겨져 있다. 그것이 본능이기 때문이다. 본능은 파괴적이다. 나는 성악설 신봉자인데, 왜냐하면 본능은 생존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생존은 선택과 배제의 게임이다. 잘난 놈만 사는거다. 그건 당연히 파괴적이다. 그 파괴의 날선 칼날들을 숨기고,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게 마모시키기 위해 제도와 문화가 거기에 개입한다. 이런 저런 제도와 법률, 그리고 관습적 문화 코드들이 그 본능적 욕구 속에 심어진다. 과거에 그 문화적 각본들이 본능에 저항하는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그 본능을 정치경제적으로 정당화하는 스토리를 갖는다. 역사를 통해 그 코드는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진보가 아니라 진화다. 인간은 좀더 고등한 '인간'이 아니라, '동물'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은 좀더 고등한 '인간'이 아니라, '동물'로 진화하고 있다. 20세기 섹스의 문화 코드가 '낭만적 연애 혹은 결혼이라는 각본'이었다면, 현재의 지배적인 문화 코드는 '돈'으로 교환 가능한 '육체'다.

점점 더 무시무시하게 그 껍질을 벗고 있다. 과거에는 돈과 육체가 서로 별개였다. 인격의 물적 근거로서 육체를 금전적인 가치로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적어도 겉으론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돈과 육체가 유사어에서 동의어로 이행하는 단계다. 육체는 자랑스러운 금전적 가치를 통해 이야기된다. 그리고 공짜 섹스는 점점더 사라져간다. 과시적인 섹스 접근권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특권적 표지가 마치 성공 지표인 것처럼 사회에 만연해 있다. 오랜만에 대학동기들을 만나 하는 자랑이 '룸살롱'인 사회. 이건 정말 위험한 징후다.

이런 유사 사회심리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그저 땡기는대로 이야기해보자. 미수다가 역겨운 이유는 스스로 포르노라는 걸 숨기는 포르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변장에는 이유가 있다. 그게 맨얼굴을 드러내면, 노골적 폭력성이 전면에 그 야만의 얼굴을 드러내면, 그 사회에는 이제 파괴만이 남는다. 미수다가 역겨운 이유는 스스로 포르노이면서 포르노를 조롱하고, 그걸 부정하는 포르노이기 때문이다. 즉, 그런 자기 기만을 통해 이제 미수다와 같은 외적 교양 표지는 육체적인 표지와 구별불가능하게 잡종교배한다. 물론 그것은 유치한 기만이다. 추상적인 이미지 수준에서만 적당히 자신을 위장한다. 결국은 교양이라는 표지는 자기기만의 꼼수일 뿐, 결국은 발가벗은 육체가 전적으로 승리하고, 지배적인 룰로 고착한다. 우리는 교양으로 둔갑한 아주 아주 폭력적인 포르노들을, 미수다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시청한다.

물론 섹스는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적 코드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핵심적 원형이다. 나는 정치가 섹스보다 고귀하다거나, 종교가 섹스보다 성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역도 성립한다. 성스러운 섹스가 있고, 천박한 섹스가 있다. 그 형식을 채우는 인간의 실존이 그걸 결정한다. 종교도, 정치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저 다른 영역의 형식일 뿐이다. 과거 사회주의의 형식적 도덕이 붕괴하고,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는 포르노산업이 부흥한다. 인간이란게 원래 이런 동물이다. 이제 포르노는 인터넷을 부흥시킨 원동력이면서, 또 소위 진보의 금기로써 존재한다. 나는 포르노를 즐겨본다. 그게 나를 설명하나? 아,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공짜 섹스주의자다. 이것들은 내가 욕구하고, 애착하는 무수히 많은 것들 가운데 한가지일 뿐이다. 그것은 나라는 중층적 욕망을 아주 간결하게 설명하는 핵심 코드다.  그것은 이상와 현실의 간극, 욕망과 초자아의 심연 사이에 놓여진 위태로운 외줄이다. 나는 거기에 서 있다. 나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하다. 그게 나다. 하지만 내가 그것은 아니다.


* 관련
강남좌파
강남좌파와 시골우파
강남좌파와 선거혁명 에서 이어지는 글이라고도 볼 수 있을 듯... 

위클리경향 커버스토리 뒷이야기 (미디어토크. 팟캐스트. 22분)

* 이 글은 서설에 해당하고, 좀더 이어질 예정(물론 예정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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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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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어필 2010/02/02 16:40

    섹스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비판글을 볼 때 자주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글 쓴사람 남자겠지?" 라는 것인데요.
    뭐랄까.. 소비자의 입장에서 글이 쓰여지고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섹스라는 재화를 얻으려고 하는데 옛날하고 다르게 얻을 수 있는 재화의 품질이 돈으로 계급화되서 슬프다"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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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2/02 17:02

      재밌는 지적이시네요. ㅎㅎ.
      저도 문득 여성(화자)의 글을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큰 따옴표로 표시한 내용은 세어필님 혼잣말을 표시한 것인가요?

      추.
      섹스를 매개로 한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글..
      혹시 링크 소개 가능하시면 부탁드립니다. ^ ^;;
      궁금해서요.

    • 선인장 2010/02/06 05:21

      간만에 댓글을 달아 봅니다. ㅋ
      저도 세어필님과 굉장히 비슷한 생각을 종종 했어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섹스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비판글'들, 혹은 섹스와 관련된 비개인적인,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는 다양한 글들을 읽을 때 마다 이게 이런 문제가 있구나 싶고.. 음..
      그 글들을 읽으면서 이해는 가지만, 완전히 수긍하기 어려운 느낌이었거든요.
      세어필님의 댓글을 보니 그건 아마도 제가 소비되는 대상쪽에 속한 경우라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음..

      혼잣말이 아니라 할지라도 " " 안의 내용은 크게 공감되네요. ㅠ 아아. 이건 또 전혀 다른 방향으로의 접근이 필요한 문제일까요.

  2. 비아메디아 2010/02/02 17:01

    결국, 많은 분이 염려(?!)하는 바와는 달리 정면돌파를 선택하셨군요. 역시 이게 민노씨 블로깅의 힘이겠다는 생각을 새삼 되새겼습니다. 제 직업이 금세 드러나도록, 게다가 저를 '위해' 쓰신 글의 주제가, 참으로 저에 대한 또 다른 염려를 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이것이 어쩌면 민노씨 블로깅의 실존적 고민에 저 같은 사람까지 초대하려는 선의려니 생각하니 고마움마저 느낍니다. ^^

    인터뷰를 요약하는 듯한 "회색의 지점에서 고민하고 성찰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진보의 이상 아닐까요?”라는 민노씨의 언급이, 이른바 새로운 진보의 고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민노씨를 꼬드겨 글을 쓰게 했는데, 어쩌면 매우 손대기 어려운 주제에 저 자신을 엮이게 했는지 모릅니다.

    지난 바람 추운 12월 어느 날, 좁은 쪽문 계단으로 내려가 함께 했던 칙칙한 맥줏집의 대화 속에서, 민노씨의 타고난 인터뷰어 본능이 느껴질 때, 저는 아마도 직업이 주는 '내적 검열 기재'의 고민을 내세워, 제 무지와 부족한 식견을 감추며 머뭇거리기만 했죠. 그런데 이 글이 '내 안의 검열 장치'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경계에 선 자"에 대한 저 자신의 고민의 방식이 삶의 복잡성에 기인한 삶의 모호함에 대한 응시에 맞춰져 있다면, 민노씨에게서는 '경계에 선 자'의 고민과 함께, 자칫 피난처가 되는 '모호함'을 솔직함, 더 나아가 정직함으로 대면하려는 데서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그것은 남에게 빚 받아내 듯 요구하는, 아니 이미 신(神)이 된 듯 명백한 분석과 예지를 드러내는 객관적 비판이 아니죠. 그것은 '투명한 정직성'으로 정면돌파하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에게 편만한 "중층적 욕망"을 다른 곳에 투사시켜 거리를 두는 한편, 그 고고한 거리 두기 뒤에 숨겨진 "맨얼굴/야만의 얼굴"을 누구도 실토하지 않을 때, 민노씨는 그것을 자기 고백의 언어로 실토하여 다시 발가벗기려 하는 듯합니다. 아니, 이런 투명한 정직성에 기반을 둔 반성과 현실 인식에 사람들을 초대하기까지 합니다.

    이 때 경계에 있는 이들, 게다가 '투명한 정직성'으로 돌파하려는 이들은 현실과 불화할 테지만, 다시 그 작업을 통해 고민이 나누어지고 펼쳐지는 지평은 조금씩 넓혀지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몇몇 진보 담론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주체의 호명이니 하는 설익고 소화 안 되는 번역어들을 접하는 동안, 민노씨에게서 '투명한 주체' 혹은 '투명한 실존'에 대한 추구를 보는 것이 큰 위안이요, 희망입니다.

    사족이지만, 어떤 이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주례사 비평"의 아류인 댓글이 아니겠느냐며 볼멘소리라도 할는지 모르겠으나, 이게 그런 주례사라면 오히려 댓글 남기는 게 부끄럽습니다. 어쨌든 내 마음의 생각을 고쳐가며 다시 댓글 달 기회를 엿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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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2/02 17:34

      과분한 격려시고요... ^ ^;;

      말씀하신 부분...

      인터뷰를 요약하는 듯한 "회색의 지점에서 고민하고 성찰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진보의 이상 아닐까요?”라는 민노씨의 언급이, 이른바 새로운 진보의 고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민노씨를 꼬드겨 글을 쓰게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아직 쓰지 못했습니다. 다만 인터뷰에서 다소 모호하게 처리된 그 마지막 부분의 질문을 제 스스로에게 다시 돌려서 이것저것 뒤죽박죽으로 떠오르는데로 글을 휘갈려버렸네요... 꽤 여러번 추고한 글이지만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서 앞뒤가 따로 없는 잡탕글이 되어버린 것 같아 꽤나 민망한 마음입니다.

      다만 이 글을 서설로 삼아 좀더 써보고 싶은 마음은 생기네요.
      아직 주신부님께서 던진 질문에는 너무 미흡한 변죽만 울린 답이라서 말이죠..

      더불어 주신부님 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3. 김원철 2010/02/02 20:11

    개념글! 진짜 진보라면 포르노 합법화에 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칭 타칭 '진보 정치인' 가운데 포르노 합법화에 찬성하는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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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2/03 07:57

      격려말씀 고맙습니다. : )
      그런데 "딱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몹시 궁금하네요... )

    • 김원철 2010/02/03 09:24

      노회찬입니다. 딴지일보 인터뷰였을 거예요.

    • 민노씨 2010/02/03 09:55

      아, 그렇군요. :)
      그런데 혹 '포르노 합법화'에 대한 다른 정치인들의 의견은 '추정'하신 것인가요?
      아니면 그런 설문조사(?)가 있었나요?
      신문이나 시사주간지 등에서 이런 설문조사를 한번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김원철 2010/02/03 12:02

      딴지일보 정치인 인터뷰에서 포르노 합법화 찬성 여부를 꼭 묻곤 했지요. 그 가운데 노회찬은 깔끔하게 찬성했고, 대부분은 어떻게든 말 돌려보려고 하다가 결국 반대했습니다. 아, 찬성한 사람 한 사람 더 생각났습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인데 이름이 생각 안 나네요. "포르노? 좋잖아~" 이런 투였습니다. 그다지 '진보적인' 맥락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찬성했어요. ㅋ

    • 민노씨 2010/02/03 12:08

      그랬고만요. ㅎㅎ
      보충설명 감솨~~!

  4. 닭장군 2010/02/03 15:02

    연결하신 한겨레 글들 읽어보면 괜찮은 내용인데 항상 거슬리는게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88만원'을 너무 남발하는건데요. 틀리고 맞고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소리가 계속 나오면 글이 많이 유치해집니다. 저 낱말이 시도때도없이 나오는건 글쓰신 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의 '정수'라서 그런건 이해하지만, 좀 자제해야 합니다. 같은 낱말의 반복은 글의 품질을 떨어지게 하는 원인이거든요. 이런것도 신경써주면 참 좋겠는데... 별로 신경쓸것 같지는 않습니다. 문제의식이 너무 뚜렷하신 분들이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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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2/03 15:09

      ㅎㅎ 아주 공감합니다.

      한겨레21의 그 커버특집은 굉장히 참신한 컨셉(문제의식+소재적 접근)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개별 기사들에 대해선 말씀하신 것 외에도 다소 문제틀에 짜맞춘 작위적 구성이랄까(이거야 뭐 대부분의 기사들에서 공통이긴 하지만요)... 그런 아쉬움이 없지 않죠.

      요즘 자주 탁월유쾌한 논평으로 제 블로그를 풍요롭게 해주셔서 고마운 마음입니다. : )

  5. leopord 2010/02/03 16:05

    주낙현 신부님 말씀대로 정면돌파를 선택한 게 좋았다고 생각합니다.ㅎㅎ 저는 이른바 좌파(진보라는 말보다는 좀 더 명확한 정치적 포지션이라고 생각해서.)가 포르노와 함께 '지하경제'와 '조폭'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게 있지 않을까 거칠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성 노동' 문제까지 들어서면 논의는 아비규환이겠지만요;;; (그래도 포르노와 성 노동은 함께 가는 부분이지만.)

    포르노, 더 나아가 섹스의 계급성을 우리나라에서 말한다는 것은 자유주의적인 기획일수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체제유지로 간다는 점에서 섹스 담론의 한계를 언뜻 짚으시는 듯한데, 체제가 체제 내외와 서로 갈등하면서 적응해나간다는 관점에서는 단순히 유지다, 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에서 섹스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그것도 그 계급성을 폭로한다는 것은 보수주의자로서의 삶이 아니란 거죠.ㅎㅎ

    여튼 잘 읽었습니다. 저는 속물근성이라는 것에 밀착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이번 글은 좀 시원했어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2/03 21:15

      오, 역시나 흥미로운 논평이시네요. : )

      가끔씩 레오포드님 논평을 접하면 제가 쓰면서도 막연하게 잡히지 않았던 부분이 명확하고, 함축적으로 잡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번 논평도 그렇군요. 저로선 아주 고마운 논평입니다.

      "속물근성에 밀착하지 못하는 편"이라는 건 속물근성을 드러내거나, 혹은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의미인가요? 사소하게 그 부분만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아서요.

    • leopord 2010/02/04 02:24

      스스로 속물이라고 하기엔 2% 부족하고, 또 아니라고 하기엔 '순수'가 싫어서 그냥 그렇게 어중간한 입장이 아닌가 싶었습니다.ㅡ.ㅡ;;;

  6. 민노씨 2010/02/03 21:16

    * 본문 추고
    말미 부분 몇몇 오타 수정 및 추고.

    perm. |  mod/del. |  reply.
  7. dfs 2010/03/18 05:02

    글 잘쓰시네여. 울나라도 포르노가 하루빨리 합법화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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