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에 대한 피로감

2010/02/03 09:52
내가 마음 속으로 꽤 좋아하는 두 필자가 있다. 깐깐하고 고지식한 느낌의 기자와 존경스러울만큼 성실하고 정직한 철학자다. 이 글은 이 두 명의 실존적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은 아니다. 그러니 이 두 명을 당신이 생각하는 어떤 유형의 언어, 그런 담론의 풍경이라고 바꿔 생각하길 바란다. 이 두 사람은 세상의 부조리한 가치를 비판하고, 일갈한다. 그 말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대개는 숙고해야 마땅한,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은 영양가 만점 충고들이다. 

하지만 뭐랄까, 피로감이 쌓인다. 그것이 옳은 줄 알면서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쌓인다. 그래서 결국 외면한다.  다시 돌아가서 그 쓴 말들을 경청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렇다. 왜 그럴까? 이 글은 그 마음을 돌아보는 글이다.

김현은 문학의 가치를 '안락함'이 아닌 '불편함'이라고 이야기한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는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혹은 [한국문학의 위상]인 것 같기는 하다) 문학은, 널리 보면 예술은, 당대를 지배하는 질서를 교란시킨다. 시스템의 포로인채로 안락한 시스템의 구심력 속에서 존재적 회의의 감각을 잊고 있던 독자들에게 그 시스템의 혈관을, 속살을, 그 안에서 흐르는 피를 드러낸다. 그건 안락하지도 않고, 평온하지도 않다. 우리가 꿈꾸는 어떤 소박한 바람, 그런 희망까지도, 어쩌면 권력이 만들어낸 환상일지 모른다고, 진실한 문학은, 예술은 고발한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는 왜 '두 필자의 이야기'가 불편한 걸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건 격리의 감정이라고 부를만한 심리적 소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비판은 옳지만, 그 비판의 방법은 내가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어떤 부조리한 사회현상을 비판하는 그 내용은 옳지만, 그 내용을 감싸는 언어가 고립된 지사의 풍모랄까, 무결점의 독선적 느낌이랄까, '너희들이 뭘 알아?' 이런 자기들만의 성채를 쌓는듯한... 그런 벽 같은 거.. 그런게 느껴진다.

비판은 절망으로부터 비롯한다. 그 절망의 짝은 바람이고, 소망이다. 무엇인가를 원한다. 그래서 이야기한다.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절망한다. 그리고 비판한다. 그런데 가끔은 비판을 만들어낸 그 절망이, 그 절망의 짝인 소망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게 보이지 않을 때, 내 마음은 이렇게 반응한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건데?' '참 잘나셨습니다' 이렇게 아이처럼 외면하게 된다. 나는 항상 내용과 형식, 마음과 몸은 서로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용이 그 소망에 어울리는 형식을 만나지 못하거나, 마음이 그 마음을 온전하게 드러낼 몸을 만나지 못하면, 그 마음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전적으로 내 부덕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으리라. 이건 내가 내 마음, 그 마음의 옷인 내 글을 통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 나솔의 댓글
nassol 2010/02/03 16:33

저도 소망이 감지되는 비판이 좋아요. 물론 비판이 신랄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비판할 점이 있다면, 소망하는 바와 현실 사이의 현저한 차이를 꼬집으려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통쾌하기도 하고 그리고 충격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소망이 감지되지 않으면 무력감이 느껴져요. 비판하는 것 만으로는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소망이 없는 비판은 존재 이유가 없는 듯 하고요. 바라는 상태가 없는데 무슨 괴리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소망의 존재가 감지되지 않으면, 마치 비판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 사람 조차도 소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무력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비판하는 능력도 안 뛰어난 저는 더욱 무력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요. 비판하는 분이, 반드시 '대안을 제시하세요, 행동으로 보여주세요'라고 독자가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소망을 보여주지 않을 때 독자가 느끼는 무력감에 대해서 인지하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 제목 수정 : 시퍼렁어님 감사 : ) 
- 옳바른 비판에 대한 피로감 -> 비판에 대한 피로감.
- 옳다/올바르다..를 순간 헷갈려서 올바른, 혹은 옳은 이라고 써야 하는데, 옳바른...이라고 썼었네요.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minoci.net/trackback/1071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
  1. 시퍼렁어 2010/02/03 13:28

    2연속 제목 첫글자 오타는 의도하신건가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2/03 14:59

      ㅎㅎ
      전혀 아닙니다.
      착오/무지로부터 비롯된...;;;;

  2. 시퍼렁어 2010/02/03 13:28

    포로노는 고치셨구나.. ;;; 올바른이라능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2/03 15:00

      포로노는 단순 오타인데.. 옳다/올바르다...는 무지에 가깝근영.
      알려주셔서 대단히 감솨~!

  3. 민노씨 2010/02/03 15:00

    * 제목 수정 : 시퍼렁어님 감솨~!
    옳바른 비판에 대한 피로감 -> 비판에 대한 피로감.
    옳다/올바르다..를 순간 헷갈려서 올바른, 혹은 옳은 이라고 써야 하는데, 옳바른...이라고 썼었근영.

    perm. |  mod/del. |  reply.
  4. nassol 2010/02/03 16:33

    저도 소망이 감지되는 비판이 좋아요. 물론 비판이 신랄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비판할 점이 있다면, 소망하는 바와 현실 사이의 현저한 차이를 꼬집으려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통쾌하기도 하고 그리고 충격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소망이 감지되지 않으면 무력감이 느껴져요. 비판하는 것 만으로는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소망이 없는 비판은 존재 이유가 없는 듯 하고요. 바라는 상태가 없는데 무슨 괴리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소망의 존재가 감지되지 않으면, 마치 비판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 사람 조차도 소망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무력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비판하는 능력도 안 뛰어난 저는 더욱 무력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요. 비판하는 분이, 반드시 '대안을 제시하세요, 행동으로 보여주세요'라고 독자가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소망을 보여주지 않을 때 독자가 느끼는 무력감에 대해서 인지하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댓글이 너무 길어져요. ㅎㅎ 트랙백 날릴 줄을 몰라서.. 텍스트 큐브에서 트랙백 날리는 방법 혹시 아세요? 아무리 찾아봐도 못 찾겠어요. 어떤 포스트에 보니깐 '트랙백 보내기'버튼이 나온다는데요, 제 눈에는 안 보이고.. 블로그 서비스마다 다른건지.. 혹 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뉘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2/03 20:37

      아주 공감가는 논평이시네요. : )
      저는 비판 그 자체로도 아주 희미하게나마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반드시 대안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때론 그저 감정적 자기만족, 화풀이 같은 글을 반복해서 볼 때도 있는데요... 그런 글에 대해선 왠지 적절하게 표현하신, "소망의 존재가 감지되지" 않더군요..

      추.
      지금 방금 제(가 방치하고 있는) 텍큐닷컴에서 처음으로 연습글(이글의 일부를 긁어서 옮긴 것. ㅎㅎ)을 공개글로 올려봤습니다. 제목 아래 글관리 단추줄 가운데...

      " 수정 : 새창으로 수정 | 공개 →비공개 삭제 | 글보내기 "

      맨 오른쪽 '글보내기' 단추를 누르고, 자기신이 보내고자 하는 글의 트랙백 주소(제 이글 같은 경우엔, http://minoci.net/trackback/1071 )를 입력하시면 됩니다.

    • amy 또는 신비 2010/02/24 12:29

      "소망이 감지되는 비판"이라.. 정말 좋은 표현이네요.
      답을 알지 못해도 변화를 바라는 마음과 희망이 전달되면
      그 답은 함께 찾아나갈 수 있게 되겠지요.

    • 민노씨 2010/02/24 12:52

      아미 또는 신비님 :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추.
      댓글창에서 뵙는 건 참 오랜만입니다.
      아미와 신비의 앞자를 따면 '아신'이네요?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ㅎ
      아신님은 잘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5. 비밀방문자 2010/02/03 17:54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2/03 20:37

      레오포드님, 감솨~! ^ ^

  6. nassol 2010/02/04 01:13

    트랙백 남기는 방법 알려주셔서 감사드려요! 이제 트랙백 보낼 수 있겠어요.

    저는 비판이 생겨나는 곳에는 소망이나 욕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소망이 감지되면 비판에서 좋은 느낌, 희망의 느낌이 들고 욕망이 감지되면 씁쓸한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정말 어려운 것은, 감지되는 것이 소망인지 욕망인지 잘 구분이 안될 때에요. 그 이유는 제가 무지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결론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ㅠ.ㅠ 이런 것들을 구분할 수 있고 파악하는 그날까지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2/04 10:16

      다행입니다. : )

      저는 오히려 목적과 관련한 수사적 함정의 문제, 가령 황지우의 어투를 빌자면, 범죄자가 자신의 거짓을 숨기기 위해 내놓는 진실의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종종 들어요.

  7. nassol 2010/02/04 17:57

    "범죄자가 자신의 거짓을 숨기기 위해 내놓는 진실의 문제", 수사적 함정의 문제가 어떤건지 잘 모르겠어요. ^^ 알려주세요~

    범죄자는 자신의 거짓을 숨기기 위해 어떤 것을 내놓는데, 예를 들면 "난 안했어요!", 거기에서 '했다는' 진실이 드러난다는 의미인가요? 즉 거짓된 표현에서 숨어있는 진실이 드러난다는 의미인가요? 아니면, 실제로는 범죄를 저질렀어도, 안했다고 부인하는 말이라도 해야, 범죄가 드러나기 때문에, 범죄자는 거짓말이라고 해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아~ 모르겠어요~ 범죄자와, 거짓과 진실, 범죄 행위가 각각 뭘 의미하는 지 알아야 이해가 될 것 같아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2/07 00:50

      이에 대해선 조만간 따로 글을 쓸까합니다. ^ ^;;
      조금만 기둘려주세요. :)

  8. 바로알자 신천지 2010/02/04 19:01

    약 2년전 문화방송 MBC가 방송한 PD수첩이 <수상한 비밀 신천지> 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내용을 보면 [예수교 신천지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 마치 ,가정파탄의주역, 청소년 가출및 비행조장, 공금횡령,감금,폭행을 자행하는 비사회적, 광신적 종교집단 으로 매도한 방송을 한적이 있었다.

    perm. |  mod/del. |  reply.
  9. 잘못된 만남 2010/04/07 14:46

    가끔은 소망을 안 보여주며 블랙코미디적인 요소에 도전하는 것도 좋지요. 영화 <시리어스맨>처럼.

    perm. |  mod/del. |  reply.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댓글 입력 폼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