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 제이크는 왜 나비가 되었나

2010/01/11 20:52

아바타, 시네마 묵시록.
아바타 : 3D vs. 2D에서 이어지는 글.

* 이 글은 약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염두하시기 바랍니다.
* 아바타와 브룩스의 '메시아 콤플렉스' 초강추 (주낙현) 좀더 풍요로운 아바타 관련 리뷰를 접하고자 하시는 분께선 주낙현 신부님 글을 읽으시길 바랍니다.

* 발아점 : 영화 아바타 읽기 (네오스크럼)
http://blog.jinbo.net/neoscrum/?pid=486 강추.

네오스크럼의 아바타 읽기(이하 '아바타 읽기')에 대해 나는 별로 동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글은 아바타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 특히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적 관극틀을  합리적 논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바타라는 텍스트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대화를 유도하는 자아 투사적이고, 투쟁적인 글이라는 점에서 강하게 추천하고 싶다. 각설하고 두 가지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1. 제이크 설리의 성장소설로서의 아바타  
'아바타 읽기'는 제이크 설리가 전역한 미해병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영화의 카메라 시선이 제이크 설리의 관점(백인 남성, 미국 군인의 관점)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제이크 설리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백인 남성, 미국 군인이라기 보다는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신천지가 지배하는, 하지만 여전히 미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팔려 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려는 좌절한 소시민에 가깝다. 이런 설정은 퇴역한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국가에 복무하면서 당한 신체적 장애를 군인연금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는 제이크의 나레이션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 그를 구제할 수 있는 건 국가가 아니라 기업의 돈이다. 그 탐욕스런 기업에 용병이 되어 스스로를 도구화시키는 일이다.

아바타에서 제이크는 바이오 테크놀로지와 기계 기술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미래 자본주의 사회(영화상의 시점은 22세기 중반)에 살고 있는, 하지만 그 테크놀로지의 수혜권에서는 멀리 벗어난 사회적인 소외분자라고 할 수 있다. 제이크의 쌍둥이 형을 대신해 판도라에 온 제이크의 목적은 아주 단순하다. 여기에서 돈을 벌어 자신의 다리를 고치겠다는 것. 제이크가 백인 남성의 시점, 미국 군인의 시점을 대변한다는 관점은 물론 유효하지만, 그 관점은 좀더 지배적인 이미지, 제이크가 자본주의 기업논리에 의해, 과학자인 형과 (거의) 같은 DNA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선택 당한 채'(이 표현은 의도적이다) 팔려온 장애인이라는 더 중요한 부분을 무시하고 있다.

물론 아바타는 좌절한 한 퇴역 군인이 자본주의 기업의 첨병으로서 그 패권주의, 상업적 이기심을  확장하는 도구로 전락한다는 사회 드라마는 아니다. 그런 도입부 전제는 제이크의 정치적 사회적 위치를 규정하는 것으로 그친다. 정작 아바타를 지배하는 건 제이크 설리라는 한 좌절한 인간의 판타지가 맞다.  즉, 고도기술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제이크 설리라는 한 인간이 그 자본주의 논리를 뛰어넘는 모험담, 영웅서사, 내 자신의 감수성을 투영하면, '아이의 성장소설'에 훨씬 더 가깝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하는, 아니 인간이라는 껍질에서 벗어나려는 과정은, 마치 일기처럼, 그 자신의 체험을 담는 매일 매일의 고백을 통해 드러난다.

2. 나비족의 얼굴

- 판도라 외계인들은 모두 아시아인과 흑인들의 모습을 띄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과거 ‘백인들의 눈에 비쳤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이 역시 ‘목적의식적’으로 배치한 인종 구성이다.
- 기지내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판도라인들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내부의 모습, 내부의 의사소통 과정 등은 거의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이는 내부의 ‘이유’, 논리, 논쟁, 갈등, 소통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지내 사람들과 대비를 이룬다. 철저히 외부 관찰자적 관점에서만 접근하고 있다. 이는 ‘백인의 눈에 보이는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에 대한 현재적 재현이라 할 수 있다.
- 판도라 외계인들은 외부에 ‘반응’만을 할 뿐 스스로 기획하거나, 계획하거나, 주체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아바타 읽기' 중에서)

다소 편향적인 관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판도라 나비족의 역사적인 배경, 사회 내부의 모습이 기지내 사람들의 "논리, 논쟁, 갈등, 소통의 모습"보다 '덜' 표현되었다고 느낄 수는 있겠으나, 나비족의 삶을 대하는 태도, 자연과 생명을 대하는 관점과 그 안에서의 의사소통 구조 및 문화적인 특성들은 영화 전편에 걸쳐서 충분히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는 판도라와 일체화된 나비족의 총체적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오히려 관습적인 기지내 인간군상들의 획일적인 역할극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고, 디테일하게 설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판도라의 네트워크 시스템에 대해선 옥토의 글을 참조 바람). 

나비의 생김새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접한 가장 의심심장한 언급은, 이 얼굴 생김새가 "개와 고양이의 합성"이 아니겠나라는 의견이다(농담 아님). 가벼운 댓글 논평의 일부로 접한 기억이 있는데,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는다. 네오스크럼의 지적처럼, 나비족이 "아시아인과 흑인의 모습"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그다지 공감되지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아바타의 두 주인공, 니이티리와 제이크 ⓒ 폭스코리아
나비족의 얼굴은 '아시아인종/흑인종'의 합성이라기 보다는 동물과의 합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니이티리는 고양이 같고, 제이크는 견공 같다. ㅡ.ㅡ;

아바타는 아메리칸 원주민(인디안)을 객체화시키고, 그들의 문화적인 이색취향들을 판타지와 결합하는 유치한 동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바타에서 이미지들은 '서구인 vs. 비서구인'으로 환원할 수 있는 인종적 갈등의 서사로 재구성된다기 보다는 인간 스스로가 이성의 성과물로 자부하는 테크놀로지와 거기에 도사리는 지배욕에 대한 반성적인 우화의 성격에 훨씬 더 가깝다. 즉, 아바타는, 인간이 어떻게 인간을 포기하고, 인간의 이성이 갖는 폭압성의 정체를 자각하는가, 어떻게 인간은 오만한 이성이라는 인간이라는 껍질로부터 벗어나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까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는 그것이 아바타의 전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제이크는 인간이라는 껍질을 벗는다.

그것이 다소 유치한 멜러드라마, 영웅서사에 머물고 만다는 지적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관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바타의 드라마가 '미션'이나 '파워 오브 원' 류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바타에 대한 지나친 폄하다. 아바타는 그렇게 유치한 영화는 아니다. 사족, '나비'를 굳이 "판도라 외계인"으로 지칭하는 네오스크럼의 "목적의식적" 표현이야 말로 인간중심적 사고, 이성중심적 사고의 배타성을 일부나마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을 받는다.


* 글이 어째 쓰다가 만 느낌이지만, 다른 글 쓸것도 많고 해서, 여기서 그친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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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Tracked from Sleepy Tiger 2010/01/11 22:05 del.

    이 글은 neoscrum님의 '<아바타>, 지긋지긋한 오리엔탈리즘의 향연'이라는 글(이하 글1)에 옥토씨가 달았던 댓글에 대해, 1월 6일 답변으로 올라온 '영화 <아바타> 읽기'(이하 글2)를 읽고 난 소감이다. 글2와 그 아래 달린 댓글들을 보고서 이 분이 왜 아바타를 '오리엔탈리즘의 교과서'로 해석했는지 조금은 더 알겠다. 그 해석의 근거에 대해 옥토씨는 대부분 동의할 수 없지만, 다소의 논쟁을 지켜본 결과 결국 해석은...

  2. Subject : AVATAR

    Tracked from Needlworks/TNF 블로그 2010/01/13 15:56 del.

    거의 9개월 만의 글이군요. 다들 아시겠지만, 영화 아바타(AVATAR)가 요즘 화제입니다. 저만 해도 가족과 함께 디지털3D로, 또 따로 용산CGV에서 IMAX로 두 차례 관람했을 정도죠. 이 영화, 사람에 따라 영상미를 중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고 '나는 트랜스포머가 더 좋아' 이런 사람도 있겠지만 할 얘기 참 많은 영화입니다. 이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안 보신 분은 안 읽으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아래는 영화의 내용을 제 나름대로...

  3. Subject : <아바타>와 카메론의 사이비 과학

    Tracked from The Dispossessed 2010/01/14 02:00 del.

    영화 <아바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데, 지난번에 올렸던 ‘영화 <아바타> 읽기’에 대해서 민노씨와 okto79님이 긴 글로...

  4. Subject : 판도라의 상자를 연 듯 하다

    Tracked from Sleepy Tiger 2010/01/23 13:51 del.

    일전에 올렸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에서 글의 과학적 엄밀성 부분에 대해 neoscrum님이 지적해주셨다. 옥토씨도 <아바타>에서 설명이 안된 부분만 따로 정리해 글을 올릴까 했으나 이에 대해 워낙 좋은 지적들이 많고 필력이 딸리기도 하여 생략하기로 했다. neoscrum님의 글 '<아바타>와 카메론의 사이비 과학'도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잘 작성되어 있는데, 이 글이 나온 것은 명백히 옥토씨의 과도한 리액션이 원인이라 하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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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kto 2010/01/11 23:12

    오.. 저도 까먹고 있다가 막 글을 올릴 생각이었는데 민노씨 덕에 생각났습니다. 타이밍 묘하네요^^
    제이크의 성장 소설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비디오 로그와 나비로 가는 과정을 생각하니 솔깃합니다.

    해당 글에서 사실인 듯 말하지만 아닌 부분이 많아 합리적 논거인 줄은 모르겠더군요. 지나치게 개인적인 부분을 일반적인 것처럼 단정짓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ps. 저 사진은 정말 개와 고양이군요-_- 전 어쩔때는 네이티리가 사마귀 닮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뾰족한 턱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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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12 21:52

      아, 그러셨근영. : )
      옥토님 글은 잘 읽었습니다.
      카메론에 대한 애정이 둘째라면 서러워하실 듯. ㅎㅎ

  2. rince 2010/01/12 10:00

    디지탈3D로 한번 봤는데, 아이맥스3D에서 다시 한번 보려고 합니다. (예약성공)
    민노씨의 글을 떠오리며 다시 한번 봐야겠습니다

    ps. 말씀하신 대로 갑자기 마무리되는 느낌에 깜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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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12 21:55

      아, 반가운 린스님. ^ ^
      아직도 아이맥스 3D는 예약하기가 꽤 어렵다던데 성공하셨군요.
      처음에 썼다가 한 이틀 묵혔다가 다시 이어쓸래니까 생각도 끊기고, 별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도 않아서 급마무리했다능... ;;; 좀더 이어서 쓸 걸 그랬나요?

  3. 너바나나 2010/01/12 20:28

    근디 카메론은 트루라이즈라는 전과가 있기에 충분히 의심이 가구만요. 갑자기 그의 시선이 바뀌었다면 모르겠지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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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12 21:58

      카메론이 이야기 그 자체에서 인종적인 편견을 의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관객으로서의 소박한 느낌을 말씀드리면, 그런 인종적인 갈등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트루라이즈에서 아랍 테러리스트에 대한 희화화된 이미지들(특히 카메라 녹화장면이랄지), 중간 악질 브로커로 등장하는 동양계 여성 등은 관습적 드라마 장치이지 그런 설정만으로 카메론 영화를 인종영화로 평가하는 건 소탐대실(?)할 수 있는 관점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 너바나나 2010/01/12 22:38

      =>인종적인 편견을 의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관객으로서의 소박한 느낌을 말씀드리면, 그런 인종적인 갈등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습죠! 제 말이 그것이구만요. 별 관심이 없기에 충분히 저런 시선이 들어갔을 수 있다는 것입죠. 허리웃 영화에선 오리엔탈리즘도 거의 관습적 드라마 장치이니요. 의식있게 또는 저런 것을 염려하며 맹그는 사람이 아닌디 그것이 바뀌었겠냔 것입죠.

    • 민노씨 2010/01/13 00:15

      말씀을 듣고 보니 또 그렇군요. ㅎㅎ.

      저 개인적으론 카메론을 '큐브릭의 적자'로까지 평가하기에(적어도 영화의 기술적인 표현형식을 확장하는 점에서) 말씀하신 영화가 다루는 드라마, 혹은 서사의 디테일, 캐릭터에 대한 섬세한 의미부여에 대해선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론 영화가 현대 영화의 기술적인 최전선이라는 점에서 카메론을 평가하고 싶네요.

  4. 민노씨 2010/01/14 09:31

    * 주낙현의 글 링크 보충.
    아바타와 브룩스의 '메시아 콤플렉스'
    http://viamedia.or.kr/2010/01/1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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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18astatine 2010/01/14 09:51

    하지만 지구인과 나비족과의 관계가 (현대의 유럽계 이주민의 시각에서) 과거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관계와 너무 흡사해서 '아바타 읽기'의 주장도 비록 주장에 대한 근거가 모두 정확한 건 아니었지만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영화 내내 그런 생각 하면서 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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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14 12:10

      일리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어느 정도는 그런 관점을 제 스스로 경험하기도 했구요.
      다만 그 관점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좀더 풍요로울 수 있는 영화적 체험을 협소하게 만들 우려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논평 고맙습니다. : )

  6. 요요 2010/01/14 22:33

    전 완전 유치한 영화로 봤는데...(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민노씨님 글의 마지막 문단에 쓰인 단어 인용했어요;) 비주얼적인 면에서의 혁신이나, 제임스 카메론의 스토리 텔링 능력은 인정하지만, 전 나비족이 동물들이랑 촉수 이어붙이는 장면 이후로는 걍 아무런 기대도 안 들더군요...서구인들의 시각에는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의 철학(자연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존하고자 노력하는, 나비는 확실히 여기서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집니다)의 실천에 있어서도, 동물과 교감을 하기 위해서 촉수를 이어 붙이는-_-;;; 수준의 물리적 연결 장치가 필요한 건지...한숨만 나오더군요ㅎ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1/14 23:03

      그러셨군요. ^ ^;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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