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에 썼던 글이 너무 딱딱하고, 재미없어서 나같은 무관심층의 관심을 불러오는데 실패했다고 판단. 뭐 이번에도 성공할 것 같지는 않지만 형식을 달리해 쉽게 풀어 다시 쓰는 글. 웬만하면 이런 짓 안하는데,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해서...  


1. 권한쟁의심판? 그게 뭐야?
국가기관(혹은 지자체)의 권한에 관한 분쟁이 생겼을 때 헌법재판소에 가서 누가 누가 잘못했나를 따지는 헌법 재판의 일종이지. 헌재 영감들이 9명이잖아. 그중에서 7명 이상이 재판에 참여해서 다수결로 주장을 받을 건지, 물리칠 건지(인용/기각) 여부를 결정하지. 물론 중요한 재판인 경우엔 9명 전원이 참여하는게 보통이고.

2. 재판이라면 누가 누구를 상대로 하는 재판이지? (당사자 적격과 관련)
당연히 국가기관 상호간이지. 권한을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헌재로 달려가지 않겠어? 이번 사건 경우엔 야당 국회의원들이 권한 침해를 주장하는 쪽이지(청구인). 그리고 그 권한 침해 기관은 국회의장이 되는거고(피청구인).

3. 국회의원이 국가기관이야?
어! 국회의원은 그 개개인이 각각 국가기관이야.

4. 국회의원의 어떤 권한이 침해되었다는거지?
국회의원 하는 일이란게 법 만드는 일이잖오. 그런데 법 만드는 과정에서 또 필수적인게 법률에 대해 토론하는 일이고. 그게 침해되었다는거야.

5. 토론할 수 있는 권한?
그건 법 만드는 과정에서 핵심이잖아. 대리투표(신문법)과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방송법)은 오히려 부차적이라고 할 수도 있어.

6. 그래서 결국 주장하는 게 뭔데?
법률 내용에 대해서 주장하는 건 아니야. 해당 법률 통과행위가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는 거지. 그러니까 국회의장이 가결, 선포했다고 해도 그건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한 '과정'(절차상 위법)으로 인해 무효니까 그걸 헌재에서 확인해달라는 청구야.

7. 국회의원들 토론/질문하는 거 국회의장이 실질적으로 봉쇄했다고 헌재에서 인정했잖아?
어. 헌재 영감들 상당수가 그걸 인정했지. (신문법 6. 방송법 5)

8. 그럼 게임 끝났네, 법률 통과도 무효가 되는거 아냐?
반드시 그런 건 아냐. 절차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 절차상 흠이 약소하면 법률안 통과행위 자체는 유효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어.

9. 이번 경우엔 어때? 그게 사소한 절차상 흠이야?
아니지. 헌재에서도 인정하는 것처럼 토론하고, 질문할 수 있는 국회의원 권한이 실질적으로 봉쇄되었으니 그 흠은 대단히 중대하다고 할 수 있어. 거기에 대리투표와 일사부재의원칙 위배는 각각 그 절차상 흠을 더 크게 해주고 있고.

10. 그러니까 내 말이! 그럼 법률 통과행위도 무효로 해야 하잖아! 아냐?
그게 상식이지. 그런데 헌재 영감들은 엄청 천재적이잖아. 그래서 이번 판결을 요약해서 "위법하지만 무효는 아니다"라고 들 하는거고. 이건 뭐 예술이지.“절도죄는 인정되나 장물소유권은 도둑님께”(윤현식) 뭐 이런 식이랄까?

11. 그렇군. ㅡ.ㅡ;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해?
국회의원의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거잖아. 그러니까 국민들을 대신해서 헌법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거라구. 그 일이 법 만드는 일이고. 그런데 그 법 만드는 과정에서 뭔가 잘못이 있고, 그 잘못으로 권한이 침해되었다면, 그건 결국 국민들 권리가 침해된 것과 마찬가지인거지.

12.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위헌이면 위헌이고, 무효면 무효인거지. 위법하지만 무효는 아니다, 이런 개소리가 어딨어? 초딩 반장 선거에도 '절차'라는 게 있는데 말야. 민주주의에서 '절차'라는 건 그저 형식이 아냐. 거기에는 오랜기간 동안 시민들이 피를 뿌리면서 챙취한 민주주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구. 그걸 개무시한 판결이고, 결국은 국민들을 호구로 여기는 판결이고, 궁극적으론 민주주의정신을 개차반 만든 판결이지.

이건 그 신문법, 방송법에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와도 상관없는거야. 그 법안 통과에 찬성하는 국민들도 열받아야 마땅한 거라구. 그런데 뭐 국민들은 별 관심 없는 것 같더라... 하긴 AV보랴, 선덕여왕 보랴, 직장에서 시달리고, 마누라한테 바가지 긁히고, 애들 교육시키느라, 밀린 공과금 내랴, 쥐꼬리 월급으로 살림하랴.. 뭐 다 이유는 있고, 나도 요즘 뜨는 AV 보느라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좀 기억해야 한다구, 우리가 얼마나 개무시 당하면서 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대한민국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살고 있는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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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판결의 의미 뿐만 아니라, 이번 판결을 둘러싼 정치적 의미, 그 본질을 찌르는 글입니다. 넓은 숲을 보는 관점의 탁월함이 느낄 수 있습니다. 제 글의 편협한 관점이 답답하신 독자들께선 좀더 넓은 시각으로 사안을 바라보시 것도 좋을 듯 하네요. 일독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더불어 위 추천글 기고자의 블로그여기입니다. 좋은 글 수두룩 빽빽입니다. 즐겨찾기나 RSS 리더에 등록하셔서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세상을 사유하는 블로거 행인의 풍부한 시선을 만나시길 강하게 권해봅니다. 여기입니다.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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