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이야기들.
가령 FTA.
난 실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는지, 내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 다른 목소리를 깨울 수 있을지, 그냥 기운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런 기분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난 FTA에 대해 잘 모르니까.
뭐 알려줘야 알지.
제기랄.

그렇게 좋은 거라면서, 왜 이렇게
뒤에 숨어서,
광장 아닌 밀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해야 하는건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난 무거운 것들도 가볍게, 즐겁게 이야기되길 원한다.
아니 무겁지만, 가볍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힘드니까.
모든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필요로 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무겁게 생각하는 이야기들은, 때론 쪽수가 중요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거운 걸 싫어한다.
나?
나도 그렇다.
난 가벼운게 좋다.
다만 그게 진지하게 가볍길 바란다.

싸움을 하더라도, 그게 즐거우니까 하는거다.
도덕적인 우월감?
투철한 사명감?
사회적인 연대의식?

놀고 있다.
나한테 그런거 없다.

난 그게 얼마 가지 않아 심각한 자기배반을 만날 거란 걸 잘 안다.
안다고 말했지만 실은 쥐뿔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것 같다.
거의 확신에 가깝게 추정한다.
아마도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거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스템의 포로다.
그 시스템의 유혹은 언제든 우리에게 파고든다.
그건 때론 익숙하게, 때론 느끼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 안에 파고든다.

난 진보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수도 아니고, 실은 난 진보이면서 보수고, 보수이면서 진보다. 그러니까 모두가 그런 것처럼 난 이도 저도 아니고, 그저 여러 개의 '나들'이 모여진, 모순의 총합이다. 그게 '나'다.

아거님께서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민노씨는 생각이 참 깊은 분입니다..."
http://gatorlog.com/?p=674#comment-117471

라고 격려(?)해주셨는데,
나는 거기에 솔직하게 고백(?)했다.

"저는 실은 날라리를 동경하는 어중간한 몽상가일 뿐입니다. 그게 가끔은 좋고, 자주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기도 해요."


황지우가 언젠가 그랬다.

"나는 날라리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그들은 날 것을 먹는다."
- 황지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중에서


나는 날라리를 동경한다.
그들은 몽상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천한다.
머리 속에 박혀 있는 그 잘난 책들보다, 그 날라리가 훨씬 더 멋지다.

블로거에게 실천이란,
쓰는거다.

자기의 진실로,
그게 잘난 이야기든,
어설픈 이야기든,
외국잡지, 외국서적에 나온 누구누구의 이야기를 인용한 폼나는 거든,
아니면 그저 공중파 티브이의 뻔한 드라마를 보고 느낀 감상이든... 

우리에게는 상상력이 있다.
그 상상력이 정치적 상상력으로 확장하기를 나는 바란다.

FTA는 반드시 아마도, 좀더 많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사살'할 거다.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사살당할 사람들은
아마도
늘 그랬듯
무식하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일테다.

난 그게 싫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다.




덧]
http://deulpul.egloos.com/
위 주소(들풀님의 블로그)에 가시면 좀더 많은 FTA 관련 포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http://blog.hani.co.kr/onecard/6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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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Tracked from Delusion Laboratory™ 2007/03/30 21:19 del.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Profit over people 노암 촘스키 Noam Chomsky / 강주헌 옮김 한미 FTA 협상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몇 년전에 읽고, 책장 구석에 꽂아놨던 책을 다시 꺼내 본다. 내용은 무겁지만, 분량은 가벼워서 금방 읽을 수도 있는 책이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촘스키가 썼고, 1998년에 나온 책이다. 표지에는 '촘스키의 신자유주의 비판'이라고 쓰여있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책이다...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
  1. 너바나나 2007/03/30 21:06

    지금 뉴스 보는디 노무현 대통령 각하의 말씀때문에 협상이 타결될 듯싶군요.
    답답하네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03/30 23:41

      저도 제가 힘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이라서 답답하고, 또 걱정입니다.
      저는 비록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는 농부는 아니지만요. ㅡㅡ;

  2. 히치하이커 2007/03/30 21:22

    전 무섭습니다.
    치밀하거나, FTA에 대해 정리하는 글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의 글을 쓴 게 있어서 트랙백 보냅니다.
    정말 무서워요. 이대로라면 십년, 이십년 뒤엔 어찌 살아가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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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3/30 23:42

      트랙백 보내주셨다고요.. ^ ^;
      반갑네요.
      출동해야겠습니다. : )

  3. grokker 2007/03/30 23:12

    저도 FTA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장하준 교수라는 사람이 방송에서 한말이 인상깊어서 기억하고 있어요.
    "
    FTA는 체급제한이 없는 레슬링과 같다. 규칙도 체급도 없는 경기에서 강력한 상대에 아직 기초체력도 되지 않는 선수들이 올라와서 싸우는 것과 같다. 그러니 신중해라.
    "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제 머리에 계속 남더군요.
    FTA는 Fucking Trade Agreement의 약자일지도..


    저는 날라리여서 열등감을 느끼며 학창시절을 보냈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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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3/30 23:45

      그러게나 말입니다.
      절차적으로 이건 정말 (대다수) 국민 엿먹이는 협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밀실에서, 지들끼리 속닥속닥 하는, 그런데 국민들의 삶에는 향후 십년 이십년 삼십년...을 결정적으로 영향을 줄 그런 협정을... 정말 어처구니 없어요. ㅡ.ㅡ;

      그로커님은 공부도 잘하는 날라리였군요! ㅎㅎ

  4. 아거 2007/03/31 00:27

    옆에 곤조 저널리즘을 추구합니다 배지가 멋있습니다. ^ ^
    "무거운 것들도 가볍게, 즐겁게 이야기"하라는 말씀 잘 새겨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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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3/31 09:01

      아거님 덕분에 곤조저널리즘을 처음 접했습니다. : )
      정확히는 아거님을 소개해주신 아틸라님의 글을 통해서요.

      문패 소개글이 너무 벅찬 것은 아닌가 싶어서.. ^ ^;
      민망하네요.

      앞으로도 아거님께는 많이 배우고 싶네요.
      많은 블로거들께 한 수 일러주시길 기대합니다.

      ^ ^

  5. paris33 2007/03/31 17:38

    민노씨!에게
    글이 참 순수한 민노씨의 의견을 솔직담백하게 적혀져서 아주 쉽게 알고 많이 이해하고 잘 읽고갑니다!함께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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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4/03 09:59

      제가 오히려 고맙죠.
      댓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아는게 없어서.. 뭘 알려드리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 ^;
      마음으로나마 공감해주셨다니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 )

  6. dasan 2007/04/04 15:22

    아거님 블로그에서 덧글의 수가 가장 많으신 블로거 아니십니까?^^ 덧글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보니..알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전에도 왔었어요.^^

    한미FTA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네요. 한숨 쉬며 포기한지가 오랜지라..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04/04 18:03

      다산님 반갑습니다.
      다산님 덕분에 아거님의 새로운 블로그(Micro Public Relations)를 이제야 접할 수 있었네요.

      많은 블로거들께 그렇겠지만, 제가 가장 많이 배우는 블로거들 중의 한분이셔서요. ^ ^;

      종종 논평 주시면 반갑겠네요.
      교류가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도 종종 찾아뵙도록 할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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