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두 얼굴의 테레사 (들풀)
약자 응원 현상 (아거)
눈속임을 통한 여론 장난질 (써머즈)
이 글은 위 글들의 문제의식을 조금이나마 확산하기 위한 포스팅이다.
장난질은 계속되고 있다.
1. 두 얼굴의 테레사, 두 개의 이스라엘
들풀님의 글은 동일한 저널(TIME)에 표지로 등장한 테레사 수녀를 소재로 하고 있다.
아거님께서는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 사례를 이야기하신다.
저널리즘이 표방한다는 객관성은 상대적인 객관성이다.
편집(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것을 머리에 올릴 것인가, 이미지와 텍스트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 각 기사들은 어떤 구도로 배치할 것인가... )은 그 편집권을 행사하는 개인과 집단, 그리고 조직의 역학에 의해 해당 매체와 해당 기사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널리즘에서 표방하는 객관성은 '사실에 대한 불가침'을 지지한다는 추상적이기 그지 없는, 실질적으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원칙과 선언에 불과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저널리즘의 최소한이긴 하다).
미디어는 독자들의 요구와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상업적인 고려 때문에, 혹은 자신의 철학과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당파성의 욕구 때문에 나름의 편집 방법론을 추구하게 된다. 다만 문제는 그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악질적인 수단으로써 편집 방법론의 한계를 일탈하는 순간 발생한다(그런 가장 대표적인 매체가, 내가 읽고, 접촉한 체험을 한계로 말하자면, 조선일보다).
인정할 수 있는 편집방법론과 인정할 수 없는 편집방법론의 한계는 명확하게 설정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독자들에 따라, 그 해당 텍스트(기사와 매체)를 둘러싼 맥락, 그러니 구체적인 역사적, 문화적, 정치경제적 조건에 따라 유동적이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저널리즘을 추구한다는 온갖 미디어들은 어쩔 수 없이 당파성 매체라는 사실이다. 저널리즘의 불편부당과 객관성이란 허상과 가식적 선언으로서의 객관성에 불과하다.
2. 저널미장센의 층위
편집의 방법론을 전혀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메시지도 그 자체로, 메시지의 알맹이만으로 전달되는 경우는 없다.
메시지는 형식이라는 외투를 입는다.
그것은 텍스트(여기서는 '문자'를 지칭) 그 자체이기도 하고, 텍스트와 이미지의 조합이기도 하며, 그 기사들의 배치와 조합에 의한 이미지 충돌이기도 하다.
위 들풀님께서 제시한 사례는 메시지(기사)가 요구하는 당연한 욕구로서 테레사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그러니 테레사의 서로 다른 두 얼굴에 대한 의도적인 이미지 선택은 편집방법론의 한계 내에 존재한다(고 나는 평가한다). 메시지는 자신의 욕구가 시키는대로, 로미오가 줄리엣을 부르듯, 이미지를 호출한다.
아거님께서 제시한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 이데올로기적 편향이 해당기사를 통해 실체화되더라도 그것은 있을 수 있는 편집 방법론의 한계 속에서 존재하는 '당파성의 구현'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을 지지하거나,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매체라면 해당 독자에게 서로 다른 '포커스'를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이런 경우라면 독자들의 비판적인 글읽기의 수고를 당부할 수 밖에는 없을테다.
문제는 이런 편집 방법론의 한계를 일탈하는 경우다.
3. 편집방법론의 일탈 : 악질적 저널미장센 혹은 저널미장센의 낮은 차원.
써머즈님께서 쓰신 글은 이러한 인정할 수 있는 저널미장센, 혹은 편집방법론의 한계를 적극적으로 일탈하고 있는 경우다.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ㄱ. 해당 한국일보 기자가 도표작성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우연한 실수가 반복되었거나 (반복.. ㅡㅡ;; )
ㄴ. 독자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전달하려는 목적을 가진 경우이거나.
솔직히 나는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처음에는 의도과 목적을 가진 '장난질'이라는 판단이었는데, 그러기엔 너무 엉성하고, 허접하다. 해당 기사의 큰 제목도 그렇고...
물론 두 가지 모두 치명적이긴 하다.
실수라면 기자로서 기사작성에 대한 기초를 다시 제대로 배우라는 민망한 조언을 들려줄 수 밖에는 없다. 해당 기사의 텍스트와 그 텍스트의 근거로서의 제시된 도표가 서로 따로 놀고 있다.
장난질이라면, 간단히 말하자, 허접하다.
정말 저질인거지.
4. 비판적 독자, 비판의 방법, 그리고 블로그.
당신을 둘러싼 그 온갖 미디어들은 자신 만의 욕구를 갖고 있다. 그것은 주로 상업성에 대한 요구이고, 때론 정치적인 당파성과 철학적 지향에 대한 소망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악질적인 편향과 조작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천박한 이익을 실현하겠다는 욕망이기도 하다.
그 욕구들을 당신의 시선을 자신의 요구에 의해 맞추기를 원한다. 미디어의 욕망은 자신의 욕망이 이끌리는 그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이미지의 외투를 걸치며, 당신을 유혹하거나, 혹은 설득한다.
하지만 그 욕망이 당신에게 그들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혹은 눈속임을 통해 당신을 장난질의 도구로 삼고자 한다면, 그렇다, 방법은 하나 뿐이다.
그 미디어를 죽여라.
미디어를 죽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것은 아주 본질적인 방법일텐데, 당신의 소중한 시력 보호를 위해 그 미디어에서 고개를 돌리는 일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그 미디어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구가하고 있는 경우라면 매우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방법일테다.
나머지 하나는 그 미디어의 천박한 욕망을 어처구니 없는 장난질을 비판하는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고, 연대하는 일이다.
당신에게는, 이미, 블로그가 있다.
* 어처구니, 혹은 장난질
한국일보의 BBK 여론 조사 결과 관련 기사 (정진황)
* 발아점 : 일독 권합니다.
두 얼굴의 테레사 (들풀)
약자 응원 현상 (아거)
눈속임을 통한 여론 장난질 (써머즈)
약자 응원 현상 (아거)
눈속임을 통한 여론 장난질 (써머즈)
이 글은 위 글들의 문제의식을 조금이나마 확산하기 위한 포스팅이다.
장난질은 계속되고 있다.
1. 두 얼굴의 테레사, 두 개의 이스라엘
들풀님의 글은 동일한 저널(TIME)에 표지로 등장한 테레사 수녀를 소재로 하고 있다.
위에 제시한 두 그림은 원래의 표지에서 제목 등 텍스트가 지워진 상태다. 그래도 우리는, 어떤 사진이 어떤 기사와 대응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인자하고 자애로운 성인 테레사를 다룬 기사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회의하던 종교인 테레사를 다룬 기사는 각각 어떤 표지와 연결될까?
- 두 얼굴의 테레사 (들풀) 중에서
- 두 얼굴의 테레사 (들풀) 중에서
아거님께서는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 사례를 이야기하신다.
한 그룹에게는 이스라엘 지도만 부각시키면서 팔레스타인 영토를 작게 보여준 반면, 다른 그룹에게는 중동 전체에서 이스라엘의 위치를 나타내는 지도를 보여주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지지하는가를 측정했다.
- 약자 응원 현상 (아거) 중에서
- 약자 응원 현상 (아거) 중에서
저널리즘이 표방한다는 객관성은 상대적인 객관성이다.
편집(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것을 머리에 올릴 것인가, 이미지와 텍스트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 각 기사들은 어떤 구도로 배치할 것인가... )은 그 편집권을 행사하는 개인과 집단, 그리고 조직의 역학에 의해 해당 매체와 해당 기사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널리즘에서 표방하는 객관성은 '사실에 대한 불가침'을 지지한다는 추상적이기 그지 없는, 실질적으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원칙과 선언에 불과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저널리즘의 최소한이긴 하다).
미디어는 독자들의 요구와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상업적인 고려 때문에, 혹은 자신의 철학과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당파성의 욕구 때문에 나름의 편집 방법론을 추구하게 된다. 다만 문제는 그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악질적인 수단으로써 편집 방법론의 한계를 일탈하는 순간 발생한다(그런 가장 대표적인 매체가, 내가 읽고, 접촉한 체험을 한계로 말하자면, 조선일보다).
인정할 수 있는 편집방법론과 인정할 수 없는 편집방법론의 한계는 명확하게 설정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독자들에 따라, 그 해당 텍스트(기사와 매체)를 둘러싼 맥락, 그러니 구체적인 역사적, 문화적, 정치경제적 조건에 따라 유동적이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저널리즘을 추구한다는 온갖 미디어들은 어쩔 수 없이 당파성 매체라는 사실이다. 저널리즘의 불편부당과 객관성이란 허상과 가식적 선언으로서의 객관성에 불과하다.
2. 저널미장센의 층위
편집의 방법론을 전혀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떤 메시지도 그 자체로, 메시지의 알맹이만으로 전달되는 경우는 없다.
메시지는 형식이라는 외투를 입는다.
그것은 텍스트(여기서는 '문자'를 지칭) 그 자체이기도 하고, 텍스트와 이미지의 조합이기도 하며, 그 기사들의 배치와 조합에 의한 이미지 충돌이기도 하다.
위 들풀님께서 제시한 사례는 메시지(기사)가 요구하는 당연한 욕구로서 테레사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그러니 테레사의 서로 다른 두 얼굴에 대한 의도적인 이미지 선택은 편집방법론의 한계 내에 존재한다(고 나는 평가한다). 메시지는 자신의 욕구가 시키는대로, 로미오가 줄리엣을 부르듯, 이미지를 호출한다.
아거님께서 제시한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 이데올로기적 편향이 해당기사를 통해 실체화되더라도 그것은 있을 수 있는 편집 방법론의 한계 속에서 존재하는 '당파성의 구현'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을 지지하거나,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매체라면 해당 독자에게 서로 다른 '포커스'를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이런 경우라면 독자들의 비판적인 글읽기의 수고를 당부할 수 밖에는 없을테다.
문제는 이런 편집 방법론의 한계를 일탈하는 경우다.
3. 편집방법론의 일탈 : 악질적 저널미장센 혹은 저널미장센의 낮은 차원.
써머즈님께서 쓰신 글은 이러한 인정할 수 있는 저널미장센, 혹은 편집방법론의 한계를 적극적으로 일탈하고 있는 경우다.
이쯤되면 정말 막 나간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우리나라에는 위대하신 수령 동지 이명박만이 희망인 걸까요? (본문)
고도의 '실수'라고 하겠지요. -_-; (댓글)
- 눈속임을 통한 여론 장난질 (써머즈) 중에서
정말 우리나라에는 위대하신 수령 동지 이명박만이 희망인 걸까요? (본문)
고도의 '실수'라고 하겠지요. -_-; (댓글)
- 눈속임을 통한 여론 장난질 (써머즈) 중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ㄱ. 해당 한국일보 기자가 도표작성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우연한 실수가 반복되었거나 (반복.. ㅡㅡ;; )
ㄴ. 독자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전달하려는 목적을 가진 경우이거나.
솔직히 나는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처음에는 의도과 목적을 가진 '장난질'이라는 판단이었는데, 그러기엔 너무 엉성하고, 허접하다. 해당 기사의 큰 제목도 그렇고...
물론 두 가지 모두 치명적이긴 하다.
실수라면 기자로서 기사작성에 대한 기초를 다시 제대로 배우라는 민망한 조언을 들려줄 수 밖에는 없다. 해당 기사의 텍스트와 그 텍스트의 근거로서의 제시된 도표가 서로 따로 놀고 있다.
장난질이라면, 간단히 말하자, 허접하다.
정말 저질인거지.
4. 비판적 독자, 비판의 방법, 그리고 블로그.
당신을 둘러싼 그 온갖 미디어들은 자신 만의 욕구를 갖고 있다. 그것은 주로 상업성에 대한 요구이고, 때론 정치적인 당파성과 철학적 지향에 대한 소망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악질적인 편향과 조작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천박한 이익을 실현하겠다는 욕망이기도 하다.
그 욕구들을 당신의 시선을 자신의 요구에 의해 맞추기를 원한다. 미디어의 욕망은 자신의 욕망이 이끌리는 그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이미지의 외투를 걸치며, 당신을 유혹하거나, 혹은 설득한다.
하지만 그 욕망이 당신에게 그들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혹은 눈속임을 통해 당신을 장난질의 도구로 삼고자 한다면, 그렇다, 방법은 하나 뿐이다.
그 미디어를 죽여라.
미디어를 죽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것은 아주 본질적인 방법일텐데, 당신의 소중한 시력 보호를 위해 그 미디어에서 고개를 돌리는 일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그 미디어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구가하고 있는 경우라면 매우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방법일테다.
나머지 하나는 그 미디어의 천박한 욕망을 어처구니 없는 장난질을 비판하는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고, 연대하는 일이다.
당신에게는, 이미, 블로그가 있다.
* 어처구니, 혹은 장난질
한국일보의 BBK 여론 조사 결과 관련 기사 (정진황)
* 발아점 : 일독 권합니다.
두 얼굴의 테레사 (들풀)
약자 응원 현상 (아거)
눈속임을 통한 여론 장난질 (써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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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그래서 요즘에는 편집의 기술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나 봅니다.
그렇겠죠. 아무래도.. ^ ^;
세번째 한국일보 그래프는 아무리봐도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저걸 저렇게 의도적으로 조작할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마감시간에 쫗긴 그래픽기자의 실수?
마더 테레사의 경우 저는 이미지를 반대로 해석했습니다. 왜 제 눈에만 그게 거꾸로 보이는 걸까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럴 확률도 높다고 생각하구요.
다만 그렇게 반복적으로 (4개의 도표 모두) 실수가 반복되었을까...
싶기는 해요.
마더 테레사의 경우를 그렇게 느끼셨군요. ^ ^;
역설의 독자신 것 같습니다. : )
저널미장센 재밌는 표현이네요. :)
제가 꼴보기 싫은 언론을 대하는 방법은 주로 그들을 똑바로 응시하고 조롱하는 방법입니다.
좋은 방법이네요. : )
foog님과 같은 비판적 독자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파격공개] BBK핵심인물 김경준씨 어머니 단독 인터뷰...
드디어 BBK핵심인물인 김경준씨 어머니께서 입을 열었습니다..
평가는 네티즌 여러분께서 하세요..
www.blddong.com
불똥닷컴에서 지금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UCC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5641780
tv팟에서도 보실수 있습니다..
^ ^;;
예. 어느 정도는 단순 실수 정도라고 생각하며 적은 포스팅이 맞아요.
기존의 미디어들이 거들먹거리며 권위를 행세하는데 반해 아직 좌충우돌 성장중인 새로운 미디어와의 차이점이 별로 보이지 않는 요즘의 행태가 우스워서 포스팅한 점도 있고요.
기존 미디어와 새로운 미디어의 차이점은 '자본에 의해 운영되느냐', '자율에 의해 운영되느냐'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자본에 의해 운영되느냐', '자율에 의해 운영되느냐' "
의미심장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ㄱ. 자본에 대한 종속성,
ㄴ. 전체 편집권이 갖는 자율성의 실현 정도는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의 사정을 통해 판단한다면... 대부분의 기존 저널리즘 표방 업체와 (앞으로 기대되는) 블로기즘을 표방하는 블로그를 구별하는 유용한 표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한 5년전 이었던 것 같네요. 노조원들이 회사 버스위에 올라가서 점거농성 하는 장면을 큼직하게 싫어놓고 바로 그 옆면의 기사제목은 "중국에 추월 당하는 한국경제"였던것 같네요. 언론이 얼마나 악의적이고 교활할 수 있는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이후로 신문을 펼쳐보면, 어떤 기사가 1면에 올라 있는지, 어떤 사진을 싣는지, 한 기사뒤에 바로 따라오는 기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게 되던군요.
그래서 얻은 결론은 우리나라의 신문은, 무비판적으로 바라볼 때 어느새 독자는 "좀비"로 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민노씨. 정말 오랜만이네요^^ 한동안 정신적 패닉 상태에 빠져서, 만사가 귀찮더군요.
그래도 투표는 하러 가야겠네요.
그런 체험이 계셨었군요. : )
정말 오랜만입니다.
안그래도 궁금하던 차였는데 말이죠.
블로그는 잘 하고 계신지요?
얼마전에 살짝 눈팅하고 오긴했습니다만.. ^ ^;
맞습니다, 투표는 해야죠.
아무리 우울하더라도 말이죠.
안그래도 요새는 미디어를 삐딱하게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네요.
예전에는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것을 곧이 곧대로 믿었었는데 말이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말싸움하다가도 신문에 나왔다고 하면 다들 사실이라 인정했었는데 이제는 그 이면을 보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당신에게는, 이미, 블로그가 있다." <- 의미 심장하군요 ^^
해외의 사정은 구체적으로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저널들이 갖는 당파성과 그 (인정할 수 있는 당파성을 뛰어넘는) 천박한 이익추구, 그리고 권력욕은 정말 독자들로 하여금 비판적인 독해를 '필요적'으로 강요하는 단계에 돌입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그 자체에 대해서도 근심하게 하는 단계 말이죠.
1. 증권거래법 제207조의2 (벌칙)
2. 증권거래법 제188조의4 (시세조종등 불공정거래의 금지)
두 가지 문제를 뭐
아주 간단하게 쉽게
정치적으로 시끄럽지마는
법적으로 조사하면 아주 간단하게 조사할 수 있다.(2)
"저는 만에 하나라도 저가 책임이 있다면
대통령이 되어서라도
책임지겠다는
이야기를
한 바가
있습니다."
- 거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 BBK 문제와 관련해서
뭔가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직을 걸
용의가 있다.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네~ 네."
- 그 문제가 있다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문제가 있다면은~
간단하지요.
주식 거~
그 거래하는데~
부당거래죠. 말하자면~
(주가 조작~)
뭐 조작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주가조작에
가담을 했느냐,(1)
그 BBK라는 회사가 내 회사냐,(2)
하는 그 두 가지 문제니깐요.
두 가지 문제를 뭐
아주 간단하게 쉽게
정치적으로 시끄럽지마는
법적으로 조사하면 아주 간단하게 조사할 수 있다.(2)
전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치적으로 조사를 한다면
언제든지 책임을 지겠다는 그런 뜻입니다."
- 만약에~
밝혀지면!
대통령직을 그만 둘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인제 각오를 말씀하신거네요~?
"그렇습니다." / 동영상 중 대통령후보자 이명박의 불법, 사기선거공약
법적으로 조사하면 아주 간단하게 조사할 수 있다.(2)~?
상법 제1조 (상사적용법규)
상사에 관하여 본법에 규정이 없으면 상관습법에 의하고 상관습법이 없으면 민법의 규정에 의한다.
http://blog.daum.net/ohsilv
/ 이미 다 밝혀졌으니~!!
대통령직을 걸고~ 전재산을 걸고~ 위헌, 위법, 불법, 사기 등, 국헌을 문란하고 대통령직을 사취, 절취, 강취, 대한민국을 참절해 노략질 중인 오사카생 쥐 다魔네忌사기꾼 양상군자 현행내란확실경합범 월산이명박을 사형으로 처단하라!~!!
[희생양] 이명박이 죽어야 대한민국 국민들이 산다!
1. 증권거래법 제207조의2 (벌칙)
2. 증권거래법 제188조의4 (시세조종등 불공정거래의 금지)
두 가지 문제를 뭐
아주 간단하게 쉽게
정치적으로 시끄럽지마는
법적으로 조사하면 아주 간단하게 조사할 수 있다.(2)
"저는 만에 하나라도 저가 책임이 있다면
대통령이 되어서라도
책임지겠다는
이야기를
한 바가
있습니다."
- 거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 BBK 문제와 관련해서
뭔가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직을 걸
용의가 있다.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네~ 네."
- 그 문제가 있다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 문제가 있다면은~
간단하지요.
주식 거~
그 거래하는데~
부당거래죠. 말하자면~
(주가 조작~)
뭐 조작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주가조작에
가담을 했느냐,(1)
그 BBK라는 회사가 내 회사냐,(2)
하는 그 두 가지 문제니깐요.
두 가지 문제를 뭐
아주 간단하게 쉽게
정치적으로 시끄럽지마는
법적으로 조사하면 아주 간단하게 조사할 수 있다.(2)
전 이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치적으로 조사를 한다면
언제든지 책임을 지겠다는 그런 뜻입니다."
- 만약에~
밝혀지면!
대통령직을 그만 둘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인제 각오를 말씀하신거네요~?
"그렇습니다." / 동영상 중 대통령후보자 이명박의 불법, 사기선거공약
법적으로 조사하면 아주 간단하게 조사할 수 있다.(2)~?
상법 제1조 (상사적용법규)
상사에 관하여 본법에 규정이 없으면 상관습법에 의하고 상관습법이 없으면 민법의 규정에 의한다.
http://blog.
/ 이미 다 밝혀졌으니~!!
대통령직을 걸고~ 전재산을 걸고~ 위헌, 위법, 불법, 사기 등, 국헌을 문란하고 대통령직을 사취, 절취, 강취, 대한민국을 참절해 노략질 중인 오사카생 쥐 다魔네忌사기꾼 양상군자 현행내란확실경합범 월산이명박을 사형으로 처단하라!~!!
[희생양] 이명박이 죽어야 대한민국 국민들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