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대로 조롱받다

위 글에 '익명님'(닉네임이 '익명'이 아니라 사전적 의미로 익명입니다. ^ ^; )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주셨습니다. 매우 의미있는 질문이고, 요즘 자주 이야기되고, 또 고민되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이하의 질문에 대해 제 짧은 생각이나마 간단하게 답변 드립니다.

more..

어쨌든 요약을 하면 : 지지선언을 한 대학생들만 욕하는 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너무 많이 듭니다. 저는 '오죽하면' MB를 지지하겠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이명박을 끝까지 찍겠다는 사람들도 우리나라 국민들이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입니다. (중략) 민노씨는 저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좀 궁금하네요.

@@ 대표성 남용에 대해: 예를 들어 서울대총학생 회장이 "서울대는 공식적으로 국보법 철폐와 미군 철수를 주장합니다" 라고 할 때 이 경우도 대표성 남용에 해당될까요? 설마 남이 하면 불륜 자기가 하면 로맨스는 아니겠지요.

- 익명 


0. 사상 최악 선거를 앞둔 아이큐 평범한 국민의 비애

일단 이미 썼던 위 글로 전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답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익명님의 질문을 핑계삼아(^ ^) 위 글의 문제의식을 좀더 보충할 수 있다면, 좀더 구체화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일단 저는 아직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했고, 이 고민은 아직 좀더 유지될 것 같습니다.

 
1. 42개 총학생회장 지지선언의 의미 - 해프닝일까, 역사적인 사건일까?

ㄱ. 이번 42개 총학생회장 지지선언은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상징적인 사건일까요? 아니면 그저 해프닝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인지, 아니면 그저 특정 정당의 대선후보 이미지 메이킹에 이용된 '순진한' 대학생들과 한나라당이 벌인 해프닝인지는 지금 당장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겠죠(새롭게 확인된 사실이 있나요? 살짝 궁금합니다).

ㄴ. 이게 역사적인 상징성을 갖는다는 전제로 말씀 올리면, 저는 이 사건이 갖는 함의는 아주 단순하다고 봅니다. 경제적 요구는 일국의 대통령 후보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소양, 민주주의적인 소양, 법치주의적인 소양이라는 아주 자명한 원리원칙을 '접고' 생각할 수 있을만큼 절박한 요구라는 점입니다. 88만원 세대의 자화상이랄까요.

ㄷ.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 '경제적 요구'라는 것은 여전히 '이미지'화된 기만적 수사의 세계에 있는 것이지, 그 42명의 대학생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당장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의 세계는 아니라고 판단해요. 그리고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그런 '경제적인 신천지'가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펼쳐지리란 기대 자체도 '꿈'에 불과하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ㄹ. 왜 그런고 하니, 조선일보라는 대표적인 친 MB 매체에서조차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서 이명박 후보를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만평을 통해서요).

A - 이후보가 공범이라면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것이고
B - 이후보가 몰랐다면(김경준에게 사기당한 피해자의 한 명이라면) 경제대통령이란 이미지는 허상일 뿐이다.

이것이 조선일보라는 친이명박 매체에서조차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명박과 경쟁관계에 있는 타 정당이나 이명박 후보에게 비판적인 매체들에서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의 지지율은 그다지 크게 변화가 없다는 것이 불가사의하다는 거죠. 국민들이 망조났다는 겁니다(김근태 망언 사건). 하지만 이게 그다지 불가사의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전제는 현정권에 대한 극도의 혐오와 배신감(이것이 설혹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담론권력집단들의 조직적이고 끈질긴 담합구조, 정보와 상징들의 유통구조에 의해 더욱 가중된 부당한 이미지라 할지라도)이겠죠.

다만 이건 빼고 이야기하죠.  


2. 침묵 혹은 독재 메카니즘  

독재가 별개 아닙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게 저는 독재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을 동어반복적으로 무한재생하는 것이 독재라고 저는 생각해요.
김현은 독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독재 메카니즘은 동어반복에 있다.
나는 옳다. 왜냐하면 나는 옳으니까.

역으로 이건 말하기 싫은 것에 대해선 침묵하겠다는 겁니다.
이건 기본권인 '진술거부권'과는 전혀 상관 없는, 마땅히 아가리를 벌려야 하는데 벌리지 않는 기형적이고, 전도된 인식 하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BBK 사건에 대입해보죠.

한나라당은 그 온갖 의혹에 대해,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으로 사건을 종결해버렸습니다. 이건 공당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입니다. 의혹에 대해 질문에 대해 답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냥 지들끼리 쫑냈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게 '전략적으로' 유효하게 기능하고 있고, 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이 당을 공당으로서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 당을 민주주의 공화국에 존재하는 원내 제2당으로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당의 후보가, 더욱이 문제의 장본인이 과연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지상파 토론을 펑크내는 공당이 과연 제대로 된 민주주의 하의 정당이 맞습니까? (100분 토론 불참 사건)


3. 정치 혐오와 관성, 그리고 달콤한 신세계 ; 아무 생각 없습니다. _^_

위에 기술한 내용은 매우 의식적인 차원입니다.
머리를 (아주 조금은) 쥐어 짜야 하는 '판단'의 영역이고, 선택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들은 이게 다 귀찮습니다.
대체로 굉장히 다수의 국민들, 유권자들은 그러리라 판단합니다.
대충 '삘' 받아서 후보 선택합니다.
지난 시간의 관성으로 후보 선택합니다.
지역색에 맞춰서 결정해버립니다.
그러니 그래도 한나라당은 아니니까, 혹은 그래도 한나라당이니까.
그래도 여기가 광주니까, 혹은 부산이니까.
내 출신학교는 어디라서.
아무개가 대통령 되면 내 집값이 그래도 오를 것 같으니까...
아무래가 되면 (어떤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공약에 대한 판단 전무한 채로) 내 주식이 조금은 더 오를 것 같아서...

이런 지극히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이유들 혹은 지극히 이기적이며 현실적인 이유들(막연한 개별적 이익에 대한 기대심리)로, 더욱이 추상적인 이미지와 삘에 의지해서 대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니라면 이런 구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거대 담론생산집단의 꾸준하고, 끈질긴 의식적 틀짓기(참여정부는 괴물이다)와 더불어 생각해야 할 것은 여타 새로운 미디어들의 등장, 새로운 담론생산집단들이 조성하는 환경입니다.

싸이월드의 도착적인 관음증이 풍미하고, 원더걸스라는 짝퉁노래가 최첨단으로 남녀노소를 흥분시키는, 레미안류 광고의 선망과 (소외와 결핍에 대한) 공포 마케팅이 버젓이 TV 통해 세련된 이미지인양 우리들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금융상품에 대한 광고(대부광고, 펀드광고, 보험광고 등등), 아파트 광고들이 우리가 소비하는 그 모든 이미지들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습니다. 연예인들의 옆구리 터지는 신변잡담이 우리의 눈과 귀를 빨아들입니다. 소위 청년문화, 저항문화의 수준이란게 '카피'한 피상적 이미지만 철없는 개나리처럼 만개한 '애니밴드'가 노래하는 '애니월드'인 현실.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터넷 속으로 들어와도 우리를 지배하는 건 포털 실시간 인기 검색어의 세계입니다. 웹의 가장 지배적인 기업인 네이버는 '정치 기사'에 대한 댓글을 금지시키고, 구석탱이로 몰아넣습니다. 여기에 아무리 항의해도 그저 콧등으로 흘려 듣습니다. 네이버에 길들여진 네티즌은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네이버에서 영입한 스타 언론인 출신 홍씨는 한겨레라는 진보삘 나는 매체에 자신의 공간을 임대받아 폼나게 웹2.0을 이야기합니다. 정말 코미디입니다. 멋진 신세계이면서, 타락한 고모라이면서, 보이지 않는 매트릭스로 이뤄진 감옥입니다. 실시간 인기 검색어를 담은 박스에는 연애인들의 터질듯한 가슴과 각종의 이혼 소식들, 성형수술 소식들이 매일 매일 새롭게(아, 새롭게) 채워집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부처님이 환생하고, 알라신이 칼을 빼들어도 도무지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은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삼성공화국'은 뺐습니다.
이것까지 이야기하면 정말 골 뽀샤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고도가 오지 않더라도 말이죠.

이런 까닭에...
저는 블로그가 아주 조금은 의미있는 어떤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제 횡설수설이 아주 조금은 대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시금 고마움을 전합니다. _^_


p.s.
아참, 대표권(성) 남용에 대해서는 학생회장의 권한 행사 방식과 절차(요건)를 규정한 학생회 내부 규약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이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엔, 그 권한행사의 적법 요건을 갖췄다 하더라도, 이번 학생들 지지선언은 그 '실체적인 대표성' 차원에서는 의미가 크지는 않은(을) 것 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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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한국정치의 양비론적 비극

    Tracked from ego + ing 2007/11/29 01:41 del.

    이번 대선의 킹메이커는 김경준이다.이명박씨가 주범이건, 아니건 김경준 역시 사기꾼에 불과하다.그로 인해 한국의 대표적 보수정당이 발목 잡혀있고,그만을 한국의 개혁, 진보정당들은 해바라기 하고 있다.이명박은 얼마나 세상을 막 살았으면,정동영, 권영길, 문국현, 노무현은 얼마나 헐렁하게 살았길래이렇게 상황이 단순해 질 수 있을까?이러다 이회창이 덥석 대통령이라도 되는 날엔전대미문의 날치기 대통령과 기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하는 것이렸다.참 쯧쯧쯧스럽다.관...

  2. Subject : 42개 대학 총학생회장 이명박 후보 지지선언을 보고 : 지식인을 위한 변명

    Tracked from 하루를 여는 시 한편 ™ 2007/12/01 06:35 del.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42개 대학교의 총학생회장 이명박 지지선언에 대해서 몇 줄이라도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총학생회장들의 집단 선언, 집단이라고 하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나 작고, 총학생회장이라는 직책에 맞게, 각 대학의 학생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했는지 하는 의문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지금도 그러하다 듣고 있습니다만, 1995년 서울지하철 노조의 총파업이 있을 때, 언론과 권력집단에서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 노동자 집단 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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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권의 언론관이 어떤지... 이미 몇번의 사건을 통해 알지만... 아무리 정치적 감각이 없어도... 설마 이런 상황에서 개념없이... "순교자"를 만드는 짓은 않겠지... 뭐... 불에 기름 붓기라고 알지? 과...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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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gicboy 2007/11/29 00:18

    42개 학생회장 사건(?) 기사에 제 모교의 이름도 끼여있길래 어이가 없어서 게시판을 돌아다녀봤더니 더 가관이더군요. (어이가 없다기 보다는 너무 경솔하게 움직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

    학생회장 선거를 할때.. 이명박씨가 지원 유세(?)를.. 친히 나왔더군요...;;;
    그래서 학생들의 반발이 있자.. 정치적인 활동은 절대 하지 않겠다라는 공약까지 내걸었다더군요. .. 그래놓고는 이번에 혼자 홀라당 서울 와서 열심히 사진찍고 돌아다녔더군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11/29 00:47

      이런 그러셨고만요.. ;;;
      저 어린 학생들이긴 하지만 너무 경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학생회장이란 위치가 그렇게 함부로 움직여서는 곤란하겠다 싶기도 하고... 다소간은 대표성을 남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그런 속사연이 있었더랬었군요. ㅡㅡ;;

  2. egoing 2007/11/29 01:42

    저의 졸필도 살짝 걸어봅니다. 그러고 보니, 엑셀에는 독재를 견제하는 메커니즘이 있군요. 순환참조 오류가 사람 엄청 괴롭히죠.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11/29 02:31

      엮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 )
      물론 예전에 읽었던 글이였지만요. ^ ^

  3. 이승환 2007/11/29 16:50

    BBK가 사실로 밝혀져도 이명박 후보 당선이 유력하더군요 -_-a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11/29 17:18

      아직 TV 합동토론회가 남았잖아요. ^ ^
      낙관적으로다가.. 별로 낙관적이되지는 않지만요. ㅡㅡ;

  4. 여형사 2007/11/30 11:00

    오죽하면 이명박이랴.. 정말 안타깝지만 뭘 어떡해 해야 현재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저 최악의 상황만은 면해야 겠다는 정도의 생각만 듭니다. 검찰수사발표와 TV 토론회만 믿고있습니다 ^^;

    덧. 네이버 정치 댓글은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로 원래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12/01 12:31

      그러게요.
      저도 검찰발표와 TV 합동토론회(선관위 주최)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덧.
      깜빡하고 있었는데요.
      여형사님 덕분에 찾아봤더니 27일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면서 풀렸더라구요. ^ ^;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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