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님의 진지하고, 고마운 논평에 대한 짧은 답글...

1.
저도 요즘 뉴라이트의 발흥과 그들의 비이성적인 태도에 대해 조금 생각 중입니다.
주류나 엘리트로 분류됐던 점잖은 인사들이 그들의 당파성을 드러내게 된 결정적인 지점은 노무현의 집권이었다는 게 일단 제 입장이죠.
그러면 저런 댓글러들 모두 엘리트며 주류인가? 아니면 이 모두가 언제나 한국사회의 상식을 무너뜨리는데 앞장서는 좃선에게 반복학습된 결과란 말인가? 이렇게 저렇게도 단순하지 않은 현실이 우릴 생각하게 만들고 문제에 새롭게 접근하게 합니다. 하지만 어렵고 답답한 건 여전하네요. 부끄럽지만 저런 저들이 너무 싫다는 심정이 앞서는 것도 이런 문제와 끈기있게 진지하게 대결하지 못하게 하고요.

- http://minoci.net/597#comment13292 중에서



한 때 유행(?)했던 '일상 속의 파시즘'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이율배반의 주제, 그것도 소위 진보라는 가치를 가진 사람들의 배반적 모순을 가장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은 정지우 감독의 '생강'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죠,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의 '독선적인 계몽주의'나 소위 보수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의 '욕망 학습'이나 방구나 뽕이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양자 사이에 담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인 공생관계, 쉽게 말하면 역할놀이만 있고, 실질적인 대화나 토론, 혹은 (전면적인) 투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제스처만 있고, 그렇게 담론들은 마치 케이블TV의 선정주의적인 프로그램들처럼 '쇼'로서  지나가버리고, 다시 또 재생되고를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쇼는 게다가 재미도 없는 쇼죠.

그 틈 바구니 사이에서 소위 대중들은 자신의 삶과 유리된 표피적인 사상들을 마치 자신을 치장하는 악세사리처럼 수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이런 비유도 꽤 오래전부터 유행했던 표현이지만, '몸'(욕망)과 '사유'가 서로 따로 노는 이상한, 세상을 바라보는 관극틀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해요.


2.
요즘 블로그 자체에 대해 회의도 들기도 합니다. 민노씰 통해 새롭게 블로글 열게 되면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하고 싶어서 뜸을 길게 들이는 거 같습니다. 최근 여차저차한 경로로 여러 블로글 봤거든요. 특히 요리와 관련한 아줌마들의 블로그를 많이 구경해봤는데(대부분 네이버 블로그), 그들의 소통의 목마름과 보이고 확인하고 싶은 욕망에다 그들을 주고객으로 상대하는 다양한 주방가전업체의 상업적 목적과 결합해 아줌마들의 블로그는 날로 번성하는 거 같더군요. 어떤 주방가전 업체는 새로 제품 카페를 열면서 이벤트에 블로그 운영자 우대라고 명시하기도 하고요(제가 너무 이런 세계를 모르고 살았던 거 같습니다. 워낙, 나이롱 주부였거든요..;;).

- http://minoci.net/597#comment13292 중에서

블로그는 좀더 현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하고, 그것이 저는 블로그의 가능성이자 놀라운 잠재력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굉장히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 같아요. 특히나 마케팅이라는 경제적 활동의 일부에만 국한한다고 해도 말씀해주신 예시처럼 이제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만남을 '주선'했던 '매개'들은 점점 더 단축되어가고 있고, 그 매개 단축의 가장 큰 이유는 블로그의 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매개 단축적 도구로서의 블로그는 현상황에서 여전히 좀더 거시적인 매개들의 하부구조로 자리하고 있기는 하지만요(각종의 서비스형 블로그들과 이들이 운영하는 콘텐츠 유통의 구조적 얼개들).

이제 상품는 그 자체로 소비되지 않고, 그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쉽게 말해서 '문화적인 소통 구조' 속에서, 그 문화적 소통구조에 엉켜진 정치경제적인 욕망구조 속에서 유통됩니다. 그 상품이 굴뚝공장의 상품이든, 아니면 의식산업에서 생산하는 상품이든 간에, 그 편차에도 불구하고 점점더 그런 경향은 가속화되겠죠. 이제 정말 점점 더 미디어를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고 있고, 그것은 이른바 정치권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더라도 어느 정도는 자명한 것 같습니다(노무현의 발군의 미디어친화력이나 이명박의 청계천 효과,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각종의 미디어 권력간의 당파적 전투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죠).

그런 이전투구 속에서 블로그는 자신의 다양한 진실을 그 '날 것'의 목소리로, 기존 미디어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자율성'을 바탕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매우 중대한 미디어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저는 평가합니다.


추.
일시 귀국이신가요?
한국 들어오시면 연락 주십시오. 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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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그렇게, 옛날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Tracked from Skyjet의 매일매일의 감성일기 2008/09/22 22:59 del.

    우습다. 자꾸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정당화 하려는 그들의 생각이. 그들은 어쩌면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가 깊은지도 모른다. 10년 이전에는 그들은 지금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무척 많았으니까. 50여년 전, 이승만과 자유당의 독재 정권은 공산당에 버금가는 파멸의 정치를 하였다. 백색 테러가 빈발하고 오직 '자유'를 빙자한 '탄압' 뿐이었다. 40여년 전, 박정희 정권은 재벌을 비호하고, 무조건적인 개발 통치를 하였다. 서민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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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iamedia 2008/09/13 12:50

    내 안에 들었던 비슷한 고민들과 겹쳐집니다. 아마 여러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나봐요. 출구가 안보여서 그럴까요? 요즘 생각이 통 익질 않아요. 하기야 늘 설익어 있지만... 며칠 전에 적어 두었던 조금 다듬어서 그냥 올렸습니다. 어설픈대로 그냥 가보려고요.

    추석 잘 보내세요. 풍성한 보름달에 응원을 실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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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9/13 17:53

      과례는 비례라고 했는데, 주신부님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늘 고마울 따름입니다.

      주신부님께서도 늘 풍성한 마음이 가득하시길 바라봅니다.
      그 마음으로 많은 이들의 허기를 달래주시길...

  2. 이정일 2008/09/13 15:49

    민노씨, 풍성하고 행복한 한가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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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9/13 17:54

      고맙습니다. : )
      순디자인도 나날이 발전하시길 기원드립니다.

  3. 깊은밤 2008/09/15 21:12

    헉..포스팅을 다 하시다니...
    단순하고 뻔한 댓글을 진지하게 받아서 이렇게 응대하시는군요.:)

    제가 민노씨 블로그를 찾는 이유도 그렇고, 저역시 블로그의 잠재력에 무게를 두는 쪽입니다. 최근 여러 블로그 체험기에 대해 여기서 사귄 친구(천리안 하이텔 동호회 커리어를 가진)와 종종 이야길 나눠보면, 그 친구는 부정적인 추를 더 놓더군요. 결정적인 건 황우석과 디워 사건. 영화공부하는 친구라 특히 디워의 경운, 단순히 영화적인 평가를 한 것 뿐인데도 그녀의 지인은 끔찍한 댓글폭력에 시달렸던거죠.
    블로그, 인터넷은 항상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기능하는 것이니까요. 그들(네티즌)을 현재 한국사회의 구체적인 정치, 사회, 문화적 맥락과 무관하게 인터넷의 역기능이니 어쩌니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그래서거든요. 아시겠지만 블로그의 매체적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그 매체를 사용하는 이들은 자신의 현실로부터 생산된 의식으로 발언하고, 그 결과물도 많은 부분 그러한 의식을 체계화하는 시스템 속으로 재포섭되지 않나 하는 거죠.
    작년 초였나요. 한겨레에 작가 유재현씨가 쓴 <인터넷에서 민주주의를 구출하라>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96574.html 를 읽으면서 이미 든 생각이기도 하지요.
    그의 글은 그 닭장같은 인터넷 공간에서 비어져나오는 '날 것'의 '다양한 진실'이라는 '상대적 자율성'에 초점을 두고 있진 않죠.
    거대한 체계를 상대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담론에 매여 묵시록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영웅을 기다리거나 영웅이 못돼 몸부림치기보다는(최근에 본 다크나이트가 떠올라서요;;), 블로그의 일상이 가능하게 한 각자의 진지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는 것, 그리고 서로 접속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은 아니겠지요.

    이 최대한은 아니라는 생각이 제겐 항상 지배적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잠재력 중 하나야. 그걸 여는 하나의 열쇠야. 그런데 지금은 조금 바껴가고 있는 듯 하네요.
    그 친구가 역설하듯, 블로그만으로는 안된다는데 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다양을 대변할 만한 어떤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타나더라도 다양의 자율성이 자본의 힘에 포섭되는 만큼 특정한 정치권력에 포섭되는 것 역시 나쁘다는게 제 입장이라서요.

    좀더 생각이 정리되면 저도 어딘가에 새롭게 포스팅을 하죠.^^
    저는 일시(?)출국했었고요, 완전귀국입니다.;;ㅎㅎ
    들어가면 연락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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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9/13 18:02

      황우석과 디워는 꽤 의미있는 변별점을 갖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양자간의 유사점도 상당하기는 하지만요. 저는 디워에 한정해서는 '공격적인 계몽주의'랄까요? 그런 경향에 대해서도 우려합니다. 특히나 진중권의 방법론에 대해선 굉장히 비판적이죠.

      문화적인 텍스트를 다루는 담론의 방법론으로는 너무 공격적이고, 너무 배타적이라서, 그 방법론의 궁극적인 목적을 배반하는 것은 차치하고, 도무지 왜 이렇게 떠들어야 하는건지를 모를 지경으로 나아간 것 같아요. 일종의 집단적인 해프닝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와 비교한다면 황우석 사태는 정말 중대하고, 거대한 함의를 갖고 있죠.

      말씀하신 그 일상 속에서 오히려 진정한 영웅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영웅들은 영웅들의 신화를 거절하는, 영웅을 탈권위화시키는 반영웅의로서의 '집단적인 영웅'이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 가운데서 새로운 에너지들이 비약적으로 표출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추.
      그런데 블로그는 새로 안만드시나요?
      언제라도 말씀해주세요.
      제가 부족하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

  4. 깊은밤 2008/09/13 20:24

    집단적인 영웅이라... 제게 중요하고 의미있는 말씀을 해 주시네요.

    아, 블로그 만들어야죠. 민노씨 도움받아서 만드는 블로그, 조금 무겁게 느껴지네요.: )
    메일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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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Mr.Met 2008/09/17 23:17

    너무 좋은 글들이네요.
    블로그의 미래..
    저 또한 요즘 고민입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길게 쉬기도 했지만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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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9/18 13:05

      앞으로 종종, 함께...
      그 고민을 즐거운 대화 재료로 삼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 )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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