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라이터 자살방조 사건 - 미필적 고의와 그 판단
2008/04/13 08:05
Posted by Posted in " 법/판례들 "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그럼, 그냥 죽어라. 죽을 테면 죽어봐”라고 말하면서 라이터를 건네 줄 당시 피해자가 이를 이용하여 분신하여 자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위와 같은 행위를 한 경우의 판결.
피고인과 사귀고 있는 ***의 예전 남자친구인 피해자 000(26세)이 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채 찾아와 피고인과 위 ***가 탑승한 차량을 가로막으며 흥분하여 “***가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보는 앞에서 죽어 버리겠다. 정말 몸에 불을 붙이겠다.”라고 말하자 동인에게 “그럼, 그냥 죽어라. 죽을 테면 죽어봐.”라고 하며 소지하고 있는 라이터를 동인에게 건네주어 동인으로 하여금 위 라이터로 몸에 불을 붙이게 하는 등 동인이 자살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같은 해 12. 12. 21:50경 서울 강남구 대치4동 **** 병원에서 동인이 화염 화상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 등으로 사망함으로써 동인의 자살을 방조한 경우의 책임
- 출처 : 대법원 전국법원주요판결
피고인과 사귀고 있는 ***의 예전 남자친구인 피해자 000(26세)이 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채 찾아와 피고인과 위 ***가 탑승한 차량을 가로막으며 흥분하여 “***가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보는 앞에서 죽어 버리겠다. 정말 몸에 불을 붙이겠다.”라고 말하자 동인에게 “그럼, 그냥 죽어라. 죽을 테면 죽어봐.”라고 하며 소지하고 있는 라이터를 동인에게 건네주어 동인으로 하여금 위 라이터로 몸에 불을 붙이게 하는 등 동인이 자살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같은 해 12. 12. 21:50경 서울 강남구 대치4동 **** 병원에서 동인이 화염 화상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 등으로 사망함으로써 동인의 자살을 방조한 경우의 책임
- 출처 : 대법원 전국법원주요판결
이하 판결문 재구성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 판결
사건 : 2007고합342 자살방조
판결선고 : 2008. 4. 2.
검사 : 이문한
*** : 피해자의 옛 애인. 피고인의 현재 애인.
### : 피해자. ***의 옛 남자친구.
피고인 : ***의 현재 남자친구.
1. 범죄 사실
2007년 9월 5일 새벽 3시 35분경 서울 송파구 잠실동 도로상.
피고인과 사귀고 있는 ***의 예전 남자친구인 피해자 ###(사망)은 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채 찾아와 피고인과 ***이 탑승한 차량을 가로막으려 흥분하여 소리쳤다.
"***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보는 앞에서 죽어 버리겠다. 정말 몸에 불을 붙이겠다"
이에 피고인(현 ***의 애인)은
"그럼, 그냥 죽어라. 죽을테면 죽어봐"
라고 하며 소지하고 있는 라이터를 피해자에게 건네주어 동인으로 하여금 몸에 불을 붙이게 하는 등 자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결국 피고인은 같은 해 12월 12일 오후 9시 50분 경 서울 강남구 모병원에서 피해자가 화염 화상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 등으로 사망함으로써 동인의 자살을 방조하였다.
2. 쟁점 판단
ㄱ. 피고인(및 변호인) 주장
라이터를 건네준 사실은 있으나, 피해자가 이를 이용 분신자살할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으므로 피고인에게 자살에 대한 방조의 범의(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ㄴ. 판단
자살방조죄(252조 제2항)는 자살하려는 사람의 자살행위를 도와주어 용이하게 실행하도록 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이다. 그 방법에는 자살도구인 총, 칼 등을 빌려주거나 독약을 만들어 주거나, 조언 또는 격려를 한다거나 기타 적극적, 소극적, 물질적, 정신적 방법이 모두 포함된다. 이러한 자살방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 방조 상대방의 구체적인 자살 실행을 원조하여 이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의 존재 및 그 점에 대한 행위자의 인식이 요구된다(대법원 1992. 7. 24. 선고. 92도1148 판결).
그리고 범죄 구성요건의 주관적 요소로서 미필적 고의라 함은 범죄사실의 발생 가능성을 불확실한 것으로 표상하면서 이를 용인하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하려면 범죄사실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있음은 물론 나아가 범죄사실 발생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한다.
그 행위자가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용인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 행위자의 진술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행위의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하여
- 일반인이라면 당해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고려하면서, 행위자의 입장에서 그 심리상태를 추인하여야 한다(대법원 2004. 5. 14. 선고 2004도74 판결 참조).
앞서 든 증거에 의하면
a. 피해자는 2007. 3경 피고인의 여자친구인 ***와 헤어진 후 여러 차례 ***를 찾아와 "나와 헤어지면 네 앞에서 죽겠다."라는 말을 하였고, 이를 알게 된 피고인도 이 사건 범행 전에 ***와 함께 피해자를 만났던 적이 있는 사실.
b. 이 사건 범행 당일 술에 취한 피해자가 휘발유를 준비하여 피고인과 함께 PC방에 있던 ***를 근처 놀이터로 불러내서 "너 보는 앞에서 죽을테니까 평생 후회하며 살라"라고 말한 사실.
c. ***가 PC방으로 돌아가자 피해자가 휘발유를 몸에 끼얹은 채 피고인이 있던 PC방으로 찾아왔고, 강한 휘발유 냄새를 맡은 PC방 주인이 경찰에 신고까지 한 사실.
d. 피고인과 ***가 PC방에서 나와 피고인의 차에 탔으나, 피해자가 피고인의 차를 막아선 채 "죽어버린다. 몸에 불을 붙이겠다."라고 말한 사실.
e. 피고인이 차를 후진하여 가려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계속 따라붙자,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그럼, 그냥 죽어라. 죽을 테면 죽어봐."라고 말하며 창문을 열고 차 안에 있던 라이터를 피해자를 향하여 던져준 사실
f. 피고인이 건넨 라이터를 받은 피해자가 30초 정도 머뭇거리다가 몸에 불을 붙였고, 결국 화염 화상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 등으로 사망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이 사건 범행의 경위 및 형태와 당시 당황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그럼, 그냥 죽어라. 죽을테면 죽어봐"라고 말하면서 라이터를 건네 줄 당시, 피해자가 이를 이용하여 분신자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위와 같은 행위에 나아갔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피고인에게는 적어도 피해자의 자살를 방조한다는 점에 대하여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 할 것이다.
(결국) 피고인 및 변호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3. 양형이유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여러 차례 자살의사를 표시하였던 피해자가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있음을 알았음에도 피해자의 자살을 충동질하는 언사를 하고 분신에 이용될 수 있는 라이터를 건네주어 결국 피해자가 자살에 이르게 한 것이므로 그 죄질과 범정이 매우 중한 점, 피해자의 유족에 대하여 사죄나 피해 변제가 전혀 이뤄지지 아니한 점,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반성이 충분하지 아니한 점, 그 밖에 피고인의 나이, 성행, 가족환경 등 이 사건에 나타난 모든 양형조건을 고려하여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
4. 주문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판사 조현일(재판장) 이상헌 김은경
단상들...
1. 사건은 그야말로 극단적이고, 자극적이다. 우리시대의 한 단면을 그대로 함축하는 것 같다. 물론 젊은이의 혈기와 객기, 광적인 집착과 맹목적인 연애감정은 시대 불문이긴 한다. 하지만 정말 이런 일이 있구나 싶은 생각... 이런 일이 지금/여기에서 벌어지고 있구나.. 싶은 생각 어쩔 수 없이 든다. 마치 가스파르 노에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새벽에 벌어졌을 장면들,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2. 망자의 (살아생전) 심정에 공감하는 독자들 여럿 계실줄로 안다. 나도 그 중 하나다.
피고의 심정에 공감하는 독자들 여럿 계실줄로 안다. 나도 그 중 하나다.
사건과는 직접적인 상관없는, 하지만 사건의 중심에 있는 '그녀'의 심정에, 물론 이건 그저 막연한 추정, 상상에 불과하긴 하지만, 공감하는 독자들도 여럿 계실줄로 안다. 나도 그 중 하나다.
3.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 같다.
한 목숨이 스스로 저버렸다.
이를 적극적으로 방조한 자가 분명히 존재한다.
어쩔 수 없다.
책임을 지는 수 밖에.
4. 자주 인용하는 김현
어떤 경우에도 자살은 용납될 수 없다.
살아서 별별 더러운 꼴을 다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삶이니까.
살아서 별별 더러운 꼴을 다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삶이니까.
5. 망자의 명복을 빌고...
남겨진 그녀에게는 씩씩하게 이 고통을(그런데 솔직히 이건 그저 상식적인 상상일 뿐이지만) 이겨내길 당부하고, 끝으로 자신의 경솔함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할 그 젊은 친구에게도 짧은, 나조차도 스스로 그 정체를 알 수 없을, 위로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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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자살은 결국 남겨진 자들의 몫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죽은 사람 부모님 마음은 어떨까- 정말 나쁜 사람이예요. 에휴... 하지만....저 세상에서는 평화롭길 빕니다. 아멘 -
그러게요.
처음에는 그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눈길이 머무는 판례였는데, 그렇게 세속적 호기심으로 읽어내려가다보니.. 아주 예전.. 먼 옛날의 추억들도 떠오르고... 물론 그 정도야 훨씬 덜했지만요.. 그 마음은 충분히, 그 세명 모두에게 감정이입된달까.. 그랬습니다.
라이터를 건내준 것이 커다란 포인트가 되는가요? 경찰서에서 살다보니 직원들이 공부하는것을 어깨넘어로 많이 보게 됩니다, 미필적 고의나 자살방조, 익숙한 단어들인데요~ 큭큭 흥미로운 글 잘 봤습니다^^
아무래도 그렇죠.
그리고 사건 행위 전후의 '객관적'(확인된) 정황도 고려되구요.
형법상 고의(미필고의 당연 포함)를 인정하는 것은 주관적인 행위자의 진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와 확인된 정황에 의한다는 가장 기초적인 판단준거를 보여준 판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사건의 정황이 워낙 극적이다보니 딱딱한 판결문이 아니라 건너건너 친구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네요. 그리고 오죽하면 망자가 저랬을까 하는 심정도 들고...피고인은 또 왜이렇게 미운 놈이란 생각이 드는 것인지! 이건 뭐 제가 판결을 하는 입장이 아니니 누가 뭐라고 할 수 없겠죠;;
하지만, 이런 일은 다른 방식으로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는 사건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대는 여러 번의 사랑을 경험하지만, 개인에겐 이토록 절실한 사랑은 어쩌면 평생 단 한번일지도 모르니까요. 죽음으로 사랑(또는 충절)을 증명하는 것...너무 무모한 방법이지만, 무모함조차 넘어설만큼의 절실한 심정을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망자에게 좀더 감정이입이 되시나 봅니다. ^ ^;
저도 굳이 말하자면, 망자에게 좀더 감정이입이 되는 편이긴 한데.. 피고인과 '그녀'에게도 마음 고생이 오죽 심했으면 저랬을까.. 싶은 생각도 들구요. 말씀처럼 그 구체적인 사정을 모르는 바에야, 안다한들, 그것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한 것인 바에야,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굳이 사랑이라는 표현 대신, 연애감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은데요. 물론 방구나 뽕이나 싶긴 합니다만... ^ ^;; 그 연애감정는 정말 '어느 한 때' 맹목성과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동반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자기 안의 욕망만이 있고, 사랑의 필요적 요소인 '관계'가 없는 점에서 사랑과는 구별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쿤데라, 혹은 이성복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사랑(연애감정)이 이토록 매혹적인 것은 그것이 갖는 '불가피성'에 있다... (동어반복적 수사인데.. ㅎㅎ 그래도 가슴에 와닿는 표현이더랍니다..)
흥미있는 제목이라 혹하여 끝까지 읽어보았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네요..
세상을 뜬 분에 대해서도 참 슬푸고 비통하게 생각하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라이터를 던져준 젊은이도 참 안타깝네요.
사람 한 길 속 모른다지만, 설마하니 진짜 악에 받쳐서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 던져준 건 아닐텐데..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으려 하지 않을텐데 설마, 설마 했지 않았을까하고... 실형 받은 것보다, 평생 자기가 한 사람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고생할 것 같아 참 마음이 그렇습니다.
구독한 지는 꽤 되었는데 댓글은 처음 달아보네요^^
그렇죠..
마음이 참 그렇습니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앞으론 가벼운 마음으로 종종 댓글 주시면 좋겠어요. ^ ^
레이님 블로그도 잘 구경했습니다.
저도 종종 방문할게요. : )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연의 아픔을 겪어 보게 되지만 극복하는 과정을 다 다른것 같습니다. 저도 첫사랑과의 결별이후에 너무나도 힘들어했던 기억이 나네요. 며칠동안 저렇게 눈앞에서 "자살"이라고 공공연히 떠들어 되던 사람에게 라이타를 던져 주는 건 솔직히 이해가 안 갑니다. 물론 설마라는 생각은 있었겠지만 설마하는 마음 가짐을 가지고 사람의 목숨을 장난처럼 대하면 안되겠지요. 정말 안타깝네요.
돌이킬수 없는 에서의 지하도로(?)씬은 정말 잊혀지지 않습니다.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던것 같네요. 덕분에 밤 중에 외길을 거닐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이 제일 무섭더군요. ㅋㅋ
그런 추억이 계시군요.
많은 분들께 그런 추억 하나 둘 쯤은 계실 것 같아요.
돌이킬 수 없는... 굉장한 영화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