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반 일지 : 1차 정리

2011/01/03 11:18
정리된 일지를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면 좋겠다. 카페( http://cafe.daum.net/duriban )에도 정리된 일지는 없는 것 같다. 일단 여기에 틈틈히 정리해볼까 싶다. 의미있는 부피로 업데이트하면 일자를 바꿔 재발행한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귀찮아지면 안할지도 모른다. 그런 때가 오면 누군가 자료를 보태서 이어주시면 고맙겠다.


<두리반 일지>

2005년 두리반 개업. 당시 주변 평당 시세 800만원 (현재 시세. 평당 1억원)

2006년 3월 마포구청장, 두리반 일대 지구단위계획지역 발표

2007년 늦가을. 부근 건물이 팔린다는 소식. "두리반 건물도 팔리느냐"고 집주인에게 문의, 주인은 절대 아니라고 펄쩍! ㅡ.ㅡ;

2008년 2월 명도소송장

2009년 12월25일 밤. 철판을 뜯고 들어와 농성 시작

12월29일.  
- 유채림(두리반 안종녀 사장의 남편. 소설가)의 일지 낭송 발췌
춥다. 지하철 공사에서 전기를 끌어주지 않았다면 얼어죽을 판이다. 매번 뼈저리게 느끼는 바지만, 사람 농사야 말로 어마어마한 자산이다. 오후 1시 경 경찰이 다녀감. 두리반 세를 파악하고, 분위기를 파악하려는 듯 하다. 바야흐로 올 것이 온 모양이다. 용역들이 경찰 입회하에 (우리를) 끌어내기 위해 계속 압력을 넣은 거고, 그래서 경찰이 세를 파악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경찰의 집요한 물음 대신 도대체 몇 명이 우리를 끌어낼 것이냐고 되물었다. 지난 번 '집달'일 때처럼 30여명이 들어 올거라고 말했다. 경찰이 가고나자 입술이 탔다. 그때부터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야 하는데, 하얗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촛불예배 때 만난 김종수 목사께, 그리고 화천에 있는 후배 한용걸 수사한테 전화를 했다. 용걸이는 벌써 서울에 도착했다고 했다. 단비같은 소식이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안된다. 아들 등하한테 엄마, 아빠 연행될테니까(목이 매여 잠시 낭독이 끊김), 풍경이(애완견 이름) 밥 챙겨주라는 문자를 남기는 중에도, 하나님은 견딜만큼만 시련을 줄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한다. 몇 분 간격으로 김종수 목사님이 한용걸 신부와 김신부, 그리고 또, 오지는 못할 거라고 상상했던 후배 평론가 조성면이 찾아왔다. 곧이어 진보신당 정경석 위원장이 찾아왔다. 이제는 좀 안심이 된다. 피시방으로 달려가서 박일환 시인이 작성해서 보내준 한국작가회의 성명서를 뽑아왔다. 마침 마포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찾아왔다. 작가들을 담당하는 형사이다. 그가 성명서 한장을 얻어갔고, 다른 한장은 인쇄소 사모님이 마스터 뜨겠다고 가져갔다. 정보과 형사는 정보과장을 대동하여 30분 쯤 후에 다시 방문했다. 우리의 배후에 어떤 조직, 어떤 단체가 있을지 궁금했을 것이다. 정보과장은 진정성이 느껴질 만큼 한국토지신탁에 압력을 넣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서는 정도지 더는 어쩌지 못할 것이다. 아슬아슬한 것, 그러나 무너지지 않도록 해주시는 분, 이 상황에서 내가 기댈 수 있는 분이 누구겠는가, 하나 무너져 질질 끌려 나간들, 그 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야 있겠는가. 슬프다, 나의 신을 떠올리면, 내가 따따부따 돌리나의 처지를 알면서도 더는 어쩌지 못한 마음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만약 끝난다면 할 일이 있다. 천분의 일이나 될까? 철판을 뚫고 들어와 지금까지 견딜 수 있는 세입자가... 하여 용산처럼 사건이 터진 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막기 위해 선전하고 돕는 일을 해야겠다. 글쟁이가 무엇으로 돕겠는가. 글로 정리하고 글로 선전하는 일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아, 눈물겨운데, 아슬아슬하게 참았습니다.
이상입니다.

*민노씨 주 : 아래 동영상을 보고 옮겨 적은 것이라서 부정확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ㅡ.ㅡ;
- 동영상 출처 : [두리반 100일] 농성일지 낭독

2010년
2월. 두리반 공연 시작

2월15일. 박홍섭 마포구청장 방문.
 - 박홍섭 구청장의 블로그 관련글
  '서울시의 난개발과 서밀 보금자리에 관한 단편'  

 - 유채림의 관련 인터뷰, “두리반, 즐겁게 노래하며 싸운다” (레디앙)
  ... 당선되신 분이 지난 2월에 여기에 와서, 이전 자기 임기 때 자신이 이 사업을 결정해서 피해자가 발생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속으로는 ‘패가망신 시켜놓고 사과 한 마디로 될 일인가’ 생각 들었지만, 웃고 말았죠.”
 - “지금 민주당 당선자가 예전에 구청장이었고 그 사람이 이 사업을 결정한 거네요. 그러면 민주당이 결정하고 한나라당이 집행한 거네요?”(레디앙 이재영 기획위원) 
- “아뇨, 지금 민주당 당선자가 예전에는 한나라당 구청장이었어요. 한나라당 재공천을 못 받고 4년 쉬었다가 이번에는 민주당으로 공천받아서 당선된 거죠.” (유채림)

5월1일. 62개 밴드 합동공연(3천여 명 참여)

7월21일. 시행사 남전디앤씨 요청으로 한전에서 전기공급 중단.

 - 에너지기본법 제 4조에서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공급자는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게 에너지가 보편적으로 공급되도록 기여하여야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구청이나 한전 측에서 무단으로 전기를 끊는 것은 일단 이 법에 어긋나는 것이지요. 또, 한전에서 제시하고 있는 “전기공급약관”을 살펴보니 제 8조에 “건물소유자가 전기사용계약의 해지를 신청할 경우에는 전기수급거래 당사자인 사용자의 동의 없이는 해지할 수 없습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지난 2005년에 당시 산업자원부에서 전력을 사용하는 실사용자를 무시하고 건물주가 전력공급을 차단하는 사건을 막기 위해서 이러한 내용으로 법령을 바꾸었다고 하는데요, 이를 보면 한전은 자신들의 약관마저 어기고 있으며, 전기사업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두리반대책위원회에서는 이 내용을 가지고 한국전력 서부지점에 전력공급 중단의 취소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관련 인터뷰. 마포 속으로, 송덕호의 빰싹 시사 속으로 중에서)

7월2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단전사태 해결 위한 긴급구제 신청.
 - 관련기사 : 레디앙, 두리반 단전 22일째, 인권위 ‘수수방관’  

7월26일. 두리반 대책위원들이 마포구청에 들어와서 5일간 농성

7월29일. 한전 측의 전기공급 거부의사표명

7월31일. 마포구청장과 두리반 대책위원들의 만남

8월1일. 10Kw 경유발전기와 경유 제공

8월4일. 경유 소진, 구청측에서는 추가적인 경유제공은 불가 통보

8월5일.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 두리반에 태양광 발전기 설치

8월9일. 윤성일 위원장 1인시위, 대중투쟁으로 확대운동

8월12일. 경향신문 의견광고 거부
 - 유채림 작가는 13일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어제(12일) 저녁 <경향신문> 광고국장이 전화를 걸어와 광고를 실을 수 없다고 했다”라며 “광고국장에게 ‘한전이나 마포구청 때문이냐’라고 묻자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고, ‘혹시 GS건설 때문이냐’라고 묻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렇게 봐도 될 것 같다’라는 답변을 들었다”라고 밝혔다.(레디안 관련기사 중에서)

12월24일. 두리반 농성 1년
 - 유채림 인터뷰
 - 두리반 농성 1년 선언문
두리반 농성 1년 선언문 '막개발을 멈춰라'

두리반은 이상을 꿈꾸지 않았다. 두리반은 현실에 살고자 했다. 두리반을 비롯한 마포구 동교동 167번지 일대 상가세입자들은 2009년 8월 GS건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 적이 있다. “우리는 GS건설의 보상으로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인근에 점포를 얻게 해달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무참히 짓밟혔다. 2009년 12월 24일 GS건설은 두리반을 메마른 사막으로 내동댕이쳤다. 아무런 사전 통지 없이 철거용역들이 들이닥쳐 두리반을 사지로 내몬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두리반 농성이 1년이 지났다. 지난 7월 21일 끊긴 전기는 아직도 들어오지 않는다. 용역들을 동원해 불법적으로 전기를 끊은 GS건설이 한국전력 서부지점에 공급해지를 요청한 것이다. 전기 실사용자인 두리반의 동의를 얻지 않고 전기를 해지해 자신이 만든 전기공급약관조차 어긴 한국전력은 오히려 두리반에게 도전(盜電)할 것을 은근히 종용했다. 그러나 두리반은 도전하지 않았다. 농성 1년이 되는 오늘까지 두리반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폭염과 싸우던 두리반이 이제는 영하 15도의 혹한과 싸우고 있다. 전기난로나 전기장판도 사용할 수 없고,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두리반이 왜 이다지도 구차한 철거싸움을 1년 넘도록 하고 있는가? 답은 아주 단순하다. 싸우지 않고서는 그 어떤 권리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도정법에 있는 영업보상 4개월과 시설투자비에 대한 보상의 의무조차 무시하고 이사비용 3백만 원만 운운해온 GS건설, 두리반 일대를 지구단위지역으로 발표함으로써 투기꾼의 먹잇감이 되도록 한 점을 사과하고 두리반 사태 해결 때까지 전기공급을 하겠다던 약속 대신 경유발전기만 던져준 마포구청, 전기공급 약관까지 어겨가며 GS건설의 눈치만 보고 있는 지지리도 못난 철밥통 한국전력, 이런 것들과 싸우지 않고서는 권리는커녕 최소한의 자존감조차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개발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구원한다는 신앙이 지배하는 이 땅에서 개발의 방해가 되는 철거민과 농민, 그리고 무수한 생명들은 배제되고 죽어가기 마련이다. 인권과 생명을 짓밟는 21세기 한국의 개발정책에 맞서는 두리반은 성미산을 지키기 위해 연대했고, 죽음의 4대강 사업을 막기 위해 힘을 보탰다. 또한 억울하게 쫓겨난 철거민들과 연대해 지금도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는 무자비한 재개발 사업을 막기 위해 온힘을 기울였다. 한국사회는 개발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철거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워 감옥에 가두고, 터져 나오는 불만은 돈을 적당히 주어 억누르거나 아예 자본권력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경찰력을 비롯한 공권력을 강화해 철거민의 숨통을 조인다. 용산참사를 겪은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개발자본은 국가와 결탁하여 도처에서 버젓이 막개발을 자행한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안중에도 없다. 두리반은 억눌려터지고 있는 용산의 또 다른 얼굴이다.

365일간 개발에 맞서온 두리반은 옛날 호롱불 하나 밝혀놓고 살아가던 사람들처럼 흐릿한 불빛 아래 둘러앉아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노래도 같이 부른다. 같이 기도도 하고, 게임도 하고 때로는 농성의 방향에 대해 치열한 밤샘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길고 고달픈 농성장의 하루가 끝날 때쯤인 저녁 7시 30분이 되면 하루의 피곤함을 씻어줄 행사들이 열리고 새로운 활기가 이곳에 차오른다. 음악회, 다큐상영회, 문학포럼 등등의 이름으로 우리는 두리반 농성장을 1년 동안 지켜왔다.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만큼 다양한 실험들이 이뤄졌다. 오직 개발만이 우선인 이 체제와는 다른 가치와 질서로 두리반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2009 년 12월 25일 밤 안종녀와 유채림 부부가 두리반 철제펜스를 뜯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곳은 지금까지 어떻게 방치되고 있었을까? 홍대근처 도심의 버려진 흉물이 되어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공사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포클레인의 굉음이 뒤덮었을 것이다. 콘크리트 정글로 삭막함만을 더했을 것이다. 그런 곳에 꽃이 피어났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모욕과 절망을 느끼기에 충분했을 낱낱의 시간들을 견디며 이곳에서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며 누군가는 또 사랑을 나누었다. 두리반은 그렇게 아주 조그마한 세상을 만들고 엮어온 셈이다. 이윤이나 경쟁 같은 기존의 가치들로는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어 그 출발부터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던 곳에서 연약하지만 끈질긴 꿈을 꾸어온 셈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두리반은 희망이다. 아마 개발로 뿌리 뽑히고 짓밟히는 많은 삶들에게 두리반은 큰 희망을 머금고 있을 것이다. 농성 1년을 맞이한 이 저항의 현장에서 우리는 소박하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한국전력은 두리반에 당장 전기를 공급하라
2. GS건설은 철거용역깡패를 통한 폭력을 멈추고 두리반과 대화에 응하라
3. 마포구청은 수수방관하던 태도를 버리고 두리반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여라
4. 생명이 아닌 건설자본만의 이윤을 위한 개발을 멈추어라

1년간 농성을 하며 외쳐온 이와 같은 두리반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이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알 수 없으나 두리반은 비정한 시대의 폭력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이다.

2010년 12월 24일
두리반 강제철거 반대 대책위원회



<두리반 관련 법규, 약관>
도시환경정비사업법
상가임대차보호법
에너지기본법 4조
한전 '전기공급약관'

<두리반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67-31 1층 두리반 (우편번호 121-818)

<두리반 후원계좌>
제일은행 300-20-472275 (예금주 안종녀)

*추.
두리반 안종녀(려) 사장님 : 어떤 기사(프레시안)는 안종녀로, 어떤 기사는 안종려로 기록. 어떤게 맞지?
=> 확인 : 김슷캇님의 친절한 조언에 따르면 "안.종.녀"가 바른 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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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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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노씨 2011/01/03 11:09

    지난 해 크리스마스 이브 처음 두리반에 가봤다.

    '두리반식 투쟁' '두리반식 싸움'이라는 멋진 표현에도 불과하고, 두리반 싸움 1년을 기념하는 그 자리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 내심 좀 아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워낙에 날도 춥고,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뭐.

    또 한편 나 같이 무관심했던 사람이 그런 아쉬움이나 푸념을 늘어놓을 자격이 되나, 그런 눈꼽만한 양심도 생기고...

    암튼 '더나은 사람들' 인터뷰를 세 개 했는데, 오늘에야 그 중 하나를 편집했다. 관련해서 이런저런 두리반 기사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건, 지금까지의 경과를 한 눈에 살펴볼 정리된 일지가 찾아지지 않더라.

    그래서 쓰는 글. 별 내용 아니라서 댓글창에다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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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민노씨 2011/01/03 12:25

    * 유채림 인터뷰 링크 보충
    http://minoci.net/1203

    : 클마스 이브에 한 두리반 인터뷰들 가운데 하나.

    perm. |  mod/del. |  reply.
  3. 민노씨 2011/01/03 13:33

    * 두리반 활동가이자 뮤지션인 조약골님께서 나은씨를 통해 '일지'에 관한 정보를 주심.

    다음카페 > 소식지 > 3호 > 6,7 페이지
    http://cafe.daum.net/duriban/9LvX/51

    perm. |  mod/del. |  reply.
  4. 김슷캇 2011/01/04 00:40

    안종"녀"가 맞아요.
    1주년임에도 불구하고라고 아쉬워 할 것 없는 게 두리반 같은 경우엔 항상 그 정도의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날 참가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매일 그곳에 오는 사람들이니까요. 어쩌다 보니 준비를 잘 하지 못한면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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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01/12 09:48

      그렇구먼요. :)
      슷캇님 말씀을 들으니 괜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쉬워한 것 같아서 민망한 기분이 드네요.
      항상 두리반을 든든하게 지켜주시길 바라고, 저도 아주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5. 민노씨 2011/02/08 00:06

    * 사소한 보충

    두리반 농성 1년 선언문 옮겨 붙임.

    perm. |  mod/del. |  reply.
  6. 민노씨 2011/02/11 14:02

    * 재개발사업 권리금 보상의 공법적 검토
    허강무 _ (재)한국부동산연구원 연구위원, 법학박사
    http://www.kapanet.or.kr/kapabook/95/PDF/20100102_08_FOCUS%201.PDF

    perm. |  mod/del. |  reply.
  7. 민노씨 2011/02/11 14:02

    * 알렙(aleph_k) 콜데라(coldera)님 등과의 대화

    http://aleph-k.blogspot.com/2011/02/blog-post_3562.html?showComment=1297399474483#c4541723769380045077

    perm. |  mod/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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