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저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판례들의 사실 관계와 (교양법학 수준의) 기초적인 법리적 쟁점을 판결문을 통해 정리하고, 그 판결문 속에 있는 '사람'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고자 하는 취지로 소박하게 적어보는 글에 불과합니다. 꾸준히 연재하려고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쓰네요. 지식이 일천한 탓에 잘못 서술(정리)된 부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에 대해선 조언을 당부드립니다.




2008도7102 근무기피목적위계

피고인 : 홍길동(가명)

상고인 : 검찰관
변호인 : 김변호(가명)
원심판결 : 고등군사법원 2008. 7. 29. 선고 2008노42 판결
판결선고 : 2008. 10. 9.


 

이하 읽기 쉽도록 판결문 재구성.

0. 판결문을 토대로 한 사실 (및 추정)

피고인 홍길동(가명)은 지능지수가 85인 병사다. 홍길동은 인지적 자원의 부족, 대처능력 등의 저하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복무부적응자로 분류되어 특별관리를 받고 있는 상황이있다. 홍길동은 때로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 동료병사(아마도 고참병)에게 마땅히 변명할 말이 없어 "그렇게 하면 전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전역을 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라고 충동적으로 말을 하게 되었다.

이후 그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 부대 간부들 및 부대 병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할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근무기피 목적으로 옷을 입은 채 용변을 본 것이라고 계속하여 허위의 자백을 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 경과

ㄱ. 검찰관은 홍길동(가명)을 군형법 위반(근무기피목적 위계)으로 기소.
ㄴ. 제1심은 유죄판결
ㄷ. 원심(고등법원)은 홍길동은 무죄 판결(1심 파기).
ㄹ. 이에 검찰관이 대법원에 상고.

- 참고. 군형법 41조 2항.

제41조 (근무기피목적의 사술)

① 근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신체를 상해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의하여 처벌한다.
1. 적전인 경우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 기타의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근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가병 기타 위계를 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의하여 처벌한다.
1. 적전인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 기타의 경우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2. 쟁점 : 자백의 신뢰성(증거능력)

1) 피고인 홍길동(가명)의 제1심법정에서의 자백이 항소심에서의 법정진술과 다르다는 사유만으로는 그 자백의 증명력,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할 수 없다(원칙론)(하지만 이번 사안의 경우에는 그 증명력을 부정했다. 그 판단기준이 되는 표준들은 다음과 같다).

2) 자백의 신빙성 유무 판단 (기준)

ㄱ. 자백의 진술 내용 자체가 객관적으로 합리성을 띠고 있는지 여부 (본 사안)
ㄴ. 자백의 동기나 이유가 무엇인지 여부 (본 사안) 
ㄷ. 자백에 이르게 된 경우
ㄹ. 자백 이외의 정황증거 중 자백과 저촉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없는 지 하는 점
ㅁ. 피고인의 자백에 형사소송법 제309조 소정의 사유 또는 자백의 동기나 과정에 합리적인 의심을 갖게 할 상황이 있었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대법원 1998. 3. 13. 선고98도159판결. 대법원 2001. 9. 28. 선고 2001도4091 판결 등 참조).

- 참고. 형사소송법 309조

제309조 (강제등 자백의 증거능력)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자유롭게)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


3) '사실' 부분에 서술한 상황에서 홍길동(가명)이 (제1심에서)'허위 자백'을 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ㄱ. (왜냐하면) 검찰관이 작성한 '아무개'에 대한 진술조서는 피고인이 형사 입건된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피고인의 자백을 바탕으로 한 추측진술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변비 때문에 실수한 것이라는 홍길동의 주장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ㄴ. (결국) 진술조서만으로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 시건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다.

4) (결국) 피고인이 수사기관 및 제1심법정에서 한 자백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객관적인 합리성이 없다(즉, 이 자백을 바탕으로 상고한 검찰관의 주장을 배격하기 위한 취지).

ㄱ. 피고인이 그 간 수차례의 휴가에도 정상적으로 부대에 복귀한 점(즉, 병역을 기피하려는 목적이나 경향을 추정하기 어렵다는 점)
ㄴ.  제1심 및 원심 법정에서 피고인이 자백과 부인 취지의 진술을 반복한 점(즉, 진술의 일관성이 없는 점) 



3. 결론

따라서 피고인(홍길동)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상고기각 판결).

- 대법관 김지형(재판장), 고현철, 전수안, 차안성(주심).

 

 

 

단상

판결문 속에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존재한다.
판결문은 가장 이성적인 언어로 쓰여진 슬프고, 안타깝고, 구역질나고, 때론 피비린내 나는 드라마다.
특히나 형사판결은 더욱 그렇다.

이 글에서 짧게 소개한 사건 판결문을 읽으면서 잠시 우울해지기도 하고, 그 병사의 심정이 되어보기도 한다. 물론 그건 아주 잠깐 멍때리면서, 잠시 그 병사의 모습을 그려보는, 그 병사가 왕따가 되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는 그 모습을 어렴풋하게 그려보는 그런 것에 불과하다.

지능이 다소 떨어지는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살 권리는 있다. 포레스트 검프가 그랬다, '바보도 사랑이 뭔지는 안다고.' 포레스트 검프는 슬프지만, 따뜻하다. 그런데 대한민국판 포레스트 검프는 슬프고, 우울하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군대는 더더욱 영화가 아니다. 
그 병사가 다소 지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앞으로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가득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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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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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내냐? 2008/10/29 12:00

    마지막 문단에 그 병사의 안녕을 기원하는 착한 맘씨의 글을 남겨주신 점은 역시 민노씨답습니다만
    한국현대사회는 군대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치열하며 냉정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로서는
    저 병사의 앞날을 무턱대고 격려해줄수 만은 없군요.

    근데 요즘은 지능지수 85 도 현역입영대상인가봐요? 이거이거...
    사실 군대에서 고문관들은 본인보다 주위병사들이 더 피곤하고 힘든 경우가 많은 경우를 상기해보면 저 한국판 검프병사는
    빨리 제대시켜주는 것이 한국군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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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0/29 23:09

      논평 주신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다시 논평을 주셔서 무척 반갑습니다.

      내내님께서 우려하는 좀더 냉정하고, 비정한 한국사회의 현실을 저 역시 염려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문득 이성복이 떠오르네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기도의 방식이고, 궁극적으론 그저 스스로를 염려하는 그런 소박한 연민의 마음이지만... 그런 무력한 마음들마저 모두 사라져버리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대가 아직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제도로서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는 바에야 말씀처럼 그런 '특수한 조직'으로서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위 사건에 등장하는 병사와 같은 경우는 '기소'를 할 것이 아니라, 일찌감치 제대조치를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세어필 2008/10/29 17:00

    CSI도 아니고 (항상 마지막 결과는 범인의 자백으로 끝나죠) 자백이란 게 증거로써의 힘이 있는 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위 병사처럼 원치 않는 위증을 했을 수도 있는데 형사 고발한 측에서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아가려고 마음을 먹을 경우 자백을 적극 활용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다른 용의자를 범인으로 만들고 싶을 경우 혹은 검사측이 오히려 변호사 역할을 하는 더러운 경우에는 자백을 증거로 채택하려고도 하지 않을 테고 오히려 위증임을 증명하려고 적극 노력하겠죠.
    게다가 의도적인 거짓 자백의 경우도 문제가 되겠죠. (영화에 자주 나오죠..-_-)
    고발자와 자백자의 의도에 따라 유죄의 증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무죄의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면에서 자백은 확증은 물론이거니와 정황 증거로써 사용되기에도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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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0/29 23:14

      물리적인 증명이 몹시 어려운 사건 유형들(가령 뇌물죄와 같은)은 자백 혹은 정황, 혹은 간접적인 증거(꾸준히 기록된 장부기록 따위)가 증거로 채택되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말씀하신 구체적인 경우들처럼 복잡한 경우들도 생길 수 있을테죠.

      저 개인적으론 뇌물죄와 같은 국가적인 법익을 위한 형벌체계는 엄격한 것이 맞고, 더더욱 병역과 관련된 특수한 경우에는 그런 제도적인 논리칙이 강화되는 것도 맞지만, 이런 사례와 같은 '상식적으로 판단이 가능한' 사회적인 약자들에게는 그 약자의 입장을 좀더 넉넉하게 안을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3. 엔디 2008/10/30 13:45

    그런데, 언론들도 그렇고 왜 IQ 85를 그렇게 강조하는지 모르겠네요. IQ는 대체로 평균이 100으로 된 정규분포를 따릅니다. 85~115는 굉장히 평균적인 수준의 지능지수입니다. 특별히 떨어지는 지능이 아니에요.
    http://enc.daum.net/dic100/viewContents.do?query1=b20j0539a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7/IQ_curve.svg
    실제로 장애를 판별할 때에도, IQ가 75 이하로 떨어져야 장애(정신지체)로 판정됩니다. 포레스트 검프도 IQ가 75였죠.
    http://www.chohongjoong.com/zboard/view.php?id=data10&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
    실제로 저만 해도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의 IQ 점수를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그 친구 IQ가 86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공부 잘 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학교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물론 학교에서 치른 IQ 검사에 따른 점수였으니 그 친구가 대충 찍고 잔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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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1/03 02:26

      엔디님 논평 정말 고맙습니다. : )
      많은 것을 더불어 생각하게 하는 논평이시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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