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왕가위(혹은 하루키)는 자위 따위의 너저분한 행위를 쓸쓸한, 혹은 낭만적인 예술의 감수성으로 승화시킨 작가다. 이건 조롱이 아니라 존경의 의미다. 지난 주엔 틈틈히 TV판 에반게리온 26부(이하 에바)를 다시 봤다. 억압, 소외, 각성, 폭주, 해방. 그리고 위로... 로봇만화과 가벼운 학원포르노의 감수성으로 소년소녀의 실존적 소외를 테마로 삼은 에바는 의심할 여지 없이 걸작이다.

극단적인 정적 프레임으로 인물들의 심리적인 상처를 가두고, 에바라는 경이로운 생명체를 통해 그 억압된 심리를 폭주시키며, 파괴와 고통에서 풀려난 해방적 판타지를 다시 실존적 성찰로 이끌어내는 이 걸작은 [아키라]에서 표현된 바 있는 무한증식하는 자아, 신을 추구하며 극단적으로 폭주하는 자아의 정반대 편에 서서, 물론 에바의 각성과 폭주에선 그 무한증식하는 이미지들을 빌려오긴 하지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침잠하는 미시적 자아의 풍경들을, 미소년/소녀들의 이율배반적인 성적 판타지의 이미지들을 끌어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파괴적인 이미지로, 그래서 더 고통스럽고, 쓸쓸한 이미지로 표현한다. 그들은, 우리는 여전히 이 빌어먹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는 짐승들"이다.



추.
1.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서구화된 미소년/소녀의 이미지는 물론 에바에서도 여전하다. 얼굴 모습이나 신체비율이 좀 심하게 비동양적(?)이다.
2. 오프닝 주제곡 '잔혹한 천사의 테제'(残酷な天使のテーゼ. Cruel Angel's Thesis)는 쵝오! (유튜브 링크)


- 이하 스포일러 관련 (약간 아리까리한 궁금증. 아시는 분 조언 부탁. 보충. 가급적 비밀글로 부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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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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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kto 2010/02/01 12:30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카지가 제레한테 죽은건 기억납니다.
    카지는 어떤 행동을 한 뒤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곤 혼자 서있는데 누가 찾아오죠. 카지가 "늦게 왔군"이라고 말하자 총소리와 함께 화면이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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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2/01 13:47

      그건 혹시 영화판 아닌가요? ^ ^;;
      티뷔판은 제가 최근에 본거라서.. 그런 장면이라면 꽤 인상적으로 기억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기억에 없어서리...;;; 제가 잠깐 딴짓하다가 그 장면을 놓쳤을 수는 있겠습니다만...ㅎㅎ

    • okto 2010/02/01 14:16

      생각해보니 TV판 리뉴얼버전에서 본 것 같습니다.

  2. 비밀방문자 2010/02/01 13:15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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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2/01 13:51

      성치씨 고맙습니다. ^ ^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지가 레이에게 어머니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하고요...

      추.
      개인적으론 아카키 모녀가 왜 겐도 사령관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굉장히 궁금하더만요. 뭔가 가장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이라서리...;;;;

    • ㅋㅇ 2010/02/01 18:47

      그거슨 겐도가 마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입니....

    • 민노씨 2010/02/01 21:30

      아.. 겐도사마에겐 마...성이 있었군요...;;;;

  3. 비밀방문자 2010/02/01 15:18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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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rrot 2010/02/01 15:39

      그리고 덧붙여서 신극장판을 보지 않으셨다면 같이 보시기를……. 이제 안노는 그 '실존적 소외'를 부정합니다. 민노씨께서는 어찌 느끼실 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살포시 '잔혹한 천사의 테제'와 비교하면서 들으면 좋은, 신극장판의 주제곡 'Beautiful World' 링크합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K2fvO4u93hs

    • 민노씨 2010/02/01 21:38

      아, 신극장판은 '서'를 보긴 했는데, '파'를 놓쳤습니다.
      그런데 '서'도 기억이 희미해서 말이죠...;;;
      그런데 트위터에서 아직 '중앙시네마'에서 '파'를 상영중이라고 하셔서.. 볼까 싶네요.
      아직 상영하고 있다면 말이죠.

      링크 소개 고맙습니다. : )

      추.
      블로그를 보면 영화를 아주 진지하게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정성일에 대한 링크 소개글은 아주 반갑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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