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블로그는 블로그고, SNS는 SNS다. 블로그도 광의로선 SNS라고 생각한다. 블로그 역시 소셜한 네트워킹 (의미생산,유통,소비) 서비스다. 역으로 웹에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SNS 역시 블로그다. 하지만 이 연재에서 블로그와 SNS은 당연히 협의로서 쓰인다.
1. 그런데 SNS라고 다 같은 SNS는 아니다. 크게 트위터로 대표되는 단문 메시징 서비스가 있고, 페이스북(이하 ‘페북’)으로 대표되는 총체적 오프라인 재현 서비스가 존재한다. 트위터가 정보와 정서의 단편들을 조각 조각으로 중개/중계한다면, 페북은 오프라인 자체를 중계/중개한다. 오프라인을 온전하게 옮겨오는 걸 목적한다 점에서 그것은 총체적이다. 물론 그 온라인 상의 재현은 기존의 싸이월드가 과시적이고, 경쟁적인 소비문화에 최적화됐듯, 일정한 소비문화에 대한 친화적 경향을 갖지만, 그 재현 폭은 상대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확장한다.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이동형 커뮤니케이션 도구, 콘텐츠 생산도구의 발전과 웹이라는 플랫폼의 수용성이 결합한 결과다. 이 연재에서 SNS라고 말하면 트위터 류의 단문 메시지 서비스와 페북 류의 총체적 실생활 재현 서비스를 공히 가리키며, 트위터와 페북이라고 굳이 따로 표기하는 경우엔 양자에 대한 구별적 특성을 특정해 표현할 때 쓰도록 한다.
2. 글이 뭔가 전문적이거나 딱딱해지려고 하는데, 나는 전문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딱딱한 건 참 싫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내 블로그의 페르소나와 닮아 있다면, 뭐 그건 또 내가 결정할 수 없는 것이긴 하다. 이 글에서 나는 내가 공개할 수 있는 사유의 흐름들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나에게 머무는 몇몇 단편들을 생각나는대로 옮겨올 생각이다. 물론 그 사유의 재료들은 블로그와 SNS를 매개로 한 것들에 한정한다. 여담이지만 나에게 가장 많이 머무는 잔상들, 사유의 재료들은 역시나 사람들이다. 사람들, 그 중에서 여자들이고, 그 중에서도 대부분, 나는 속물이니까, 아름다운 여자들이다. 물론 아름답다가 예쁘다는 아니다. 내가 아는 여자들과 내가 모르는 여자들, 내가 만났던 여자들과 내가 만나지 않은 여자들 까지를 통틀어 여자들은 내 사유의 많은 순간들, 공간들을 채운다. 그건 낭만적인 단편소설의 느낌이기도 하고, 포르노그래피를 통해 표출되는 노골적인 욕구처럼 원색적이기도 하다. 빛 바랜 수채화처럼 추억에 기대어 있기도 하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텅 빈 집처럼, 공허하게 가득하기도 하다.
3.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는 역시나 나는 누군가의 말처럼 ‘블로그주의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지나간 시대를 애써 붙잡는 시대착오적인 집착이든,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원칙에 대한 고수이든 간에, 나는 블로그를 통해 성장했고, 사유했으니까. 나는 블로깅을 통해 사람들을 만났고, 무엇인가를 함께 꿈꿨으며, 또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까. 그러니 아무리 블로그의 시대가 가고, SNS의 시대가 도래했더라도, 블로깅한다는 것에 대해 내 나름의 회고를, 그것이 블로그의 죽음이라면, 조사를 남기고 싶은 거다. 물론 나는 블로그가 죽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고, 다만 죽음에 가까운 방식으로 숨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다.
4. 체계에 대한 집착이 없지 않는 편이라서 나는 이 연재가 체계적으로 구성되길 원한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나는 내 그때 그때의 사유가 허락하는 한도에서 체계적인 구성을 염두에 두겠지만, 초고를 쓴다거나, 혹은 언제 끝날지 모를 사유를 목차 구성하고, 그 테마를 미리 한정해 글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둘 생각이다. 그 사유가 불러오는 시간이 과거이고, 누군가의 사유에 빚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 출처를 확인해야겠으나, 사유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단점이 있으니 글을 쓴 뒤에 확인할 생각이다. 그리고 부정확한 기억이 고정하지 못한 채 달리 연주할 변주의 풍경들이 아마도 곳곳에 만발하겠다 싶다. 각 번호는 어떤 하나의 사유, 그게 가령 빛깔이라고 하면, 노란 색 사유가 시작되어 확연하게 다른 색으로 바뀌지 않는 순간까지를 담을 뿐, 특정한 주제 단위는 아니다. 물론 그러려고 노력하겠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게 뻔하다.
5. 지난 블로깅을 돌이켜보면, 어떤 목적을 설정한다는 것의 부질없음을 이미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나는 경험했다. 그래서 이 글의 목적은 나도 잘 모르겠다.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를 잠깐 적기도 했지만, 그건 지금, 그저 떠오른 어떤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모든 글에는 나름의 목적이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이 가시적이든, 혹은 보이지 않게 숨겨져서 글쓴이 조차도 헷갈리게 모호한 어떤 것이든 간에, 모든 글에는 자신의 운명이 있고, 그게 글이 갖는 신비로움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글은 자신의 운명을 가진 채로 체험과 상상이라는 부모 속에서 태어나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모든 예술이 그렇듯, 어떤 (예술) 작품에 대해 작가는 그저 산파일 뿐,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며, 형제도 아니고, 그 자신도 아니다. 글쓰기는 가장 많은 이들이 사는 동안에 시도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형태의 예술 양식이다.
*이어지는 글: SNS 시대의 블로깅 1: 트위터와 블로깅, 그리고 내러티브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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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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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같은 댓글이구먼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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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네요. 함께 하려던 프로젝트인데 송구스러운 마음까지 드네요.
별말씀을요. : )
아마도 이 연재의 많은 부분이 아거 님께 빚진 사유들로 채워질 것 같은데, 미리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우리가 함께 꿈꾸는 서로 다른 빛깔과 질감의 사유들이 하나의 목적으로 조화롭게 채워질 수 있기를 여전히 기대하고, 이 글이 그 작은 단초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블로그주의자로 예의 긴 글로써 독자를 괴롭히기로 정평이 난 민노씨의 본격 산문(서사?)을 알리는 선언문으로 느껴지네요. 제한 없는 단어 수와 페친 눈치 보지 않는 글맛을 보여주시길 기대할게요~ 쵸!
본격 산문이 아니라 본격 잡문인데? ㅎㅎ
쵸! (이게 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