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늘 주장(?)했다시피 유사한 질량의 진실, 의견, 감상이라면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한 글의 물리적 부피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은 세상을 반영하고, 세상은 짧은 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맥락과 이면들을 지니고 있다. 세계의 어떤 진실, 그 진실이 아무리 작고, 볼품없는 진실이라도 말이다, 그 진실을 담고 있는 글이 단 열 줄이라면, 그건 글쓴이의 재능이다. 탁월한 ‘시(詩)’는 물리적인 부피의 진실, 그 표현 한계를 뛰어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시를 예술이라고 부른다.
2. 각설하고, 작은 블로그 판이지만, 나는 그 동안 독자들로부터 벗들로부터 긴 글을 쓰는 악명 높은(?) 블로거였다. 나라고 짧은 글 쓰고 싶지 않아서 그랬을까, 나라고 내 시간 아까운지 몰랐을까, 나라고 굳이 왜 짧게 쓸 수 있다면 그렇게 안 했을까, 내가 바보도 아니고(!). 물론 나는 바보다(?). 그런 항변하고 싶은 마음 생기곤 하지만, 뭐 긴 글이 싫은 건 SNS의 득세를 떠나 무슨 시대 정신 같기도 하다. (농담,농담유골.) 나도 긴 글이 좋은 경우는 별로 없다. 종이 단행본으로 책 내지 않을 바에야 PC와 모바일로 읽히는 글이 너무 긴 건 확실히 단점이다.
3. 요즘은 좀 길다 싶은 글은 마지막 문단부터 읽는다. 기사는 그 정도가 덜한데, 블로그 글들은 확실히 미괄식 서술이 많아서다. 마지막 문단부터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읽어도 맥락을 파악하는데 별다른 이상이 없을 뿐더러, 마지막 문단이 두리뭉실, 설날 덕담 류로 끝나거나, 모호한 수사들의 집합으로 끝나면, 그 글을 더 이상 읽지 않는다. 내 나름의 노하우랄까. 글 읽기 팁이랄까.
4. 별 관련은 없을지 모를 연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평론가 김현은 언젠가 박경리의 토지를, 우연한 실수로, 거꾸로 읽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 전부를 그렇게 읽은 건 물론 아니고, 이를테면 5권 다음에 6권을 읽어야 하는데 7권을 읽은 그런 식. 그런데 더 재밌는 건 그렇게 중간을 건너 뛰고 읽은 걸 스스로 깨달은 뒤에도 계속 그렇게 읽었다는 거다. 이왕 읽은 김에 그렇게 계속 읽었다고 하더라.
5. 이 글은 제목만 읽어도 무방한 극단적 두괄식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는 덤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 ‘덤’ 처럼 느껴지는, 혹은 시간낭비로 느껴지는 그 곁가지들 속에 더 많은 진실들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때론 웅변의 내용이 아니라 웅변가의 한숨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물론 이건 내 글이 길었다는, 그 긴 글의 과거에 대한 변명이거나 항변 심리는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다. 나는 앞으로는 긴 글을 블로그에 (자주) 쓸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블로깅이 가장 좋은 점은 언제라도 자기 맘대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일 테다. 한 줄도 쓸 수 있고, 만 줄도 쓸 수 있다. 말도 안되는 소설을 쓸 수도 있고, 습작 시를 쓸 수도, 또는 그냥 대다수에겐 그저 시시한 일기일 뿐일 그런 이야기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처럼 진지하게 쓸 수도 있다. 그 맘대로도 물론 맘대로는 아니다…. 그 맘대로엔 정말 많은 조건들, 제약들, 여러 개의 나와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독자들이 숨겨져 있다.
추.
블로거 벗 ‘세어필’은 “민노씨 블로그 절필한거냐”는 끔찍한 논평을 남겼는데, 나는 물론 블로그를 절필할 생각이 전혀 없다. 최근 썼던 슬로우뉴스 기사들에 대한 메타비평(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짧은 소개글)에 대한 세어필의 반응은 한편으론 서운하지만 또 한편으론 참으로 고맙다. 언젠가 긴 글 쓸 때, 너무 지겹다고 투덜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 물론 글이 길다고 반드시 지겨운 건 아니고, 글이 짧다고 지겹지 않은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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