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단평 : 아주 짧게

2011/11/24 02:02
* 발아점 : 내일, 아니 오늘 특강 준비하던 중 인터넷 미로에 빠져 헤매다가 수령님 영화 단평 읽고 삘 받아서...  

10년 만에 만난 아주 소중한 벗과 본 영화다. 정말 오랜만에 극장 가서 봤다. 짧게 쓴다. (스포일러 없다)

지난 주엔 이고잉 하우스에서 가로수 영화제를 하려다 불발에 그쳤다. <인주찾기>에 새로운 동인으로 합류한 두 벗의 생일 축하 기념으로 마련한 자리였는데, 술먹고 잡담하다가 정담을 나누다 영화는 '저 너머'로 가버린 셈이다. 암튼 보려던 영화는 세 편이었는데, 그 중 두 편이 자크 반 도마엘의 영화다. 하나는 <토토의 천국>(원제 : 영웅 토토), 또 하나는 <미스터 노바디>. 영화 <완득이> 이야기하려다가 왜 불발에 그친 '가로수 영화제' 이야기를, 자끄 반 도마엘 이야기를 하냐면, 나도 잘 모르겠다, 내 글이 뭐 원래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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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의 천국>(1991. 벨기에. 자끄 반 도마엘)
오, 레이저 디스크가 다 있었구나.

시간상 가까워서 그랬겠지만 <완득이>를 보고 <토토>를 떠올렸다. <토토>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들 가운데 하나다. 거기엔 모든 좋은 작품이 그렇듯 삶의 원형이 있다. 그 원형은 여러 겹의 진실로 겹쳐져 있다. 그래서 삶이 그렇듯, 진실이라는 껍질을 벗기면 또 다른 배반의 진실과 우린 마주한다. <완득이>는 좋은 영화다. 하지만 거기엔 한 겹의 진실만 존재한다. 그리고 익숙한 장르적 관습들과 우린 마주한다. 익숙하게 감상적인, 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휴머니즘과 우린 만난다. 그건 마치 '다문화 공동체'를 위한 공익광고 같은 느낌마저 든다. 거친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모두가 계산된(이건 나쁜 의미는 아니다) 인물들이고, 그 인물들은 삶, 지금/여기에서 상처받고 매맞고 숨죽이는 삶을 사는 바로 그 사람, 삶의 현재성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장르적 관습 속에서 빌려온 인물이라는 인상을 더 강하게 풍긴다. 계산된 역할극이라는 인상이 너무 강해서 잘 짜여진 드라마가 주는 뿌듯함은 있지만 깊은 감동은 없다. 원작이 형상화한 인물이 너무 잘 짜여진 인물이라서 그런건지, 연출이 너무 무난하게 가서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다. <토토>는 정반대다. 인물들은 신화적일만큼 정형화되어 있지만 그 신화적인 이야기, 드라마 속에서 우린, 아니 나는 정말 내 삶의 고통과 진실의 이율배반과 마주한다.

글이 길어졌다.
<토토>는 아이처럼 천진하지만 어른의 영화고, <완득이>는 고단한 현실을 그린 것 같지만 결국 아이의 영화다. 그렇다고 <완득이>가 나쁜 영화라는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충분히 재밌고, 좋은 영화다. 그런데 너무 착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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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2011. 한국. 이한)
유아인은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김윤석은 말할 필요도 없이 좋은 배운데... 이번엔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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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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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희동네 2011/11/24 12:41

    그래 넘 착했어.
    뭔가 표현이 잘 안되는 섭섭함이 있었는데,
    그게 넘 착해서 그랬군.

    살다보니 착한게 좋은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종종하게 되드라.
    사람도 넘 착해서 돌게 만드는 이들이 종종 있거든.
    나만 그런가?

    좋은 단평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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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11/25 00:44

      약하지만 착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러면 참 좋고 흐뭇하고 푸근하긴 한데...
      그런데 삶이 세상이 현실이 그런 것 만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서..;;;
      <지붕킥 엔딩 단상> http://minoci.net/1086 에도 썼지만 진정한 예술은 그 고통을 그 좌절을 어떻게든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

  2. rince 2011/11/24 23:28

    보고 나서는 밋밋하고 착한 영화였지만,
    보는 중간에는 뭔가 불편한 사건이 터지지 않을가 불안불안해하면서 봤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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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11/25 00:45

      저는 오히려 그 반대로 불안불안해하면서 봤는데 말이죠. ㅎㅎ
      이게 갑자기 록키(1은 빼고)처럼 되면 어쩌나 하면서 말이죠.

  3. 민노씨 2011/11/25 00:50

    * 극단적으로 소심한 추고 (취소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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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세어필 2011/11/26 17:10

    토토의 천국 포스터가 저렇게 생겼었군요. 인제 가물가물 하지만.. 왠지 영화 내용과는 조금 달라보이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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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1/11/29 02:21

      그 어떤 이미지로도 <토토>의 세계를 형상화하기엔 부족하죠.
      영화를 직접 봐야만 그 깊은 동화를, 그 노골적인 현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 )

  5. 저스티스 2011/11/30 23:37

    완득이..생각보다 정말 재밌게 본 영화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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