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쓰지 않는 게 내 나름의 원칙이다.
여기엔 두 가지 예외가 있다.

1.
하나는 거기에 확인적 지식이 필요 없는 경우다.
가령 사랑이나 연애감정 등에서 만날 수 있는 낭만적 아이러니의 범주에 속한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2.
나머지 하나는 좀더 알고 싶기 때문에, 쓰는 경우다.
이 범주는 내가 모르는 것들을 명확히 알게 해주는 (역설적인) 정리이면서 또 그 나름으로 공부의 의미다.

3.
약간 코믹한 귀결인데, 나는 거의 단 한번도 내 글쓰기의 원칙을 고수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나의 원칙을 파괴하는 글쓰기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것에 대해 완전하게 안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
거의 두번째 범주에 속한 것들에 대해 나는 써왔다.
그런데 이제는 첫번째 범주에 속한 것들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7.
내가 열 아홉이나 스물인 그 까마득히 먼 과거에 나는 항상 연애편지를 썼었다.
정말 자주 나는 연애편지를 썼는데, 그 연애편지야 말로 내 글쓰기의 원천이다.
그 고통과 환희는 매우 통속적이고, 가장 익숙한 이율배반의 감정을 가져다 주는데...

나는 그 시간들이 항상 나에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안다.
단 한순간도 그 시간이 나에게 흐르지 않았던 적은 없다.

그게 내 삶이 행복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라면 이유다.
그 행복이 통속이라고 해도 그건 이미 깨져버렸으니까.

9.
앞으로 연애편지도 종종 써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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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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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조은인상 2008/10/17 21:44

    사뭇 기대가 됩니다...
    저는 이십대 초반에 남의 연애편지 대필해준 기억만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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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0/17 21:55

      저도 꽤 친한 친구녀석의 연애편지를 몇 번인가 대필한 기억이 있는데 말이죠. ㅎㅎ
      그나저나 조은인상님 정말 정말 오랜만입니다. : )

  2. 너바나나 2008/10/18 02:25

    연애편지를 저한테 쓰실거면 참아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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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0/20 00:16

      꼭 참아야 하나요? ㅎㅎ

  3. 로망롤랑 2008/10/18 06:28

    첫번째 범주에 드는 글쓰기는 그 대상이 축소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제가 끄적이는 글 역시 그 첫번째 범주에 줄곧 속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대하는 방식이 약간 달라질 뿐, 하지만 그 대상에 걸맞는 방식이 있긴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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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0/20 00:17

      말씀 잘 들었습니다.

      본문에 범주라는 표현을 썼지만, 쓰고나서 보니 꽤나 무책임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닙니다. '범주'의 사전적인 의미는 적어도 이렇게 펑퍼짐하지는 않으니까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읽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4. 명이 2008/10/18 11:47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즐거울라고 쓰는 저도 있습니다. ㅎㅎ
    물론, 완전 아무런 생각도 없지야 않겠지만, 무튼 연애편지 같은 글 훔쳐보는 재미도 쏠쏠하겠는데요? (잉? 변태??? -_-)

    헤헤..뭐라고 칭할까 고민하다가 민노횽님! 요래볼까 했지만,
    뭐 그렇게 칭하는게 중요한가 모르겠지만
    희안하게 끝에가 "씨", "양" 이런걸로 끝나시는 분들의 호칭을 정리하고 싶은 이상한 집요함 -_-
    생각해보면, 블로그로 웹상에서 뵙기전에 모임에서 먼저 봐버린 멋진 뽀쓰때문이라고, 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ㅋㅋ
    (옆에서 족족 공감하고 있었다능..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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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0/20 00:19

      그냥 '민노씨'라고 불러주셔도 좋습니다.
      물론 나중에 좀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형으로 불러주셔도 참 정겹겠고만용. : )

  5. hof 2008/10/20 09:06

    두번째 경우에 동감합니다. 글의 완성은 작성완료시점이아니라 댓글로 인하여 점점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보고 있거든요. 흐흐. 근데 본문 중간중간 번호 빠진건 뭘 지우신겁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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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0/20 17:43

      말씀처럼 어떤 사안에 대한 최초의 입장이 각종의 피드백(댓글이든 트랙백이든)을 통해 '대화'를 통해 보완되는 과정이 블로깅의 학습적 가치이면서, 또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블로깅이 갖는 민주주의적 토론의 가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추.
      지운게 아니구요.
      그냥 그렇게 붙인겁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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