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화술로서의 블로그

2012/04/11 09:34
총선 아침에 뜸금없이 이 무슨 자다가 봉창인지 모르겠지만, 문득, 글쓰기와 말하기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레비스트로스는 말하기와 글쓰기를 다르다고 인식한 것 같다(해체비평. 고려원, 품절).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지만, 한 미국 불문학자(혹은 영문학자)가 레비스트로를 비판하는 데리다를 묘사한다. 기억에 의존해 인상적인 문구를 옮기면 이렇다. '문명과 야만의 나눔이 없던 시절, 글쓰기의 폭력이 없던 시절...' 이야기인 즉, 레비스트로스는 글쓰기야말로 야생을 야만화하고, 야생을 이성의 타자로 만드는 야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이 테마가 가장 대중적으로 히트한 게 앙리레비의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인 것 같다), 데리다는 말하기에 내재적으로 글쓰기가 담겨 있다고 레비스트로스를 비판한다는 뭐 그런 맥락이다. 정리하면 데리다가 생각하기에 레비스트로가 주장하는 말하기와 글쓰기의 이분법은 허구이며, 말하기에 대한 향수는 나이브하다... 뭐 이런게 아닌가 싶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레비스트로스에 좀더 가깝다(그렇다고 데리다의 비판이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말하기는 말초적이고, 외부-반응적이다. 글쓰기는 이성적이고, 내부-반응적이다. 양자의 성격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는 없지만, 사유의 강이 흐른다고 할 때, 말하기는 마치 내 사유의 흐름들 그 전부에 훨씬 더 가깝지만, 그것은 외부-반응적이기 때문에 말초적인 형태로 튀어나온다. 반면 글쓰기는 그 사유의 강에 던져진 그물 같은 것이라서 사유의 흐름 중 극히 일부만을 포착할 뿐이지만, 그럼에도 내부-반응적이기 때문에 훨씬 더 조직이고, 정돈된 이야기의 형태로 재생산이 가능하다. 글쓰기라는 건 일종의 복화술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말하기의 욕망은 너무도 광범위하기 때문에 대부분 정돈된 언어적 형상이 아닌 비정형적인 웅엉거림으로 존재하는데, 글쓰기는 그걸 구체적이 문법과 단어로 포착해야 한다.

그동안 블로그란 게 뭔지를 나름으로 고민해왔다. 현재 상황에서 나에게 블로그란 일종의 복화술(말하기와 글쓰기의 괴리)이다. 뭔가 말하고 싶지만, 그건 항상 웅얼거림에 불과하고, 그걸 언어로, 문법으로, 명징한 단어로 포착하려고 하면 그 웅엉거림이 만들어진 외부-반응적 사유의 재료들은 이미 화석화하거나, 증발해버리고 만다.

언젠가 아거는 블로그를 '내러티브를 가진 인간의 목소리'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 말을 아주 긍정한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내러티브로서의 완결성을 고려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름으로 블로깅 방법론에 대한 일대 결심인데, 왜냐하면 점점 더 웅엉거림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도무지 정확한 나만의 문법화된 언어로 포착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 나는 그 웅엉거림이나마 그때 그때 적어둘 수 밖에는 없는 노릇이다....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minoci.net/trackback/1318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
  1. cansmile 2012/04/12 02:24

    그 웅얼거림마저 할 용기가 없는 사람도 있지요.
    예를 들면 저라든가, cansmile이라든가, 깡통웃음이라던가... 말이죠. :)

    민노씨의 글은 어딘가 대리만족을 느끼게하는 능력이 있어요.
    항상 놓치지 않고 보려고 노력하지요.

    언제나 화이팅!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2/04/15 00:06

      아웅...ㅜ.ㅜ;
      고맙습니다... (정말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음)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댓글 입력 폼
[로그인][오픈아이디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