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 이고잉
인터뷰어 : 민노씨
일시 : 2011년 12월 30일 2시 17분 ~ 11시 15분
장소 : 한남동 복합문화공간, 그리고 밥집과 커피전문점.
1. 인생이란 진지한 표정으로 거론할 수 있는 그런 하찮은 게 아니다
2. 마당
3. 탐앤탐스
1. 이고잉 egoing
2. 블로거 이고잉
3. 생활코딩
4. 인터넷
7. 허무에 대하여
8. 우린 그냥 좀더 이야기하기로 했어
S#2. 블로거 이고잉
“나는 글 쓰는 게 좋다. 글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실제로 장식적이다. 학창시절에 문학회를 했다. 우리 문학회는 시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시가 좋아서 문학회에 소속된 것이 아니었다. 선배들이 멋있었고,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문학회 소속이라면 시를 써야 한다. 그래서 거짓말로 시를 썼다. 내 인생에서 가장 거짓된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습관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서 여기까지 왔다. 이것은 부끄러운 것이지만, 이 역시 나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그 그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좋게 말하면 미학적인 글을 만들기 위해서 쓴다. 그게 나쁘게 말하면 장식적인 것이 되겠지. 아무튼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그것이 미학적이지 않거나, 장식적이지 않으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 그렇다고 나의 글이 아름답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방향성이 아름다움을 향해 있다는거지. 이거 참 빈곤한 비유라는 것은 아는데, 구글과 애플 중 글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디에 가깝냐고 물어보면 애플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구글을 좋아하는데....“
- 짧은 제목을 고집하는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 나중에 내가 쓴 글들을 보니까 제목들이 다 짧더라. 그 때, 내가 짧은 제목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후부터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다. 종종 겁나 긴 제목도 있다.” ( + 내가 장사를 한다면 이런 것들은 꼭 해보고 싶다 )
- 이고잉의 텍스트는?
“내 텍스트는 폐쇄적이다.”
- 폐쇄적이다?
“원초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는 학교 시절에 그다지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이해도, 암기도 잘하지 못했으니까. 산만하기까지 했다. (- 사람들은 당신을 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게 득이 될 때도 있고, 실이 될 때도 있다. 공부를 못했던 이유와 폐쇄적인 이유가 같다. 암기와 이해에 대해선 여전히 컴플렉스가 있다. 하지만 산만함에 대해선 생각이 좀 달라졌다. 산만한 성격 덕분에 어떤 텍스트를 쉽게 다른 것으로 변환했던 것 같다. 연상작용이 심하게 일어나는 면이 공교육의 안에서는 산만함으로 탄압 당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산만함의 기술적 발현이라는 하이퍼텍스트, 다시 말해 웹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 하이퍼링크는 폐쇄적이지 않은 속성인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텍스트에 몰입하지 못하니까. 폐쇄적이라고 느낀다. 예전엔 죄책감도 느꼈지만. 이게 내 모습이니까. 갈라파고스처럼.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
- 블로깅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요즘 잘 안하는데? (웃음)”
- 블로깅은 이고잉에게 뭔가?
“나의 생각은 대체로 진부하다. 이런 진부함을 어장 관리한다. 그러다 보면 진부함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유레카!’를 외치며 글을 쓴다.”
- 영감처럼?
“영감이란 표현은 싫고, ‘diff’(차이점을 비교하는 툴. 개발자들의 관용어)처럼. 그런 순간이 있다. 익숙한 것에서 균열이 느껴질 때. 글을 쓰는 순간은 그런 뭔가를 발견했을 때다. 그건 사회적일 것일 때도 있고, 놀이적인 것일 때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써야 할 것 같은 글을 쓰지는 않고, 발견했을 때, 그걸 쓴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라도, 마음으로 이게 그거였구나, 내가 느끼는, 깨닫는 순간. 누군가에겐 진부하더라도 나에겐 그게 발견이니까.”
- 가장 맘에 드는 글은?
“모르겠다.”
- 블로그에 카테고리가 없다.
“귀 찮아서. 카테고라이징이 귀찮으니까. 카테고리는 남을 위해서 설정하는 건데, 내 글은 남을 위한 글이 아니니까. <생활코딩>은 남을 위한 활동이니까 아주 꼼꼼히 태그를 설정하지만, 블로그는 ‘발견’을 기록하는 공간이니까. 나에게 글을 쓰는 건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로 재미고, 목적이다. ”
- 취미와 직업
“요즘 천착하는 주제는 취미와 직업.”
- 취미를 직업으로 삼고 싶다?
“아니 그 반대. 친구와의 메신저에 서 ‘취미는 살아가는 이유잖아!’라고 무심결에 이야기했다. 요즘 그 말을 곰곰히 생각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건축과 수학은 도구지만, 사랑,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다.’ 삶에 필요한 것과 살아가는 이유는 서로 다른 것 같다. 취미생활에 대한 정책은 ‘대충해도 되는 것, 직업의 이순위…’가 아니라, ‘재미있는 것, 진지한 것…’ 이라고 생각한다. <생활코딩>에 대해선 이걸 사회운동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좀 부담스럽다. 이건 재밌어야 하니까. 진지함이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될 때도 있다. 이를테면 사이트를 운영하다가 데이터가 날아간 적 있다. 실수로. 그런 문제를 생각하면 잠을 못잔다. 백업에 백업에 백업에… 억압이고, 재미가 없어진다.”
- 즐겨 읽는 블로그는?
“없다. 난독증 때문에 다른 텍스트는 잘 읽지 않는다.”
- 블로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스타일과 콘텐츠. 블로그 스킨도 중요하다. 나에겐 스타일도 컨텐츠고, 컨텐츠도 스타일이다.”
- 이고잉 블로그의 스킨
“조금씩 바뀐다. 글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조금씩 제거해가고 있다. 사각형에 대한 집착이 있다. 글을 썼을 때 분량이 정사각형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분량이 나에겐 가장 이상적인 분량이다. 예전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마침 그 때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조카가 아팠다. 좌절스런 상황이었는데, 격한 글을 블로그에 썼다. 키보드를 치는데, 조카가 그 전에 스페이스를 망가뜨린 상황이라서 띄어쓰기를 못했는데, 그 때 딱 정사각형의 글이 나왔다. 그 고통스런 순간에 대단히 미학적으론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 그 글 제목이 뭔가?
“비공개 글이다.”
- 비공개 글은 얼마나 되나?
“공개된 글의 두 배 정도.”
- 언젠가는 공개할 생각?
“그럴 생각 없다.”
- 비공개 글 가끔 읽나?
“전혀 읽지 않는다. 대부분은 완성되지 못한 글. 완성하고도 공개하지 않은 글은 없다.”
- 블로깅의 기쁨
“뭔가 익숙한 걸 새롭게, 새로운 걸 익숙하게 바라볼 때, 그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인식을 재구성하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 순간에 주로 글을 쓴다. 비슷한 말들, 가령, 순수와 순진은 전혀 다른 말이다. 유사하지만, 그 유사어들이 서로 각자 살아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거대한 차이가 공공연하다면, 미세한 차이는 아주 은밀한 진실을 담고 있다. 그걸 발견하는 건 기쁘다.”
- ‘순수’와 ‘순진’, ‘감각’과 ‘지각’, ‘주장’과 ‘의견’
“순수하고 순진하다. 순수하지만 순진하진 않다. 순진하지만 순수하진 않다….가령 민노씨는 순수하지만 순진하진 않은 것 같다. 그와 비슷한 경우는 ‘감각’과 ‘지각’이다. 감각은 육체적인 지각이고, 지각은 정신적인 감각이다. 또는 ‘주장’과 ‘의견’. 주장에는 다툼이 있고, 의견에는 다툼이 없다. 그런 차이를 찾아냈을 때 ‘유레카’를 외친다. 그런 순간에 글을 쓴다.” (+ 미묘함 )
- 블로깅은 자주할 생각인가?
“SNS와 블로그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라서. 지금 나에게 가장 적합한 툴을 쓸 뿐이다.” (+ SNS와 블로그)
- SNS의 득세와 블로그의 쇄락에 대해
“우선 관계, 소통이라는 부분이 본의 아니게 SNS로 아웃소싱 되면서, 관객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한편으로는 지식인들은 대단히 맥락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인데, 블로그라는 단일 도구 만으로는 이런 맥락을 수용하는게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를테면 블로그에서는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블로그가 죽은 것이 된다. 지치는 일이다.” (+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서의 블로그)
- 질투를 느낄 때는?
“글을 통해선 느낀 적이 거의 없고, 영화 드라마 혹은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아! 기막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굳이 비유하면 애플과 비슷하달까. <생활코딩>을 이야기 할 때 칸 아카데미가 자주 언급된다. 물론, 질투를 느끼는 것은 아닌데, 기분 나쁘지 않게 억울하다. 나는 벤치마킹에 대단히 게으르기 때문에 칸을 몰랐고, 여전히 잘 모른다. 칸이나, 생활코딩은 차라리 시대의 압력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고, 예민하게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던 사람들이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 선생님 하면 참 잘 할 것 같다. 강의하는 걸 즐기나?
“잘난 척하는 걸 좋아한다. (웃음) 원래 나는 잘난척은 좋아 하지만 남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이러고 있는 내가 나도 놀라운데,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추면서 남 앞에서 잘난척하는 것이 자유로워졌다. 개발자로 나의 수준을 말도 안되게 서열화 해보면 한 51% 정도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나 밖에 없다. 깔대기는 아니다. 당연한 말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그걸 깨닫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 이고잉 인터뷰 내일 계속...
트랙백
트랙백 주소 :: http://minoci.net/trackback/1285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인터뷰 잘봤습니다. 마지막에 블로그 캡쳐해놓은거 보고 빵터져서 댓글 남깁니당 ㅋㅋㅋㅋ
저도 자주 가는 블로그인데 막상 한 눈에 레이아웃을 보니 재밌네용~ㅋㅋㅋ
저도 자주 가는 블로그인데 스크롤을 맨 밑바닥까지 내려본 건 참 오랜만이네요. ^ ^;
저는 아예 '카테고리'가 없는지 알았는데, 카테고리가 있었다는 것도 이번에야 다시 알았다능..;;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 다. 를 빠뜨린 것 같아요. ㅎㅎ
2. 완전 좋죠! :)
그런데 그러기 위해선 일단! 제 게으름은 차치하고, 존경하는 써**님께 좀 여유가 나셔얄 듯...ㅜ.ㅜ;
폴 오스터의 소설이나 혹은, 쉽게 규정해서, 프랑스 영화들에서 받고는 하는 인상과 닮은 것 같네요. 개인적 고통과 미학적 만족이 교차했다는 순간에 대한 묘사가요. 인상 깊습니다. ... (나는 왜 항상 단편적인 것들만 받아들인담;)
격조 있는 논평 고맙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