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올블...

2012/03/07 09:03
올블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메타블로그 올블로그를 우리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꼭 써야지 했던 사건이었는데, 깜박 잊고 있었다. 이미 마음에서 멀어진거다. 그러다 문득 들풀의 잔소리가 너무 쓸쓸하고 정겨워서, 그런데 다시 쓸쓸해져서, 부랴부랴 짧은 글이나마 쓴다. 이고잉의 재밌는 표현처럼 나는 '블로그주의자'인지도 모른다. 나는 트위터가 싫고, 페북이 싫다. 맞팔로 불어나는 팔로워 숫자에 집착하는 그 소박한 마음이 내가 도망치지 못할 감옥일 것 같아서 싫고, 온갖 빛나는 표지들로 우리들을 자진해 무장해제시키는 그 투명한 페북이 내 모든 걸 발가벗길 것 같아 싫다. 이제 블로그의 광장은 점점 더 좁아지고, 점점 사라져간다. 우리에게 남은 광장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죽일 듯 토론하고, 욕지거리하며, 미워하고, 증오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블로그 안에 촛불을 밝히고, 오뤤쥐 아줌마를 까며, MB의 완벽한 도덕성에 기꺼운 경멸을 보냈다. 탁월한 미디어 학자 강정수의 말처럼 페북은 새롭게 생겨나는 온갖 서비스의 열쇠(로그인)가 되어간다. 그리고 블로그는 이제 점점 더 어둠 속으로, 무거운 침묵 속으로, 열리지 않는 자물쇠처럼 잠겨버리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나는 이 자물쇠가 다시 열리고, 광장이 다시 펼쳐질 것을 꿈꾼다. 그리고 그 열쇠는 페북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블로그 그 자신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블로그주의자니까...

온갖 기억들이 축제의 폭죽처럼 터진다.
거기엔 올블이도 있었지... 
안녕, 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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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6일! 
인터넷 주인찾기 홈페이지가 다시 열렸습니다!!
무자비한 스팸 공격으로 제로보드 XE를 떠난지도 꽤 시간이 갔네요. 그동안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주찾기 정식 홈페이지를 제대로 운영해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제부로 카페24의 임시홈페이지 도메인을 떼고, 인터넷 주인찾기 본래 도메인인 OURNET.KR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홈페이지를 다시 여는데 홀로 고군분투한 인주찾기의 기둥, 써머즈 님께 동인의 일원으로서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_ _) 또, 그동안 4회 컨펀퍼런스를 개최하는 동안 늘 한결같이 '동영상 제작'을 협찬해주신 소리웹과 이용진 대표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더불어 많은 블로거벗, 독자들께서도 그동안 인주찾기에서 자발적으로 준비한 컨퍼런스 자료들을 널리 찾아주시고, 그 소중한 생각의 씨앗들을 널리 널리 퍼뜨려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직 일부 녹취록은 업데이트가 완료되지 못했지만, 틈틈히 채워갈 생각입니다. 캄사합니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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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딱히 '나경원 남편 김판사 기소청탁 의혹 사건'에 관한 글은 아니다. 이 글은 그저 우리시대의 논객 진중권(이 쓴 글)에 관한 글인데, 뭐 소심한 상념에 가까운 글이거나, 혹은 내 판단이 잘못된 것이길 바라는 글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진중권의 존재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물론 나는 진중권이 재수 없을 때가 아주 많고, 이건 나꼼수 뻘짓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굳이 비교하면 막상막하랄까. 각설하고.

"박은정 검사는 ‘양심선언’을 할 의사가 없었다. 그저 자신의 발언을 폭로했다가 곤경에 처한 주진우 기자를 조용히 도우려 했을 뿐이다." (진중권, '기소청탁사건의 아주 건조한 시나리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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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기소청탁사건의 아주 건조한 시나리오'라고 쓰고 있지만, 이건 물론 '시나리오'가 아니다. 그러니 이건 픽션이거나 판타지가 아니라 논객이 어떤 논리적 가설을 세워서 무엇인가를 논리칙으로 입증, 주장하기 위한 글이다. 그런데 그 논객이 궁예가 된다. "박검사는 양심선언을 할 의사가 없었다."는 문장은 관심법이 아니고선 설명이 불가능한 문장이다. 그 문장에 이어져 나오는 "(박검사는) ~ 도우려 했을 뿐이다."라는 문장 역시 마찬가지다. 진중권 글은 심지어 박검사가 '진술서'를 경찰에 전달하기 전에 쓰여진 글이다(
참고. '관계자' 저널리즘에 대한 궁금증).

당사자는 입 다물고 있는데, 그 당사자 의사를 자기 마음처럼 들여다보듯 "없었다."고 쓸 수 있는건지, "조용히"(시끄럽겐 아니고?) "도우려 했을 뿐"이라고 타인의 의사를 임의로 참칭할 수 있는지, 그야말로  불가사의하다.

좀 자세히 설명하면, 어떤 정황 근거에 바탕해서 가설을 세울 수도 있고, 정황의 맥락을 재조직화해서 전혀 새로운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 그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그러니 "의사가 없었다고 보여진다"라거나 "의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라는 표현은 무방하다. 이건 의견이나 판단에 불과하니까. 이건 '사실 진술'이 아니다.

그렇지만 "의사가 없었다"라고 말하면 얘기가 아주 달라진다. 이건 '의견 진술'이 아니라 '사실 진술'이 된다. 더불어 논리적으로도 비문이다. 어떻게 직접적 관련없는 정황적 근거를 통해 당사자 의사를 추출해낼 수 있는가? 이 사실 진술이 신비롭게까지 느껴지는 건 당사자는 이 '진술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에 대해선 계속 '침묵'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진중권이 아무리 우리 시대의 논객이라 하더라도 '침묵'으로부터 '사실(진술)'을, 어떤 당사자의 '의사'를 확정적으로 도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건 신도 못한다(궁예만 한다). 더불어 "도우려 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거나 "도우려 했을 뿐이라고 보여진다"가 아닌 "도우려 했을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 

간단히 말해서, 진중권의 '박검사 아우팅' 드립은 정황에 근거한 가설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가설이 표현되는 형태는 단정적인 사실 진술이다. 그 순간 가설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니다. 그 순간 그토록 힘들게 쌓아놓은 논리의 아름다운 구조물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버린다. 더불어 그 순간, 그 가설은 진중권이 그토록 비난하고, 경멸하는 일부 나꼼수 팬덤의 맹목적 행태, 즉, '신앙'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리며, '건조한 시나리오'는 '느끼한 자뻑'이 된다. 안타깝다.


추.
박검사의 진술서에 대한 '해석질'이 분분하다. 심지어 진술서 전달 직후 중앙,동아는 '청탁은 없었다'라는 취지로 기사를 쓰고 있는데, 어제 저녁 기준 한겨레 기사를 읽으니 정반대 해석을 사실처럼 전하고 있다. 이건 정말 기자인지 점쟁인지 구별이 안갈 지경이고, 이게 정말 뭐하는 시츄에이숑인가 싶다. 여전히 공식적으로 박검사 자신이나, 책임있는 수사당국에선 입장을 공표하지 않고 있다. 비는 안오고, 굿판만 떠들썩하구나.


* 관련 추천글  
기소청탁 의혹 사건에서 물론 사건의 알맹이는 '기소청탁' 여부다. 정치인 와이프를 돕기 위한 판사 남편의 애정 행각이 권력남용이라면, 그런데 그 권력남용을 정치인 와이프가 교사/방조 혹은 방관했다면, 그 사랑 넘치는 부부의 애정 행각은 공적 책임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정보원 보호 이슈'는 부가적 이슈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저널리즘적 관점에선 아주 중요한 문제다. 이에 대해선 캡콜사마의 아주 훌륭한 글을 강추하는 바다.

캡콜드, 나꼼수 사법청탁 폭로, 정보원 보호 측면



어제(6일) 저녁에 쓰여진 나경원 씨 남편 김모 판사 기소청탁 의혹 사건 관련기사들을 보면요. "수사당국자"(X)가 아니라 "수사당국 관계자"(O)의 이야기를 듣고, "~라고 전했다. ~라고 알려졌다"는 기사문장을 쓰는 경우가 꽤 많던데요. 이게 당사자에게 직접 전해들은 게 아니라, 한다리 건너서 들은, 그것도 "당국자"도 아닌, "관계자"에게 들은 '전문'에 불과하잖아요.

* 참고.'전문증거' (傳聞證據) : 증인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바를 법원에서 진술하는 증거. 신뢰도가 매우 희박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증거능력을 갖지 못함.

1. 이 경우 "당국자"와 "당국 관계자"의 신뢰도 차이는 저널리즘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기사 신뢰도에 있어 중요한 표준인지 궁금합니다.

2. 더불어 이런 전문에 근거한 기사에서 "박은정 검사 “나경원 남편에 기소청탁 전화 받았다”"라는 제목을 뽑아도 되는 것인지 궁금하네요(아래 해당기사). 더불어 어떤 관련기사는 주어 없이(ㅡ.ㅡ;) "검찰이 기소하면 법원서 알아서 할 것"이라고만 제목을 뽑았던데, 이건 김판사가 그렇게 직접 이야기를 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박검사가 이야기한 걸 인용한 것인지, "관계자"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전문)을 재인용한 것인지 헷갈리잖요. 물론 관계자 이야기를 다시 전한 것이지만요.

- 해당 기사. 뉴시스 기사(한겨레 송고). (2012.3.6.15:28)
제목 : 박은정 검사 “나경원 남편에 기소청탁 전화 받았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2199.html

- 관련 기사. 한겨레 기사. (2012.3.6.19:02)
제목 : "검찰이 기소하면 법원서 알아서 할 것"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2220.html

3. 저 개인적으론 위 두 가지 유형의 기사 모두 아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편 생각해보면, 사건 당사자는 함구하고, 책임있는 당국자는 직접 인터뷰를 할 수 없는(참고인 진술에 대한 조사당국자의 정보유출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아시는 분 알려주시길...) 상황에서 저널들은 어떻게든 소식을 전해야 하긴 하고... 해당 기자들 상황도 갑갑하다 싶긴 합니다. 다만 이런 사안에까지 알권리를 적극적으로 내밀긴 좀 뭐시기 한 느낌이 들고, 어쨌든 시시각각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핫이슈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저로선 이런 보도행태는 참 문제라고 보입니다.


추. 나경원 남편 기소청탁 의혹사건 일지 (동아일보)
http://photo.donga.com/view.php?idxno=20120301017&category=0011&page=1

어떤 사안에 등장인물이 많(아지)고, 또 그 사건이 긴 시간적 간격을 두고 벌어지면, 맥락을 살펴보기 위해 찾아보게 되는게 '사건 일지'인데요. 기소청탁 의혹사건과 관련해서는 동아일보에서 이미지 파일로 제작한 사건 일지만 검색되는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훌륭한 일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로선 나경원-네티즌 아무개-나경원 남편 김판사-주진우-박검사-김어준...으로 이어지는(참 등장인물도 많기도 하다) 일련의 사건 흐름을 며칠 전 만해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이 일지를 보니 대강의 맥락을 알겠네요. 나꼼수 펜들이야 뭐 다 아시고 계셨던 맥락이겠다 싶기도 하지만... 저는 나꼼수는 안들은지 오래라서..

* 관련 추천 블로그
아거, 강정수, 캡콜드 ("나꼼수 사법청탁 폭로, 취재원 보호 측면" 강추)님은 그야말로 저널리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이 분들과 더불어 가장 정치하고, 또 감수성 넘치는 저널리즘 비평을 하시는 '들풀' 께선 이 사안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실지 몹시 궁금하네요. 혹 관련글이 있을까 가봤는데, 이글루스 시스템 점검중...;;;


* '들풀' 님 판단(2012.3.8. 오전 1:50 보충)

지금 이쪽에서는 시리아의 바바 아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과 관련한 뉴스가 시시각각 전해지고 있습니다. 반대파가 밀집한 이 지역을 정부군이 끔찍하게 공격하는 바람에 많은 희생이 발생했으며, 상황이 아주 급박한지라 정규 취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온갖 소문이 횡행하고 있고요. 이에 대해 예컨대 NPR 뉴스에서는 이런 식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일부 주민은 정부군이 죄없는 주민 다수를 처형의 방식으로 학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we could not confirm)." 이렇게 넘어갑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사실로서 보도하지 않습니다. 보도에 넣으려면 아직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누가 그런 주장을 했는지를 명시합니다. 모호하게 '전해졌다' '알려졌다' 따위 표현을 써서 사실인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꼴을 만들지 않죠. 전해졌으면 누가 전했는지, 알려졌으면 누가 알렸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언론으로서 당연한 일이지요. 전쟁 상황이 아니라면 NPR 기자들은 이러한 증언을 확인하러 나섰을 것입니다. 역시 언론이 제 할일을 제대로 하는 존재라면 당연한 일이지요.

말씀하신 해당 사항 보도 행태는 무책임하고 편의주의적인 보도 관행의 극단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뉴스는 주어가 다 빠져 있습니다. 찾아보면 기자 자신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영미 저널리즘에서는 이러한 보도 행태에 대해 "'관계자'란 술집에서 만난 친구고, '전문가'란 마누라이며, '여론'이란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의미한다"라는 식으로 조롱합니다.

1번에서 말씀하신 수사당국자와 수사당국 관계자란, 이를테면 담당 검사와 검찰 공보 담당 부서 직원의 차이입니다. 한국의 정부 기관발 보도에서 '관계자' 이름을 달고 나오는 인간들은 거의 대부분 홍보를 담당하는 공보 담당관들입니다. 영미 기사들을 보면 이러한 PR 담당자 이름을 정확하게 밝히며 인용합니다. 그게 그들의 역할이고, 개인 자격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부서의 입장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한국 언론은 많은 정보를 공보담당관에게 들으면서도 그들이 기사에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충 두루뭉술 넘어가서, 나중에 보면 말한 놈도 없고 들은 놈도 없고 나중에 문제가 되고 거짓말임이 드러나도 따지는 놈도 없고 책임지는 놈도 없고 살다 보면 잊혀지고 대충대충 그냥 그렇게 삽니다. 어쨌든 당국자와 당국 관계자는 모두 무책임한 인용 표현이라는 점에서 도토리 키재기라고 하겠습니다. (꼭 이렇게 쓸 수밖에 없는 경우가 드물게나마 있긴 있습니다.)

2 번에서 말씀하신 제목들은, 제가 얼마 전에 썼던 따옴표의 지극히 상식적인 의미가 한국에서는 아직도 전혀 제대로 인식되고 있지 않음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뉴시스 제목을 보면 박검사가 그렇게 말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게임 끝이죠. 지금 같은 설왕설래 개판이 벌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저렇게 따옴표 쓸 수 있을 정도로 직접 말했다면 말이죠. 한겨레 것은 주어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거기에 더해(혹은 그래서) 기자가 직접 들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나친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신뢰받는 언론이 되려면 기본 원칙과 상식부터 다시 챙겨야 하는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관계자 저널리즘'에 대해서는 써둔 게 있는데, 언제 기회를 봐서 먼지 털고 꺼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참, 나꼼수의 취재원 보호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것이었고(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언론 종사자가 이름을 깠다는 것은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고 윤리강령에도 위배됨), 취재원을 밝히지 않으려고 감옥행을 선택한 뉴욕 타임스의 주디 밀러 사례까지 함께 생각해 보았는데, 일단 나꼼수 '관계자'(주진우인가요?)가 박검사를 직접 취재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여, 주-박의 관계가 취재원 보호 케이스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들풀)





 * 한 번도 뵙지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블로그계에서 교류해왔던 한 블로거께서 저에게 조언을 구하셨습니다. 다음(DAUM)에서 벌어진 블로거 간 분쟁에 관한 사안인데 비밀 방명록을 통해 조언을 구하셨지요. 그래서 저 역시 비밀글로 의견을 전해야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안이 갖는 공적 논의 가치를 고려해 분쟁 당사자 및 문의하신 분의 온라인 정체성이 드러날 수 있는 표현과 사적 내용은 모두 배제하고, 새로운 익명(가명)으로 표시한 상태에서 제 짧은 생각이나마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점 문의해주신 블로거께 양해를 구합니다. 이하 간단히 제 생각을 써볼까 싶습니다.

<개요 : 극단적 요약>


당사자 '을녀'의 주장 (가명. 여성) : 블로거 갑돌이 7개월 동안 나를 스토킹하고, 괴롭혔다. 경찰에 조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조사를 끝내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상황이다.  

당사자 '갑돌'의 주장 (가명. 남성) : 블로거 을녀가 먼저 나에게 접근했다. 내가 '다음 뷰'에서 잘 나가는 블로거인 걸 알고, 글을 대필해달라고 요구해 나는 60여개의 글을 대필해줬다. 지금 을녀의 행동은 너무 뻔뻔하다. 맞고소하겠다.

문의자 '이웃사촌'의 입장 (가명) : "......" 이런 사건이 있다. '다음(Daum)'은 이 분쟁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민노씨는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하다.

* 알림 : 위 '갑돌' '을녀'의 주장이 담긴 글 링크는 의도적으로 생략. 사실확인이 어렵고, 극단적 주장만 있어서..;;


0. 이웃사촌 님의 입장에 대해

* 참고 : 이웃사촌 님은 '을녀' 편에 서서 '갑돌'의 행위를 비판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갑돌' 입장에서 '을녀'의 행위를 비판하는 입장에 선 분이었다고 하더라도 제 판단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 입장은 양쪽에 공히 모두 적용되는 입장입니다.

저는 '이웃사촌'님의 행동을 순수한 동료애와 정의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옆에서 상황을 지켜본 입장"이 아니라서 이웃사촌 님과는 정서적 공감의 위치가 다르고, 이것을 차치하더라도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하며, 블로그상 공개된 자료만으론 아직은 양 쪽 어느 한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다른 편을 비판할 만한 판단재료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갑돌과 을녀의 주장이 갖는 무게(형사사건에 해당할 만한 행위 주장)를 고려하면이 사안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개인 간의 사적인 행위'에 기반하고 있기에, 즉 어떤 공적 인물, 공적 행위에 대한 판단이 아니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적인 행위에 기반해서 그런데 그 행위로 인해 어느 한 쪽은 인격적인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기에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고, 그 당사자에게 뿐만 아니라, 언제든 이런 유사한 사건에 휘말릴 수 있는 우리 자신에게도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인격이 걸린 문제인 것이죠.


1. 다음(DAUM)은 경찰도 검사도 법관도 아닙니다.

이웃사촌 님께선 "고소, 수사의 절차상 경찰에서는 직접 다음뷰에게 자료 요청"했을 것으로 말씀하셨죠. 맞습니다, '다음'에게 이 분쟁과 관련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다음'에선 이 사건과 관련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다음은 경찰도 아니고, 검사는 더욱 아니며, 법관은 더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음이 현단계에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일은 (거의 혹은 전혀) 없다고 봅니다. 다음이라는 서비스는 약관에 명시된 회원들의 '일정한 행위들'(가령 게시물을 통해 표현된 명백한 범죄적 행위들)에 대해서만 일정한 약관상 절차/벌칙 조항에 의해 규제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극단적으로 가정해보죠. 다음이 '갑돌'과 '을녀' 주장의 진실 여부 판단에 결정적인 '비밀댓글'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고 이 '비밀댓글'을 일반에 공개할 수 있을까요? 혹은 '비밀댓글'을 통해 갑돌과 을녀 당사자의 분쟁을 내부에서 조정할 수 있을까요?

구체적인 약관을 파악하고 있진 못하지만, 전혀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다음은 '심판자'가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그저 중립적인 관리자에 불과합니다. 다음에게 심판자 역할을 해달라고 나서는 일은 아주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뒤에 좀더 상술하겠습니다.

약관에 '분쟁 조정'에 관한 규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형식적 절차 규정이지, 다음이 그 내용을 판단해서 양 당사자의 합의를 이끌어낼 만한 실질적인 내용에 관한 중재 권한을 규정한 조항은 아닐 것입니다.


2. 포털의 임시조치(블라인드) 제도에 대해  

이른바 '임시조치'(블라인드. 명예훼손 등 사유로 권리피해 주장자가 신청하면 30일 동안 게시물을 가리는 것)는 광의로 생각하면 분쟁조정에 관한 한 장치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분쟁에서도 '갑돌' 측에서 '을녀'의 게시물을 이 임시조치 제도를 이용해 여러 번 블라인드 처리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직 법적인 판단을 받기 전, 제3자가 상식적으로 판단하기에 명백한 증거/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 자신의 인격을 명백히 침해하는 글을 올린다면, 결과적으로 그 글의 주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 권리 피해 주장자는 자신을 보호하고, 자기 입장을 항변할 권리를 갖고, 그것이 현존하는 임시조치 제도의 긍정적인 취지입니다.

물론 현실에서 '임시조치' 제도는 아주 악용되고 있습니다. 힘 있는 기업과 정부, 소위 공인과 유명인, 권력자들이 자신을 비판하는 의견들을 폐기시켜버리는 제도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죠. 심지어 일부 '맛집'에서까지 자기 가게에 대한 비평(혹평)을 지워버리기 위한 수단으로도 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제도에서 게시자(삭제된 게시물 게시자)의 반론권은 '권리 침해 주장자'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도 사실입니다.

(+ 인주찾기 4. 새드개그맨, <누가 명예를 말하는가?> (녹취록) : 이 글을 통해 임시조치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안들을 참조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3. 동료애와 정의감의 발현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것은 당사자가 공개한 자료에 바탕한 자유로운 토론이어야 합니다.

이 사안에서 법적인 판단은 경찰/검찰/법원에 맡겨야 합니다. 제가 보건대 갑돌도 을녀도 자신의 법적 권리를 충분히 알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당한 일에 대해선 누구보다 훌륭하게 항변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렇다고 주변에 계신 블로거들이 아무것도 해선 안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양 당사자가 공개한 자료들을 통한 사회적, 도덕적 판단과 평가는 얼마든지 자유입니다. 연판장을 돌리는 일도 자유이고, 이웃사촌 님처럼 관심을 호소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법적인 판단'을 대체하는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감정적인 정서적 선입견을 조장하는 '여론재판'을 유도하는 것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이 모든 자율적 사회적, 도덕적 판단은 인터넷이라는 자유로운 사상시장의 토론 메커니즘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토론에서 어느 쪽의 입장을 지지하고, 또 비판하던 간에 그 주장의 질량과 부피는 거기에 합당한 근거와 자료들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갑돌 vs. 을녀' 사건에서 모두 강한 주장만 있지 스스로 '물증'이라고 할 만한 것을 제시한 바 없고, 또 있더라도 그 '진실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할만한 명쾌하지 못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양측에서 공개한 명백한 판단 재료가 과연 무엇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알고 계시면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4. 다시 강조하지만, 다음은 심판관이 아닙니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런 점입니다. 블로거들이 어떤 사적인 일이 갖는 공적 성격에 관심을 갖는 건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심이야말로 사회적 상상력, 정치적 상상력의 맹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블로그 커뮤니티의 자율적인 토론 매커니즘을 통해 이뤄져야지, 어떤 시스템의 관리자에게 의뢰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 관리의 공적 측면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은 권장되어야 하지만, 그 관리자에게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사적 생활에 기반한' 사건의 '심판관'이 되어달라고 요청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이 내부 자료를 스스로 판단해서 어떤 회원(다음서비스와 계약한 블로거)를 손쉽게 단죄할 수 있다고 해보죠. 이건 일개 사기업에게 마치 사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실질적인 효과를 부여합니다. 이것은 그 특정한 서비스 공간(이를테면 다음뷰를 매개로 형성되는 커뮤니티)가 생활공간 자체인 어떤 블로거에겐 일종의 사형 선고와도 같은 것입니다. 좀 과장하면, 흡사 다음(DAUM)에게 다음을 공간으로 활동하는 모든 블로거들의 '빅브라더'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같죠. 아주 위험할 수도 있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웃사촌 님 취지가 그런 취지는 아니라고 넉넉히 신뢰하고, 또 제 우려가 과한 것이겠지만요.

다시 강조하지만 블로거 사회의 자율적인 토론과 자유로운 공방을 통한 진실 추구는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마땅합니다.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일반적으론 합리적인 의심과 논리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갑돌 vs. 을녀' 사건처럼 사적으로 민감한 사실관계에 기반한 사건은 그 일반적인 토론 요건보다 좀더 엄격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개된 명백한 사실' 혹은 양측에서 자발적으로 '공개한 자료'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판단하기에 '갑돌 vs. 을녀' 사건에서 다음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편에서 서서 이 사건을 바라보든, 법적인 판단과 사회적, 도덕적 비난가능성은 엄밀하게 분리해서 판단해야 하고, 또 이 사건을 너무 손쉬운 이분법으로 판단해선 안된다고 봅니다.

끝으로, 이웃사촌 님의 동료애와 정의감에 대해선 다시한번 넉넉한 신뢰와 더불어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 추. 다음 뷰 편집과 이 사건을 연계 시기키는 시각에 대해 ... (사족)
제 블로그(민노씨.네)는 독립형(설치형)입니다. 다음 블로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요. 더불어 '다음 뷰'에도 거의 송고하지 않습니다(최근 1,2년 동안은 아예 송고한 적도 없죠). 제 예전 글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다음뷰의 정책을 아주 강도 높게 비판해왔었죠...  물론 이제는 애정이 식어서 포기했습니다. 그 만큼(?) 다음 블로그와 다음 뷰 모두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다음을 편들만한 글을 쓸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

다음 뷰의 '편집(노출) 정책'을 이 사건과 연계하는 관점은, 뭐랄까, 과도한 의심인 것 같습니다. 설혹 다음 뷰 관리자가 어떤 의도를 갖고 갑돌의 글을 높게 노출시키고, 을녀의 좋은 글들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낮게 노출시킨다 하더라도, 그 글이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각자가 써온 글들(갑돌의 야구글, 을녀의 음악글)이라면 이것은 일개 사기업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있을지언정, 이 사건과 연계되어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판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