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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노씨.네: 518-그리고-폭력의-구조에 달린 최근 댓글/트랙백 목록</title>
		<link>http://minoci.net/</link>
		<description>온라인 실존, 속물근성, 그리고 커피캬라멜에 대한 이야기...</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13 Sep 2011 11:35:2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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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노씨.네: 518-그리고-폭력의-구조에 달린 최근 댓글/트랙백 목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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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노씨님의 댓글</title>
			<link>http://minoci.net/857#comment19264</link>
			<description>* 제목 수정.</description>
			<author>(민노씨)</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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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minoci.net/857#comment</comments>
			<pubDate>Mon, 18 May 2009 23:33:2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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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아메디아님의 댓글</title>
			<link>http://minoci.net/857#comment19272</link>
			<description>다시 옛 독서, 그러나 부족한 독서를 되새겨 주고, 무엇보다도 5.18에 대한 겹치는 상념들을 돌이켜주는 글입니다. 지라르는 그렇다고 쳐도, 왜 김현에게 광주는 &amp;quot;그림자로만 머물러&amp;quot;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는 왜 광주 자체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왜 르네 지라르라는 생소한 - 물론 대가의 통찰력을 가진 - 인물의 매우 파격적인 이론을 검토하는 것으로 출발했을까? 외국의 이론을 우리의 경험에 대비해 봄으로써, 새로운 이론을 소개하고, 이에 그치지 않고 이를 우리 삶에 대한 분석에 적용함으로서(문학 비평이든, 문화 비평이든) 우리 생각의 방법과 지평을 넓히는 두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것이었을까? 여전히 어떤 이론은 저마다 그 발생학적인 맥락을 갖고 있는데, 그 이론을 그 맥락에서 동떨어진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적용하는게 그리 적절한 것일까? 하더라도 그 비판적인 거리두기의 지점은 어디일까? 그런 점에서 김현 혹은 나 같이 외국에서 공부하는 처지에 있는 이들은, 서구가 마련한 경험과 이론의 정치함에 눌려, 근본적으로는 보편주의를 전제하는 일에 쉽사리 빠지지 것은 아닐까? 뭐 이런 생각까지 잡다하게 닿았습니다. 논리적인 것은 아니고요. 

그러다 다시 지라르를 조금 들춰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폭력에 대한 통찰을 신화 분석이나 그 밖의 인류학적(이라고 주장하는) 분석(이 아니고 그 전제를 무차별하게 적용한다는 비판이 있지만)을 통해서 길어올리는 것은 가히 혁명적이거니와, 욕망하는 인간에게 피할 수 없게 자리잡은 이 폭력과 은폐의 구조를 까발기는 폭로의 전략으로서 매우 소중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뭔가 공허한 느낌이 드는 것은 &#039;지금까지 몰랐던 걸 이제 내가 알려주마&#039;하는 그의 단정적인 태도에 내 마음이 흐트러진 탓인지 몰라도, 어떤 전제된 구조에 모든 것을 끼워맞추려는 인상이 들어요. 그가 늘 &#039;시원&#039; &#039;창건적&#039;이라는 수사로 어떤 천형처럼 박힌 어떤 폭력의 원형을 말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그 자신 천주교 신자로서 그 무의식에 내재한 어떤 원죄 신학이 비치는 듯 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가 보기에 유일하게 혁명적인 &amp;quot;예수의 사건&amp;quot;이 다시 속절없이 그가 말하는 폭력의 구조에 포섭되는 이유가 뭔지도 그저 환원론적으로 말할 뿐이고. 그러니 뭔가 빠진게 있다, 그것은 삶 자체로서의 결이 겹쳐서 전개되는 살아있는 이야기라는 것이에요.

나 같은 성서학 아마추어가 보기에도,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그것이 어떤 원형적인 시원을 밝혀주는 신화이기 이전에, 출애굽(Exodus)라는 사건의 경험에 기반하여 세계와 우주에 대한 해석학으로 마련된 결과물이거든요. 출애굽기의 이야기가 그 이전의 창세 신화와 이후의 역사 해석의 원리가 되었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해석학 혹은 해석과 분석의 근거가 되는 경험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늘 반복되어 기억되는 &amp;quot;떠돌던 백성들이 노예가 되었다고 해방된 사건의 경험&amp;quot;이겠지요. 이것은 어떤 원형적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풍요로운, 어디에도 끼지 못했던 떠돌이의 경험, 박해받았던 노예의 경험, 그리고 여기서 해방된 경험이었단 생각에 이르러요. 분석의 과잉이 풍성한 이야기의 기억을 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5.18 을 다시 돌아봅니다. 질문은 민노씨의 말마따나 &amp;quot;이제 합법으로 위장된 폭력의 구조는 죽음을 보이지 않는 투명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amp;quot;는데 속수무책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amp;quot;5.18&amp;quot;은 숫자 그 자체로서 큰 울림과 떨림이 있었어요. 그 숫자로서만도 떠올려지는 화면들(우리는 나중에 질낮은 비디오로 숨어서 봐야 했으니까), 풍문들(우리는 몰래 귀속말로 전해들어야 했으니까)이, 그리고 거기서 나온 참을 수 없는 분노들(진보 논리 이전에 우리는 눈물을 훔치고 옷을 찢고 일어섰으니까)이 우리의 살갗과 눈물에 범벅이 되어 이야기로 남았던 것 같아요. 그러니 사실 5.18을 &#039;사태&#039;로 부르든, &#039;민주화 운동&#039;이라 부르든, &#039;민중 항쟁&#039;이라 부르든,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던거죠. 5.18이라는 숫자로서 우리에게는 5.18 의, 그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와 생생한 기억이 있었던 것이지요.  

한동안 &amp;quot;5.18&amp;quot;은 출애굽 사건처럼 우리 삶과 사회의 변혁에 대한 해석의 토대로서 작용했고, 지금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최소한 지난 25년여 동안 &amp;quot;5.18&amp;quot;은 이런 점에서 가장 극악한 폭력에 대한 폭로요, 진보적 운동의 근거였습니다. 그런데 그 근거가 되는 그 경험의 이야기가 기억되고 재생산되는 방식은 어떤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5.18을 거대한 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지는 않았나, 우리는 자기 입맛에 따라 늘 멋대로 요리하고 치장하는데 써먹긴 했어도, 그 의미는 과잉되어 넘치는 대신에, 아직 펼쳐지지 않았던 그 속의 이야기들은 묻혀지고 잊혀지지 않았나, 그 사이에 망각의 시간에 몸을 던져서, 그 화면과 풍문과 분노로 몸에 새겨졌던 이야기들은 하나씩 잊혀지지 않았나 하는 것이지요. 기억되어야 한다고들 하는데, 무엇이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의 틀 속에서 기억될 지를 마련하지도, 아니 우리 스스로 그렇게 기억하지 않고, 점점 늙어가는 피부에 우리의 감수성을 내버려두고 둔감해지지는 않았는지 하는 상념에 이르러요. 

어찌보면 무엇보다도 그 살에 새겨진 이야기들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선후 관계는 얽혀있을 것이나, 폭로의 전략 효율성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감수성이 무디어져 그 폭로가 식상해진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분석과 전략 속에서 우리는 대상을 늘 밖에 두다 보니, 제 자신을 돌아보지 않거나, 쉽게 면책하고 맙니다. 폭로되어야 할 것은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제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니 결국 &amp;quot;매일 매일 투명한 죽음을 만들어&amp;quot; 내는 일에 공조하는 셈이기도 하고, 폭력을 까발기기는 커녕, 여전히 스스로 폭력 은폐의 주체가 되어가는 것이지요. 

5.18 과 민노씨 글 탓에 아주 잡스런 생각이 &amp;quot;창조적인 오해&amp;quot;에 기대어 부조리하게 일었습니다.</description>
			<author>(비아메디아)</author>
			<guid>http://minoci.net/857#comment19272</guid>
			<comments>http://minoci.net/857#comment</comments>
			<pubDate>Tue, 19 May 2009 16:04:3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민노씨님의 댓글</title>
			<link>http://minoci.net/857#comment19276</link>
			<description>서두에 잡다하신 생각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깊이 깊이 공감하는 편입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039;세속적 비평&#039;을 강조한 이유, 조혜정이 &#039;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읽기와 삶읽기&#039;에서 강조한 바는 주신부님께서 아쉬워하신 바로 그 부분, 그런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나 &amp;quot;발생학적인 맥락&amp;quot;이라고 지적하신 부분에 통감하는데요. 김현은 [폭력의 구조]에서 우리나라 삼국유사의 건국신화들과 제주도 개벽 신화를 분석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적극적인 정치적 실존을 투사해서 읽혀지지는 않더랍니다. 그저 한 사례로만 읽혀질 뿐이죠. 

주신부님께서 여기에 담아주신 논평은 그저 여기에 남기기에는 너무도 큰 아쉬움이네요... 그 문장 하나 하나에 배어 있는 인식과 고민들에 거듭 거듭 제 부족한 각주를 달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제 글 본문에 보충하겠습니다만, 주신부님게서도 &#039;비아메디아&#039; 블로그에  담아주시면 주신부님 독자들께 인식의 장을 넓힐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듭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할 뿐입니다.</description>
			<author>(민노씨)</author>
			<guid>http://minoci.net/857#comment19276</guid>
			<comments>http://minoci.net/857#comment</comments>
			<pubDate>Wed, 20 May 2009 03:24:59 +0900</pubDate>
		</item>
		<item>
			<title>민노씨님의 댓글</title>
			<link>http://minoci.net/857#comment19277</link>
			<description>* 본문 오타 수정. 
* 비아메디아 논평 본문 보충.</description>
			<author>(민노씨)</author>
			<guid>http://minoci.net/857#comment19277</guid>
			<comments>http://minoci.net/857#comment</comments>
			<pubDate>Wed, 20 May 2009 03:44:2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상식맨님의 댓글</title>
			<link>http://minoci.net/857#comment21109</link>
			<description>탈북자들의 증언록인 &#039;화려한 사기극의 실체&#039;를 읽어 보시면 5.18의 실체에 대해서 자세히 아실 수 있을 것 입니다.</description>
			<author>(상식맨)</author>
			<guid>http://minoci.net/857#comment21109</guid>
			<comments>http://minoci.net/857#comment</comments>
			<pubDate>Sat, 10 Oct 2009 10:12:0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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