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80년 5월

2007/05/18 09:36
이 글은 작년 이맘 때(2006. 5.) 여기( http://blog.hani.co.kr/skymap21/2100 )에 등록했던 글입니다. 콘텐츠의 중복적 표시에 대해선 그다지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지만, 글의 공익적 성격을 고려해서, 거기에 있던 글도 예외적으로 지우지 않고, 여기로 옮겨옵니다. 추고는 최소한으로 합니다.

소위 '민족지' 조선일보의 80년 5월의 기록을 검토합니다. 괄호 ( )에 담겨있지 않고, 숫자 뒤에 이어지는 문장들은 기사(사설)를 있는 그대로 인용하는 것입니다. 혹 저작권이 문제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뭐, 어느 정도는 매체비평, 혹은 역사비평의 성격을 갖고 있고, 상업적인 의도가 없는 바에야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심만을 요약합니다. 원문은 PDF 파일을 참조했습니다.



조선일보, 80년 5월


1. 80년 5월 20일 (화요일) 2면 사설 - 백척간두에 서서

1. (우리는) 실로 고난에 찬 민족이다. 10.26이후 마침내 5.17조치 까지 (정말 빡세다).
2. (그런데 이 고난은) 원천적으로 바로 1/2의 해방인 분단에서 근원하고 파생(한다).
3. (아무튼 지금 우리는) 5.17조치를 맞았다.
4. (어쨌거나 저쨌거나) 역사는 분명히 가야할 전환의 고비를 가고 있었다.
5. (지금 우리는) 위기를 잠재적으로 맞고 말았다.

6. (그래서) 최규하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비상계엄령을 전국화하는 5.17조처를 취하면서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을 국민에게 호소했다.

7. "북괴의 격중하는 적화책동이 학원소유를 고무, 선동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정치인, 학생, 근로자들이 조성하고 있는 혼란과 무질서가 우리사회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으며, 이와 같은 사태가 경제란까지 극도로 악화시켜 바야흐로 국기를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할 우려가 있다"고 최대통령은 지적한다.

8.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치를 비록한 모든 국가 기능은 국민적 믿음을 바탕으로 했을때에만 비로소 그 권위가 보장되며, 그 기능의 정상화가 확보(되니까) (잠자코 가만히 따르면 된다).
쉽게 말해서 5.17 전국 계엄확대를 옹호하는 사설이다 온갖 장엄하고, 그래서 유치한 수사들을 동원하는데.. 결국 말하고 싶은 건 그냥 국으로 가만히 있어라, 뭐, 이런 메시지다.

2. 80년 5월 22일 (목요일) 1면

(참조) 1면 헤드라인 = 총리 서리 박충훈씨 / 최대통령 임명 각료 11명 교체

1) 광주 일원 소요 사태 / 나흘째 학생 - 시민 합세 / 계엄사 [광주사태] 발표

계엄사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광주지역 소요가 악화되는 현상은 전국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서울을 이탈한 학원 소요주동 학생 및 깡패 등 현실불만세력이 대거 광주에 내려가 사실무근한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퍼뜨린 데 기인됐다고 했다. 광주 지역에 유포된 유언비어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 ⓒ오마이 2005 신복진
설명 : 오른쪽 위 빨강 점선은 대검을 착용했다는 표시

(원출처는 5.18 기념재단 [오월, 우리는 보았다])

1. 경상도군인이 전라도에 와서 여자고 남자고 탁치는 대로 밟아 죽이고 있기 때문에 사상자가 많이 난다.
2. 18일에는 40명이 죽었고 시내 금남로는 피바다가 되었으며 군인들이 여학생들의 브래지어까지 찢어버린다.

3. 공수부대애들이 대검으로 아들딸들을 난자해버리고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게한 후 장난질을 한다
.



4. 공수부대가 몽둥이로 데모군중의 머리를 무차별 구타, 눈알이 빠지고 머리가 깨졌다.
5. 한신대 학생 1명이 18일 다쳐서 죽었다.
6. 학생들 50여명이 맞아 피를 흘리며 끌려 다니고 있다.
7. 계엄군이 점거하고 있는 가톨릭센터 건물에는 시체 6구가 있다
.

8. 데모 군중이 휴가병을 때리자 공수부대가 군중을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
9. 계엄군이 달아나는 시민들에게 대검을 던져 복부에 박혀 중상을 입혔다.
10. 진압군인들은 경상도 출신만 골라 보냈다는 등이다


2) 박총리 서리 광주에 광주에 급파 (+ 최대통령 소요사태 수습 위해)

3) "고정간첩 침투 선동" (+이계엄사령관 경고 자위위해 조처강구) - 계엄사령관 이희성 육군대장의 담화문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중략...) 터무니 없는 악성 유언비어의 유포와 공공시설 파괴 - 방화 (...중략...)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 선동하고 난동행위를 선도한데 기인된 것입니다. 이들은 대부분이 이번 사태를 악화시키기 위한 불순분자 및 이에 동조하는 깡패 등 불량배들로 서 급기야는 예비군 및 경찰의 무기와 폭약을 탈취하여 난동을 자행하기에 이르렀으며 (...중략...) 본인은 순수한 여러분의 애국충정과 애향심이 이들의 불순한 지역감정 유발책동에 현혹되거나 본의 아니게 말려들어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파탄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중략...)

3. 80년 5월 25일 (일요일) 2면 사설
- 도덕성을 회복하자 (부제 : 진정 우리에게 너무한 경험앞에)

0. 우리는 지금 국가와 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엄연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게 뭐냐면 광주다).

1.우방 여러나라에서 한국정부의 불안을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안타까와하며 진정어린 충고를 보내주고 있다. (...중략...) 참으로 고마운 (...중략...) 비극의 나라를 우방으로 둔 그 나라(미국)에 대해서 목하 거추장스런 짐이 돼있는 우리로선 당혹스런 착잡한 심정마저 누를 길 없다.

2. 한국의 내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고맙게도 미국형님께서!!!) 미국정부는 북괴의 전쟁모험주의를 사전에 봉쇄키위해 대한방위지원 결의를 재천명(했다). (...중략...) 미국의 정치적 결의와 신속한 군사행동은 한국내의 정정불안과 소요사태에 따른 북괴의 정세오판과 재침기회를 미연에 예방코자 함(이다).

3. 대외적인 안보측면에서의 우방지원에 감사하는 한편으로 우리에겐 대내적으로 시국을 안정시켜야할 책무가 뒤따른다. (...중략...) 우 리의 위정자들(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겠지, 아마도)이 북괴의 남침위협을 운운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치기술의 하나로 가벼이 인식하는 불신풍조와 [안보]라는 단어에 대해 식상증에 걸려 있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도덕적 비극의 한 인자가 되어 (있다).

4.지난 18일 이후 1주일째 계속되고 있는 광주 등 일원의 소요사태는 (...중략...) 불행중 다행하게 그리고 구원적인 한 상징으로 그런 과중에서도 시위군중이 간첩으로 인정되는 자들을 색출해냈다는 사실이다.

5.사회혼란의 틈바구니에서 또는 격앙된 군중속에서 간첩이나 오열(五列)이 선동하고 파괴와 방화와 살상의 선봉적 역할을 하리라는것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그런 증거가 포착되기도 했으며, 서울에서는 남파간첩이 체포되기도 했다.

6. 이들이 지역감정을 촉발시키는 등 갖은 유언비어를 퍼뜨려 민심을 흉흉케함으로써 사태를 격화시켰으리라는 것도 십분 짐작이 가기도 한다.

7. 피흘림을 보고 불길이 솟고 군중의 격앙된 심리상태에서 이성을 잃게 되면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분별력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8.우리에겐 지난날 대구와 제주의 폭동사건 그리고 여순반란사건 그리고 성남시와 사북에서의 소요사태등의 경험이 또한 있다. 지혜를 모으자

미국형님에 대한 감사 말씀. 신군부에 대한 찬양 말씀. 국민들에 대한 '훈계'(도덕적으로 문제란 말이다!). 이런 신문이 스스로 '민족지'라고 떠든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난 이런 굴종적이고, 천박하며, 자기모멸적인 인식은 정말 처음 본다. 이런 기본적 인식 구도는 '대추리'에서도 반복된다.


4. 80년 5월 27일 (화요일) 7면 - 혼미 ... 광주사태 10일째

상가, 은행등 문 못열어 / 외부와 두절 생필품난 극심 (큰 기사)
광주, 목포제외 전남 일원 평온회복 : 계엄사 발표 (약간 큰 기사)
일가족 3명 피살 (+ 괴한침입 총난사) : 광주 (약간 작은 기사)
전남 도경국장 경질 (작은 기사)

조선일보 사회면에서 바라본 광주의 모습이다.
전체적으로([광주, 목포 제외]라는 문구는 작게 숨겨져 있다) 평온을 되찾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일상적인 생활의 어려움(위 1번 기사)이 있다는 식이다. 선정적인 흥미유발용 기사(원한에 의한 일가족 피살)등으로 사안의 논점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역시 편집은 조선일보다. 그 저널미장센이 이미 이때에도 빛나고 있었구나 싶다.


5. 80년 5월 28일 (목요일) 1면 - 계엄군, 광주 장악
- 17명 사망, 2백 95명 보호중 : 계엄사 발표 / 계엄군 순직 2, 부상 12명.

1. 어제 새벽 전격진입[3시 30분] / 백분만에 끝나 시내출입 잠정제한
2. 시민피해 없도록 과감히 관대처리
3. 구호-복구 최대 지원 : 최대통령 지시 관계자오간대책위 구성
4. 안 前전남도경국장 직무유기혐의 연행
5. 이런 비극없게 자성, 피해시민들에 죄송 : 이문공 담화
6. [팔면봉] 광주, 바람 자고 먹구름도 걷히다. 사랑과 평화와 번영으로.

팔면봉은 압권이다. 사랑과 평화와 번영으로 나가잖다. 그 무수한 피를 뿌리고, 그 피가 마르기도 전에, 그 오열과 통곡이 잦아들기도 전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사랑과 평화와 번영이라니... 이제 곧 대통령 등극할 전씨를 비롯한 신군부에게 사랑과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6. 80년 5월 28일 (목요일) 7면

- 10일만의 평온... 복구 서둘러 (계엄군이 장악한 광주시가)

1. 위 메인기사의 큰 설명문구들
   "어떻게 지냈느냐" 인사 나눠
   공무원-경관들 출근... 기능회복
   시내전화 한때 불통... 아침 9시까지 간간이 총성
   시민들은 사후처리에 관심집중
2. 광주에 생필품 비상공급
   정부조사반 현지 파견 세금납기 한달 연기
3. "광주시민을 돕자"
   부산 - 대구 - 경남 민간단체등 전극 호응 / 삼성 2억 기증
4. 부상치료 전액 지원, 전파가옥 5백만

이제 상황종료 선언이다. 사회면에서 확실하게 도장 찍고 있다. 3번 기사는 의도적으로 부산/대구/경남..을 강조함으로써 광주항쟁의 지역분열, 지역갈등 문맥을 노골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광주는 영남을 모략했지만, 영남은 광주를 돕는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할 수 있을까 싶다.

조선일보의 특기는, 아니 우리나라 언론의 대체적인 장기는 이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의 복귀'를 설계해낸다는 점에 있다. 아무리 커다란 아픔이 있어도, 어떤 야만이 우리 소망을 흠집냈는지, 아니 그 소망을 갈갈이 찢어버렸는지... 그 이유들, 그 절규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냥 그저 일상으로 복귀하는거다.


7. 80년 5월 29일 (목요일) 1면 - 서서히 문 열리는 광주

1. 위 메인기사의 설명문구들
   계엄군 진입 사흘째 길목에 다시 교통순경 모습
   "이젠괜찮나" 상가절반 "개업"
   시민들 "금품보다 [마음구호]를"

2. 아직은 자전거의 거리 / 바리케이드도 말끔히 / 택시 간간이...시외버스도 통행
3. 한국 민주발전 희망 : 미국무성 대한(對韓) 방위조약 준수 결의 재확인
   "질서확립 시급한 때"

4. 광주사태 수습협의 : 박총리, 첫 주요각료 간담회주재
5. [만평] 광주를 돕자
6. [자사 광고] 광주시민 돕기 모금 / 본사서 2천1백35만원.

일상으로의 복귀를 독려하는 기사가 메인을 차지하고 있다. 인상적인 기사는 미국형님에 대한 감사표시 기사와 만평과 자사광고로 '광주를 돕자'고 나선 점이다. 역겹다.

8. 80년 5월 29일 (목요일) 2면 사설 - 민족정서를 살리자

(우리는) 단일민족(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굳이 의식하진 않더라도 원천적으로 민족이 공감하는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민족정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난국(을 풀어야 한다).
(그런데) 화해, 화합이 우리 민족정서의 대종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대립과 갈등의 시기는 불가피하다. 더욱이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국제화 그리고 숱한 가치관의 혼란틈에서 이 대립과 갈등은 빈발해왔으며, 빈발해나갈 것이 자명하다. (그러니까) 화합의 슬기(가 필요하다는 거다).
화합은 야합과는 다르다(그러시군!).
(한편) 한국인은 인정에 강하다. 곧 인정이야 말로 우리 민족정서의 다른 한 특성(이다).
옛날의 취락단위인 촌락공동체는 인정으로 맺어진 생계와 운명의 공동체였다.

(드디어 결론을 말하자면) 광주사태가 빚은 후유증일랑 먼저 이 화합과 인정이라는 민족정서의 고약으로 그 아픔을 덜고, 이 민족정서를 에너지로 하여 모나지 않는 부드러운, 그러면서 발전적인 분위기를 우리 주변에 깔아 나가기로 하자.

사설의 논리를 거칠게 다시 정리하면, 우리는 단일민족으로서, 우리민족의 정서상의 특징은 '화합'과 '인정'인데, 까칠하게 광주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화합하고 인정 발휘해서 대충 모나지 않고, '부드럽게' 살자는 거다. 그러니까 언론으로서의 제일사명인 치열한 이성에 의한 진실 추구 의무를 내팽게치고, (미국형님과 신군부를 위해서) 인정 발휘하고, 화합하자고 말하고 있다.

이건 신문도 뭣도 아니다.
그런데 그냥 쓰레기도 아니다.
이건 악(惡)이다.


9. 총평

[80년 오월 광주]라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보여준 조선일보의 정체는 이상과 같다.
조선일보가 아직도 호령하고, 시민들 가르치고, 훈계하는 사회에 우리는 산다. 그리고 정말 미스터리하게도 많은 시민들은 그런 조선일보가 편안하다. 조선일보는 현재 우리사회의 윤리적 부재와 역사의식의 결핍을 아프게 방증하는 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그 오월 광주를 '왜곡'하고, 자기 편한대로 재구성하는 것처럼, 아직도 조선일보는 '대추리'를, 아니 대한민국을 그렇게 왜곡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한다. 여기서 한술 더 떠서, 그 대추리 싸움, 그 소망의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친북 불순분자'로 몰고 있다. 거기에 대다수 시민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이런 조선일보를 그대로 두면,
이런 조선일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면, 우리 스스로가 언젠가 그 광주와 대추리의 상처를 안은 그 다른 우리들처럼 '당할 수' 있다. 우리들을 움직이는 건 '이익'이니까, 쉽게 말하는거다. 광주와 대추리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면, 그래서 조선일보가 이야기하는대로 그렇게 '안락하게' 쉽게 쉽게, 인정 발휘하면서, 가짜 화합, 거짓 화해로 야합하고, 타협한다면, 다음에 절규하고, 오열할 수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들이다.



* 관련 추천
기억을 기억하라
http://www.thirdtype.net/1014 

임을 위한 행진곡 (오랜만에 한번 들어보시죠. ^ ^; )
http://www.nirvanana.com/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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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5.18 다큐 - 기억을 기억하라

    Tracked from THIRDTYPE'S NETWORK 2007/05/18 10:32 del.

    기억을 기억하라 (HD다큐, 2005) 기획: 5ㆍ18기념재단 제작: 다큐코리아 촬영 : HD 시간 : 57분 기억하는 것 만으로 멈춰서는 안되겠지만, 적어도 잊지는 말아야 할...

  2. Subject : 5.18 - 망각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Tracked from 도아의 세상사는 이야기 2007/05/18 23:03 del.

    미투데이 오늘은 5.18입니다. 머리가 없는 분이 머리 꼭대기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한 가장 대표적인 만행입니다.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하지만 먼저 잊지 말아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기억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망각은 그 자유보다 훨씬 무섭습니다.. 기억을 기억하라 (HD다큐, 2005) 자동으로 재생되지 않습니다. 시청을 원하시면 재생 단추를 누르시기 바랍니다.

  3. Subject : 내 편한 친구

    Tracked from 벗님의 작은 다락방 2007/07/01 06:17 del.

    친구를 하나 소개하지.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친구라고 불러야겠지. 혹시 알지도 모르겠다. 좀 유명한 녀석이니까. 개인적으로는 꽤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어. 이 녀석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다양하고 많은 것들을 알고 있거든.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도 자주 꺼내고. 국민학교 선생님도 이 친구랑 잘 지내라고, 좋은 친구라고 소개해줬어. 선생님들은 거짓말하지 않잖아. 난 이 친구와 사귀어 보기로 했지.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씩 던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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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sss 2007/05/18 10:33

    그당시는 저랬더라도, 나중에 최소한 사과와 반성은 해야할텐데...
    그런 것들은 언제나 그렇듯 입 쏙 닦아버리고 정론지입네 하는 모습이...
    참...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05/18 10:39

      저 역시 최소한 역사에 대해서 경건한 태도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만... 황우석 파동 때도 그렇고, 대추리 때도 그렇고..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2. THIRDTYPE 2007/05/18 10:34

    저 역시 고등학생때까지도 이 얘기가 유언비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실을 접하니까 정말 당혹스럽더군요. 아직도 북한의 사주로 시작된 일인줄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니 이런 진실들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좃선일보 나쁜 새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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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05/18 10:43

      저 역시 이런 저런 유언비어, 소문들로 처음 '광주'를 접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김승훈 신부님께서 주임신부님으로 계시던 왕십리 천주교회에서 광주항쟁에 대한 기록들을 접했지요. 당시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정말 잊어서도 않되고, 잊혀져서도 안되는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p.s.
      그런데요..
      써드님께서 올려주신 다큐 동영상이요.
      "워커발로.. " 요부분에서 계속 끊겨서..
      동영상을 다시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신지..
      [퍼가기]도 클릭 안되고.. ^ ^;;

  3. 민서대디 2007/05/18 10:42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05/18 10:44

      더 더욱 문제는 그 야만의 시스템이 아직도 여전히 건재하고, 또 더욱 더 교묘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4. 순디자인 2007/05/18 11:56

    민노씨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혹시 관련 자료를 더 올려주실 수는 없는지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05/18 14:03

      과분한 격려시네요.
      일년 전의 기록을 옮겨왔을 뿐인데 말이죠. ㅡㅡ;;

      관련자료는 저 역시 궁금하네요.
      한번 찾아볼게요. : )

  5. 너바나나 2007/05/18 15:18

    중고대를 광주에서 보냈심다. 중학교 가니 선생님들 께서 5.18만 되면 그 때 자신의 경험들을 얘기해주시고 그러길래 다른 지역도 다 잘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거이 아니더만요.
    얼마나 더 모독을 해야할런지.. 거참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05/18 15:29

      그러셨군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오월 광주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던데..
      좀 그렇네요..

  6. 내가 내냐? 2007/05/18 17:01

    뭐 여기가 따분하다는 얘기는 아니고 블로그 활동이니 정치상황이니 그런데 관심을 못 가져서요.

    몇 년전 잠깐 광주에서 일할때 5.18. 행사를 겪은 적이 있죠. 전야제 날엔 정말 많은 행사와 인원을 볼 수 있었는데 막상 5월 18일은 조용했습니다. 그 시기가 한국월드컵과 가까웠을거예요. 그때 한국이 4강 올라가니 사람들이 트럭에 올라타고 시내도로 달리며 태극기 휘날리며 만세부르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5.18을 겪은 분이 그랬습니다. "80년 5.18 때 저러다 총 맞아 죽은 사람들 많았다..." 라구요.
    올려주신 두 번째 사진속의 도로가 아마 광주생활시 제가 출퇴근을 하던 도로같습니다. 걸으면서 "이 도로, 사진속에서 많이 보던 그 도로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거든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7/05/18 21:28

      그냥 가볍게 한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뵈니 새삼스레 반갑네요. ^ ^;;

      그런 일이 계셨었군요.
      월드컵의 열광어린 분위기와 그 때, 제가 보지는 못했지만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그 또 다른 열광이 떠오르네요. 같은 열광이자만.. 그 빛깔은 참 많이 다른 것도 같습니다.

      그 도로에서 출퇴근하셨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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