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적 블로깅 : 도장깨기 신화

2009/04/27 16:09
'인터넷 논객'으로 대표되는 우리시대의 '도장깨기' 신화는 '미야모토 무사시'류의 신화적 관극틀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그 '논객'들은 학위가 있는가, 교수인가, 중앙일간지에 기고하는가, 방송에 출연하는가, 책을 냈는가 따위의 세속적이며, 과시적인 표지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일종의 외교술인 셈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대단히 유치하고, 또 실질적으로 위험한 표지들이다. 이것은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을만큼 자명하다. 지난 황우석 파동은 지식으로 치장된, 그리고 제도적인 조력을 받는 '구라'가 국가경쟁력이니 애국주의와 결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총체적인 혼란과 아수라장을 보여줬다. 이것은 자기 성찰 없는 지식이 갖는 파괴적인 속성과 야만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블로깅이 갖는 민주적인 속성, 그 가운데 내가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은 '권위 저항적'인 속성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서로 다른 다양성의 목소리들이 수평적으로 대화함으로써 생겨나는 생명력, 그 가능성이다.  그것은 쉽게 말해 '실수를 통해서 성장하는 모델'이지, '실수를 통해서 붕괴하는 모델'은 아니다. 학위가 있는지, 기성언론에서 얼마나 노출도를 갖는지, 히트한 책을 냈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저 블로깅의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대화의 실질적인 풍경들이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즉 얼마나 많은 독자들에게 실존적인 울림을 주는가, 그 울림이 얼마나 지속적인 대화의 풍경 속에서 자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중요하다.

레오포드의 글을 읽다가 거기에 인용된 박권일의 글을 읽었다. 박권일이 블로그를 바라보는 방식은 대단히 아이러니한데,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대결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일종의 도장깨기 신화, 이 신화 속에서 블로거 혹은 논객은 일종의 무사시류의 '사무라이'가 된다), 또 말미에서는 이 도장깨기 신화 속에 잠재된 '권위저항적인 속성'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어 부분에는 찬동하지만, 그 과정을 바라보는 방식은 너무 위계적이고, 너무 대결적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박권일이 세운 전제는 대단히 위험한 전제라고 생각한다.

블로깅을 통해서 "자아가 붕괴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아가 견딜 수 있는 성찰을 이끌어내는 상처들이, 그리고 그 상처들을 극복해가는 자아의 성장이 생중계된다고 봐야한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또 누구나 잘못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자아가 붕괴'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블로깅은 도장깨기가 아니며, 블로거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아니다.

이런 대결적인 블로깅의 전제에는 앞서 이야기한 세속적이며, 과시적인 표지에 대한 향수가 자리한다. 이런 퇴폐적인 향수 속에서는 블로깅이 그저 대화 시스템이며, 그 대화시스템이 갖는 유희적인 속성, 실존적인 속성, 수평적인 속성을 읽어내지 못한다. 혹은 그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넉넉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너무 진지해진다.

블로깅은 그저 실수투성이의 대화이고, 그 대화가 논쟁의 형식인 경우에, 그 논쟁으로 인해 잠시 쪽팔릴 수는 있겠으나, 그것으로 자아가 붕괴된다면 원래 그 자아는 그 정도의 자아였을 뿐이다. 그저 블로깅을 통해 자신의 실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을 갖게될 뿐이다. 궁극적으론 다름을 통해 좀더 고양된 인식의 지평을 확보할 수 있는 내적 성찰의 기회를 갖는 삶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일 뿐이다. 논쟁을 통해 '자아가 붕괴'된다는 둥의 호들갑을 떨 일은 전혀 아니다. 한 광기어린 철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위대한 정신은 숭배받기 보다는 비판받기를 원한다. 그 비판을 통해 자아는, 정신은 자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뿐이다. 블로깅이 무슨 싸구려 놀이감으로 폄하되는 것도 이상하지만, 무슨 자아의 붕괴를 이야기할 정도로 괜한 신화적 관극틀을 통해 심각해질 필요도 전혀 없다.


* 발아점
레오포드의 글에 인용된 박권일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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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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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의리 2009/04/27 17:17

    [quote]블로깅은 도장깨기가 아니며, 블로거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아니다. [quote]
    물론입니다만, 블로깅을 도장깨기로 보고 자신을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입시키는 사람이 없을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친구들의 생각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지 난감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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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4/28 00:59

      그냥 그렇게 살다가 깨닫으면 좋은거고...라는 생각도 들고, 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나름의 개성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론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가라... 뭐 이런 냉소가 생기기도 하고요. ㅡ.ㅡ;

      추.
      BB플러그인을 도입하지 않아서 태그 안 먹습니다...;;;;

  2. leopord 2009/04/28 00:26

    아시겠지만 박권일의 코멘트는 노모씨(...)의 열폭에 대한 감상 정도지요.ㅎㅎ; 그래서 댓글들도 다들 떠나시면 아니되옵니다 연발을 했지만 말입니다.

    꼭 노모씨나 박권일 뿐만 아니라, 이른바 비정치적인 영역-성적 자율, 취존중, 소통방식의 이질성 등. 푸코적인 의미에서 진정 정치적인 영역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블로거들이 "대체 어느 선까지 표현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에 서 있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이글루스의 --G--님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정체성과 상식 사이의 갈등이랄까요. 그 점에서, 말씀하신 권위저항적-수평적 속성은 당사자의 내적 성찰과 주변인의 관용이 둘 다 필요하다는 점에서 블로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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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4/28 01:27

      노정태씨의 열폭에 대한 감상치고는 너무 가학적인 느낌도 드네요. 뭐 저 개인적으론 그럴수도 있지.. 이런 생각도 한편에서는 남아 있어서요.

      레오포드님께서는 역시나 대단히 학구적인 태도를 갖고 계시고만요. 푸코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아마도 이름의 어감이 맘에 들어서인 것 같습니다..;;;), 관심을 갖고 있는 저자라서 저자를 기준으로는 가장 많은 관련책들을 사서 읽었던 저자들 가운데 한 명인데요(그런 저자들 가운데는 니체, 김현, 박노해, 황지우, 황지우는 직접 쓴 책이 몇 안되고, 번역한 책도 몇 권 안되긴 하지만요. 정도가 있겠고만요). 역시나 잘 읽히지 않더만요. 아무튼 김현의 마지막 저작인 '시칠리아의 암소'를 최근에 다시 틈틈히 읽고 있습니다만, 역시나 별 다른 큰 감흥은 없는 편입니다.

      아무튼 "푸코적인 의미에서 진정 정치적인 영역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어떤 취지에서 말씀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 ^; 그래서 이광래의 '미셸 푸코'를 들춰봤는데(물론 이 책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문득 부르디외의 추도사에 눈길이 머무네요.

      "(푸코의) 이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도 언어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이었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가 갖고 있는 한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권력이 지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지가 권력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준다. 따라서 인식-자기인식을 포함해서-은 권력의 결과로서 설명된다. 도덕은 정치에 사로잡혀 있다." (이광래, 미셸 푸코, 부록2-'푸코를 추도한다' 중 삐에르 부르디외의 '지의 쾌락' 중, p.373. 민음사. 1989.)

      추.
      "-G-님" 이 분은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 leopord 2009/04/28 20:22

      제가 짧은 지식을 노출하고 말았군요.ㅎㅎ; 푸코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인 영역이란 건 보통 정치적인 것을 정치사상과 현실정치, 정치인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과 다르게, 언어를 매개로 한 고정된 사고(이를 '에피스테메'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기반해 벌어지는 일상적인 자기검열과 사회의 통제가 곧 권력이고, 권력은 어디에나 있다는 관점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저야말로 이해가 부족해 개념을 섣불리 들이댄 것 같군요.-_-;;; 그럼에도 보통 정치 내지는 권력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이건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는 주장의 근거가 취약하다는 것이고, 블로거들 중에서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이 좀 많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썼던 겁니다.ㅎㅎ; (정치학에 대한 푸코의 통찰은, 정치 하면 학을 떼는 한국 사람들에게 유효하게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G--님 얘기를 한 건, 그 분이 위에서 얘기한 쪽의 사람이 아니라 정반대에 있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물론 정치평론은 전혀 하지 않지만, 사실 정말 '삶-정치'적인 부분들, 성적 자기결정과 자기표현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봤거든요. 블로그에 자신(의 생각)을 노출시켰을 때 이를 두고 심각한 공격을 받곤 해서 많이 상처받고 "도대체 어디까지 표현해야 하지?" 라는 고민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묵은 떡밥을 들이대고 싶진 않습니다만, 목수정의 글과 그 논란도 푸코적인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목수정 본인이 해명할 의사가 없었다는 데에서 있지 않을까 싶군요.

  3. 테츠 2009/04/30 02:43

    블로그 본격적으로 한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하다 보니 블로그에 목숨거시는 분들이 넘 많아서 좀 무섭더군요...-_-;; 그래서 전 블로고스피어 안하고 그냥 친하게 알게 된 분들과(이를테면 민노씨.네 같은 블로그) 자족거리며 놀러다닐려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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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4/30 10:54

      논쟁형식의 대화에서는 사소한 것들(감정적인 요소들)이 꽤나 크게 부각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는 저 역시 예외는 아니고요. 다만 재밌자고 하는 일이고, 또 서로 넉넉한 게 있으면 나누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우자고 하는 협업이라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추.
      제 블로그를 친하다고 느끼신다니 참 반갑네요. : )

  4. 무한 2009/10/23 06:13

    포커스가 다르긴 합니다만, 살짝 '관련글'이라 생각해
    관련글을 엮고 갑니다.

    트랙백 보내기가 안되어서 수작업으로 엮습니다 ㄳ

    http://normalog.com/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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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10/27 19:47

      무한님 오랜만이네요.
      최근 노멀로그의 시도들은 재밌고, 의미있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 )

      추.
      트랙백 불편드려서 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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