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인터뷰의 속물 코드

2009/04/20 09:57
[최보식이 만난 사람] "난 진보적… 노(盧) 전(前)대통령 보니 욕 먹어가며 잘 싸워왔다고 자부" (조선일보, 2009.04.21.일자) (클릭 강하게 비추)
최보식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터뷰어다. 인터뷰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간 긴장의 소산이다. 정답이 결정된 인터뷰를 나는 최악의 인터뷰 유형으로 보는데, 최보식은 매번 정답이 결정된 인터뷰를 보여준다. 인터뷰이는 철저하게 의도적인 틀에 의해 '선택'당한다. 인터뷰이는 인터뷰어의 철저한 도구로 전락한다. 둘 사이에는 어떤 긴장도 없다. 가장 어처구니 없는 직관적인 불쾌는 계급장 떼고 서로 치열하게 붙어야 하는 일종의 '전장'인 인터뷰에서 최보식이라는 자가 생각하는 현실에서의 권력 위계가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인터뷰는 최악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최근 개봉된 '프로스트 vs. 닉슨'의 인터뷰는 왜 재미있는 인터뷰인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건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간의 전쟁이고, 한 쪽이 모든 것을 얻는 자기를 건 승부이기 때문에 그렇다. 굳이 헐리웃 영화를 떠올리지 않아도 가장 훌륭한 인터뷰, 아니 최소한 가장 흥미로운 인터뷰는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와의 적대적인 긴장(혹은 순화시켜 표현하면 '창조적인 긴장'), 싸움이라는 구도 안에서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최보식의 인터뷰는 '최보식 & 아무개'이거나 '최보식 & 최보식'의 구도 안에서 벌어지는 인터뷰지, '최보식 vs.아무개'인 적은 한번도 없다. 이런 '저질 인터뷰'에 대한 불만에 대해선 리승환의 지적에 공감하는 바 크다(물론 나는 인터뷰라는 형식에 대해선 대단히 우호적이다. 이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글을 쓰고 싶다).

위 "우익의 두목"이라고 불리는 국민행동본부 서정갑과의 인터뷰에서 심어놓는  설계도의 골격은 "좌파정권" "노무현" "명계남" "촛불시위" 등이다. 물론 그 배경으로는 "북한 로켓"이 하늘을 날고 있다(이 와중에 신해철식 퍼포먼스는 계속되고, 소위 '보수단체'의 맞장구도 계속된다). 그래서 감동도 없고, 지적인 흥미도 없다. 여기서 그치면 그려려니하겠는데, 최보식은 여기에 저열한 학벌주의, 삼성 최고라는 대한민국식 '쓰잘데기 코드'들을 심어 놓는다. 가령 이 어처구니 없는 인터뷰는 이렇게 끝나고 있다.

"그는 지금껏 20건 넘게 고소·고발을 당했다. 검찰에 출두해 같은 날 이 방 저 방으로 옮겨가며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1남2녀를 두었고, 아들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 출신으로 삼성전자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들이 영국 명문대학 박사출신이고,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는 것과 이 인터뷰가 어떤 관계가 있는건지 알 길 없다. 인터뷰 마무리를 이런 허접한 속물 코드로 장식하는 최보식의 그 후진 발상이 참으로 짜증스러울 뿐이다.


* 발아점(이라고 딱히 말하긴 뭣하지만... 이승환 덕분에 일등신문 대표 인터뷰를 오랜만에 한 번 훑어보게 됐다능...)
어떤 인터뷰 (리승환)
혹은 개성은 특성이 아닌 식별자 (리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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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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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eopord 2009/04/20 12:12

    클릭 강하게 비추는 역설적으로 강한 추천을 느끼게 하는데요?ㅎㅎ;

    저도 인터뷰 글 좋아합니다. 가끔씩 책에 인터뷰가 삽입되어 있으면 본문은 제쳐놓고 인터뷰만 읽고는 내려놓는 경우가 많죠. 서점에 들러 간단하게 훑어볼 때만 그렇긴 하지만.^^;;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선택하고, 인터뷰 자체가 전략적으로 효과적인 글쓰기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속지 않는(?) 독서가 가능할 거 같습니다. 최보식 저 양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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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4/20 18:26

      최보식씨는 일전에 '뽀빠이 이상용' 인터뷰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분인데요...(정말 기념비적으로 후진 인터뷰였는데요)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서 "해당언론사 고위 임원"들을 인터뷰해주면 참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 )

      추.
      '똥파리'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영화를 꽤 좋아하는데..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길.

  2. 용추 2009/04/20 14:33

    음악쪽에서도 잘 된 인터뷰만큼 뮤지션과 그의 음악을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없죠. 작품이 작품으로써 모든 것을 발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좋은 인터뷰는 해석의 폭과 깊이를 넓게깊게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보너스 같은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최보식이라는 이름은 왔다갔다 하면서 간간이 봐왔던 터라 머릿 속에 남아 있었는데 보아하니 자기가 듣고 싶은 얘기만 물어보는 사람인 것 같군요.

    남의 입을 빌려서 자기 얘길 하는 사람을 전 대체로 양아치로 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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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4/20 18:28

      오, 용추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 )
      무지하게 반갑네요.

      "작품이 작품으로써 모든 것을 발언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좋은 인터뷰는 해석의 폭과 깊이를 넓게깊게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보너스 같은 것"

      매우 적절한 지적이시네요.

  3. 의리 2009/04/20 14:48

    남의 이름을 빌려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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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4/20 18:29

      "해당언론사"도 마찬가지긴 합니다. : )

  4. bayles 2009/04/20 16:22

    간단히 저런 사람들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단어가 있습니다.

    '얌체' - 얌치가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얌치 - 마음이 깨끗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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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4/20 18:30

      오, '얌치'란 말이 그런 뜻이었고만요.
      저는 처음 알았네요.
      좋은 거 하나 배웠습니다. 감솨~! : )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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