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cansmile.net/636

[관계단절의 시작]에서 댓글창을 다시 연 기념으로, 그리고 요 직전 포스트처럼 숟가락 하나 더 얹기 포스팅.


1. 귀찮다.
귀찮다의 어원에 대해 캔스마일(cansmile)은 '귀하지 않다'라고 추론한다.
귀하지 않으니 귀찮은(게을러지는)거다.
오, 정말 과연 그렇다.

2. 아름답다.
어원에 관한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아름답다'에 관한 것이다.
김현은 그의 일기(행복한 책읽기)에서 '아름답다'의 어원을 이야기한다(기억에 의존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름답다는 '아는 대상답다'에서 유래했다는 거다.
그러니 아름다움은 '앎(인식)'과 연계된다.

3. 어떤 오독
김현의 '아름답다'에 대한 지적은 유홍준의 임어당 오독으로 이어진다.
유홍준은 임어당의 책에 관한 잠언을 잘못 기억함으로써 훨씬 더 멋진 잠언을 만들어낸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문 중에서

4. 영향의 불안 혹은 창조
유홍준의 오독(혹은 잘못된 기억)은 해롤드 블룸(Harold Bloom)의 '영향의 불안'이라는 시론을 불러온다. 선배작가들이 이미 성취한 과거의 업적에 짓눌린 후배들은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불안의식을 갖게 된다. 그 불안의식이 무의식적인 오독으로 작품에 투영되고, 그 오독은 역설적으로 창조의 에너지로 작동한다. 해롤드 블룸이 T.S.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를 20세기 가장 과대평가 받은 시인으로 지적(이른바 '77년 선언')하는 이유도 엘리어트가 가진 보수적(순응적) 태도에 연원한다고 한다. 

5. 읽는 블로깅에 대해서.
나는 예전에는 블로깅이란 그저 '쓰는'(log)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블로깅은 '읽는' 블로깅과 '쓰는' 블로깅으로 나뉜다.
그 둘은 불가분이거나, 혹은 (내 입장에서는) 그래야 한다.
어느 한쪽만 있는 블로깅, 특히 '쓰기'만 있는 블로깅은 적어도 (내 입장에선) 반쪽짜리 블로그다.

그렇다면 블로깅에서 좀더 중요한 것은 쓰기일까, 읽기일까...
예전엔 쓰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읽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양자는 앞서 말했듯, 불가분이거나, 혹은 불가분이어야 한다.

예전엔 쓰기 위해서 읽었는데, 요즘은 읽기 위해서, 혹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해서 쓴다.
이건 미네르바 사건이나 그 밖의 모든 크고 작은 이슈에도 공통이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게으르다.
머리 속에 떠오르고,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들을 누군가 대신 꺼내서 블로깅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만큼 잡상은 많아지는데, 그걸 쓰지는 않는다.

앎과 실천과 만나지 못한다면 그 때의 앎은 무의미하다.
블로거에게 실천은 블로깅이다.
거기에는 쓰기만 있는 것은 아니고, 읽기도 있다.
그리고 쓰기 위해서만 읽는 것은 아니고, 결국 읽기 위해서 쓰는 행위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이건 어떻게 사람과 세계를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가장 일상적인 실천으로서의 블로깅이 갖는 의미이자, 블로깅이 갖는 커뮤니케이션의 혁명적인 잠재력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이 블로그가 갖는 민주주의적 요소, 블로그라는 것이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의식적 하부기제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이기도 하다.

흔히 이야기 하는 잠언.
사람을 가치있게 하는 건 사상(앎)이 아니라 실천이다.



* 발아점
귀찮아. (cansmile)


* 확장점
어떤 컨텐츠를 소비할 것인가? (좀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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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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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oreasee 2009/01/19 22:32

    귀찮으셔도 자주 올려주세요. 저좀 읽고 가게요.ㅎㅎ
    항상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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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20 01:01

      큰 힘이 되는 말씀이시네요. : )
      고맙습니다. ㅎㅎ

  2. 비트손 2009/01/19 23:45

    추천크게 3방 누를려고 하는데 집에 컴에선 추천이 안되네요. 같은 우분투 파폭이라도 회사에서는 잘만 추천되는데 말이죠. endless님 혹 원인이 뭘까요? (보고 계시다는 가정하에...... ^^)

    저는 아직 쓰기 위해서 읽는 편에 속하나봅니다. 뭔가 다독하는 과정 속에서 체계가 바로서고 사유가 더욱 깊어지니 말입니다. 저 역시 게으를뿐더러 그 모인조작들을 온전히 풀어내는 재주가 부족한지라 늘 읽는 시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직은 욕심도 많고 잘쓸려고 하는 강박감에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일까요? 글쓰기 아울러 블로깅은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힘든 작업같네요.

    오늘은 '귀찮다'와 '아름답다'는 결국 '인식' 과 '실천'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것을 깨닫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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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20 01:06

      엔들리스나인님께서 몸살이라도? : )
      엔들리스나인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보고 계실 것 같다는 발상이 참 재밌습니다...하긴 그럴만하지만요. ㅎㅎ

      블로깅하면서 느끼는 두 가지 커다란 억압이 있는데요.
      하나는 '정답' 강박증이고, 다른 하나는 '참신' 강박증입니다.
      뭔가 항상 정답을 써야 할 것 같고, 또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은 참신한 뭔가를 꺼내놓고 싶은 건 당연한 심리적 욕구이긴 하지만... 그런 억압이 글쓰기를 글읽기를 방해하는 수준이 되면 곤란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블로깅은 재밌는, 재밌어야 하는 거 아닐까용?

  3. 덱스터 2009/01/20 00:33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아름답다의 어원에 대해 언급했던 적이 있어서 찾아보니까 '알 만하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하네요.[86p, 아름다운 여자]

    귀찮다의 어원은 묘하게 설득력 있는데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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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20 01:07

      그렇군요. : )
      김현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네요.

      귀찮다는 정말 그렇죠? ㅎㅎ

  4. nooe 2009/01/20 00:55

    알흠답지 못한 댓글을 남길까 두려워 추천버튼만 누르고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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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20 01:08

      위트 넘치는 아름다운 댓글이십니당..ㅎㅎ

  5. 가즈랑 2009/01/20 01:56

    '영향의 불안'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그렇게 깊숙히 숨어있는 생각들까지 찝어내서 분석하는 모습이요. 이게 어쩌면 '나와너'에 이어 민노씨 덕분에 구입하는 또다른 책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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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20 06:55

      굉장히 장문의 답글을 쓰고 있었는데, 답글 중간에 제가 예전에 썼던 다른 글 링크 인용하려다가 다른 분(미도리님) 댓글에 답글 잠깐 달려고 클릭했다, 가즈랑님에 대한 답글을 날렸네요...;;;;

      짧게 다시... 달면요..;;;

      1. 해롤드(혹은 '해럴드'로 표기되는) 블룸의 '영향의 불안'에 관한 책들은 저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각 인터넷서점(알라딘과 Yes24)에서 검색해본 결과 그 책들이 번역되지도 않은 것 같네요..;;;; 물론 최근에는 블룸의 책들이 번역된 것 같지만요.

      참고로 블룸의 '영향의 불안'에 관한 시론(비평이론)이 담긴 대표적인 저작으로 뽑히는 책은 70년대에 출간된 책들인 것 같습니다.

      - 영향의 불안. The Anxiety of Influence. 1973.
      - 오독의 지도. A Map of Misreading. 1975.
      - 시와 억압. Poetry and Pepressoin. 1976.

      위 블룸의 책들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책들 가운데 하나인 김성곤의 '미로 속의 언어'(민음사. 1986)(이것도 아쉽게 절판이거나, 혹은 다른 제목으로 재출간된 것 같지만... 검색을 통해 보건대 절판 쪽이 확률이 높은 것 같습니다) 중 '비평' 파트의 서문(개요적 성격)에 해당하는 '신비평 이후의 미국문학비평' 중에서 '예일학파' 부분 중 블룸의 서술 부분을 참조한 것입니다.

      위 책 가운데 한 권(아마도 첫번째)를 번역했던 것으로 보이는 고려원에서 낸 책이 있기는 한데... 아쉽게도 절판입니다. ㅡ.ㅡ;;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013128

      2. 제가 읽은 블룸은 지극히 '요약 정리'된 (2차)비평서에서 읽은 것에 불과합니다(위 '미로 속이 언어'를 포함해서요). 그 중에서도 고려원에서 나왔던 '현대문학비평' 시리즈 중 '해체주의'에서 예일학파 혹은 해롤드 블룸에 관한 두 편 정도의 짧은 논문이 있었던 것 같네요(물론 기억에 의지하는 것이라서...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국내 비평가가 쓴 하나와 혹은 조나선 컬러가 쓴 하나.

      이 책도 아쉽게 절판인 것 같습니다.
      검색이 아예 안되네요.

      3. 그러니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적어도 위에 예시한 세 권의 책들 가운데 현재 국내에 번역된 것은 없는 것 같고, 제가 읽었던 2차 비평서들도 절판되거나 혹은 아예 검색이 안됩니다...;;;;

      4. 다만 김성곤이 쓴 다른 책 가운데....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114777&CategoryNumber=001001017001006

      위 책 중에서 10.해체주의...를 참조하시면 그래도 가장 무난하지 않을까 싶기는 합니다.

      참고로 해체주의와 관련해서 '이광래'의 번역 및 저작이 굉장히 많은 편인데요... 저로선 절대적으로 비추입니다.

  6. 의리 2009/01/20 05:57

    귀찮음을 이겨내는 것도 대단한 일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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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20 06:56

      맞습니다. : )

  7. 시퍼렁어 2009/01/20 10:05

    쓰는건 귀하지 않습니다!!! (라고 쓰고 자신이 블로그에 글 안쓰는것을 정당화 하려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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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필로스 2009/01/20 14:26

    뭔가 찔리는군요...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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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9/01/23 21:41

      저는 아주 많이 깊이 찔립니다....ㅡ.ㅜ;;

  9. 엔디 2009/01/26 21:59

    오독의 역사, 혹은 잘못된 기억의 역사를 정리해보면 재미있겠군요. 마침 유홍준은 답사기 첫 장에서 김지하의 시를 잘못 기억한 사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김지하 역시 수영의 시를 잘못 기억한 적이 있고요... 설이라 48시간 휴무를 받고 잠시 나왔습니다. 내일 새벽 복귀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09/01/28 08:04

      엔디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 )

      엔디님이라면 정말 그런 주제로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짬이 나시면 조금씩 정리하시는 것은 어떨는지요?


      추.
      무슨 군대훈련소에 있는 것 같은 무시살벌한 댓글을 남겨주셨고만요. ㅎ
      잘 적응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언제쯤 짬이 나실런가...???

  10. 민노씨 2009/01/31 13:44

    * 제목 수정.
    귀찮다와 아름답다의 어원, 그리고 블로깅
    -> 귀찮다와 아름답다의 어원, 그리고 '읽기'로서의 블로깅

    perm. |  mod/del. |  reply.
    • name 2009/02/03 09:59

      '읽기로서의 블로깅'이란 말은 blogging as a reading을 우리말로 옮기신 거죠? 즉 무의식 중에 영어로 말을 구성한 다음 우리말로 옮겨 표출한 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만일 '읽는 블로깅'이라고 했다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까요? 혹은 의미는 전달되었을지라도 '읽기로서의 블로깅'이라고 썼을 때 기대되는 어떤 느낌은 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느낌이란 건 글 쓴 사람과 읽는 사람 중 어느 쪽을 만족시키는 거였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적어 봅니다.

    • name 2009/02/03 10:09

      어딘가에서 들은 얘긴데, '아름답다'가 '앓다'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더군요. '앎'이 아니라 '앓음'에 '-답다'가 붙었다는 거죠.

      그런 관점은 대상을 객체(인식할 대상)로 보기보다는 대상의 고통을 내것으로 가져와 같이 앓을 만한 존재로 본다는 면에서 더 감성적이기도 하고, 피아 구분을 허무는 지경이라는 면에서 동양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 민노씨 2009/02/03 21:50

      말씀처럼 어색한 번역투네요. : )
      다만 저는 영어를 '무의식'적으로 먼저 떠올릴만큼 영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 http://feeds.feedburner.com/~r/lawfullykrblog/~3/458349529/otl-english )

      말씀처럼 '쓰는 블로깅' '읽는 블로깅'이 좀더 간결하고 담백하네요.
      왜 '쓰기'/'읽기'라는 명사형으로 굳이 수식해야 했는지... 저도 지금 생각해보니 잘 모르겠습니다.

      name님의 조언을 받아서 제목을 다시 한번 수정해야겠네요.
      고맙습니다.

    • 민노씨 2009/02/03 21:52

      앎음...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 설도 의미의 울림이 깊네요...

  11. 민노씨 2009/01/31 13:52

    * 확장점 링크 추가.

    http://zombi.co.kr/798 (좀비씨)

    perm. |  mod/del. |  reply.
  12. 민노씨 2009/02/03 21:53

    * 제목 수정

    귀찮다와 아름답다의 어원, 그리고 '읽기'로서의 블로깅
    -> 귀찮다와 아름답다의 어원, 그리고 '읽는' 블로깅

    perm. |  mod/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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