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골(無骨) 명박과 봉사 몽구

2008/06/25 22:21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챙겨봤어야 했습니다.

저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과 함께 가겠습니다.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 촛불로 뒤덮였던 거리에 희망의 빛이 넘치게 하겠습니다.

- 2008년 6월 19일, 이명박 (촛불항쟁 관련 두번째 특별 기자회견) 중에서


이랬던 이명박이 닷새 뒤 국무회의에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촛불시위와 관련해 “일부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시위는 정부 정책을 돌아보고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만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조점은 “돌아보고 보완하는” 데 있지 않고 “엄격대처”에 있다.

- 2008년 6월 25일자 한겨레, [사설] 국가정체성 훼손한 것은 이명박 정부다 중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일부 정책에 비판하는 시위는 정부 정책을 돌아보고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만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 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고 말했다.

- 2008년 6월 25일자 조선일보, 불법시위 '분수령'(1면 머릿기사) 중에서

경찰은 또 극렬, 과격 시위자만을 선별적으로 사법 처리하는 이른바 '분리대응' 전략도 본격화했다.
- 위 조선일보 기사의 보충기사, 과격시위자 3명 구속 중에서

이 대통령, "국가 정체성 도전 시위는 엄단". '민생'에 올라탄 정체성 파괴세력 분리 대처.
- 같은 날 조선일보, 팔면봉 중에서



무골 [無骨] [명사]
1 뼈가 없음.
2 체계가 서 있지 않고 어지러워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글.

무골충 [無骨蟲] [명사]
1 뼈가 없는 벌레를 통틀어 이르는 말.
2 줏대나 기개가 없이 무른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세간에 불려지는 이명박 대통령 별칭이 '이메가' '쥐박' '땅박' 등이라면, 이명박의 호(號)는 무골(無骨)이 무난하겠다. 뼈저린 반성을 했다는 자라면 국무회의에서 이런 소리를 할 리 없다. 둘 중 하나다. 그냥 국면전환용으로, 피상적인 수사들로 점철된 거짓 '사과'를 했던 것이거나, 원래 '뼈가 없는 자'이거나.

이명박 정권은 말(言)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가장 무거워야 하는 대통령의 말을 이토록 가뿐하게 스스로 짓밟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다.
이명박 정권은 말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 그 기대를 불가능하게 한다.
하기는 '범인 도피 사건'의 장본인이 '법과 원칙'을 외치는 게 좀 넌센스이긴 하다.


아참, 따뜻한 풍경 하나 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쿠키뉴스

수 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그 중 수 백억원을 횡령해 깜빵 문턱까지 갔던(2001년 이후 1300억원 규모. 일심 기소내용 보면 "비자금 693억원을 조성하는 등 9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하고 계열사에 2천100억원대 손실을 끼친 혐의". 대법원은 지난 4월 8400억원 사회봉사명령이 위법하다며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파기환송. 다시 고법의 파기환송심에서는 역시나 유전무죄의 원칙으로 집행유예를 유지했다.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 300시간) 우리의 몽구씨는 음성 꽃동네에서 환하고 인자한 미소로 아이를 돌보고 계시다. 역시나 불법을 증오하고, 법과 원칙을 좋아하는 조선일보는 이를 직접 취재씩이나 해서 오늘자(6월 25일자) 12면에 사진과 함께 실는다. 그리고 그 따뜻하고 보기만 해도 절로 푸근해지는 기사 바로 위에는 다음과 같은 괘씸한 '불법세력'들에 관한 기사를 올린다. (사진 출처 : 쿠키뉴스)


서울시 "서울광장 텐트 철거하라" (조선일보, 2008년 6월 25일자, 12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허가 없이 20일 가까이 점유해온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단체들'의 텐트 30여 개에 대해 서울시가 "철거하라"고 공식 요구했다. [....]

2008년에도 대한민국의 대원칙은 유전무죄다.
그리고 이제 촛불의 온기가 점점 식어가고 있다고 판단했는지, 뼈없는 대통령은 "뼈저린 반성"이란 말을 "국가 정체성 도전 엄격 대처"로 실천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며, 종이 유사의 어떤 것은 이런 대통령의 엽기적인 '소통'방식에 환호한다.

명박 만세!
몽구 만만세!!




* 추천 기사
[광우병 사태 5년의 기록] 광우병 미국소 발견부터 6·10촛불항쟁까지 (프레시안)
: 저널리즘의 근성을 보여주는 전범적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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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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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月下 2008/06/26 02:43

    이제는 유모차끌고 나오면 유모차에서 때어내서 연행한다네요.... 푸하.. 이런 개그가.... 개그가... 개그.. 개.. 니미럴.......(남의 블로그에서 죄송함다.)

    이제 다음 단계는 두들겨패서 떨어트린다음에 연행하겠네요..

    돈나라 돈나라 나라돈나라 미친듯이 돈나라~~ 쿠헤~ (이야기 듣는 것만으로도 미칠것 같아요.. )

    그나저나 MK 기사 정말 뜬금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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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시퍼렁어 2008/06/26 09:00

    사회봉사가 저런거라면 저도 대국민 대상으로 한건 하고 싶어 지는군요.. 돈벌고 이미지도 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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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6/26 20:15

      일단 재벌총수가 되셔야 합니다....

  3. 여형사 2008/06/26 10:43

    링크하신 프레시안 기사는 정말 압권이네요. 가슴이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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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6/26 20:16

      그렇죠?

      추.
      안그래도 궁금했습니다.. ^ ^

  4. 댕글댕글파파 2008/06/26 11:15

    일전의 서해안 기름유출사건도 삼성중공업에 벌금 3000만원 달랑 부과했더군요.
    유전무죄 무전유죄...
    비지스의 할리데이나 다시 한 번 들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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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06/26 20:17

      삼성중공업 측에 유죄를 확정했다는 것을 일단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게 일심에 불과하긴 하지만요.. 관련된 민사소송에서 그 유죄판결이 꽤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이죠. 물론 일심에 불과하고, 이 소송이 언제 끝날지.. 언론에서 관심이 줄지도 의문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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