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볼테르, 말과 몸

2007/12/07 22:58
댓글 읽을 때면 그 댓글 자체에 거의 완벽하게 공감하기 때문에, 혹은 달리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몰라서 답글을 달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러니까, 뭐랄까... 마음은 풍경을 만들지만, 어떻게 다시 그걸 글로 표현해야 할지 모른달까... 나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블로거고, 블로그상 공지로도 댓글에 대해서는 답글을 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해오고 있다. 내 나름 댓글을 통한 순발력 있는, 생기있는, 아직 정돈되지 않는 날 것 느낌이 나는 그런 대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댓글이 참 좋다. 물론 링크와 인용을 통한 소통 방식을 좀더 중요하게 생각하긴 하지만.

아무튼 아직 이 글에 대한 댓글을 달지 못하는 동안, 물론 댓글은 이미 여러 번 읽었지만,  스웨터님께서 네 번째 댓글을 남기셨다. 똘레랑스 전도사인 홍세화씨가 종종 인용해서 더욱 널리 알려진 볼테르의 경구다. 실은 나는 이 경구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에서 정성일을 통해 처음 들었다.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거다. 암튼, 한글판 볼테르의 경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주로 인용되는 것 같다. 물론 조사나 어미, 이런 차이까지를 비교하는 건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테다.

ㄱ. 당신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으나 당신이 그 견해를 발표할 자유만은 옹호한다. (홍세화, 이회창과 볼테르. 2001.2.18)

ㄴ. 나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견해 때문에 박해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 서서 싸우겠다.



1. 그런데 문득 출처가 궁금해졌다. 나 자신도 그저 볼테르의 경구라고만 알고 있던 터에, 더군다나 얼마전 직접 내 글에 인용도 했던 기억이 있어서 더 궁금해졌던 거다. 그래서 구글링하고 관련글들을 살펴보다가, 이런 재밌는 글을 만났다.
볼테르는 정확히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요지의 글이다. 

볼테르 좀 그만 팔아먹읍시다... (건더기)

I detest what you write, but I would give my life to make it possible for you to continue to write. (나는 당신 글이 싫다. 하지만 당신이 계속 글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라는 문구가 1770년 그가 보낸 편지에서 발견

위 글 자체로도 재밌지만, 댓글 마지막에 익명으로 어떤 분께서 남긴 한 줄은 개인적으론, 가장 멋지달까, 맘에 든달까 그랬다.  

그러니까 저 말 자체를 직접 사상과 삶으로 보여준 것이 볼테르입니다. (후후)


2. 나는 출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단순히 신뢰 문제가 아니다. 어떤 아이디어, 그 사상, 감정이 처음으로 생겨났던 그 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머물렀던 실존을 존중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빛나는 아이디어라는 건 그저 순간적인 기지에 의해, 어떤 증흥적인 계기로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아이디어를 태어나게 한 한 인간의 삶과 실존이 온전히 거기에 담겨 육화된 것이기 마련이다.

덧. 참고로 저작권(법)에서 보호하는 건 물론 아이디어나 사상이 아니라, 고유 표현이다. 다만, 아이디어 자체로의 '독창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것도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되긴 하지만, 이것은 예외적인 것이다. : )

그런 아이디어들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 대화하고, 서로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대화와 이해를 통해서, 우리는 좀더 인간적인 삶에 대해서 즐겁게 고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대화를 높더 즐겁게, 우리의 논의와 논쟁을 좀더 고양되게 하는 그 아이디어의 최초 발화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 아이디어를 인용할 때는 그 출처를 밝히는 것다. 블로그로 돌아오면, 이것이 내가 블로그에서의 '링크와 인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디어, 어떤 사상과 감정의 흔적들이 갖는 그 '살아 있는 의미'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건 자명할테다. 이 아이디어가 누구의 말이었고, 또 어떤 책의 문장이었는지는 (지금까지 말했던 바와 같이 그 아이디어가 처음 생겨났던, 혹은 널리 그 의미있는 아이디어를 퍼뜨렸던 공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그 아이디어 자체가 갖는, 그 순간을 둘러싼 살아 숨쉬는 그 '의미'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그런 의미에서 건더기님께서 쓰신 유쾌한 호기심의 확인과정도 즐겁지만, 거기에 한 줄로 남겨진 후후님(익명)의 댓글은 나에게는 너무도 짜릿한 울림을 준다. 그 댓글은 가장 가치있는 것은 사상과 실천이 하나일 때, 말과 몸이 서로 하나일 때라는 소박한 교훈을 전해준다. 이 소박한 교훈은, 동시에, 무척이나 경건한 잠언이기도 하다.


*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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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Voltaire

    Tracked from nooegoch 2008/08/29 02:45 del.

    François Marie Arouet, dit Voltaire 볼테르, 1694-1778, France littérature du frrançais, CLE, 2003, p.48, scan de nooe 호오.. 잘생겼네요~ l'origine du « Voltaire ».. Plusieurs hypothèses sur l'origine du pseudonyme « Voltaire » ont été formulées et ont longtemps f..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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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선인장 2007/12/07 23:28

    아아.. 정말 그 유명한 경구도, 또 볼테르도 멋집니다^^ 저도 가슴이 지잉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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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12/07 23:56

      항상 따뜻한 관심과 의견 고맙게 생각합니다. : )
      저도 가슴이 찡~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2. 가즈랑 2007/12/08 00:23

    경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유홍준씨가 즐겨쓰던 말도 떠오르네요. 두 경우 모두 본래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퍼졌지만 그 담겨있는 정신(?)은 꽤 긍정적인 영향력을 준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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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12/08 00:26

      임어당의 말이 기억의 변주에 의해 더 멋져진(저 역시 개인적으론 유홍준의 기억의 변주에 의해 만들어진 말, 그 말에 담겨 있는 풍경이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문장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 )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모이나니, 그 때에 모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임어당) - 이 때에 모이는 것은 '책'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네요.

      역시나 유홍준의 기억의 변주에 의해 만들어진 '보임'의 풍경이 훨씬 더 풍성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것 같습니다.

  3. 건더기  2007/12/08 09:24

    트랙백보고 놀러왔습니다. ;)

    멋진 글이라서 제가 다 송구스러울 정도입니다.


    사족으로 원 글에서 볼테르가 하지 않은 말이 유통되는 것을 비꼬았던 이유는 희한하게도 볼테르의 삶과 정반대의 길을 걷는 사람들만이 볼테르가 하지도 않았던 말을 신주단지 모시듯 숭상하는 모습을 질리도록 보아서 입니다.

    때로는 침묵이 시끄러움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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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12/08 15:46

      직접 찾아주신 것도 반가운데, 논평까지 주시고 반가움이 더 합니다. : )
      송구스럽다니 별말씀을요.

      말씀처럼 때로는 어떤 경구의 취지를 배반하는 방식으로 그런 경구들을 그저 소모품처럼 이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취지셨었군요.

      마지막 말씀이 의미심장하네요...
      논평 고맙습니다. : )
      종종 교류가 있으면 좋겠네요.

  4. ARMA 2007/12/08 11:48

    제가 정확히 볼테르가 어떠한 삶을 살아서 저러한 경구가 의미가 있게 되었는지 몰라서(찾아보기도 좀 뭐해서...^^) 여쭙니다.
    저 경구의 의미가 여러가지 가치관도 존중되어야 할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언론의 자유는 침해당하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가요?
    아니면 둘다 의미하는 건가요? 비슷한 이야기지만 약간은 다른 차이를 지니고 있기에 저도 저 경구를 인ㅇㅇ하기 위해서는 좀 정확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직접 찾아보라고 하시면 저는 찌그러 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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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7/12/08 15:56

      찌그러지다뇨, 농담도.. ^ ^;

      1. 저 역시 볼테르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웹상의 페이지들과 백과사전류의 피상적인 지식일 뿐이죠. 다만 백과사전파로 불리는 계몽적인 사상운동의 선봉에 선 실천저 지식인이었다는 점, 그와 동시에 관용의 정신을 역설한 사상가였던 점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http://kr.dic.yahoo.com/search/enc/result.html?p=%BA%BC%C5%D7%B8%A3&pk=14113500&subtype=&type=enc&field=id

      2. 경구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 짧은 문장이 위치한 개개의 텍스트들, 그리고 그 텍스트를 둘러싼 환경에 의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다만 기본적으로는 표현의 자유(언론의 자유)를 강조한 경구인 것 같습니다. 그 자유에 대한 옹호는 말씀처럼 '다양한 가치관의 공존'을 피력한 것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구요. 다만 이것이 그저 적극적인 토론과 사상투쟁을 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상의 자유시장 매커니즘 속에서 좀더 가치있는, 의미있는 견해와 사상이 승리하는 그 '민주주의적 시스템 자체'를 옹호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그 둘 모두의 의미를 포함하는 문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론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다가치,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경구같습니다. : )

  5. egoing 2008/11/20 10:47

    홍세화 태그를 보고 따라 들어왔는데, ' 하지만 대부분은 그 아이디어를 태어나게 한 한 인간의 삶과 실존이 온전히 거기에 담겨 육화된 것이기 마련이다'라는 대목에서 울컥 감동이 오내요. 왜 그럴까요? (답변 안해주셔도 됩니다 ^^) 이 글은 예전에 본 글인데 아직도 살아서 생동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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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08/11/21 14:52

      과분한 격려시네요. : )

      이런 표현들은 많은 문학평론들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어느 정도는 관용화된 표현이라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야말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eoging님 논평을 접하니 기분이 좋습니다. ㅎ

  6. 민노씨 2009/01/23 23:45

    * 관련 추천글 추가.
    http://capcold.net/blog/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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