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노회찬

2018/07/23 14:54
노회찬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던 거로 기억한다. 부정확하겠지만, 그 취지를 옮기면: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고려해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주로 재벌들이 피고인인 사건에서 이런 표현이 상투적으로 나오죠. 그런데 노동자 피고인인 경우에는 이런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재벌 회장들만 국가 경제에 이바지했습니까. 노동자야말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착취당하면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재벌 회장들이 횡령으로 배임으로 재판을 받으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언급하는 판사들이 왜 집시법 위반, 쟁의법 위반으로 재판받는 노동자에게는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는 노회찬이 좋았다.

그에게도 들키지 않은 비겁함이 있었을 테고, 그에게도 끝끝내 해결하지 못한 모순이 있었을 테다. 그런 인간적인 결핍이 그런 이율배반이 결국 스스로 자신을 처형하는 방식의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그의 죽음은 너무 무겁고, 그의 결핍은, 나는 그 무게를 잘 모르겠다.

지금 나에게, 그의 죽음은 너무나 부당하다. 더 더럽고, 더 저열하며, 훨씬 더 비루한 정치인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 위에서 군림한다. 무엇보다 전두환이 살아 있는 세계에서, 아니 전두환을 죽이지 못한 세계에서 정의의 무게는 얼마나 깃털 같은 것일까.

내 필명 '민노(씨)'는 2004년 총선의 '민주노동당' 이름에서 따왔다. 정확히 말하면, 초기 민주노동당에서 활약했던 노회찬의 모습을 보며, 그 2004년, 2005년 즈음의 민주노동당에서 따왔다. 그의 난중일기가 멋졌고, 언젠가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세상에 살고 싶었다. 그 세상에 눈곱만큼이라도 '민노씨'라는 내 또 다른 자아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보내며, 노회찬이 내 필명에 이바지한 공로를 짧게나마 적는다.
정의는 흑백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고, 늘 회색의 세계에서 방황했다.
나는 여전히 노회찬을 정의로운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안녕,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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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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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laying 2019/07/06 11:57

    정말 오랫만에 댓글 쓰네요
    슬로우뉴스에서 댓글을 썼었는데(disqus 혹은 그 이전 초창기 버전) 구형 소프트웨어라서 그런지 잘 안됩니다.
    현재는 페이스북만 가능한 거 같고, 그런 결정이 내려진 이유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제 심정으로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아무튼 민노씨라는 필명을 오늘 알았네요
    여전히 노회찬씨가 겪었을 고민과 고뇌에 대해 멀게만 느껴지지만 이 글에서 토로하시는 감정들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비록 제가 글쓴이 보다 노회찬씨가 처헌 현실의 무게감을 알지 못하지만요

    다음 글에도 댓글을 달려고 했더니만
    불필요한 댓글들이 300여개 달려있네요 ;;
    누군가 고의로 댓글을 통한 소통들을 묻어버리려고 그런거 같습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는 깊이있는 소통이 사실상 힘든 상황에서 이런 모습을 보니 참 씁쓸합니다

    아무튼 좋은 날 보내시길~!!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9/07/26 17:49

      고맙습니다.

      위 게시물에도 댓글로 남겼지만, 언제든 생각나시면, 댓글보다는 이메일( skymap21@gmail.com )로 한줄이든 열줄이든 대화를 청해주시면 정말 반갑고, 고맙겠습니다. 블로그는 저도 너무 찾질 않아서 말이죠. ^^

가벼운 마음으로 댓글 한방 날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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