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엄격함에 대한 딜레마... 

소중한 인연으로 존경하는 장애인 활동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탈시설운동을 하시는 박숙경 선생님이시죠. 숙경 선생님께서 일주일 전 쯤 전화를 주셨습니다. 상지대 문제가 급하다는 소식이었죠. 민노씨가 좀 도와줘야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상지대요?
옛날에 비리 재단, 비리 사학...
그 상지대요?

저는 상지대가 어디에 있는 학교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그저 비리사학의 대명사 쯤으로 어렴풋 기억하고 있었죠. 상지대는 비리 대명사 구(舊)재단 이사장 김문기를 퇴출시켰습니다. 김문기는 대법원으로부터 이례적으로 실형까지 선고받았죠.  그게 1993년의 일입니다. 김문기 이사장이 학교를 운영하던 시절의 풍경은 이랬습니다. 교수들에게 '충성 각서'를 강요했습니다. 설계비를 아끼기 위해 한장의 설계도면으로 다섯 쌍둥이 건물을 지었습니다. 도서관 책 구입비를 아끼기 위해 '톤 단위로 무게'를 달아 헌 책방에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구재단이 퇴출되고 17년 동안 상지대는 비리 사학이라는 오명을 씻고, 중부권의 대표적 사학으로 거듭났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적으로 상지구성원들이 잘하기만 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람이니 실수도 있었을테고, 학교경영에 있어 미진하고 부족한 점도 많았겠죠. 하지만 구재단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사학 정상화'의 길을 17년 동안 차곡차곡 밟아오고 있었습니다.

'임시이사의 정이사 선출'이 불당하다는 2007년 대법원 판결,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의 '5:2:2' 결정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그 내용은 상지대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상지대 구출 대작전' 블로그(http://saveschool.net)에 정리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2기 사분위 위원들의 면모(이명박 정부의 사분위)를 간략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이우근(위원장) : 대법원장 추천.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최근까지 사학법인측 변호 담당. 
고영주(위원) : 이명박 대통령 추천. 대표적 공안검사 출신.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상임지도위원 활동. 올 3월엔‘친북인명사전’발간.
강민구(위원) : 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6월 10일 김문기 최측근 인사를 상지영서대 교수에게 보내 김문기 지지발언과 구재단 지지 홍보를 지시하였다는 의혹(상지영서대 교수 강영태의 양심선언).
김성영(위원) : 국회의장 추천. 성결대 전 총장. 사립학교법이 개정된 2005년 ‘한기총 사학수호국민운동본부’ 초대 본부장 역임. 당시 대형 십자가를 어깨에 매고 시위를 벌이며 사학법 개정 반대 운동을 주도.
정재량(위원) : 이명박 대통령 추천. 민주평통 자문위원. ‘뉴라이트학부모연합’ 공동대표. 좌편향 교과서 채택 학교 명단공개, 금성출판사 불매운동 등.  


위  인물들이 주도하는 2기 사분위는 2월 1일 출범 이래
- 세종대 정이사 9명중 비리 구재단 인사 7명 선임,
- 조선대에 비리 구재단 추천 받아 정순영 1기 사분위 위원 이사 선임,
- 상지대 전체 이사 9명 중 비리 구재단 인사 5명 배분 결정 등

비리 구재단에 대학을 넘겨주는 작업만 해왔습니다.

상지대 문제의 본질은 사학정상화를 오히려 짓밟는 행위가 '사학분쟁을 조정'한다는 명목으로, 합법적인 제도의 얼굴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새롭게 출범한 사분위는 이명박 정부 들어 뉴라이트 혹은 극우로 평가하는 위원들이 장악하게 됩니다. 그네들이 과거 비리재단의 화려한 복귀를 합법화하는 결정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비리와 부패의 대명사 김문기 측에게 상지학원을 헌납하는 일이 제도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7월 30일에 그 일이 벌어집니다. 17년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사학 정상화를 짓밟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질 예정입니다.

상지대 학생들과 교수들은 지난 300여일을 학교에 천막을 세우고 싸웠습니다. 그러다 더는 참을 수 없는 간절한 마음을 안고 서울로 왔습니다. 그렇게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초라하지만 굳건하게 희망을 붙잡고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밤마다 안쓰럽기 짝이 없는 촛불을 희망을 붙잡고 있습니다.

당사자주의의 문제.
사학 비리의 문제, 상지학원 정상화의 문제...
이 문제는 상지학원 구성원들만이 당사자가 될 수 있는 문제일까요?
다시 마틴 니묄러의 시를 인용해봅니다.
나치가 공산당원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니까. 
Als die Nazis die Kommunist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Kommunist.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Sozialdemokraten einsperr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Sozialdemokrat.

그들이 노동조합원에게 갔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Gewerkschafter holten,
habe ich nicht protestiert;
ich war ja kein Gewerkschafter.

그들이 유태인에게 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니까.
Als sie die Juden holten,
habe ich geschwiegen;
ich war ja kein Jude.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항의해 줄 누구도 더 이상 남지 않았다.
Als sie mich holten,
gab es keinen mehr, der protestieren konnte.

- 마틴 니묄러 (Martin Niemöller)

참조 : First_they_came...(위키백과)

상지대 문제는 상지대 학생들과 상지대 교수들, 그리고 상지대 교직원들만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그 일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일 수 있죠. 저 역시 박숙경 선생님으로부터 그 '한 통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상지대? 어디있는 학교임?' 이러면서 지나쳐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무슨 대단한 사회적인 정의를, 공공의 선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란 녀석은 스스로 챙기기도 벅찬 인간이란 걸 잘 압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압도적인 제도의 폭력, 압도적인 제도의 야만에 대해 우리는 함께 저항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 사분위는 합법적인 제도의 이름을 한 권력의 야만이고, 돈지랄의 야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문기라는 사람에게 풍문처럼 떠도는 3조원 대의 재산이 없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사자주의의 관점에서 사안을 엄격하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일 물론 필요합니다.
하지만 당사자주의가 싸움의 주체에게만 우리가 마땅히 지불해야 하는 책무를 떠 넘기는 방관자의 알리바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당사자주의가 우리들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좀더 인간답게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회적인 상상력, 정치적인 상상력을 이성의 이름으로 제약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우리에게 이 압도적인 야만을 거절할 힘이 있다고, 그 잘못을 바로잡을 힘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다만 우리는 때로운 엄격함으로, 때로는 당사자주의라는 그럴듯한 알리바이로 문제를 외면하고 있을 뿐입니다.

상지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그리고 판단해주십시오. 그 목소리에 거짓이 있다면 질타해주시고, 또 힘을 실어야 한다고 판단하시면 그렇게 해주십시오.우리들의 정치적 상상력, 우리들의 사회적인 상상력을 다급하게 절규하고 있는 상지대에게 나눠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방법은 아주 아주 많습니다.
친구에게 말해주십시오.
블로거라면 글을 써주시고, 트위터러라면 재잘거려 주십시오.
커뮤니티에서 논다면 거기에 짧게라도 'saveschool.net'에서 올라오는 글을 소개해주십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책임의 정점에 있는 교육부와 사분위,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게 당당하게 책임있는 대책을 요청해주십시오. 더불어 야당과 시민단체들에게 이 문제를 공론화할 것을 요구해주십시오.

그렇게 우리가 우리의 상상력을 실천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저는 이 어려운 싸움을 즐겁게 승리로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긴 넋두리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_ _)


추.
상지대 한방병원의 임금체불 문제는 물론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임금체불이 조속히 해결되길 저 역시 간절히 바랍니다. 다만 더불어 이 문제는 '상지대학교 정상화' 문제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즉, 한방병원과 상지대학교는 '회계'가 서로 독립되어 있습니다. 상지대학교의 재원으로 한방병원의 임금체불을 해결할 수는 없죠. 한방병원노조에서 김문기 구재단 이사장의 복귀를 바라는 저변에 임금체불을 해결해주겠다는 김문측의 약속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 문제는 김문기 복귀로 풀어내기 보다는 한방병원의 경영을 정상화하는 정도로 풀어야 하는 문제로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튼 임금체불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거듭 희망합니다.


블로그에서의 댓글 한방, 트위터에서의 RT 한방, 멘션 한방이 정말 큰 힘이 되어, 아주 거대한 긴꼬리(롱테일)가 되어, 거대한 모자이크의 한 조각들이 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일 아닙니다. 한번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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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상지대 사학비리 보스몹레이드

    Tracked from 모두 무장을 하고 2010/07/18 11:26 del.

    상지대학교를 아십니까? “바른 뜻을 숭상한다”는 의미의 교명, 교훈은 '참되고 창의적이며, 더불어 사는 지성', 1960년에 개교, 위치는 강원도 원주시, 교지 총 면적은 169만 4,679제곱미터, 교원은 222명, 재학생은 총 7,576명, 6개 대학원과 7개의 단과대학,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학교의 명물은 문민정부 시절 교수채용비리, 부정편입학, 인척선임, 용공조작 등등 화려한 오명과 함께 감방으로 고고씽한 구 재단 이사장 김문기 ...

  2. Subject : 상지대, save us!!

    Tracked from 뗏목지기™의 인생사분지계 2010/07/21 20:57 del.

    이 포스팅은 ‘‘희망21′ 상지대 지키기 : 21일 21시 무조건 쏜다!‘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상지대 save us!! 제목 어디서 많이 보신 듯 하지 않나요? 네.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주제곡으로, 신해철이 결성했던 그룹 ‘넥스트’가 불렀던 ‘Lazenca, save us’에서 따온 것입니다. (다음 가사 보기, 유튜브 동영상 보기...

댓글

댓글창으로 순간 이동!
  1. ㅁㅓㅅ진 글이네여 2010/07/17 00:13

    정말 멋진 글이네요. 민노씨는 항상 사회에 대한 고민이 많으신거 같아요. 비결이 몬가요? 이 글을 읽으니 상지대가 어딘지,사회가 어떻게 아파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네요. 정말 좋은 글이에요. 저를 일깨워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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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7/18 00:51

      고맙습니당!

  2. ㄱㄱㅆ 2010/07/17 00:14

    나도 이 구절 좋아하는데!!!! 나랑 통하네요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7/18 00:51

      오, 통했근영!

  3. Playing 2010/07/17 21:26

    안녕하세요 ~ 덕분에 이 시간 벌어지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되었네요

    꼭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랍니다
    비가 많이 오는데 '촛불'이 걱정되네요 ㅡ _ㅡ;;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7/18 00:52

      아, 정말 고마운 댓글입니다. :)
      학생들이 어서 학교로 돌아가 청춘을 즐기고, 공부도 맘껏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4. 민노씨 2010/07/18 00:50

    * 추고
    - 상지 영서대 강영태 교수의 양심선언 부분 수정 및 보충 추고.
    - [하니뉴스] "사분위원이 비리재단과 유착" 상지대 갈등 증폭
    - http://www.youtube.com/watch?v=MoGZ7PSjQZ0&feature=re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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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사학법개정2라운드 2010/07/18 02:57

    정작 상지대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의식에 동참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학생회 활동하면서 볼 꼴 안 볼 꼴 다 보고나니

    대학이란 것에 회의가 들더군요.

    무관심, 냉소, 허무주의, 패배주의...

    부디 상지대 주인들이 현명하게 헤쳐나가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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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7/18 13:53

      체험에 바탕한 쓴 지적 잘 들었습니다.

      다만 제가 체험한 상지대 학생들은 정말 멋진 친구들이었습니다.
      제가 과한 우호적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잘못과 과오가 있다면, 거짓과 오류가 있다면 그 쓴 지적들을, 애정어린 비판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들려주시길 바라봅니다.

      솔직한 말씀에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6. 비밀방문자 2010/08/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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