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혐오와 동성애 혐오 : 차이점

2010/01/06 03:03

특히 이글루스 쪽에서 동성애 혐오에 관한 설왕설래가 있는 모냥. 그 설왕설래 와중에 동성애 혐오를 혐오하는 진보(?) 좌빨(?)들은 왜 이명박 혐오에 대해선 입다물고 있나, 이명박을 죽이고 싶다는 언어의 폭력성과 동성애자들을 죽이고 싶다는 언어의 폭력성은 뭐가 다른가, 이런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모냥. 이 글은 그 모냥이 왜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단상이다.

이명박이라는 이름은 고유한 인격체를 표시하는 이름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공적 정치행위의 상징이다. "나는 이명박을 죽이고 싶다."는 문장은 이명박이라는 고유한 인격체를 박살내고 싶다는 감정적 혐오에 기반한 게 전혀 아니다. 그 문장은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공적 정치행위에 반대한다는 의미를 강하게 표현한 정치적 수사다. 그것은 정치적 의사표시다. 양심의 자유에 속한 문제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 한계 내에 존재한다. 이 발언에 폭력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폭력성은 당대 권력, 좀더 순화시키면, 당대 시민사회가 쟁취한 공동체적 합의의 허용 한계 내에 있다. 그 자유의 한계는 물론 시대마다 달랐다. 박정희 시대에 "나는 박정희를 죽이고 싶다."는  소리했으면 바로 남산으로 끌려갔을거다. 그나마 이런 정치적 표현의 허용 한계를 우리는 조금씩 넓혀왔다. 그게 그냥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나? 우리의 선배 세대들,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이 권력에 매 맞아가며, 피를 뿌리면서 쟁취한거다. 대처 시대 탄광촌을 다룬 영국 영화들을 보라. 대처가 제발 좀 죽었으면 좋겠다는 대사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아예 대처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교회에서 기도하는 장면도 나온다. 걔네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영화적) 표현을 쟁취한거다. 각설하고,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 이명박 혐오를 표현하는 말, 글에 나타난 과한 수사들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속한 문제다.

동성애는 공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성인들의 사적 생활에 속한 부분이다. 그래서 그걸  사생활이라고 하고, '성적 취향'이라고 한다. 이명박이 상징하는 공적 정치행위와는 논의 평면이 다르다. 이성애자들을 중심으로 한 다수 문화는 동성애와 양성애 박해를 당연시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그건 특히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 문화, 이슬람 문화권에서 강하다고 하더라(나도 잘 모른다). 암튼 우리나라 얘기를 해보면, 면면히 이어져내려오는 가부장적 유교의 관성도 당연히 이런 비이성애 혐오 이데올로기를 만들낸 것 같다. 즉 역사적으로 이 문제는 (다수) 권력의 횡포라는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러니 소수자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무슨 표현의 자유나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이 존중 범위를 얼마나 두텁게 인정하고, 넓혀나갈 것인가. 그것이 그 사회의 성숙을 반영한다. 이명박 혐오와는 정반대 문제 되시겠다.

간단히 정리하면 "나는 동성애자를 죽이고 싶다."라는 혐오적인 이데올로기는 극복해야 하는 다수 문화, 주류적 권력이 만들어 낸 역사적 관습의 잔재일 뿐이지, 그걸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로 끌어와서 존중해야 하는 문제가 전혀 아니다. 이것이 정치적 성향과 아주 상관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가령 보수파는 동성애 문제에 부정적이고, 진보파는 동성애에 대해 긍정적인 점), 그런 정치적인 성향과 연계하기 이전에, 다수 취향을 가진 인간이 소수 취향을 가진 다른 인간을 그저 인간으로서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아직 그 존중이 당연하지 않은 우리시대가 그걸 얼마나 더 부끄럽지 않은 수준으로 끌어올 수 있는가라는 보편적 인간성에 관한 문제다. 그러니까 동성애 혐오를 무슨 표현의 자유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아해들(의 사고방식)은 존중 대상이 아니라, 극복 대상일 뿐이다.

한줄정리. 타인의 취향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들어 공격하는 행태를 우리는 흔히 '찌질하다'고 부른다.


추.
허지웅 글(추천)을 보니 도킨스를 인용했길래, 우연히 지난해 연말 선물로 받은 [만들어진 신]을 한번 훑어봤다. 내가 찾는 부분은 나오지 않고(아마 도킨스의 다른 책인 듯), 대신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성애에 대한 공식적인 처벌은 사형이었다. 산 채로 묻은 뒤 그 위에 벽에 쌓는 고상한 방법을 써서 말이다. (....) 내 조국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영국에서도 동성애는 1967년까지 범법 행위로 취급되었다. 1954년 요한 폰 노이만(Johann Ludwig von Neumann)과 더불어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이 동성애자라는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뒤 자살했다. 튜링이 벽 아래 산채로 묻힌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는 2년 동안 감옥에 들어가든지(다른 죄수들이 그를 어떻게 대할지 상상이 갈 것이다) 가슴이 튀어나오게 하는 호르몬 주사를 맞고 화학적 거세를 당할지, 선택하라는 제의를 받았다. 결국 그는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는 것으로 개인적인 선택을 했다.
- 리차드 도킨스, '내가 종교에 적대적인 이유 : 신앙과 동성애',  [만들어진 신](2006), 이한음역, 김영사(2007), p. 439.

사족. 튜링과 애플
유명한 일화. 이 일화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즐겨봤던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에서도 나왔던 것 같다. : ) 튜링은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깨물어 먹고 자살했다. 1976년 애플을 창립한 스티븐 위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의 아버지 튜링을 기리기 위해 한 입 베어문 사과를 로고로 선택한다.


* 관련 추천 : 모두 강추.
무엇이 보입니까? (아거. April 22, 2004)
http://gatorlog.com/mt/archives/001715.html

: '그것'이 보이는 순간 더 이상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선입견이라는 괴물.

Is there a "Gay Brain"? (아거. April 28, 2004)
http://gatorlog.com/mt/archives/001726.html 
: 동성애가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혀낸 사이먼 리베이(Simon Levay. 1991년)와 딘 해머(Dean Hamer. 1995년).

"링컨은 게이(gay)였다"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든 생각 (아거. December 17, 2004)
http://gatorlog.com/mt/archives/001933.html
: 동성애 증오가 역사적/문화적 산물이라면, 이성애 증오가 생기지 말란 법 없다. 있을 때 (서로 서로) 잘하자.

련애박사의 고난이도 동성련애 108 법칙 (이정우. 2004년 2월 11일)  
http://chungwoo.egloos.com/275616 
: 전부 공감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아주 유쾌하고, 재밌는 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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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게이논란: 표현의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지 않는가?

    Tracked from Crow's Maniacal World 2010/01/06 11:17 del.

    이명박 혐오와 동성애혐오: 차이점 via 민노씨.네게이논란(2) via ozzyz review 허지웅의 블로그 위 두 글과 같은 관점의 글이 있는가 하면,  모순적인 다원주의 입장 via 모순과 위선사이우리에겐 자신의 혐오를 말할 권리가 있다. via 일칠호선생님연구실 와 같은 글도 있다. 참고로 4번째 링크. 그러니까 바로 위에 있는 링크는 클릭하지 마시라. 토할뻔했다. 게이논란에서 중요한 지점은 '표현의...

  2. Subject : 노무현 혐오

    Tracked from 모순과 위선사이 2010/01/07 13:03 del.

    이명박 혐오와 동성애 혐오 : 차이점들어가면서내가 쓴 글에 대해 민노씨가 뭐라하는데 그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어 이 글을 쓴다.우선 난 도덕/이타심/인권존중/취향존중/소수자 보호/국가원수 예우 이런거 별 관심없는 사람이다. 그저 하루하루 모순과 위선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이기적이고도 약해빠진 한 인간일 뿐이다. 다만 내가 보기에 모순적이거나 위선적인(혹은 둘 다인) 태도에 딴죽거는게 취미인 사람이다. 앞서 쓴 ...

  3. Subject : 할 말 못할 말

    Tracked from 모순과 위선사이 2010/04/12 18:36 del.

    폴란드 대통령 전용기 추락사건사람이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다. 아무리 이명박이 싫어도 '왜 하늘은 데려갈 사람은 안 데려가고' 같은 소리를 하지는 말아야 한다.노정태의 글을 보고 예전에 썼던 포스트가 생각난다. 그때 노정태는 이오공감에도 올라왔던(나중에 내려갔지만) 이명박 혐오 발언을 알고 있었을까? 내가 기억하기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민노씨는 정치적 발언이라고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해서 그럼 독립신문 노무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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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거 2010/01/06 04:25

    이글루스에서는 주기적으로 동성애 관련 논쟁이 붙는가보네요.
    제가 알기로는 2004년에도 이정우님 블로그를 중심으로 논쟁이 세게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두꼭지 쓴 기억이 납니다.

    http://gatorlog.com/mt/archives/001715.html
    http://gatorlog.com/mt/archives/001726.html

    그 뒤에도 이런 글을 적은 적이 있네요
    "링컨은 게이(gay)였다"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든 생각
    http://gatorlog.com/mt/archives/001933.html

    perm. |  mod/del. |  reply.
    • 민노씨 2010/01/06 13:25

      직접 좋은 글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
      간략하게나마 논평을 달아 본문에 보충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정우씨 (아마도 해당글일 것 같은) 글은 검색은 되는데 없는 페이지라고 나오네요.

  2. mindfree 2010/01/06 11:54

    애플의 사과가 튜링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과, '그럴거라 추측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는 주장이 엇갈리는군요. ^^; 어느 책에 보니 애플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고도 하고. 하지만 두 창업자의 성향이나 당시의 미국 시대 분위기를 볼 때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은 사실이지요.

    그건 그렇고. '남이사' 동성애를 하건 말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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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06 13:27

      지금은 사과 색이 바뀌었습니다만, 무지개가 게이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아마도 가능성이 매우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 )

  3. 민노씨 2010/01/06 13:26

    * 보충
    관련 추천글 : 아거와 이정우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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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black_H 2010/01/07 09:53

    다른것과 틀린것은 구분해야 하는데...
    '표현의 자유' 라는 단어만 나오면 그저 그게 옳은것으로 아는 2차원적인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많더군요....
    틀린것도 표현의 자유 범주에 넣어달라는 사람들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말그대로 극복해야 할 문제를 가지고 자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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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노씨 2010/01/07 22:47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말자체도 어찌보면 좀 이데올로기거나 이성의 작위적이고, '역사적인' 조작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개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말씀처럼 '다른' 생각이 아니라, '틀린' 생각에 대한 비판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 민노씨 2010/01/10 01:18

    * 본문 일부 표현 사소하게 추고 : 서너개 표현들.

    perm. |  mod/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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